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쏘녀의 안락의자 (쏘녀 서재) &gt; 마이리뷰</title><link>http://blog.aladin.co.kr/optimization/category/24130</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지금 내가 사는 건 알고보면 단순한 몇 가지 일들로 분해된다. 공부하기, 운동하기,
밥먹기, 술먹기, 한정된 몇 사람들과의 만남... 앞으로 몇년간 계속될 이 단순한 생활 속에 책이 조금이라도 낙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건 SF와 만화, 잡다구리한 교양도서들, 김용과 제인오스틴이 내가 편애하는 작가.</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04 Apr 2026 07:24:25 +0900</lastBuildDate><image><title>쏘녀</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30926113.jpg</url><link>http://blog.aladin.co.kr/optimization/category/24130</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쏘녀</description></image><item><author>쏘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고기를 계속 먹고 싶다면 절대 읽지 말 것. - [도살장 - 미국 산 육류의 정체와 치명적 위험에 대한 충격 고발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2194508</link><pubDate>Sat, 19 Jul 2008 05: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219450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52244&TPaperId=219450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17/53/coveroff/895275224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52244&TPaperId=219450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도살장 - 미국 산 육류의 정체와 치명적 위험에 대한 충격 고발서</a><br/>게일 A 아이스니츠 지음, 박산호 옮김 / 시공사 / 2008년 05월<br/></td></tr></table><br/>최근&#160;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책 중 하나가 "도살장" (게일 A. 아이스니츠, 시공사)이다. 광우병 시국 안에서 빈번하게 노출되던 책이다. 알라딘에서 책소개를 조금 훑어보았는데 그것만으로도 꽤나 충격이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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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전 이 책을 읽기 시작하고 지금까지 나는 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한번도 먹지 않았다. (덧붙임: 리뷰를 쓰고 3주 정도 지났는데 아직도 고기를 안 먹고 있다) 달걀과 우유는 여러번 먹었고, 아참, 어제 먹었던 샌드위치에 햄이 들어있기는 했다. 사실 삼겹살과 돈까스, 예전에 즐겨찾던 햄치즈 우동, 부대찌개 등은 내가 먹고 싶은 음식 리스트의 순위에 올라있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런데 고기가 들어있는 음식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책에 등장하는 내용들이 머릿 속에서 아우성치며 구역질이 치민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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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적어도 한동안은, 결코 고기를 '맛있게' 먹지 못할 것 같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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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금류 사육과 도축에 대한 부분을 읽고 나서는 과연 달걀을 먹는 것조차도 양심에 찔리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다행히도 영국에는 free range라든가 organic 달걀이라는 선택지가 있다! 휴우...<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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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2억 4천3백만 마리의 암탉이 여기 사진에 보이는 좁은 닭장 안에서 살고 있다. (사진 한쪽에는 옴짝달싹할 수 없을만큼 좁은 닭장에서 끼여 죽어 축 늘어진 닭 한마리가 보인다) 이 좁은 곳의 발바닥을 찔러오는 비스듬한 철사 바닥 위에서 사는 이 암탉들은 날개를 뻗거나, 날개를 부리로 다듬거나, 알을 품고 있는 동안 편히 앉지도 못한다. (실제로 닭을 단단한 평지로 데려다 놓으면 제대로 서지도 못한다. 이미 불구가 되어버린 거다) 저쪽 끝에 있는 닭처럼 수천 마리의 암탉들이 매일 같은 우리를 쓰는 다른 닭들에게 밟혀 죽는다. 미국에서 소비되는 달걀 하나를 만들기 위해 암탉 한 마리는 이런 환경에서 26시간을 산다." - p. 191 사진설명<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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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가 되는 이유를 말할 때 (좀 작위적이기는 하나) 보통 건강상의 이유, 도덕적인 이유, 정치-환경적 이유를 든다. 건강상의 이유는 따로 설명이 필요가 없을 테고, 도덕적인 측면으로 사육과 도축 과정에서의 처참하게 유린되는 동물권이라든가 나아가 인간의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생명을 대상화하고 대량 생산하는 발상의 비윤리성을 문제 삼기도 한다. 정치-환경의 측면에서는 고기 1kg을 생산 유통하기 위해 (소의 경우가 가장 극단적인데) 필요한 어마어마한 물, 곡식, 풀, 에너지 투입을 제기한다. 뿐만 아니라 수십만 마리의 소가 내뿜는 배설물이나 메탄가스가 만들어내는 엄청난 환경오염, 이를 복원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 역시 문제가 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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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경우에는 건강상의 이유는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으나 고기의 맛을 포기하게 할 만큼 강력하게 어필은 하지 않았다. 내가 무슨 병이 있어 채식을 해야하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도덕적인 이유 역시 원론적인 측면에서 찬성하기는 했지만 큰 관심은 없었다. 종교를 갖고 있거나 세상을 영성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들이 들 만한 이유지 나같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좀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닐까,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내가 채식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고 육식을 끊거나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가장 큰 이유는 '정치-환경의 측면'이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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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살장"을 읽으면서 깨닫게 된 것 한 가지는, 이 세 가지 측면이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거다.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것은 '도축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이다. 전형적인 르포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책의 2/3 정도를 읽은 지금까지 육식의 필요성이라든가 농축산업계의 아젠다에 대한 공격 같은 건 한번도 등장한 적이 없다. 굉장히 세부적인 것들 이를테면 소 도축장의 스터너-스티커-스키너 등의 역할,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무슨 문제가 있는지, 바닥을 굴러다니는 쥐와 4-5인치짜리 바퀴벌레, 가금도축 과정의 세부사항과 오염이 일어나는 부분, 오염된 고기를 먹고 중독된 아이들의 구체적인 사례들, 일하던 사람들이나 농무부 직원들이 문제제기를 하면서 겪는 일들, 국회 청문회에서 등장한 증언과 보고서들... 이런 것을 기술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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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축산업계에 관한 보고서를 읽으며 알게 된다. 몸의 건강한 감각과 욕구를 마비시키며 욕망을 끝없이 부추기는 시스템 하에서는 대량화가 늘 우위를 점하게 된다. 게다가 규제 완화가 미덕이라는 프로파간다가 판치면서 거대 자본의 힘은 더더욱 커지고 개별 농장, 도축장, 공장에서 그들은 그나마 존재하던 감시와 제어의 손길을 몰아내고 그들만의 더러운, 정말 토나올만큼 더러운 왕국을 구축한다. 대량 생산-소비 사이클을 더 단단하게 구축하고 이윤을 높이는데만 관심있는 자본은 동물권은 커녕 도축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에도, 소비자의 권리에도 관심이 없다. '피를 더 잘 뽑기 위해' 소를 기절도 제대로 시키지 않은 채 모든 도축 과정을 겪게 하는 자본의 잔인한 무신경과, 어린 아이들을 치명적인 0157 대장균에 노출시켜 죽이는 사악함은 동일한 욕망에 뿌리를 둔다. 그 자본과 끈끈하게 결합되어 있는 미 농무부 관료들은 시민, 유권자의 권리와 요구에는 관심이 없다. 끔찍하게 오염된 고기가 그 더러운 공장에서 깔끔하게 포장되어 월마트 가판대에 올려지고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생산되는지를 문제삼는 이들은 오프라 윈프리처럼 수백만 달러짜리 소송의 대상이 되며 입에 재갈이 물린다. (대체 누가 미국을 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르는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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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자본이 장악한 이 시스템은, 소비자의 얄팍한 욕망을 부추기고 이용해 그들을 '비도덕적인 시스템'으로 끌어들인다. 붉은 고기를 매일 먹으려면 그들의 고통에 눈을 감으세요. 당신은 매일 싼값에 달걀을 먹을 수 있어요, 그 달걀 한 알을 낳기 위해 서로 밟으며 미치는 닭들의 하루를 모른 척 할 수 있다면. 맛있는 햄버거를 드세요, 당신의 아이가 대장균의 맹독에 공격받아 장기에서 피를 흘리고 부풀어 올라 피부를 찢고 올라오려 하고 심장의 구멍이란 구멍에서는 피가 흐르고, 간과 췌장 기능은 정지되고 뇌가 다치고 수 달 간의 비참한 투병 끝에 죽기 전에. 사실 당신은 그냥 우리가 주는대로 닥치고 먹을 겁니다, 왜냐면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철저하게 숨기고 있기 때문이지요.&#160;<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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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점점 생협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떠올렸던 공상 하나가 있다. 뜻이 맞는 사람들 여럿이 투자를 해서 소, 닭, 돼지 등을 농가에 맡겨 키우게 하고 한번씩 잡아서 나눠 먹는거다. 도저히 육식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생각했던 건데, 이제 보니 이게 딱 생협이다. 꼭 육식의 문제적 측면에 대한 대응으로서만이 아니라 세계화에 대항하는 지역화, 농촌 살리기, 안전한 먹거리, 에너지 등 환경 문제에 대한 대응으로서도 의미가 있다. 생각할수록 "생협" 요거 괜찮은 놈이다.<br />
<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17/53/cover150/895275224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175362</link></image></item><item><author>쏘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폭력 - 식민이라는 질환을 치유하기 위한 수술!? -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982852</link><pubDate>Thu, 26 Oct 2006 09: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98285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6829379&TPaperId=9828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1/16/coveroff/8976829379_1.gif"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6829379&TPaperId=98285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a><br/>프란츠 파농 지음, 남경태 옮김 / 그린비 / 2004년 08월<br/></td></tr></table><br/>
당신들의 대한민국 2를 읽으며 민족주의-근대-폭력이라는 키워드를 이해하기 위한 대장정에 도전해보겠다는&nbsp;야무진 소망을 품었던 바다.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현재는 미약하다. 겨우 두 권의 책을 읽고, 속도와 열정은 연료 부족현상을 겪고 있다. 하여간..&nbsp;
대충 그런 고로 주워든 책 중 하나가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이다. 옛 운동권에서 주요 텍스트 중 하나로 읽혔다는 건 익히 들어왔고, 알제리의 유명한 식민투사였다는 것, 저항투쟁에서 폭력의 사용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유명하다는 것, 이 정도가 나의 얄팍한 사전지식이었다. 치열한 식민지 해방투쟁의 전사이자 이론가였던 그가 나의 관심 키워드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에 대해 궁금해진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최근 아는 분이 위의 책을 읽었던 얘기를 했던 것이 다시 한번 그의 오래된 책을 기억 속에 되살리는 계기가 되었던 점 역시 빼놓을 수 없다.&nbsp;
신탁을 받은 예언자의 중얼거림 같은 그의 글귀 속에서 헤매고 있다가 어제밤이던가, 5장 "식민지 전쟁과 정신질환"을 읽었다.&nbsp;그의 기록은, 덕지덕지 눅은 정보와 생각들, 경험이라는 이름의 관성 따위들로 무장된&nbsp;나의 가슴과 대뇌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다.&nbsp;
이 장은, "알제리 민중의 민족해방전쟁에서 비롯된 정신질환"에 관해 다룬다. 정신과 의사였던 파농은 알제리의 정신병원에서 한동안 근무했는데,&nbsp;그 기간동안의 경험이 이와 같은 기록의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nbsp;
이 글은 식민지의 상황에서 원주민인 알제리인 혹은 이주민인 프랑스인에게 나타나는 정신병리적 현상들, 그 발생원인(배경), 상담과정 등을 담담하게 기록한 것이다. 말이 '담담'이지, 정말 끔찍한 상황들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는데, 이를 '담담'하게 기록한다는 것이 어떤 일일지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하기가 어렵다.&nbsp;&nbsp;
이를테면 알제리인을 상대로 고문하는 것이 일인 경찰에 대한 기록을 보자. 이 경찰은 자신의 가족들을 학대하기 시작하면서 문제를 파악하고 병원을 찾아온 환자이다. "정부의 신사 분들은 노상 알제리에는 전쟁이 없다면서 법의 무력, 즉 경찰력이 질서를 지켜야 한다고 말하죠. 하지만 알제리에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어요. 그걸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죠.." 
그의 증언을 보면 고문'기술자'라는 표현에 어떤 과장도 없음을 알게 된다. "...그건 아주 지루한 일이에요... 문제는 과연 말하게 할 수 있느냐는 거예요...그런 일에서 성공하려면 똑똑해야 돼요. 언제 손을 대고 언제 손을 빼는지 잘 알아야 해요. 또 그 일에 걸맞는 솜씨도 필요하죠. 충분히 기를 꺾어놓았으면 때릴 필요는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혼자서 일해야 해요. 일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는 자기가 잘 아니까..."
이 환자는 결국 그의 직업을 계속해나간다. 그는 파농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고 한다.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도, 행동에 전혀 문제가 없이, 그리고 완벽하게 평온한 심정으로 알제리 애국자들을 계속 고문할 수는 없겠느냐고."&nbsp;
환자들의 사례는 매우 다양하다. 고문 당한 경우, 고문을 가한 경우, 성공을 꿈꾸는 알제리인으로 살아가던 경우,&nbsp;프랑스인을 살해하고 자책에 시달리는 알제리 전사, 급우를 살해한 알제리 소년, 알제리인을 고문학살하는 아버지를 둔 딸, 난민들, 세뇌를 겪은 지식인 등등.&nbsp;
그것이 알제리인에 대한 것이든, 혹은 프랑스인에 대한 것이든, 결론은 마찬가지다. 현 상황, 인간성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고 그의 정신을 지속적으로 일그러뜨리는 식민화 현실을 멈추지 않으면 치료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환자는 끔찍한 속도로 늘어나며, 매우 운이 좋게 파농과 같은 의사로부터 치료받을 기회를 얻는 경우에도 치료의 효과는 제한적이다.&nbsp;&nbsp;
결국 파농은 병원을 그만두고 전면적으로 민족해방전선의 활동에 투신한다.&nbsp;
의사로서 파농의 경험은, 식민지라는 상황 자체가 질병이며 그 안에 있는 이들을 가해자/피해자의 위치를 막론하고 병들게 한다는 인식을 갖게 했을 것이다. (물론 이들이 겪는 피해는 결코 동등하지 않다) 섣부른 추측인지 모르겠으나, 이 질병과 싸우고자 하는 행위 자체가 피지배인들을 탈식민화하는 치유적 행위로 파악하고 폭력도 이런 맥락에서 파악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nbsp;&nbsp;
파농에 대한 오해를 나의 어설픈 설명으로 부추기는 것 같아서 강조하지만, 파농이 폭력 그 자체를 찬양하거나 무분별한 (식민종주국, 이주민을 향한) 폭력을 합리화한 사람은 아니라고 이해한다. 오히려, 식민지에서의 정신질환에 대한 그의 기록을 보건데, 그만큼이나 폭력이 인간의 몸과 마음에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을 잘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물 터이다.&nbsp;&nbsp;
곪은 것을 없애기 위해서는 외과수술이 불가피하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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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씨의 "당신들의 대한민국2"를 읽고 있다. 편하게 쓴 좋은 글, 이라는 가벼운-오만방자한 생각으로 읽기 생각했는데, 많은 화두를 안게 된다. 이 책에 실린 글 전체를 관통하는 정리를 할 능력은 갖고 있지 못하지만, 그 중 특히 인상이 깊은 부분에 대해서 써본다.&nbsp;&nbsp; 



