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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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저녁 8시 무렵, 해가 지고 있었다. 여전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악취와 먼지에 가득 찬 도시의 공기를 탐욕스럽게 흠뻑 들이마셨다. 약간 현기증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떤 야수적인 에너지가 그의 타는 듯한 눈동자와 누렇게 뜬 해쓱한 얼굴에서 뿜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어디로 가야 할 지도 몰랐고, 또 생각해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단 한 가지만큼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오늘 《이 모든 일》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단번에 지금 당장. 그렇게 하지 않고는 집에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끝낼 것인가? 무슨 수로 끝낼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지니고 있지 않았을뿐더러, 또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상념을 쫓아 버렸다. 상념이 그를 괴롭혔던 것이다. 그는 다만 이렇게든 저렇게든 모든 것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만 느끼고 있었을 뿐이다. <어떻게든 상관없어.> 그는 필사적이고 질긴 자기 확신과 결단성을 가지고 이런 말을 되뇌고 있었다.(225∼226쪽)

 

(나의 생각)

 

전당포 여주인과 그녀의 여동생까지 도끼로 살해한 뒤 극도의 혼란과 공포 때문에 실신하고 마는 라스꼴리니꼬프는 며칠 만에 간신히 깨어난 후 라주미힌과 조시모프에게 둘러싸인 자신을 발견하지만, 그들의 따뜻한 관심과 염려로부터 그 어떤 위안도 얻지 못한다. 마침내 그는 절망에 휩싸여 그들을 자기 방에서 내쫓는다. 절규하면서.

 

「나를 내버려 둬! 나를, 모두 다!」 라스꼴리니꼬프는 흥분해서 소리 질렀다. 「언제쯤 나를 내버려 둘 거야, 이 고문자들아! 나는 너희들 따윈 두렵지 않아! 나는 아무도, 아무도 이젠 두렵지 않아! 저리 나가! 난 혼자 있고 싶어, 혼자 있고 싶다고! 제발!」

 

그들을 모두 내쫓고 간신히 자신의 방을 빠져나와 무작정 거리로 나선 라스꼴리니꼬프가 마땅히 찾아갈 만한 데가 과연 어디 있으랴. 더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도 않고, 어떻게, 무슨 수로 자신의 삶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지도 모른 채 방황하고 몸부림치는 젊은이의 모습을 바라보는 독자의 마음은 살인을 저지른 죄인에 대한 분노보다는 까닭모를 연민과 동정에 훨씬 가깝다.

 

 

 * * *

 

 

<그게 어디였더라.> 라스꼴리니꼬프는 다시 걸음을 옮기면서 생각했다. <어디서 읽었더라? 사형 선고를 받은 어떤 사람이 죽기 한 시간 전에 이런 말을 했다던가, 생각했다던가. 겨우 자기 두 발을 디딜 수 있는 높은 절벽 위의 좁은 장소에서 심연, 대양, 영원한 암흑, 영원한 고독과 영원한 폭풍에 둘러싸여 살아야 한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평생, 1천 년 동안, 아니 영원히 1아르신밖에 안 되는 공간에 서 있어야 한다고 할지라도, 그래도 지금 죽는 것보다는 사는 편이 더 낫겠다고 했다지! 살 수만 있다면, 살 수만, 살 수만 있다면! 어떻게 살든, 살 수 있기만 하다면……! 그만한 진실이 또 어디 있겠나! 그래, 이건 정말 대단한 진실이 아닌가! 인간은 비열하다……! 또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그를 비열하다고 하는 놈도 비열하다.> 잠시 후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230∼231쪽)

 

 -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 <제2부>

 

(나의 생각)

 

도스토예프스키가 여기서 인용한 책 속 내용은 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의 주인공이 절망의 벼랑 끝에서 문득 떠올린 '사형 선고를 받은 어떤 사람' 이야기조차 작가 자신이 직접 겪은 사형수 체험보다 더 강렬할 수는 없다.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라스꼴리니꼬프조차 저토록 간절히 살고 싶어 발버둥치는데, '벨린스끼의 <사악한> 편지를 퍼뜨린 죄목'으로 체포되어 졸지에 사형 직전까지 내몰렸던 도스토예프스키는 과연 얼마만큼 더 간절하게 삶을 이어가고 싶었을까.

 

 

 * * *

 

 

벌써

코사크 사람 하나가 성급하게 다가와

총을 보지 못하게 두 눈을 묶는다.

그리고ㅡ그는 안다. 이제 마지막이구나!ㅡ

그의 눈길은 이제 눈멀기에 앞서

탐욕스럽게 저쪽에 펼쳐진

저 작은 한 조각 세상을 바라본다.

아침빛 속에 교회가 타오르는 것을 본다.

최후의 행복한 만찬을 위해서인 듯

그 접시는 성스런 아침노을로

가득 채워져 불타고 있다.

그리고 그는 갑작스러운 행복감에 넘쳐

죽음 뒤의 신의 삶을 그리워하듯 교회를 바라본다….

 

그 때 그들이 그의 눈 위로 밤의 띠를 둘렀다.

