책이라는 상품

 

작가님의 글을 읽으니 문득 『월든』을 쓴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첫 작품 출판에 얽힌 아픈 일화가 겹쳐 떠오릅니다. 소로우도 작가적 재능은 탁월했지만 (『월든』으로 대박이 나기 전까지는) 늘상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는 작가였고, 초판 흥행이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작가님과는 비교도 하기 어려울 만큼 참담한 실패를 겪었던 인물이기도 하고요.

 

오로지 자신의 처녀작 집필에만 전념하기 위해 일부러 월든 호숫가로 나가 오두막을 짓고 글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소로우는 자신의 처녀작을 인쇄해 줄 출판사마저 구하지 못했고, 백방으로 알아본 끝에 간신히 돈을 빌려 자비로 출판한 초판 1,000권 중에서도 4년 동안에 팔린 책이 겨우 294권에 그쳤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기증본 75권이 포함된 수치라고 하고요. 그에 비하면 작가님의 첫 소설집은 정말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작가님이 번역하신 책들은 워낙에 큰 출판사에서 밀고 있는 유명한 작품들이니만큼 앞으로도 오랫동안(!) 흥행에 큰 어려움은 없으리라 믿습니다.

 

아무쪼록 건투를 빕니다.^^

 

 * * *

 

얼마 전에는 한 원주민 행상이 우리 동네에서 상당히 유명한 변호사의 집에 바구니를 팔려고 왔다. 원주민은 "바구니를 사시겠습니까?" 라고 물었지만 "아니요, 우리 집에는 바구니가 필요 없어요"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러자 원주민은 "뭐라고요! 우리를 굶겨죽일 생각입니까?" 라고 소리치고는 대문을 박차고 나갔다. 원주민은 주위 백인들이 열심히 일하면 잘사는 걸 보고, 특히 변호사가 변론을 잘 짜내기만 하면 마법이라도 부린 것처럼 재물과 지위가 따르는 걸 보고 '나도 사업을 해야겠다. 바구니를 짜야겠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원주민은 바구니를 짜면 자기 일을 끝낸 것이 되고 그렇다면 백인들은 당연히 바구니를 사야 하는 걸로 생각했던 것이다. 백인들이 살 만한 가치 있는 바구니를 만들거나, 적어도 백인들이 바구니를 가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살 만한 다른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은 몰랐다. 나도 가늘게 쪼갠 나무로 바구니 같은 것을 엮어본 적이 있었지만, 백인에게 팔 만한 것으로 만들어 내지 못했다.102 하지만 나는 바구니를 엮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남들이 살 만한 바구니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는 대신 내 바구니를 굳이 팔지 않아도 괜찮은 방법을 연구했다. 사람들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하며 칭찬하는 삶은 그저 삶을 살아가는 한 방법에 불과하다. 그런데 다른 모든 방식의 삶을 짓밟아가며 하나의 삶만을 과대평가할 이규가 어디에 있는가?(54∼55쪽)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주석 달린 월든』중에서 

 

주석)

 

102. 소로우의 첫 책,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 보낸 일주일』 을 가리킨다. 이 책은 거의 팔리지 않았다. 그 때문에 소로우는 출판사에 빚진 290달러를 갚는 데 4년이나 걸렸다. 소로우는 1853년 10월 27일의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엉뚱하게 '출판업자'라 불리는, 내 책을 출간해준 출판사가 아직 팔리지 않은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 보낸 일주일』 재고들을 어떻게 처분해야겠느냐고 묻는 편지를 지난 한두 해 동안 가끔 보내다가, 재고들이 차지한 공간을 그들이 급히 싸용해야 할 일이 생겼다고 내게 알려왔다. 그래서 나는 전부 여기로 보내달라고 부탁했고, 그 책들이 속달로 오늘 도착했다. 짐마차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많았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4년 전에 먼로에게 사서 그 이후로 조금씩 값을 치렀지만 아직 완납하지 못한 1,000권 중 남은 706권이었다. 그 책들이 마침내 내게 보내졌고 이제야 내 물건들을 살펴볼 기회를 갖게 됐다. 그 책들을 등에 짊어진 채 층계참을 돌고 두 계단을 올라, 그것들이 원래 있었을 곳과 비슷한 공간까지 옮겼다. 290권 남짓한 책들 중 75권은 기증하고 나머지가 겨우 팔린 것이었다. 이제 나는 거의 900권에 달하는 책이 있는 서고를 갖게 됐지만, 그중 700권 이상이 내가 쓴 책이다. 저자가 자신이 기울인 노고의 열매를 지켜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내 책들이 내 방 한 귀퉁이에 허리 높이까지 쌓여 있다. 내 오페라 옴니아(opera omnia, 모든 저작물-옮긴이)다. 내가 원작자고, 내가 머리를 짜내 빚어낸 작품이다.(일기 5:459)