"폭력에 대한 또 하나의 역사적 성찰"이라는 제목의 칼럼 (p.132-142)은 한국사회에서 발견되는 폭력성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짚어보고 있다. 기형, 전근대, 식민성 등의 수사를 의례 달고다니는 이 폭력성은 그 어법상 정상-근대-서구의 안티테제로 가정된다. 박노자씨가 의문을 제기하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정말 그런가? 우리사회의 폭력성은 (서구적) 근대를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남아'있는 것인가?&nbsp;&nbsp; 



그는 폭력성의 주된 줄기가 아직 척결되지 못한 전근대의 잔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근대 그 자체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nbsp;&nbsp; 



식민지 권력과 역대 독재 정권들이 한국 사회에서 많은 전근대적인 잔재들을 인위적으로 존속시켰다는 것도 물론 사실이고, 한국의 독특한 사회적 폭력 구조에 전근대적인 요소가 보인다는 것도 사실이다. 예컨데 한국 특유의 사회적 폭력인 연령 차별이 일제식으로 왜곡된 유교적인 전통을 배경으로 삼는 것은 틀림없다. 
(중략) 
인류 폭력의 역사를 보면, 역시 서구적 근대의 위치는 트결하다. 전근대적 계급사회들이 폭력을 구사하지 못한 것이 아니지만, 그 규모나 형태에 있어서는 근대와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전근대적 국가들은 세계 패권은 꿈도 꾸지 못했고 향촌 지배도 철저하게 하지 못했다. 국민 개병제라는, 모든 주민들을 국가 폭력의 공범으로 만드는 제도는, 어느 전근대적 사회에서도 실시되지 못했다. 그리하여 계급사회의 국가 그 자체는 폭력이지만, 오늘과 같은 형태의 폭력의 진정한 역사적 기원을 찾기 위해서는 서구의 근대의 출발부터 생각해야 한다. (p.134-135)&nbsp;&nbsp; 



그가 전근대의 폭력과 근대의 폭력을 어떻게 구분하는지에 대한 엄밀한 논술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 부분은 '근대/근대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암것도 아닌 것 같지만 생각할수록 너무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답을 요구하기 때문에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 스스로 그가 글에서 표현하지 않은 부분을 채울만큼 내공이 깊지도 못하다. 하지만 글의 여러 문장들을 통해 추측해보건데, 일단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전근대성이란, 근대가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인 보편 인권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개인주의가 정립되기 이전의 사회 성격들로, 동등한 개인을 상정하지 않은 사회 제도, 관습 등을 가리킨다. 전근대적 폭력은 이러한 사회성격에서 발로한, 차등화된 개인/집단에 대한 폭력이다. 그에 반해 근대적 폭력은, 근대 이전에는 정립되지 않았던 개별의 '독립된' 자아에 대한 인식(?)에 기반하여&nbsp;주체와 타자를 구분짓고, 타자를&nbsp;통제/개발/폭력 등 주체 행위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에서 비롯된 폭력이다."&nbsp;&nbsp; 



하지만 위와 같은 정리는 듬성하게 이가 나간 부분이 많다. 이를테면, 과연 전근대는 항상 통합적인 세계관 위에서 움직이고 있었나? 물론 초기 원시사회에서 시작된 인류의 세계관의 발전을 흔히 어린 아이의 세계관의 발전과 비슷한 궤도를&nbsp;밟는 것으로 본다. 갓난아이가 태어났을 때 세계와 자신을 구분하지 못하고, 배고픔을 느끼면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공포와 충격을 느끼다가 점차 자신과 외부를 구분하게 되고 좀더 나이가 들면 자아정체감을 확립하게 된다. 원시사회의 세계관에 대해서도 비슷한 해석을 한다. 그들은 자신과 세계가 초자연적(적당한 표현을 못 찾겠다) 의지의 그물 속에서 함께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다.&nbsp;&nbsp;
그렇다고 해서, '근대' 이전이 '전근대'라는 이름으로 묶일만큼 동질적인 무언가인지, 다시 말해, '근대'가 그 이전과 확연히 구분되는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다. 공부가 더 필요한 부분이다.&nbsp;
다시 원글을 들여다보자면, 박노자씨는 근대적 폭력을 '도덕적 명분이 필요없는 폭력'이라고 규정한다. 

박노자는 이러한 맥락에서 글 도입부에 소개한 문부식씨의 1980년대 학생운동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한 나름의 답변을 준비한다. 문부식는 그의 저서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 광기의 시대를 생각함" (삼인, 2002)을 통해 1980년대 일부 운동권의 폭력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nbsp;비록 조선일보가 '운동권의 반성문' 운운하면서&nbsp;서평을 겸한 인터뷰를 짜집기해 기사화한 것으로 문제가 되긴 했지만, 그의 문제제기는 우리가 깊이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nbsp;&nbsp; 





운동권의 폭력성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다. 기껏, 학생운동을 처음 접했을 때 '폭력시위'에 대한 단순한 거부감을 '방어적 폭력'의 불가피함에 대한 이해로 전환시켰던 것, 그리고 좀더 시간이 지나서는 그 '불가피함'에 대해 의문이 생기고, 그것이 (NL) 운동권의 가부장적-전근대적- 성격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게 된 것 정도이다. 지금도 폭력은 무조건 나쁘다,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위 와중의 폭력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국가가 독점하는 물리적 폭력과 그에 대한 합의의 조작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nbsp;&nbsp; 





그러나 박노자의 '성찰'에 따르면, 운동권의 폭력성을 단순히 전근대성으로서 가부장적 성격과 연관시켜 생각한 것은 내 이해 정도가 상당히 부족한 탓인 듯하다.&nbsp;&nbsp; 





다시 한번 원점으로 돌아가자. 진보계는 그 입장 전개의 논리상 결국 폭력의 적극적인 부정으로 올 수 박에 없다면, 왜 문부식의 이번 성찰의 대상이 된 1980년대의 일부 운동권의 폭력성은 그토록 심했는가? 두 가지 답을 내릴 수 있다. 하나는, 1980년대의 운동권 학생들이 근대국가가 대량 생산한 근대 국민이라는 사실에서 해답을 찾아보는 것이다.&nbsp;&nbsp; 
(중략)&nbsp;&nbsp; 
물론 이와 같은 근대 교육은 (신)식민성-주변부성의 냄새가 짙지만, 원칙적으로 행동과 생각의 규율화는 서구 근대의 원류에 속한다. (신)식민성-일제식 기합, 구타, 인간적 존엄성의 지속적 모독-이 훨씬 더 심한 근대적 군대에까지 갔다 오면, 한국형 규율적 인간의 형성이 완성을 보는 것이다. 그러한 인간들이 반자본, 반외세 투쟁을 스탈린주의식으로 쉽게 하나의 근대적인 전쟁으로 생각하고 적군을 대하는 방법이나 아군을 통제하는 방법을 학교, 군대의 경험대로 정한다. 후발 자본주의 국가인 러시아의 국가 독점 자본주의적 근대화의 논리인 스탈린주의는, 그들이 이미 익힌 한국형 근대와 잘 맞아떨어진다.&nbsp;&nbsp; 
(중략)&nbsp;&nbsp; 
현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1980년대 세대는 인권과 개인 생명의 중요성을 배울 만한 통로가 있었는가? 그들의 생활환경-특히 군대나 학교 같은 주요 사회화 기관-에 하등의 인권적 요소가 없었다는 사실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다들 아는 일이다. 프락치를 대하는 데 안기부의 신문 절차를 알게 모르게 베끼게 된 그들은, 안기부가 대표하는 신식민지적 주변부 근대국가의 정신적 포로였다. 그러나 이것은 개개인을 문책할 일이라기보다는 한국사에서 벌어진 대형 비극의 하나로 봐야 하지 않을까? (p.140-141)&nbsp;&nbsp; 





이 지점에서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nbsp;박노자의 의견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그렇다면 탈식민을 위한 투쟁에 동원되는 모든 폭력을 그와 같이 서구적 근대에 물든 것으로, 불합리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박노자의 이러한 논리는 간디의 주장과 상당 부분 겹치는 것으로 보인다. 간디의 경우, 힌두-인도인의 정신과 역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바탕으로 서구적 근대와 동치되는 폭력을 거부한 것이었다. 간디야 종교인이니 그렇다 하더라도 (이전 글에도 썼다시피, 난 간디의 말씀이 무지하게 맘에 안 들었다), 박노자 역시 어떤 종류의 대항적 폭력을 사용하든지 간에 그 투쟁의 대상과 똑같이 (서구적) 근대의 덫에 걸린 것일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는 걸까. (생각해보니 박노자 역시 종교인이긴 하다;;)&nbsp;&nbsp; 




그런 면에서 이슬람 문화권의 전투적 성격은 탐구해볼만한 대조를 이룬다.&nbsp;&nbsp; 




"그들은 우리의 모습을 바꾸려 합니다. 교리를 말하는 무슬림들을 한낮 광신도나 바보로 비쳐지게 만들려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그들에게 복종하여 움직이기만 한다면 경제자원이나 군사자치에 관한 논란은 끝난다고 하지만 일이 잘못되면 그 비난은 우리가 받을 겁니다. 자유무역을 통하여 인간의 본성과 현대적인 삶을 연결하는 것이&nbsp;가능할까요? 불가능합니다. 신성과 속세는 따로 놓인 것이 아닙니다. 코란에는 종교와 정치의 분리란 있을 수 없습니니다. 코란에는 통치자와 피지배자는 있어도, 코란에는 종교적 규율을 철폐하고 얻는 신식 삶의 고통은 치유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규제 철폐, 개인주의화, 경제개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현세에서의 고통은 자유주의로는 절대 치유될 수 없습니다. 자유주의는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기독교 교리는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서방은 파멸할 것입니다 (시리아나, 무슬림 지도자의 설교) "&nbsp;&nbsp; 