 

그러나 내면에서는

피가 색깔을 가지고 돌기 시작한다.

모든 것을 비추어주는 물 속에서

이미 지나가 버린 삶이

피로부터 솟구쳐 나온다.

그리고 그는

죽음에 바쳐진 이 순간이

한 번 더 자기 영혼을 통과하며

모든 잃어 버린 과거를 씻어 버리는 것을 느낀다.

그의 전 일생이 다시 깨어나서

그림이 되어 그의 가슴을 유령처럼 스쳐간다.

창백하고 잃어 버린 잿빛 유년 시절,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 아내,

세 개의 파편 같은 우정, 두 잔의 즐거움,

명성의 꿈, 한 더미의 수치.

그리고 그림으로 된 충동이 잃어 버린

청년 시절을 혈관을 따라 굴린다.

그들이 자신을 기둥에 묶는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살아온 전 존재를

그는 한 번 더 깊은 내면으로 느낀다.

사려 깊은 생각이 어둡고 무겁게

그 자신의 그림자들을 그의 영혼 위로 던진다.

그리고 그 때

누군가 자기 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느낀다.

검고, 침묵하는 걸음걸이를 느낀다.

가까이, 아주 가까이

그가 손을 자기 가슴 위에 올려놓는 것을,

심장은 점점 약하게…  약하게…  그러다가 이제 더는

뛰지 않는다.

1분이 지나면…  그러면 끝이다.

코사크 사람들은

저편에서 사격을 위해 대열을 이룬다… .

총을 맨 벨트는 흔들리고…

손들은 방아쇠 소리를 내고…

북이 울려서 공기를 가른다.

그 1초는 수천 년 나이를 먹게 한다.

 

그 때 외침소리 하나,

멈추어라!

장교가 앞으로

나선다. 종이 한 장이 하얗게 펄럭인다.

그의 음성은 맑고도 분명하게

기다리는 적막 속으로 파고든다.

차르(러시아의 황제)께서

그 성스러운 의지의 은총으로

판결을 취소하셨다. 이제

판결은 감형되었다.

 

그 말들은 아직

낯설게 들린다. 그는 그 의미를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의 혈관 속을

흐르는 피는 다시 붉어지고,

솟구쳐 흐르며 다시 조용히 노래하기 시작한다.

죽음은 망설이면서 마비된 관절에서 물러서고

두 눈은 아직 캄캄하지만 영원한 빛이

둘러싸며 인사하는 것을 느낀다.

형리는

말없이 묶은 끈을 풀어주고

두 손이 갈라진 자작나무 껍질 벗기듯

하얀 천을

타오르는 관자놀이에서 벗겨낸다.

비틀거리며 두 눈은 무덤에서 빠져 나온다.

아직도 약하게 눈이 먼 채로

이미 사라졌던 존재 속으로

다시 서투르게 더듬으며 들어간다.

(201∼204쪽)

 

 - 슈테판 츠바이크, 『광기와 우연의 역사』, 죽음에서 건져올린 삶-사형 직전의 도스토예프스키

 

(나의 생각)

 

이 사건이 일어난 때는 1849년 12월 22일이었다. 황제의 특사로 형 집행 직전에 기적적으로 풀려난 그는 강제 노동형으로 감형되고, 시베리아의 비참한 수용소에서 4년 동안 유형 생활을 보낸다. 젊은 시절부터 이토록 드라마틱한 체험을 겪은 사람이었으니, 그의 작품이 지옥을 넘나드는 것처럼 생생하지 않다면 그게 도리어 이상할 법하다. 도스토에프스키의 많은 작품들 속에 작가의 체험이 핏빛처럼 선연하게 뿌려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다 싶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필연을 두고 우연을 가장한 모습으로 다가온다고 표현한 적이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 탄생한 데에도 무수한 우연이 개입되어 필연적인 결과를 낳았다고 말한다면 너무 지나친 억측일까? 어쩌면 이같은 생각조차도 '우연과 필연' 사이의 불가해한 간극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 심리의 '참을 수 없는 구분의 욕망' 때문에 빚어지는 오해일지도 모르겠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숭고와 우스개' 사이의 거리는 불과 한 발짝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 어느 위인의 말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어쩌면 우연과 필연 사이의 거리도 그만큼 바싹 붙어 있는 게 아닐까.

 

도대체 어째서 이것이 이런 형태로 생겼고 다른 형태가 되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이것은 이런 형태로 생겼기 때문이다. "우연이 상황을 만들고 천재가 그것을 이용했다"고 역사는 말한다.

 

그러나 우연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천재란 도대체 무엇인가?

 

우연이나 천재라고 하는 말은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나 그 어떤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정의를 내릴 수가 없다. 이 말은,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어떤 단계를 나타내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왜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알지를 못한다.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알려고 하지 않고 우연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일반적인 인간의 성질로부터 동떨어진 행위를 일으키는 힘을 본다. 왜 그것이 생기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천재라고 말하는 것이다.(1542-1543쪽)

 

 -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에필로그> 중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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