 

 

 

자신의 처녀작 출판을 도와줄 곳을 찾지 못해 끝내 자비로 - 그것도 에머슨으로부터 돈을 빌려서 - 출판한 첫 책이 저토록 참담한 실패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일기에 저런 내용을 남겨 놓는 여유를 즐겼다. 그런 내공들이 쌓이고 쌓인 끝에 불후의 걸작인 『월든』이 탄생한 것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월든』에서 방금 인용한 문장에 잇따라 이어지는 다음 대목은 '소로우가 월든 호숫가로 간 진정한 까닭'을 밝히는 부분이므로 덧붙여 인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뜻밖에도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소로우가 월든 호숫가에서 홀로 오두막을 짓고 살게 된 진짜 이유에 대해서 너무나 자주 오해하기 때문이다.(물론 소로우가 직접적으로 사태를 설명하는 대신에 일부러 다른 일에 빗대어 말장난처럼 표현하는 방법을 즐겨 사용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와 함께 호흡하는 시민들이 내게 법원의 일자리나 목사 보조 등 그 밖의 먹고살 만한 자리를 제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나는 내 힘으로 먹고살 길을 마련해야 한다는 걸 깨닫고, 여느 때보다 열심히 숲으로 얼굴을 돌렸다. 숲에서는 내가 그런대로 얼굴이 알려진 편이었다. 그래서 나는 평소대로 자본금이 모이기를 기다리지 않고, 수중에 있는 빈약한 수단을 사용해서 곧바로 내 사업103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월든 호수로 간 목적은 돈을 들이지 않고 살려는 것도 아니었고 거기에서 힘들게 살려는 것도 아니었다. 별다른 방해를 받지 않고 개인 사업104을 하고, 상식도 없으며 계획을 해서 사업을 꾸려갈 만한 재능도 없어 어리석게는 보여도 그만큼 한심하게는 보이지 않을 일을 하는 데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였다.(55쪽)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주석 달린 월든』중에서

 

주석)

 

103. 여기에서 '사업하다'는 어떤 경제적 이득이나 생활의 향상을 위해 일하겠다는 일반적인 의미가 아니라, 관심 있는 일이나 신경 써야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힘쓰겠다는 뜻이다. 뒷 문장에 쓰인 '개인 사업'과 맞추어 말장난한 것이다. 

 

104. 개인 사업은 1842년 파상풍으로 사망한 형에게 바친 책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 보낸 일주일』을 쓰는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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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2-09 0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오노 나나미는 “신은 세부에 깃든다”란 말을 했는데 진짜 디테일에 강하신 오렌님^^ 굿밤하소서~

oren 2019-02-09 13:35   좋아요 1 | URL
시오노 나나미가 저런 고상한 말도 남겼군요.^^
저랑 그다지 큰 연관은 없는 얘기겠습니다만,
그래도 뜨거운 격려의 말씀이라 생각하겠습니다.^^

카알벨루치 2019-02-09 14:23   좋아요 1 | URL
늘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오렌님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oren 2019-02-09 14:27   좋아요 1 | URL
늘 성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02-09 08: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전에 oren님께서 알려주신 소로우의 일화에 오늘 페이퍼의 글까지 읽으니 한결 이해가 깊어진 것 같습니다. 소로우가 월든 숲으로 간 것이 개인 사업과 삶을 위한 것임을 알고나니, 깨달음을 위해 반드시 가톨릭의 ‘피정‘이나 불교의 ‘동안거‘가 필요한 것이 아님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oren 2019-02-09 13:48   좋아요 2 | URL
아무리 그래도 하버드 졸업식때 졸업생 대표로 연설을 할 정도로 탁월했던 젊은 청년이 ‘속세의 성공‘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이 ‘호숫가에 외딴 오두막을 짓고 홀로 살면서‘ 불후의 작품을 쓰겠다고 한 걸 보면 대단한 결심과 비범한 실천력을 갖춘 인물임이 분명한데,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쓴 처녀작이 참담한 실패를 했음에도 굴하지 않고 『월든』으로 승화시켰다는 사실이 더 감동적이더군요.

처녀작을 에세이로 쓰기 전에는 랄프 왈도 에머슨으로부터 오랫동안 개인 과외 교습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작시(作詩) 훈련을 받았으나, 마침내 ‘자신의 시재(詩才)가 어느 정도인지 깨달아야 한다‘는 스승의 말을 듣고, 수많은 자작시들을 단칼에 모조로 불태웠다고 하고, 그 시들은 지금까지도 전해지는게 없다고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