기독교 교리 어쩌구 하는 부분만 제외하면 이 말씀은 간디가 "힌두 스와라지"에서 줄기차게 주장하던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은 비폭력, 다른 한편은 현대 사회의 가장 극단적인 폭력을 향해 달려간다. 물론 영국에서 교육을 받고, 서구 근대문명에 대한 예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서구의 사유와 사람들을 향해 상당히 우호적인 태도와 친교를 보였던 간디와 기독교를 뿌리로 갖는 서구와 숙명적으로 대결해왔던 중동의 차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역시, 이러한 차이는 근대에 대한 언설만으로 폭력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을 예증하는 것이 아닐까?&nbsp;&nbsp; 




내공이 부족해 여러가지 물음표만 던지고 글을 마무리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박노자 글의 마지막 부분과 지승호의 문부식 인터뷰 일부를 달면서 글을 마쳐야겠다.&nbsp;&nbsp; 




"그러나 우리는 이제 1980년대 세대와 많이 달라졌다고 해서 암흑기에 투쟁의 횃불을 들었던 그들을 반드시 질책해야만 하는가? 그들의 실수도, 그들의 고민도, 그들의 성찰도 결국 지금과 같은 비폭력화 추세의 밑거름이 된 셈이다. 그들이 폭력성 경험은 우리를 비폭력주의자로 만든 하나의 요소다. [조선일보]는 그 특유의 악질적 성격대로 문부식의 고백을 마치 전향서인 양 꾸며놓았지만, 폭력을 거부한 세대는 결코 전향한 것이 아니다. 투쟁이 성숙했을 뿐이다. (p.142)"&nbsp;&nbsp; 







-지승호 - 문학평론가 김명인씨가 “새삼 내 안의 폭력을 거론하며 문제제기하는 것은 2000년대의 인간으로서 80년대의 인간을 몰아붙이고, 학대하는 일”이라고 했는데요.&nbsp;&nbsp; 





=문부식 - 비유적 표현이 과장되어 있지만, 김명인씨의 견해일 수 있다고 봅니다. 80년대 운동은 비공개, 소수였고, 대중운동세대로 넘어오면서 넓어지고, 얇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운동이 대중화되면서 앎과 실천 사이에 괴리감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 운동주체들이 공부를 하지 않았구요.&nbsp;&nbsp; 






김명인씨는 과잉된 비판이 아니냐는 지적인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중요하게 따져봐야할 부분이 있는 발언이고, 경청할 수 있는 견해라고 생각합니다.단, 이제와서 이 문제를 제기햐냐고 하는 것은 비판하는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성실함을 가지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nbsp;&nbsp;
(중략)<BR>
-지승호 - 홍윤기 교수가 “적지 않은 이들이 언어적 폭력을 당하고 있다고 느낀다. 어떤 이들에게 폭력은 자기에게 남은 자기 표현의 마지막 매체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nbsp;&nbsp; 





=문부식 - 전적으로 맞는 말이고, 멋진 말이고, 실제로 그렇습니다. 하지만 모든 게 정당한 폭력이었다고 얘기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겁니다. 자기 성찰을 해야한다는 거죠. 바우닌의 ‘전쟁의 슬픔’에 보면 북베트남 민족해방투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쟁에 길들여져 있다가 전쟁이 끝나는 날, 적들의 여성 시체를 발로 차고, 쓰레기 더미에 던져버리는 장면이 나옵니다.&nbsp;&nbsp; 






불가피하게 쇠파이프를 들더라도 상대방에 대한 연민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다릅니다.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성찰’이 없는 경우 무뎌집니다. 프락치로 오인한 사람을 운동의 이름으로 죽이는 경우도 있었지 않습니까? 그런 것에 대한 책임은 져야합니다. 수천명을 죽이고도 책임지지 않는 권력과 다른 점을 보여줘야 합니다.&nbsp;&nbsp; 






‘우리 안의 폭력을 반성해야지만, 국가의 폭력을 제대로 성찰할 수 있다’는 말에서 제대로에 방점이 찍혀야지, 순서론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안의 폭력을 반성한 다음에야 국가의 폭력을 성찰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nbsp;&nbsp; 






분단체제하에서 한국의 국가 권력은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자행한 극악한 폭력은 물론이고, 자신이 행사해 온 모든 폭력을 정당한 공권력 행사였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이러한 권력으로부터의 폭력은 그에 비례하는 다른 형태의 저항의 폭력을 낳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 폭력은 상호적인 것이 됩니다. 이렇게 폭력이 연쇄와 순환의 법칙을 따르게 될 때 폭력은 반성의 계기를 찾기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폭력에 대해 숨기기는 대항폭력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저 역시 국가폭력과 저항폭력을 동일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무차별적으로 섞는 것은 반대하지만, 폭력에 대한 성찰은 동시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죠.&nbsp;&nbsp; 






-지승호 -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국가폭력에 대응하려고 했던 사람들에 대한 과도한 공격일 수도 있다는 비판은 여전히 남아 있는데요.&nbsp;&nbsp; 





=문부식 - 군사정권의 폭력행사가 다반사로 이루어지고 현실의 정세를 변화시켜야 하는 절박한 요구가 존재하던 시기에 운동진영의 과잉된 폭력들을 감추는 것은 상황 논리상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당 기간이 지난 지금도 과장된 명분에 의해 뒷받침되고 갈수록 관성화되어 갔던 지난 시기의 폭력들과 그것이 낳은 결과들에 대한 성찰이 지체되고 있는 현상은 더 이상 옹호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nbsp;&nbsp; 






적과 싸우면서 닮아가는 것, 우리 안의 파시즘을 비판하자는 것은 우리 안에 남아 있을 수 있는 국가폭력을 보자는 것이고, 국가의 광기가 내 안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성찰해보자는 겁니다. 국가폭력 비판하기 바빠서 못한다는 것은 과장된 것입니다. 상주도 매일 울기만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국가폭력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정작 자기 쪽의 폭력에 둔감할 수는 있더도, 자기 자신의 폭력과 허위에 진정으로 엄격한 자가 현실의 불의한 권력에 무관심한 경우는 없습니다.&nbsp;&nbsp; 






-지승호 - 조선일보는 “80년대의 폭력과 광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는 맥락으로 운동진영을 비판하는데 사용했는데요.&nbsp;&nbsp; 





=문부식 - 조선일보는 언제나 그랬습니다. 모든 논의와 맥락을 자기화하는 것, 그것은 조선일보의 탁월한 능력입니다. 그런 재주로 버텨온거죠.(웃음) 제가 스스로 잘 변별해내지 못하고,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차별이 있는 것을 균질화하거나, 무조건 섞음으로서 문제를 호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한나 아렌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폭력은 정당화될 수는 있다. 그러나 정당한 것은 아니다”.&nbsp;&nbsp; 





