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가련하게도
이제 오십 고개를 넘은 자를
두려워 마오.

 - 호라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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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래도 할 수 없지. 늙는다는 것의 보상은, 하고 피터 월시는 모자를 손에 들고 리전트 파크를 나오며 생각했다. 그건 단지 이런 거야. 정열은 이전이나 다름없이 강하지만, 그래도 ─ 마침내! ─ 삶에 최고의 맛을 더해 주는 힘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지. 지난날의 경험을 손안에 넣고 천천히 돌려가며 빛에 비추어 보는 힘을.(106∼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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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기 싫은 일이지만(그는 모자를 다시 썼다), 이렇게 쉰세 살쯤 되고 보니, 더 이상 사람들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인생 그 자체, 그 모든 순간, 지금 바로 이 순간, 햇볕 속에서 리전트 파크에 있는 순간만으로 충분했다. 아니, 과분할 지경이었다. 전 생애도 그 맛을 온전히 끌어내기에는, 이제 그럴 힘을 얻고 보면, 마지막 한 방울의 즐거움, 마지막 한마디의 의미까지 다 끌어내기에는 너무 짧았다. 의미도 즐거움도 이전에 비하면 훨씬 더 순수하고 개인적인 데가 적었다. 다시는 클라리사 때문에 괴로워했던 만큼 괴로워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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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이 있을 수나 있는 일일까? 그 옛날의 비참함과 고통과 특별한 열정을 잊지 못하면서도? 하기야 전혀 다른 일이기는 했다 ─ 훨씬 더 즐거운 일이지 ─ 물론 이번에는 여자 편에서도 그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아마도 바로 그 때문에 배가 출항했을 때 그처럼 안도감을 느꼈을 것이었다. 그는 단지 혼자 있고 싶었고, 선실에서 그녀의 사소한 배려들 ─ 엽궐련이며 노트, 여행용 담요 같은 것들 ─ 을 발견하고는 짜증이 났었다. 누구라도 본심으로는 다 그렇게 말할 것이었다. 오십이 넘고 보면 더는 사람들을 원치 않게 된다. 여자에게 예쁘다는 말을 하기도 귀찮아진다. 오십대의 남자 대부분이 본심으로는 다 그렇게 말하리라고 피터 월시는 생각했다.(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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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저편으로부터 ─ 포장도로가 풀밭이었던, 늪지였던 때로부터, 매머드와 엄니의 시대를 거쳐, 고요한 일출의 시대를 거쳐 ─ 이 풍상에 찌든 여인은 ─ 왜냐하면 치마를 입었으니까 ─ 오른손을 내밀고 왼손은 옆구리에 움켜쥔 채 서서 사랑의 노래를 하고 있었다. 백만 년을 이어 온 사랑, 하고 그녀는 노래했다. 승리하고야 마는 사랑! 백만 년 전에, 지금은 가고 없는 연인과 오월의 들판을 거닐었다네, 하고 그녀는 읊조렸다. 여름날처럼 길고 긴 세월이 지나 ─ 붉은 과꽃만이 타오르던 여름날, 하고 그녀는 추억했다 ─ 그는 가버리고, 죽음의 거대한 낫이 저 크고 높은 산들을 휩쓸어, 마침내 백발이 성성한 이 늙은 머리를 땅에 누일 때면, 그 머리가 차디찬 잿더미로 변할 때면, 신들이여 부디 그녀 곁에 자줏빛 히스 다발을 놓아 주시기를. 석양의 마지막 햇살이 어루만지는, 그 높다란 무덤 위에. 그때가 되면 이 세상의 행렬도 끝이 나리니.(109∼110쪽)

 

 - 버지니아 울프, 『댈러웨이 부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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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a 2019-01-22 1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육십이 넘고 보면. . . 어떤 기분이 들까요?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기도 귀찮아지지 않을까요?

oren 2019-01-22 11:27   좋아요 0 | URL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몸이 늙는 것도 서러운데, 마음까지 따라 늙으니 더 서러울 것 같아요.^^

겨울호랑이 2019-01-22 1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자는 나이 사십을 ‘불혹(不惑)‘ 나이 오십을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했는데, 저는 나이 오십에도 ‘불혹‘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다르게 생각하면, 이렇게 자신을 반성하며 지내면, 그나마 늙음을 깨닫지 못하는 장점이 있기는 할 것 같네요..^^:)

oren 2019-01-22 12:27   좋아요 1 | URL
불혹이니, 지천명이니, 하는 말들은 어쩌면 성인군자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라는 걸 나이 들면서 점점 더 실감하게 되는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2019-01-22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2 1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9-01-22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천명을 오십이라고 했는데 백세시대 요즘 50은 청춘이라고 할수 있지요.다만 사회적으로 50은 반명퇴 상태에 해당되는 분들이 대다수라 남은 기간 경제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될지(재취업 자영업등등) 모든이들의 고민이라고 할수 있습니다ㅜ.ㅜ

oren 2019-01-22 18:52   좋아요 0 | URL
맞는 말씀이네요. 불혹이니 지천명이니 이순이니 하는 ‘나이라는 숫자 앞에 붙이는 고상한 수식어들‘조차 결국 민생고 앞에서는 한순간에 무너질 테니까요. 이런 댓글을 쓰다 보니 문득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언급했다는 ‘고정된 수입‘의 무게를 새삼 절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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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의 쓰라림을 기억하건대, 고정된 수입이 사람의 기질을 엄청나게 변화시킨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고요. 이 세상의 어떤 무력도 나에게서 500파운드를 빼앗을 수 없습니다. 음식과 집, 의복은 이제 영원히 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력과 노동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증오심과 쓰라림도 끝나게 됩니다. 나는 누구도 미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도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없으니까요. 또 누구에게도 아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가 나에게 줄 것이 없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하여 나는 스스로 인류의 다른 절반에 대해 아주 미세하나마 새로운 태도를 취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