이 말처럼 폭력은 항상 정당화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폭력의 확대는 그것을 정당화하려는 이데올로기를 야기합니다. 폭력이 본질일 수는 없으며, 폭력이 이론화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정교하지 못했고, 조선일보에 인터뷰가 실림으로서 빌미를 줄 수 있었다고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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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실업률, 신규 일자리는 생겨나지 않는데 이것이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결과인지 아니면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 때문인지, 비정규직이 늘어나는데 왜 그런건지, 외국의 노동자들과 경쟁하는 것이 불가피한 것인지 대안은 없는건지, 자본의 해외이전은 세계의 통합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인 건지, 혁명 아님 순응 양자택일의 선택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건지... (게다가 전자는 사실상 혹은 당분간&nbsp;불가능해 보이니..)
먹고 살기는 점점 힘들어지는 반면, 왜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세상은&nbsp;더욱 이해할 수 없고 그만큼 대안도 없어 보이는 요즘. 장하준의 시각은&nbsp;내가 접한 어떤 시장주의자보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일관성을 갖추고 있다.&nbsp;
조선일보부터 오마이뉴스나 말지에 이르기까지, 책에 등장하는&nbsp;칼럼들의 다양한 출신성분에서도 드러나지만 그는 '스펙트럼'을 구분하기에 애매하다. 굳이 그런 걸 구분해야하는 것도 한숨새어나오는 일이긴 하지만, 하여간 그래서 그는 우파에게는 좌파라는 좌파에게는 우파라는 비난을 받는다.&nbsp;(글들 중 하나는&nbsp;그가 자신의 '스펙트럼'에 대한 규정 혹은 애매함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할애되어있다.)&nbsp;
그의 글 전반에 걸쳐 강조되고 있는 주장을 정리해보면.&nbsp;
1. 주주 자본주의, 무역장벽의 철폐와 자본 및 모든 종류의 상품(인력, 서비스, 문화 등을 포함한)의 자유로운 이동, 정부 규모와 역할의 축소 및 시장에 대한 개입 중지, 전통적인 사회기간망을 포함한 전면적인 민영화, 노동 유연성 극대화 등 현재 글로벌 스탠다드로 일컬어지는 신자유주의의 의제에 대해. 과연 그것이 '글로벌 스탠다드'인가?&nbsp;&nbsp;
일단 '글로벌 스탠다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주장되는 위와 같은 신자유주의 의제들은 실은 미국식 스탠다드일 뿐,&nbsp;선진국에 해당하는 유럽 국가들은 물론&nbsp;미국과 그나마 가장 가까운 경제정책을 운영하고 있는 영국이나 캐나다만 봐도 신자유주의를 전도하는 이들이 강변하는 스탠다드와는 아주 다른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nbsp;그들의 노동유연성은&nbsp;두터운 사회안전망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경직된' 노동정책을 고수하는 국가들도 많은 것은 물론), 70-80%에 달하는 노조조직률로 대표되는 강력한 시민-노동세력의 힘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합의에 의해 경제정책, 기업정책이 결정된다.&nbsp;&nbsp;
또한 많은 국가에서 공기업이 경제영역의 중요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일례로, IMF&nbsp;이후&nbsp;신자유주의자들이 요구하는 부실기업 처리, 외국자본과의 인수합병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인 르노-삼성을 보자. 르노 자동차는 96년까지 프랑스의 공기업이었고 합병 당시에도 정부지분이 절반에 가까운 사실상의 공기업이었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주요 기업들이 대부분 공기업이라고 하며 (정말 믿거나 말거나에 가까운..;;) 이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서 정부가 기업의 지분을 상당부분 보유함으로써 경영을 안정시키고 기업의 경영이 주주의 사익 추구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국가 경제 전반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견제한다.&nbsp;
심지어 미국의 경제가 그야말로 순수하게 그들이 말하는 글로벌 스탠다드 방식으로 흘러가는지도 지극히 의문이다. 신자유주의가 발효하기 시작한 80년대에도 이미 그들은 금융권 부실 때문에 미국 경제가 위기에 처하자 엄청난 규모의 공적자금을 퍼부은 바 있다. R&amp;D 수행을 위한 연구자금의 2/3 이상이 정부에서 흘러나온다. 세계 식량시장에서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을만큼 '경쟁력'있다는 그들의 농산물은 엄청난 정부보조금을 받아 생산되고 있다.&nbsp;
2. '글로벌 스탠다드'는 역사의 산물일 뿐. 이것은 경제공동체의 맥락에 대한 고려없이 반드시 이식되어야 하는 규범으로서 가치를 갖지 않는다.&nbsp;선진국들은 처음부터 자유무역을 그렇게 좋아했나. 자유무역을 전세계에 전도하는데 앞장서는 미국은 2차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관세율을 고수하던 국가였다. 영국은, 양 키워서 모직물 원료 수출을 하던 유럽의 2등 국가 시절 강력한 보호무역과 관세보조금으로 자국의 공업을 발전시켰던 과거가 있다. 자유무역, 자본에 대한 모든 장벽의 철폐를 주장하는 것은 오직 그것으로 이득을 볼만큼 경제력이 확실하게 강해질 경우에만 해당될 뿐, 그렇지 않을 당시에는 지금의 선진국들도 모두 철저하게 보호경제를 꾸려왔던 것이다.&nbsp;&nbsp;
그렇다고 지금의 신자유주의가 기술 발전으로 인한 불가피한 현상인가. '구'자유주의의 소위 황금기로 꼽히는 19세기 말 ~ 20세기 초에는 이민을 포함한 노동력의 이동, 자본의 이동, 무역량 등 거의 모든 시장 부문에서 거의 현재에 준하는, 혹은 그 이상의 세계적 통합이 이루어져 있었다. 통신, 교통 등에서 지금보다 훨씬 열악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의 합의에 의한 것이다. 대공황 이후 금본위체제로 옮겨가면서 주요 선진국들이 각국의 시장을 상당히 폐쇄(?)적으로 운영했었다는 데에서도 이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은 세계적 통합의 maximum을 한계지을 뿐 그 정도 자체를 결정짓는 요소는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nbsp;
3. 제조업은 사양산업이고, 금융업을 비롯한 서비스업 등&nbsp;고부가가치 산업을 중점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의 허구성.&nbsp;&nbsp;
금융업을 비롯한 서비스업은 실제로는 대부분 end-user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으며 제조업을 중심으로 하는&nbsp;산업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쉽게 말해, 미용실이나 편의점이 아닌 이상, 흔히 말하는 금융이나 법률, 컨설팅&nbsp;등 서비스업의 사용자가 누구인지는 명확하다. 결국은 실질적인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이건 제조업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아시아 금융의 중심지라는 싱가포르나, 우리가 서비스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국민소득을 누린다고 알고 있는 스위스의 예를 든다. 이들 국가 역시 실은 제조업 분야에서 강국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nbsp;&nbsp;
약간은 논외지만, 저자는 이공계 기피문제를 제조업의 몰락에 따른 현상으로 보고 있다. IT같은 분야가 있긴 하지만 절대 다수의 이공계 인력을 사용하는 부분은 공장, 생산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즉 제조업이다. 이공계의 가장 크고 대표적인 부분인 기계전공이 IMF 이후로 학생 수가 거의 20% 이하로 줄어든 것이 그 단적인 예다.&nbsp;그들은 졸업하면 거의 대부분 중공업, 자동차 회사 등으로 취직했었는데 얘네들이 다 외국으로 넘어가거나 문을 닫은 것이다.&nbsp;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부분이지만, 흔히&nbsp;주장하는 수요-공급 어쩌구, 과포화, 선진국에서는 다 겪는 일이네 하는 얘기보다&nbsp;열배는&nbsp;명확한 주장이다. 
&nbsp;
4. 70-80년대 정부주도의 경제개발정책에 대하여. 그것이 정말 그렇게 문제인가? 그것이 IMF의 원인이고 이제 글로벌 스탠다드에 따라 (시장)민주주의 - 그 정체는 주주 민주(?)주의이다 -, 어떤 '정치적'인 통제로부터도 자유로운 시장에 모든 것을 맡김으로써 해결해야 하는 건가?&nbsp;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1/12/cover150/8985989715_1.gif</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11262</link></image></item><item><author>쏘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좋은 대중적 입문서 - [이타적 인간의 출현 - 게임이론으로 푸는 인간 본성 진화의 수수께끼]</title><link>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808170</link><pubDate>Thu, 26 Jan 2006 20: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80817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024331&TPaperId=8081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3/22/coveroff/899002433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024331&TPaperId=80817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타적 인간의 출현 - 게임이론으로 푸는 인간 본성 진화의 수수께끼</a><br/>최정규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04년 12월<br/></td></tr></table><br/>게임이론에 대해 약간의 맛보기를 할 기회가 생겼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수학적 기호들의 바다에 풍덩 빠져 허우적거리기 전에 섬이 어디에 있는지 항구는 어디에 있는지 미리 견식이나 할까 하는 취지로 "이타적 인간의 출현"이라는 책을 집어들다.
"죄수의 딜레마" -같은 제목의 책도 있다- 라는 표현으로 유명한 게임이론은, "경쟁 주체가 상대편의 대처행동을 고려하면서 자기의 이익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수단을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행동을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이론"이다. (네이버 백과사전 발췌) 다시 말해, 두 명 이상의 행위자가 존재하고 각 행위자가 취할 수 있는 전략이 있는 상황에서, 행위자가 특정 전략을 선택해서 얻을 수 있는 payoff (부호가 있는 보수)가 자신이 선택한 전략 뿐 아니라 다른 행위자의 전략에도 역시 dependent한 경우 이들이 게임적 상황에 있다고 표현한다. 게임적 상황에서 행위자들의 전략 선택에 대한 이론이 게임이론이다. 
&nbsp;노이만(참, 안 끼는데가 없는 사람이다 -_-;;)과&nbsp;모르겐슈타인이라는 사람이 게임이론을 정식화하고 이론적 토대를 만들었다고 하며, "뷰티풀 마인드"로 유명한 내쉬는 게임이론을 공부하다보면 가장 처음 등장하는 개념 중 하나인 Nash Equilibrium의 존재 증명(plus 그 개수는 항상 홀수다!)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Nash Equilibrium은 모든 행위자들의 전략 조합 (s_1, s_2, ..., s_n)으로 어떤 행위자도&nbsp;다른 행위자의 전략이 변화하지 않은 상황에서&nbsp;전략의 변화를 꾀할 유인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한마디로&nbsp;"지금이 좋다,&nbsp;내가 다른 짓을 해봐야 얻을 게 없으니"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s_i는 행위자 i의 전략이며, 이 전략은 i가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순수 전략 pure strategy의 확률적 조합 mixed strategy일 수도 있다. 어떤 게임적 상황에서도 항상 Nash Equilibrium이 존재한다, 게다가 그 수는 (mixed strategy profile을 포함해) 항상 홀수다, 라니 참 신기하지 않나.
&nbsp;이타적 인간의 존재는 진화론이나 경제학의 입장에서 보면 수수께끼이다. 이타적 행동 혹은 인간은 자신에게는 손해인데&nbsp;다른 행위자에게 이익이 되는 행동, 혹은 그런 행동을 하는 존재라고 정의할 수 있다. fittest가 살아남는 진화의 역사에서 어떻게 이타적인 동물이나 인간이 탄생할 수 있나? 이를테면 동족을 지키기 위해 가미가제처럼 죽음을 택하는 꿀벌이나 다른 동물들은 다윈 시절부터 설명해내기 난감한 사례였다. 다윈 자신은 집단선택가설을 도입했지만 이 가설은 개체의 선택과 진화보다 집단선택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매우 느리기 때문에 유효한 설명이 되기 어렵다. 이러한 난점을 설명하기 위해, 혈연선택 가설, 이의 극단으로 "이기적 유전자"같은 스타일의 가설이 등장한다. 개체의 입장에서는 이타적인 행동이지만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사실 이기적인 행동으로 볼 수 있다는 것. 개체는 단지 유전자를 담는 그릇이고 유전자는 자신의 존재를 널리 퍼뜨리기 위해 동일 유전자를 담고 있는 다른 그릇(다른 개체)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자신의 손해에도 불구하고 서슴치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혈연 관계가 없는 이들에게까지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동물과 인간사회의 행태에는 적합치 않다.
&nbsp;여기에서 재미있는 실험이 등장한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한번만 시행하는 경우에는 무조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놈이 이긴다. 그러나 매우 오래 (얼마나 오랫동안일지 행위자들이 예측하기 어렵도록) 반복하는 경우에는? 놀랍게도 tit for tat 즉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호혜평등적 행위자가 이기적인 행위자와 그외 응모된 여타 어떤 전략을 수행하는 행위자보다 over all payoff가 높다는 것이 1947년 PD Prisoners' Dillema 콘테스트의 결과였다. 
&nbsp;이타적 행위자들끼리 모인 집단과 이기적 행위자들끼리 집단을 생각해보면, 이타적 행위자 집단의 평균 payoff가 높다. 즉 이기적 행위자의 높은 payoff는 다른 이타적 행위자가 존재해 그에 무임승차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것이다. 여기에서 이타적 행위자의 존재가 유유상종 효과에 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과 탐색이 시작된다. 유유상종 효과가 이타적 존재들을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들었다는 아이디어에 대한 매우 강력한 뒷받침은 다음과 같은 실험이다.&nbsp;먼저 '살아남는다'는&nbsp;표현을 좀더 엄밀하게&nbsp;만들어보자.&nbsp;각 행위자들은 다른 행위자와 게임을 하고, 다음번 게임에서는 payoff가 높았던 일군의 행위자들의 전략을&nbsp;"배운다". 이를테면 내가 이타적으로 행동했는데 손해를 봤고, 저 사람들은 이기적으로 행동했는데 이득을 보더라, 고 관찰하면 다음번 게임에서는 이기적으로 행동해야지, 하고 결심을 하는 것이다.&nbsp;이렇게 되면 전체 행위자 중에서 이타적인 존재의 비율이 줄어들게 된다.
&nbsp;만약 내가&nbsp;나의 "이웃들"로부터 전략을 벤치마킹한다고 생각해보자. 사실 우리는 보통 잘 모르는&nbsp;사람들보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행동에 더 영향을 많이 받으므로 이러한 가정은 상당히 타당하다.&nbsp;토러스 모양을 갖는 그리드 상에 행위자들을 뿌려놓고 이들중 이타적 인간과 이기적 인간의 비율이 반반인 상태로 반복게임을 시작하고, 각 행위자는 자신의 이웃들 중 평균 payoff가 높은 전략을 배워 다음 턴의 게임을 진행한다고 하자. 반복적으로 게임을 수행할 경우 Simulation결과는, 놀랍게도, 첫 턴에서 이타적인간들이 주르륵 죽어서 10% 비율로 떨어졌다가 그 다음부터는 그 수가 증가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열 턴 정도 게임이 진행되고 나면 이타적 인간의 비율이 60% 대로 올라서가 그 선에서 약간의&nbsp;변동을 반복하는 패턴을 보인다!&nbsp;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첫 턴에서 살아남은 10%의 이타적 행위자들이 유유상종했던 애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군집을 이루고, 군집의 변두리에 있던 이기적 행위자들은 "감화"를 받아 (이후 게임에서 군집 내의 이타적 행위자들은, 이 변두리의 이기적 행위자 입장에서 볼 때 이기적 행위자들보다 높은 payoff를 얻는다) 이타적 행위자 무리에 합류하게 되는 것이다. (공간구조의 효과)
&nbsp;위의 실험은 반복적 게임 상황에서&nbsp;어떻게 이타적인 인간, 혹은 호혜적 인간이 살아남았는가에 대한 게임이론에서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과연 호혜적인 인간이 존재하는가에 대해서, 책은 많은 페이지를 관련 실험에 할애해놓았다 (책에서는 순서가 반대임).&nbsp;최후통첩 게임이나 독재자 게임, 공공재 게임 등이 그것이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이타적 행동을 합의하는 것(즉, 우리 자백하지 말자!)은&nbsp;값싼 수다떨기cheap talk에 불과하고 합의는 더 나은 payoff앞에서&nbsp;쉽게 무너져버릴 수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험 결과는&nbsp;수다떨기가 그저 값싸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쉽게 말해, 자신에게는 덜 이익이 되더라도 전체를 위해서는 좋은 선택을, 토론과 신뢰쌓기를 통해 배신없이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최후통첩 게임에서 매우 많은 행위자들이 "경제적 인간"의 최적 전략을 선택하지 않고 "공정한 것" "공정하지 않은 것에는 자신의 손해에도 불구하고 응징하는 것" 등을 선택한다는 실험 결과들 역시 호혜적 인간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세상은 강자(살아남은 자, 이타적 인간을 이긴 행위자, 이타적 행동을 발판으로 payoff를 높인 자)를 중심으로 발전하고 진화한다는 약육강식의 논리를 이제는 '단순'하고 '무식'한 것으로 비웃어 줄 수도 있다. 개인의 payoff를 극대화하는 것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필연적인 선택이며, 개인의 이러한 선택이 자연의 진화와 부합되는, 따라서 사회 전체적으로도 합당한 것이라는 강변은 무적이 아니며 탄탄한 안티를 갖는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3/22/cover150/899002433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32257</link></image></item><item><author>쏘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아빠되기 - 생존, 전투, 진화 - [아빠 뭐해?]</title><link>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808168</link><pubDate>Thu, 26 Jan 2006 20: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80816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5040998&TPaperId=80816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11/coveroff/8995040998_1.gif"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5040998&TPaperId=80816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빠 뭐해?</a><br/>권복기 외 지음 / 이프(if) / 2002년 08월<br/></td></tr></table><br/>'아버지'와 다르게 살고 싶은 '아빠'들의 새로운 육아 이야기, 라는 부제가 붙은 책. IF에서 펴낸 아빠들의 육아일기이다. 별 생각없이 집어들었는데 의외로 재미가 쏠쏠하다. 
&nbsp;아빠의 육아일기라는 흔치 않은 썰을 풀어낼 수 있는 필자들이니&nbsp;이들이 가부장적 사고나 보수적인 성역할 분담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남성들일 거라는 건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중 대부분의&nbsp;아빠들이 상당한 수준의 교육을 받고 언론이나 출판, 교육계나 시민단체 등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어느 글인가에 나오는 표현대로 '가정을 잘 돌보지 않고 아주 가끔 집에 와서 처자에게 한두 마디 던지고는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져버리는' 우리 사회 절대다수의 "독립군" 아버지와는 꽤 거리가 있는 이들이란 거다. 
&nbsp;그렇다고, 여성잡지에 가끔 등장하며 이땅의 힘겨운 아주머니들에게 신종 판타지를 제공하는 기사들처럼&nbsp;환상적인 가사, 육아참여 게다가 상당한 애처가 노릇까지 하는 그런 아빠들은 아니다. 오히려 책을 읽다보면, 이런 육아일기까지 쓸 정도의 사람들조차 얼마나 가부정적 이데올로기에 장악당해 있는가, 가사나 육아를 몸으로 자기것으로 만든다는 것이 남성에게 얼마나 요원한 일인가를 절절하게 읽어낼 수 있다. 아마도 육아에 참여하는 정도로는 대한민국 5%내에 들 이 필자들조차도, 육아나 가사참여에 대한 고민없음, 비자발성과 게으름 등을 내보였고,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극심한 가부장성을 드러내기조차 했던 것이다. (심지어는 아내폭력의 경험을 실토한 필자마저 있었다!) 물론 남성들이 자기 내부의 반동적 경향을 인식하고 고백하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 흔치 않은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nbsp;이 책은, 남성이 페미니스트 (이런 단어가 거북스럽다면, '말로만'말고 '몸으로' 성평등을 구현하는 사람들)가 되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를 보여주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한편, 그런 그들이 결혼과 육아를 통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이 글을 쓴 아빠들 중 상당수가 딸을 두거나 딸만 두고 있다는 건 그저 우연에 불과한건지 궁금하다. 딸을 낳은 아빠들은, 딸을 키우다보니 페미니스트가 되어갈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페미니스트란, 머리로만 말로만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몸으로 구현하는, 적어도 구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말한다.) 어떤 모임에서 가부장적 감수성과 성평등에 대해 발표했다가 "당신, 딸 때문에 그렇게 민감한 거 아니냐?" 하는 경우없는 질문에 그렇다, 그게 뭐 잘못이냐고 따졌다는 권혁범 아빠(대전대 교수, 페미니스트의 시각을 드러내는 칼럼도 꽤 쓰셨다)의 이야기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들만 둔 부모들은 아무래도 이해가 관념적인 반면 딸이 있는 사람들은 차별의 언어, 제도, 구조, 공간에 대해 예민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데 백번 옳은 말이다. 
&nbsp;하여간 이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육아일기이면서 인생역정의 발자취이자 자서전이고 아내와의 연애및 결혼생활 보고서이기도 하다. 육아 및 가사에 대한 불참여와 가정일을 방기한 끝에 별거나 이혼 직전까지 갔던 이야기(그 중 IF에 육아일기를 연재하는 분도 있었다. 아 쇼크!), 가족을 소재로한 만화를 그리지만 정작 일 때문에 아이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아내를 집안일에 파묻혀 소진하게 만드는 이야기(비빔툰의 홍승우 작가, 쇼크였다!).. '끝'까지 가고 나면 이들은 고민하고 자신의 생활과 태도를 바꾼다, 그리고 새로운 균형상태를 찾아간다. 
&nbsp;한편 이 아빠들의 글은, 육아일기로서, 아이낳기 키우기라는 본질적 경험의 위대함, 고됨, 아름다움, 기쁨, 슬픔, 행복, 회한, 짜증 등을 다양한 스펙트럼의 글쓰기를 통해 보여준다. 한 인간의 부모가 된다는 것에 대한 아무런 생각도 고민도 준비도 없이 얼렁뚱땅 아빠가 되는 황당함. 조금씩 아이에게 정을 붙이고 아빠와 아이로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이 단계는, 육아에 제대로 참여를 해야 느낄 수 있다고 아빠들은 이구동성 말한다). 처음 아이가 길 때, 걸을 때의 기쁨. 먹이고 재우고 치우는 것이 전부인 갓난아이 기르기의 짜증스러움, 사람을 기진맥진하게 만드는 고됨. (한 아빠는,&nbsp;백두대간 종주할 때보다 힘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품에 안아 키워도, '본격적인 사춘기로 접어들어 아빠 앞에서 갑자기 시무룩하고 수다보다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딸을 보며 둥지에서 떠나보내야하는 연습을 해야하는 쓸쓸함, 아쉬움. 
&nbsp;나와 나의 '아빠'를 생각하게 된다. 어릴 적의 기억이나 사진을 들여다보면 아빠와 나는 활짝 웃고 수다떨고 장난치고 있다. 그러나, 아마도 고등학교 시절부터인 것 같은데, 서먹해지고 급기야 한때는 '아버지'를 상당히 미워한 적도 있다. 그의 가부장적인 모습들을 발견하게 되고 권위적인 면모들에 반발하고 체계적으로 나자신의 분노를 합리화시키고. 아마도 많은 딸들 아들들이 겪게 되는 일일 것이다. 기성의 체제에 대한 반발과 우리 기성세대의 구체적인, 가장 가까운&nbsp;현신인 아버지에 대한 반발은 아무래도 같이 겪어가게 된다. 이 책 속의 아빠들도 나와 비슷한 과정을 겪은 경우가 많다. 권위적인 아버지에 대한 반발, 감정적 물리적 단절, 그러다가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의 아버지를 역사를 가진 개인으로 바라보게 되고 측은지심으로 조금씩 받아들인다. (이건 '너도 애낳아서 키워보면 다 이해할거다'라는 종류의 언설과는 좀 다르다)
&nbsp;예전부터 결혼은 안해도, 아이는 못낳아도, 키워는 보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던 터였다. 나 자신도 미숙하고 게으른 인간인데 다른 한 인간을 세상에 내보내겠다는 무모함, 이 책을 보면 나같은 비혼 처자, 총각들만의 두려움은 아닌 듯하다. 이미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 아빠들 역시 다를바 없더라. 지금은 그저, 인생에서 가장 본질적인 경험이라는 아이 낳기 키우기를 겪어보고 싶다는 정도지만, 막상 낳아서 키우게 되면 그 느낌은 사뭇 다를 것이다. 이 책은 아직 내게 미지인 육아의 세계를 흘끗 곁눈질할 좋은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출산을 앞둔 부모는 물론,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 결혼을 할 처자, 총각들, 아울러 결혼 생각이 없는 처자 총각들에게도 일독을 권할 만하다. 내가 이만큼 살기 위해, 앞으로 살기 위해 몸으로 겪어내야하는 과정들에 대한 고민을 해볼 수 있다. 꼭 육아가 아니더라도 말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11/cover150/8995040998_1.gif</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1161</link></image></item><item><author>쏘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판타지의 이면 - [다섯째 아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786545</link><pubDate>Sun, 18 Dec 2005 21: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78654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270&TPaperId=78654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82/coveroff/s63293384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270&TPaperId=78654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다섯째 아이</a><br/>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03월<br/></td></tr></table><br/>60년대 런던 근교, 평범한 중산층 핵가족의 형성(곧 '아내'와 '남편'이 될 두 남녀의 운명적인 만남)부터 붕괴까지를 차분-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혼전 성관계, 찰라적인 연애가 난무하는 도시 속에서 고리타분하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자신들의 신념,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가족에 대한 신념을 꿋꿋이 지키면서 사는 쇤님들이다. 어느 겨울 파티에서 서로를 발견하고&nbsp;말 한마디 나눠보지 않은채 상대가 자신의 천생연분임 알아본 그들은 곧 결혼을 한다. 그리고 허리띠 졸라매고 고생한 끝에, 런던 근교를 샅샅이 뒤져 찾아낸 빅토리아풍의 크고 아름다운 저택을 손에 넣는다. 둘의 가족들 대부분 이 저택의 구입을 어리석은 짓이라고 (넘 비싼데다가 얘들은 이 저택을 줄줄이 낳은 자식들로 그득그득 채우겠다는 야무진 꿈까지 꾸고 있는 상태다) 말려보지만, 귀여운 아이들과 가족 친지가 북적대는 따스한&nbsp;넓은 거실에 대한 이들의 '신념'은 굳건하다. 
하여간 주변 사람들의 은근한, 때론 노골적인&nbsp;반대와 질책을 무릅쓰고 아이를 줄줄이 넷이나 낳은 이 부부는 재미없고 인기없던 처녀총각 시절과는 달리 자신들의 저택을 주변의 친지들의 허브로 자리매김하는데&nbsp;성공한다. 부활절, 여름 휴가,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열흘 때론 한달씩 3-40명의 친지들이 모여 자고 먹고 놀며 휴가를 보낸다. 그야말로 '따뜻한 벽난로와 북실북실한 양탄자가 있는 넓은 거실에서 한쪽에는 어른들이 재치있고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고 있고 한쪽에서는 귀엽고 온순한 어린 아이들이 놀고 있는 (이 풍경에 길고 아름다운 털을 가진 커다란 개 한마리 정도 있으면 금상첨화)'&nbsp;중산층 가정의 판타지를 이루어낸 것이다. 
완벽해보이는 이들의 이상향은, 예기치 않게&nbsp;임신하게 된 다섯째 아이 (이 부부도, 애가 넷씩이나 되니 한동안은 임신하지 말아야겠다는 최소한의 지각은 있었다)로 인해 파열되기 시작한다. 다섯번째의 원치않는 임신, 산모를 미칠 지경으로 만든 고통스러운 임신과정에 대한 묘사가 시작되면서 점잖은 중산층 가정의 스케치같던 이 소설은 점차 호러틱해진다. 초반에는&nbsp;임신한 해리엇 밖에 모르던 다섯째 아이의 '괴물성'은 -어느 정도냐 하니, 모성애의 현신같던 그녀가 하루에 진정제를 수알씩 먹고, 뱃속의 아이를 협박하며, 아이가 죽기를 바란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주변의 모든 사람을 잠식하기 시작한다.
이들의 불행이 단지 돌연변이 같은 이 아이로 인해 일어난 운명의 장난같은 거라고 해석한다면 이 소설은 단순한 호러, 것도 아주 무섭지는 않은 호러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다섯째 아이 벤은 아무 없이&nbsp;끼어든,&nbsp;빙하시대 원시인의 갑작스런 발현이 아니다. 그의 존재는, 너희의&nbsp;핵가족 판타지가 이토록 연약한 기반 위에 서있는 것임을 비춰보여준다.&nbsp;자신들의 '신념'을 무리하게라도 실현시키려고 했던 해리엇과 데이비드. 그들의 노력은 현실에서 금전적인 능력에 뒷받침되지 않았고 (결국 부자인 데이비드의&nbsp;아버지가 지속적으로 도울 수 밖에 없다), 육체적인 능력에도 뒷받침되지 않는다 (해리엇의 나이든 어머니가 줄줄이 낳은 아이들의 양육을 도울 수 밖에 없다). 다산을 찬양하고 피임을 죄악시하는 사고방식으로 인해 해리엇은 몸이 완전히 혹사될 때까지 임신을 반복했다. 데이비드는 많은 자식들을 먹여살리고 저택을 유지하기 위해 죽어라 일할 수 밖에 없다. 또한 '부활절&nbsp;기간에 모여든 친지들의 몇 주에 걸친 멋진 휴가'라는 자부심을 위해 이들은 무리한 지출을 감당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nbsp;여러모로 심신이 소모된 상태에서도 이는 포기할 수 없는 자존심이며 그들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증명해주는 주춧돌이다. 그들의 판타지를 실현하는 것은,&nbsp;여러가지&nbsp;은밀한 댓가를 필요로 했다. 그 댓가는 점차 커지고, 눈덩이가 굴러가듯이 커져서, 벤의 출생으로 자신의 무시무시한 존재를 드러낸다.&nbsp;
이들의 판타지가 퇴색된 풍경으로, 집착으로, 집착이 악몽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읽는 건 고통스럽다. 아름다운 연인은 대화조차 나눌 수 없는 고통스런 부부가 되고, 더 시간이 지나서는 아예 얼굴조차 마주대하지 않는다. 사랑스런 아이들은 주눅들고 괴로워하거나 신경질적이 되어가고 좀 제앞가림을 할 나이가 되어서는 부모 곁을 떠난다. 교양있는 친지들이 휴가를 보내던 거실은 벤을 주축으로한 갱단의 또다른 파티 현장으로 되어버린다. 정상성, 정상가정에 대한 강한 집착으로 벤을 없애려고 했던 데이비드나, 스스로를 모성애의 노예로 만들어버린 해리엇이나 별로 다를바는 없어 보인다.
우아한 백조가 호수 밑에서는 발바닥에 땀나게 물을 젖고 있듯이, 판타지는 그 자체로 고고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다섯째 아이는, '정상가족 판타지'가 치르는 댓가, 그 발랄함을 위해 숨겨진 고통의 에피소드이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82/cover150/s63293384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8212</link></image></item><item><author>쏘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물리할걸.. - [파인만의 여섯가지 물리 이야기 - 보급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759207</link><pubDate>Wed, 26 Oct 2005 14: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75920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8907418&TPaperId=75920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9/coveroff/8988907418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8907418&TPaperId=75920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파인만의 여섯가지 물리 이야기 - 보급판</a><br/>리처드 파인만 강의, 폴 데이비스 서문, 박병철 옮김 / 승산 / 2003년 01월<br/></td></tr></table><br/>이십대 후반이나 되어 이런 책 읽는다고 하면, 고등학생 시절 읽었어야 하는 책을 왜&nbsp;읽냐고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올해는 어쩌다보니 과학(특히 물리)이나 수학 관련 책들을 좀더 읽게 된다.&nbsp;&nbsp;전공이 수학에 가까운 터라 수학 관련 책을 읽는 건 그렇다치더라도, 새삼, 과학도를 지망하던 어린 시절에 읽던 교양과학서들을 읽고 있는 이유는 뭘까.
"파인만의 여섯가지 물리 이야기"는 정말 쉽다. 그 유명한, 어렵기로도 매우 유명한&nbsp;Lectures on Physics를 발췌해서 편집한 책이긴 하나 워낙 방대한 Lectures on Physics인지라 개중에는 이렇게 쉬운 chapter들도 있나보다. 하여간 뉴턴 역학의 세가지 법칙 같은 걸 떠올리려면 한참 기억속을 헤매야하는 나같은&nbsp;사람조차도 술술 읽어내릴 수 있다.&nbsp;
그렇다면, 쉬우면서 파인만의 이름이 걸린 책을 읽었다는 지적인 포만감을 선사하는, 그래서 만족스러운 책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이 책은 우리의 가장 원초적인 호기심,&nbsp;자연과 현상에 대한 어린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저자 본인이 갖고 있는 호기심과 열정, 감동이, 그의&nbsp; 깊고 방대한 지식의 지원을 받아 독자의&nbsp;눈높이를 고려한 글쓰기를 통해 전달된다. 덕분에 며칠전 어느날밤, 문득 이 책을 집어들고는 그 자리에서 다 읽고야 말았다. (물론 책이 일단 너무 잘 읽힌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재미있다) 읽으면서, 정말 오랜만에 가슴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자연은 어떻게 생긴걸까, 어떻게 움직이는 걸까, 알고 싶다, 아주 오래전 뭔지도 모르면서 과학도를 꿈꾸던 시절 느꼈던 호기심과 감동..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들이 몇가지 있다. 물리와 인접학문들과의 연관관계를 이야기한 장(수학과의 연관관계가 빠진 것은 너무나 아쉽다. 정말 기대했는데. 물론 쓸게 너무 많아서 빠뜨린 건 알지만.), 그 중에서도 생물학에 물리가 끼친 영향. 생물은 고등학교 때부터 멀~리 했었는데, 저자는 심지어 생물학도 공부해보고 싶다는 욕심까지 갖게 만든다! 또, 빛과 전자의 입자-파동적인 성격을 설명하는 5장도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마치 1900년대 초반, 양자역학이 탄생할 무렵 물리학자들의 알게 된 새로운 현상과 그에 따른 고민들을 압축해서 파노라마로 보여주는 듯했다. 원자의 구조가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발견된, 발견되고 있는 여러가지 소립자들, 그들 사이의 힘(약한 핵력, 강한 핵력)에 대한 미완의 이론들...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케플러의 행성운동 법칙을 설명해버리는 부분, 중력질량 관성질량 등이 등장하는 6장도 매우매우 흥미로웠다.
책을 선물해줬던 친구에게 책 재밌었다, 나도 물리할걸 싶더라, 는 얘기를 하니까 친구 답이 걸작이었다. "다들 그책에 속아서 물리를 하지~" 나는 물리가 아닌 다른 분야를 공부하고 있다. 그또한 매우 만족스럽다. 게다가 이렇게&nbsp;비전공자에게도 세계의 일부와 그에 대한 인간의 앎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알려주며 즐겁게 해주는 많은 좋은 책들도 있으니 부족함이 없다. 나같은 비전공자들은 물론이고, 속아서 물리를 전공삼아보고 싶은&nbsp;푸릇한 중고등학생들까지, 주저없이 일독을 권한다.&nbsp;
(이 책에 이어 출판된 책, six not so easy pieces를 읽기 시작했다. 이건 그리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는다)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9/cover150/8988907418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933</link></image></item><item><author>쏘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여전한, 조금은 아쉬운 - [둠즈데이 북]</title><link>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740937</link><pubDate>Tue, 20 Sep 2005 13: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74093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5975&TPaperId=74093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4/20/coveroff/893290597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5975&TPaperId=74093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둠즈데이 북</a><br/>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02월<br/></td></tr></table><br/>코니 윌리스의 "둠스데이 북" (열린책들)을 읽다.
나 역시 다른 팬들처럼 "개는 말할 것도 없고" 를 읽고 코니 윌리스 아줌마의 입담에 반했다. 이 책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또 어떤 수다를 낄낄거리며 웃을 수 있을까 기대했었고.
뚜껑을 열어보니 말 많은 건 여전하지만 "개는.."과는 매우 다른 분위기의 소설이라는 것. "개는.."이 코미디의 진수라면 이 책은 갈 데까지간 비극, 그야말로 둠스데이를 다룬다.
시간여행&nbsp;SF라는 장르에서 펼쳐보일 수&nbsp;있는 역사적 상상력 - 한 때 내가 무척이나 좋아했던 표현이다 -의 최대치를 끄집어내어보자는 게 아마 작가의 의도였던 것 같다. 말그대로 종말이 도래한 어느 시대 어느 공간에 현대적 인간을 뚝 떨어뜨려놓고, 그 인간의 생각과 느낌 종적을 세밀하게 따라가보기.&nbsp;게다가 이 종말 공간은 SF적으로 가공된 것이 아니라 역사상 실재했던 시대이다. 매우 구체적으로 연도 (1348년, 페스트가 유럽에 창궐하기 시작한 시기이다)와 위치&nbsp;(옥스퍼드 근교의 후미진 장원)를 설정해놓고 상당히 세밀한 고증까지 거쳐, 도대체 작가의 "역사적 상상력"이 그려내는 둠스데이를 거부하지 못하게 만들어놓는다. 
코니 윌리스의 미래 2050년에 살고 있는 역사연구가들에게 역사란 단지 상상 속에서나 재현해볼 수 있는 죽은 과거가 아닌 현실이다. 그 시대를 동시대인들과 교감하고 직접 겪어내는 역사가들. 과거, 역사, 기록 속에 묻혀버렸던 인생들이 다시 살아나는 시간여행, 혹은 코니 윌리스의 "역사적 상상력".&nbsp;
책에서 결정적으로 아쉬운 점 (쪼금 스포일러) : "현재"에 퍼진 전염병과 "과거"에 퍼진 전염병 사이에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다. 기사의 무덤에서 인플루엔자가 시작된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설정해야할 필연성이 없음. "현재"와 "과거"에서 동시(?)에 병이 돌기 시작하고 그것이 과거로의 여행이 시작된 시점과 거의 일치한다면 당연히 독자는 둘 사이의 연관관계를 추리하기 시작할 수 밖에 없다. 800페이지가 넘는 책의 3/4지점까지 작가가 인색하게 던져주는 몇 가지 단서라고 할 만한 것도 계속해서 이런 점을 암시하고 있고. 둘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고, 단지 기술자가 실수 (매우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만들기 위한 원인으로 "현재"의 전염병을 설정한 것 뿐임이 밝혀는 것이 막판 일종의 반전인데.. 매우 실망스러운 반전이라고밖에. 시간 여행상의 실수를 만들어내기 위해 꼭 그런 대규모 전염병을 만들어내야 했는지. 독자에 대한 일종의 사기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 게다가 기사의 무덤과 1348년, "현재" 인플루엔자 시작지점들 사이에 연관관계를 분명하게 암시하면서 결국 정확한 해명없이 넘어간 건 흠...아줌마가 자기 수다에 질려 서둘러 책을 끝맺은 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 수 밖에.]]></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4/20/cover150/893290597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42054</link></image></item><item><author>쏘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여성주의적 치유 - [강한 여자의 낭만적 딜레마]</title><link>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740935</link><pubDate>Tue, 20 Sep 2005 13: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74093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843764&TPaperId=7409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1/3/coveroff/8971843764_1.gif"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843764&TPaperId=74093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강한 여자의 낭만적 딜레마</a><br/>마야 스토르히 지음, 장혜경 옮김 / 푸른숲 / 2003년 04월<br/></td></tr></table><br/>전부터 읽고 싶었는데, 오늘 우연히 책을 발견하고 책장을 조금 넘기다가 들어온 문구가 조금 끌려 빌리게 되었다. "... 그리하여 이 책이 진보적인 사고방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부장제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대 여성, 그리고 그들의 연인으로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우리 시대 남성들을 위한 심리 치유서가 될수 있길 소망한다."&nbsp;
얼마 전, 과연 진보적-대안적인 심리치료라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해 토론을 한 적이 있다. 나의 입장은, 그런 것이 충분히 연구되고 개발될만한데 왜 그렇지 못할까, 였고 다른 분은 그런 건 불가능하다, 어차피 심리치료라는 것은 가부장제, 자본주의 (근대 이후??)가 남긴 상처와 쓰레기를 해결하고 주워담기 위해 개발된 것이다, 라고 주장했었다.&nbsp;나도 그런 주장을&nbsp;상당히 수긍하고 있고, 결론은 그냥 어리버리.&nbsp;&nbsp;
사실, 이 책에도 중요하게 등장하는 융의 아니무스, 아니마 (여성 안의 남성성, 남성 안의 여성성)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도 상당히 혁명적이고 대안적이다. 강제된&nbsp;~성스러움과 성별 분업, 그에 따른 관계맺음과 권력, 이런 틀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nbsp;네 안의 너를 자유롭게 인정하고 펼쳐봐라, 그로써&nbsp;강제적으로 내면화된 젠더의 속박에서 스스로와 서로를 벗어나게 해주어라, 고 속삭여주기. 심리치료가 우리 사회가 쏟아내는 배설물을 처리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혹여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우리에게서 박탈해간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다시 찾아와서 온전한 인간으로 (내부로부터) 거듭날 수 있는지 알려줄 지도 모른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1/3/cover150/8971843764_1.gif</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10357</link></image></item><item><author>쏘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환상적인 회화 - [자유의 감옥]</title><link>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740933</link><pubDate>Tue, 20 Sep 2005 13: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74093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794099&TPaperId=7409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4/46/coveroff/899079409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794099&TPaperId=74093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자유의 감옥</a><br/>미하엘 엔데 지음, 이병서 옮김 / 보물창고 / 2005년 03월<br/></td></tr></table><br/>미하엘 엔데의 단편집. 특유의 상상력을 마구 자극하는 환상적인 분위기가 책을 단숨에 내달리게 한다. 특히나 첫 번째 단편인 '긴 여행의 목표'는, 그 안에 등장하는 이상한 회화의 이미지처럼 소설 자체가 진행되는데 기괴하면서도 아주 매력적이다. 
요새 철학에 대한 책을 조금 읽다보니 그의 소설들이&nbsp;철학의 여러 개념에서 모티브를 그대로 가져왔음을 알아볼 수가 있다. '미스라임의 동굴'은 플라톤의 동굴 우화를 소설로 형상화한 그것이다. '자유의 감옥'은 신 안에서 악과 자유의지가 가능한지를 탐색하는 논리소설(?), '길잡이의 전설'은 아마 기적에 대한 흄의 논의와 이에 대한 반박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한편 '보로메오 콜미의 통로' '교외의 집' '조금 작지만 좋아' 에서는 근대적인 공간 개념 - 균질하는 불변의 공간 - 을 벗어나 새로운 공간 개념 속에서 작가의 무한 상상력이 펼쳐진다. 그 외에도 군데군데 보이는 철학적 모티프. 
이렇게 써놓으니 엔데의 소설이 마치 소피의 세계나, 하여간 철학을 소설로 풀어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소설의 핵심을 설명할 수 있는 형용사는&nbsp;'철학적인'이 아니라 '환상적인' '신비스러운' 등이다. 끝없는 이야기나 모모처럼 긴 호흡으로 차분하게 쓴 작품들은 아니지만, 짧은 분량 안에 극대화된 심상을 (아름답고, 두근거리는) 불러일으킨다. 단편에 이 이상 기대할 건 없겠지.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4/46/cover150/899079409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44683</link></image></item><item><author>쏘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우리 시대의 괴물 - [살인자들과의 인터뷰]</title><link>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600678</link><pubDate>Tue, 04 Jan 2005 14: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60067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5612494&TPaperId=60067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1/4/coveroff/8955612494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5612494&TPaperId=60067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살인자들과의 인터뷰</a><br/>로버트 K. 레슬러 지음, 손명희 외 옮김 / 바다출판사 / 2004년 08월<br/></td></tr></table><br/>전직 FBI 수사관이자 잘나가는 프로파일링 전문가가 쓴 연쇄살인범들 이야기이다. (중학교 때 FBI 수사관이 쓴 심리분석에 대한 책을 본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그 책이 재출간된 것이었다) 이 책은 저자가&nbsp;직접&nbsp;백 명이 넘는 범죄자들과 면담하고 수많은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루며 얻은 지식과 경험의 산물이다.&nbsp;
프로파일링은 양들의 침묵이나 카피캣 등등 연쇄 살인을 다룬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에 자주 등장하면서 유명해진 수사기법이다. 오랜 경험과 심리학, 행동과학 등을 적용하여 범죄 현장이나 진행상황 등을 분석하여 범인의 인적사항 - 신체 특징, 나이, 직업, 사회계층, 교육 정도, 성격,&nbsp;정신병력, 주거행태, 다음 범죄&nbsp;등등 - 을 유추해내는 기법이다. 영화나 일본만화 같은 걸 보면 프로파일러가 거의 점쟁이 수준으로 나오는데, (저자에 따르면) 100% 그렇게 정확히 맞출 수는 없고 전적으로 신뢰해서도 안 된다.&nbsp;&nbsp;
하지만 낯선 사람으로부터 어떤 합리적인(?) 이유도 살해당한 피해자가 있을 때, 게다가 목격자조차 없다면,&nbsp;범인을 찾아내는 건 그야말로 모래사장에서 바늘찾기 같은 일이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가장 흔한 형태의 살인,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살인은 보통&nbsp;면식범에 의한 살인 - 원한이나 금전적인 이유 등에 의해 - 이다. 이러한 경우는&nbsp;피해자 주변을 조사함으로써 범인을 찾아낼 수 (혹은 그런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거의 살인 그 자체를 통해서만 자신을 알리는 살인범이라면? 프로파일링은 용의자를 추려내고 수사의 촛점을 효과적으로 모으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nbsp;&nbsp;
프로파일링 기법은 1960, 70년대 '낯선 사람에 의한 살인'이 급증하면서 미국 내에서 주목받고 연구, 발전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직까지 우리나라가 그렇듯 그 이전까지만해도 미국내 살인은 면식범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강도살인은 예외겠지만) 영화 카피캣에서 수잔 서랜든이 맡은 범죄심리분석가는 "미국에는 언제나 평균 35명의 연쇄 살인범이 활동하고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보면 미국에 연쇄살인범이 엄청나게 많은 건 사실이다.
(이런 식으로 구분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연쇄 살인은 살인 그 자체에 필요와 목적이 있다는 면에서 외적인 필요(돈, 원한 등)에 의한 살인과 구별되는 것 같다. 사실, 나와 상관없는 사람을 몇 명씩때로 몇 십명씩 죽이는 건 살인 그 자체에 목적이 있고 살인을 향한 계속되는 강한 동기가 있지 않으면 불가능할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연쇄 살인을 보통 조직적 살인과 비조직적 살인으로 구분한다고 한다. 자세한 건 책을 읽어보면 나오고, 하여간 양쪽 모두의 공통점은 미친 놈(!)들이라는 거다.&nbsp;&nbsp;
평범한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연쇄살인범이 되는 경우는 없다. 살인의 씨앗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싹튼다. 가족 등의 공동체 내에서 다른 사람과 애정을 주고 받으며 관계를 맺는 법을 보통은 배우는 시절, 있어야 할 것들 (아버지, 어머니, 형제나 친구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보살핌, 사회화가 진행될 안정된 환경 등)의 결핍과 육체적-정신적-성적인 학대 등을 통해 그는 정상적인 관계맺기를 경험하지 못한채 홀로 증오와 파괴의 (성적인) 환상을 키우기 시작한다. 사춘기를 겪으며 환상은 더욱 증폭되고 정교해진다. 조직적 연쇄살인범의 경우 이때쯤 크고 작은 병적인 폭력 사건을 일으킨다. 그는 한번쯤 소년원이나 정신병원에 들어갔다 나오기도 한다. 그의 파괴적인 성적 환상은 점점 거대해져서 스스로도 이를 실행에 옮기지 않고 견디지 못할 때 즈음 첫 살인이 수행된다. 처음에는 어설프다. 환상을 현실화함으로써 그의 환상은 더욱 갈급해지고, 더욱 완벽한 환상-실현을 꿈꾸게 된다. 제2, 제3의 살인이 수행된다... 쓰다보니 다시 책에서 묘사된 끔찍한 장면들이 떠오른다. 자세한 건 적기도 싫고 생각하기조차 싫다.&nbsp;&nbsp;
올해 우리나라에서도 처음으로 연쇄살인으로 분류되는 유형의 살인사건들이 터졌다. 다행히 범인은 잡혔지만, 이것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어도 될지 그저 시작에 불과한 건지 알 수 없다. 그들은 분명 용서받지 못할 나쁜놈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범죄의 씨앗을 처음 틔워서 키우는 과정을 보면, 사회가 그토록 파편화되고 물신화되어 가는 것과 떼어놓고 바라보기 힘들다. 자본주의의 폐해가 가장 심각한 미국에서 연쇄살인-대량살인이 가장 흔한 것이 그저 우연일까. 또한 연쇄살인범들의 절대 다수가 남자, 그것도 백인인 것 역시 심각하게&nbsp;생각해봐야할 부분이다. (이 책이 쓰여진 당시까지 알려진 여성 연쇄살인범은 단 한명, 영화 몬스터의 주인공인 바로 그 사람이다) 연쇄살인이 한결같이 지배-가학의 성적인 환상을 구체화하는 과정이라는 점과 그 구현자가 남자라는 점...&nbsp;
재미있긴 하나 정신적으로 너무 타격을 주는 책이다. FBI의 범죄심리분석관들이 하나같이 스트레스로 인한 병에 시달린다는 게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그런 일을 하면서 제정신을 유지한다면 그게 오히려 신기한 일일 게다. 슬프다.&nbsp;그런 괴물들을 만들어내고 그 뒷처리를 하며 힘겹게 굴러가는 사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1/4/cover150/8955612494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10478</link></image></item><item><author>쏘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헌법의 근본으로의 복귀 - [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title><link>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593565</link><pubDate>Wed, 22 Dec 2004 15: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59356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5530006&TPaperId=59356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9/32/coveroff/8995530006_1.gif"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5530006&TPaperId=59356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a><br/>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4년 06월<br/></td></tr></table><br/>나 역시 법이라는 단어만 들어가도 외면하고, 당연히 재미없을 거라고 나와 별 상관없을 거라고&nbsp;생각하는 보통 사람이다. 와하하, 보통 사람들은 많이들 이럴 것이라고 단정해버렸다. 섣부른 단정인가? 실은&nbsp;상관없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중요하다는 것도 알지만 자꾸 외면하게 되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nbsp;&nbsp;&nbsp;
학교 도서관에서 근로학생별로 정리를 맡은 구역이 있다. 내가 맡은 구역은 2층의 J부터 PL초반까지이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뜻인지 모를테니...에헴. 정치학, 행정학, 법학, 교육학, 언어학, 어학, 음악, 러시아 및 동유럽 문학, 일본 문학 등이다. 딱 봐도 아시겠지만, 일본 문학 부분을 제외하고는 정리할 게 거의 없다. 읽는 사람이 없으니까. 러시아 및 동유럽 문학은 책장 한 줄만큼도 차지하지 않으니 역시나 정리할 게 없다. 번역되어 도서관에 들어온&nbsp;것의 절대 다수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소수의 프쉬킨과 고리끼 정도이다.&nbsp;(물론 조금은 더 있지만..) 정치, 행정, 법 이런거 읽는 사람은 이곳에, 특히나 인문사회과학 계열 전공자가 없는 이곳엔 거의 없다.
&nbsp;출간된지 이삼십년은 더 되어 보이는 전집류 법전들은 양장에 한자로 제목이 박혀 있어 나처럼 벼락치기 한자시험 공부 밖에 안 했던 학생에게는 전혀 관심 밖이다. 몇 주가 지나서 가봐도 그 자리에 그대로있다. 우리같은 사람들에게 법은 그런 존재이다. 도서관의 분류 K에 처박혀 있는 오래되고 안 섹시하고 엄숙한 책 같은 것.&nbsp;&nbsp;
[헌법의 풍경]은 법학류 K에서도 잡서, 혹은 '보통 사람'들의 교양으로 읽을 만한 책들인 제일 마지막 분류 KPA에 속해있는,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3류 변호사, 3류 법학 교수가 쓴" 에세이이다. 그렇다면 '3류'가 아닌 법조계 인물들은 어디에 있을까. 양장과 한자를 두르고 보통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킨 채 고고하게 그들만의 성채를 짓고, 유지하고, 또 그리로 진입하게 되는 과정은 저자의 목소리를 빌어 리얼하게 묘사된다. 
&nbsp;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기 위해 법대에 가고 사법 시험을 준비한다는 예비 법조인들은, 대학 시절 내내 조사 빼고 전부 한자인 교과서와&nbsp;독일어, 일본어를 지역해서 만들어진 '법률용어'의 홍수에 익숙해지며 'Legal Mind'를 습득한다. (리갈 마인드란, '잘 훈련된 법률가의 지적, 법률적 능력 또는 입장'이라고 정의되는 어떤 것, 혹은 법률가가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는 과정에서 작동하는 '그 어떤 것'이라고 한다.) 예비 법조인들은 공부하고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리갈 마인드를 습득한다고 세뇌하면서, 자신들의 가치관과 상식에 준거한 판단을 법률가의 객관적인 그것으로 합리화할 준비를 마친다. 그리하여 드디어 법조계에 안착한 그들은 사회적 논쟁과 합의를 거쳐 결정되어야 할 문제에까지 리갈 마인드의 보도를 휘두르는 판관이 된다. 사법 연수원이나 군법무관 후보생 훈련처럼,&nbsp;그들 선택받은 이들은 모여서 자신들의 우정과 파워를 확인하며 특권의식을 더욱 갈고 닦는다.&nbsp;&nbsp;&nbsp;
그런 판관들이 고소하고, 변호하고, 판결하는 법의 세계에서 시민들의 기본권은 우스워진다. 국가기구가 구성원들을 억압하기 위해 존재하느냐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느냐는 논란이 많은 문제이긴 하나, 일단 '존재'한다면 국가기구는 구성원들의 기본권을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다는 데에는 크게 이견이 없을 것이다. 특히나 헌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의 (말할)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는 볼테르 이후 근대정신의 가장 가시적인 구현이다. 그러나 헌법에 의해 철저하게 보장되어야 할 시민의 기본권은 법의 구현자들에 의해 오히려 앞장서서 파괴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은, 아주 엄격한 조건 하에서만 제한될 수 있고 이는 철저하게 법률에 의거한 제한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법률에 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기본권이 무시되고, 시민들의 무지와 힘없음을 볼모로 무시된다.&nbsp;
읽으면서 쇼킹했던 부분 중 하나는 진술 거부권에 대한 이야기였다. 무죄추정의 원칙, 미란다 원칙 같은 상식은 법의 구현자들이 휘두르는 폭력 앞에 공염불이 되기 일쑤이다. 진술 거부권의 행사는 논리적으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와 한몸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검찰이 '수사에 방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어 변호인의 참여를 제한하는 일'이 당연하다는 듯이 발생하곤 한다. (수사에 방해를 받으라고 변호인을 참여시키는 것인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헷갈리기까지 한다. 송두율 교수 사건에서 다시 한번 그런 일이 생겼다. 다행히도, 대법원에서 진술거부권과 그에 따른 변호인 참여의 권리가 헌법에 보장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는 "잠자고 있던 권리인 진술 거부권을 되살려낸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당연한 권리가 얼마나 무시되고 있었는지를 역설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단 대법원의 결정 중 "피의자 신문을 방해하거나 수사기밀을 누설하는 등 염려가 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변호사의 참여 제한 가능"의 언급은, 아직까지도 법률에 의거하지 않은 기본권 제한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점을 상기시켜준다.&nbsp;
마지막 장인 "잃어버린 헌법,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서는,&nbsp;공법의 제한을 받지 않는 사적 영역에서 시민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지켜지지 않는 경우를 어떻게 규제할 수 있을지를 미국의&nbsp;시민권법 (Civil Rights Act of 1964)을&nbsp; 통해 모색해보고 있다. 기울어져감에도 불구하고 건재하는 미국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다.&nbsp;최고의 대학과 석학들 엘리트 교육, 외국 유학생들을 끌어들여 자국의 힘으로 만드는 melting pot - 주로 유학다녀온 교수님들, 탄탄한 제조업과 높은 생산성 - 산업공학과 교수님들, 20이 80을 혹은 5가 95를 먹여살리는 고부가가치 산업 - 조중동 신문들... 개똥철학을 하나 보태는 건지도 모르지만, 내 생각에 시민권법은&nbsp;아직까지 건재하는 미국의 저력이 무엇에 기초하는지 보여준다. 흑인민권 운동과 여성운동을 비롯한 시민권 운동의 감동적인 투쟁의 결과물인 시민권법 제정에는 희극적인 일화가 숨겨져있다. 원래 성별에 의한 차별은 포함되지 않았는데, 입법에 불만이 있던 모 하원의원이 성별에 의한 차별을 포함시키면 남성의원들의 반대를 이끌어내&nbsp;법안 자체를 폐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단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이 조항이 그대로 통과됨으로써 성별에 의한 차별을 막는데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고 하니...
시민권법의 좀더 자세한 내용을 쓰고 싶지만, 여기까지 쓰는데도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그만 매듭짓고 이제 본업으로 돌아가야지..&nbsp;
갈길이 멀다. 갈길을 가려면, 이런 책도 많이 나오고, 읽고 생각도 좀더 해보고, 관심도 더 갖고, X같은 검사나 판사들의 행동에 욕도 해주고 해야겠지만,&nbsp;늘 그렇듯 '의식개혁'만으로는 갈길은 가지지 않는다.&nbsp;작은 직접행동 혹은 직접 안행동이 우리가 갈길의 구체적인 한보을 내딛게 해준다. 말하지 않을 나의 권리를 인식하고 말 안하기, 나의 권리가 무시되었을 때 항의하고 소송걸기, 권리의 확대를 위해 성채에서 내려온 법률전문가들의 소중한 서비스. 이런 것들이 더 많아져야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찬성표 백만개를 던져본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9/32/cover150/8995530006_1.gif</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93217</link></image></item><item><author>쏘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속세에서 도를 말하다 - [어느 무명 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title><link>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593561</link><pubDate>Wed, 22 Dec 2004 15: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59356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321176&TPaperId=59356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25/coveroff/8972321176_1.gif"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321176&TPaperId=59356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어느 무명 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a><br/>전시륜 지음 / 명상 / 2003년 10월<br/></td></tr></table><br/>죽기 전에는 무명 철학자였을지 모르나 죽고 나서는 남긴 단 한 권의 책 때문에 저자는 이제 꽤 유명세를 탔다. 그가 살아있으면 정말 좋았을 것을. 팬레터라도 한번 보냈을 거다.&nbsp;그래, 인생은 이렇게&nbsp;담담하고 유쾌하게 사는 거다. 어차피 태어난 인생, 살다가 그 이유라든가 목적이라든가 뭐 그런 거창한 거 찾아도 좋지만 설령 그렇지 못하더라도 재미나게 살다갈 일이다. 어쩌면 이유나 목적을 찾겠다는 발상 자체가 인과론적인 서양식 발상인지도 모른다. 그저 존재 자체로 우리는 내 옆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 집에서 기르는 개 고양이 나무, 사회, 자연 거창하게는 우주와 얽히게 된 거고, 그 얽힘을 충실하게 살아내면 되는 건지도 모른다. 
처음 이 책을 집었을 때 전시륜이라는 저자의 이름도 이름이거니와 외국책을 번역한 듯한 제목, 게다가 문체까지, 이 책은 번역된, 중국인의&nbsp;책이라는 확고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알고보니, 오랜 외국 생활 끝에 한국어를 까먹은 저자가 영어로 생각하고 쓴 것을 번역해서 책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글솜씨는 왠만한 좋은 번역서는 물론이거니와 모국어 저작의 글발을 능가한다. 어쩌면 전시륜 아저씨는 속세에서 도를 닦는 도인인지도 모르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25/cover150/8972321176_1.gif</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2524</link></image></item><item><author>쏘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정치학은 재미있다 - [불평등의 패러독스 - 존 롤스를 통해 본 정치와 분배정의]</title><link>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593559</link><pubDate>Wed, 22 Dec 2004 15: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59355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690190&TPaperId=5935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0/91/coveroff/8957690190_1.gif"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690190&TPaperId=59355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불평등의 패러독스 - 존 롤스를 통해 본 정치와 분배정의</a><br/>김만권 지음 / 개마고원 / 2004년 07월<br/></td></tr></table><br/>부제가 말하듯이 이 책은 존 롤스의 주장에 기대어 사회정의나 평등과 같은 가치를 어떻게 옹호할지에 대해 제시한 책이다. 존 롤스라는 사람이 알고보니 참 유명한 사람이었다. 하버마스나 한나 아렌트와 함께 현대 정치학의 흐름을 주도한 학자 중 하나란다.&nbsp;저자는(한국사람이다) 존 롤스를 읽으며 자유주의도 평등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다는데, 나에게 있어서도 비슷한 영감을 안겨준 책이다. 자유주의가 공화주의와&nbsp;다르다는 걸 책을 읽으며 처음 알았고, 자유주의 내부의 다양한 흐름과 그 차이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되었다. 현실 체제를 도외시한 순진한 하바드 교수의 발상이라는 생각은 지울 수 없지만, 적어도 다원주의적 관점을 취할 수 밖에 없는 현대에서 어떻게 공공선에 의거한&nbsp;평등, 인권,&nbsp;사회질서를 합의할 수 있을지에 대해 유용한 논리를 제공해준다. 역시 정치학은 재미있는 분야라는 생각을 확인시켜준 책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0/91/cover150/8957690190_1.gif</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09165</link></image></item><item><author>쏘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무엇이 '범죄'를 '범죄'로 만드는가? - [범죄에 관한 10가지 신화 - 한울아카데미 537]</title><link>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593557</link><pubDate>Wed, 22 Dec 2004 15: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59355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6030968&TPaperId=59355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1/53/coveroff/8946030968_1.gif"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6030968&TPaperId=59355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범죄에 관한 10가지 신화 - 한울아카데미 537</a><br/>해럴드 페핀스키 지음, 이태원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3년 05월<br/></td></tr></table><br/>드디어 다 읽어치웠다! 상당히 기대를 하면서 골라든 책이었고 책의 내용도 나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읽는내내 얼른 끝내고 싶다는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초반부터 신경을 건드렸던 껄끄러운 번역체가 가장 큰 문제였으리라고 추측한다. 어색한 번역, 번역체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문장 속에서 눈동자를 굴리다보면 어느새 이게 무슨 소린가, 헤매게 된다. 그러고보니, 한울아카데미 책들이 좀 그렇다. 기획은 좋은데 번역은 별로인.. 열악한 인문사회계열 출판사에 많은 걸 바라는게 무리인 줄은 알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nbsp;
내용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 형법에 대한 내용을 다루면 상당히 까다로우리라고 예상되지만 저자들이 글을 쉽고 편안하게 잘 썼다. 평화주의 형법학이라고 일컬어지는 저자들의 입장은 대략 다음과 같이 압축된다.
&nbsp;"(미국의) 형사체계는 제대로 굴러가고&nbsp;있는가? 그렇지 않다. 벌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벌을 받고 있는가? 벌은 받는 사람들은 적절한 벌을 받고 있는가, 그들은 벌을 받아야 마땅한가?
범죄에 대한 인식은, 노상에서 가시적으로 벌어지는 폭력에 대한 것으로만 집중된다. 사무실에서 -기업이나, 의료계에서, 정부에서-벌어지는 수많은 범죄들은 수사력의 부족과, 더 중요하게는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의 권력 및 유착관계 때문에 묻혀진다. 그에 반해 쉽게 적발되는 하층계급의 범죄는 쉽게 단죄되고 엄격하게 처벌된다. 이런 현상은 가난에 대한 차별, 인종적인 차별 속에서 더욱 공고해진다.
한편 (미국의) 급증하는 감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대부분의 하층 계급, 유색인종들은 과도한 처벌을 받고 있다. 형법에 의한 처벌은 일반적으로 범죄에 상응하게 결정된다고 믿어지지만 이것은 기만적인 신화에 불과하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거주지, 사회적 배경, 재산, 학력, 직업, 심지어 외모까지 그에 대한 처벌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하층 계급의 불우한 환경과 그에 따른 낙인, 차별적인 법집행이 수많은 투옥자와 전과자들을 만들어내며, 악순환의 고리는 점차 강화된다. 
그렇다면 형사체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다소 무리하게 요약하자면, 1. 범죄의 억제는 법체계를 통한 강제로는 본질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강요하기 보다는, 사회적 관계망의 건강한 구성원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이 범죄를 억제하는데 더욱 효과적이며 바람직하다. 2. 투옥은 더없이 폭력적이거나 비인간적인 범죄자 등 최소한도에 그쳐야한다. 3. 하층 계급이나 열악한 처지에 있는 청소년들이 자신의 에너지를 건강하게 분출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4. 형사체계에 속한 역량은 훨씬 중대한 범죄들, 즉 기업의 부정이나 폭력같은 화이트칼라 범죄를 막는데로 돌리도록 한다."&nbsp;
써놓고 보니&nbsp;얼토당토않은 이상론 같아 보이기도 한다. 좀 이상론인건 맞는데, 그렇다고 저자들의 주장이 얼토당토않은 건 절대 아니다. (그렇게 보인다면 제대로 정리를 못한 내 책임) 책에서도 예로 자주 등장하는 스웨덴이나 스위스의 형사체계는 저자들이 주장하는 바에 상당히 근접해있다. 수용소에 죄수 노동조합이 있는 나라. 극소수의 흉악범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수감자들이 어느 정도 출입이 자유로운 감옥(감옥이라고 해도 될까...)에 있고, 정부가 그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을 당연한 의무로 여기는 나라. 무조건적인 처벌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중재를 통해 적절한 해결 (가해자의 의무나 배상을 포함하여)을 꾀하는 나라.&nbsp;지구상에 현존한다.&nbsp;
이 책의 주장은, 폐지논의가 진행중이긴 하나 국가보안법 같은 것이 아직도 건재하는 나라에서 너무 앞서가는 논설인 듯도 하다. 하지만, '범죄'가 무엇인지, '범죄'는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nbsp;궁극적으로는 이 책의 저자들이 주장하는&nbsp;형사체계에 전적으로 찬동하는 바이다.&nbsp;참고로 이 책의 원제는 What causes Crime? 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1/53/cover150/8946030968_1.gif</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15368</link></image></item><item><author>쏘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산이 부른다~~~ - [나를 부르는 숲]</title><link>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589312</link><pubDate>Tue, 14 Dec 2004 15: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58931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902597&TPaperId=58931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37/coveroff/8970902597_1.gif"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902597&TPaperId=58931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를 부르는 숲</a><br/>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2년 03월<br/></td></tr></table><br/>중학교 사회 시간에 배운 것들 중에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몇 안되는 사실 중 하나는 록키 산맥과 애팔래치아 산맥이 미국의 양대 산맥이라는 것이다. 록키가 서쪽, 애팔래치아가 동쪽이던가. 나를 부르는 숲은, 미국식 백두대간인 애팔래치아 산맥 종주를 다룬 기행문이자 미국의 산과 숲, 동식물들이 인간세상 속에서 거쳐온 기나긴 (수난의) 역사를 다룬 기록이기도 하다.&nbsp;
주인공이자 저자인 빌 브라이슨은 언론인이고, 특별히 등산에 깊은 관심과&nbsp;조예가 있는 사람은 아니다. 가까운 동네의 산에 애팔래치아 트레일이 있는 걸 보고, 나도 해보자,며 불타오르기 시작, 우여곡절 끝에 동반할 친구 하나를 구해서 대장정에 나선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산맥의 등줄기를 따라 난 길고긴 길인데 대충 길이가 3500km 정도이니 가히 어마어마하다. (보통 종주하는데 6개월 정도 걸린다고 한다 -o-) 길이라고 해서 특별히 아스팔트로 보도를 깔거나 한 건 아니다.&nbsp;우리가 등산을 할 때 보통 다니는 길이 있듯이, 애팔래치아 트레일도 여기가 길이다, 일루 가면 된다는 표지판이 놓여있고 대피소가 군데군데 마련되어 있는 정도.&nbsp;&nbsp;
꽤 많은 사람들이 종주를 시도하지만 (그래도 몇천명 수준이다. 미국의 인구를 생각하면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는 숫자다) 그 중에서 실제로 끝까지 가는데 성공하는 사람들은 단 10%이다. 1948년 최초로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가 이루어진 이후로 매년 조금씩 종주인원이 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종주에 성공한 사람은 탈탈 털어서 4천명이 좀 안된다고 한다. 놀랍게도 그렇게 종주에 성공한 사람 중에서는 80먹은 할아버지, 맹견을 데리고 간 시각장애인, 목발을 짚은 외다리 장애인, 끊임없이 길을 잃는 바람에 좀 시간이 오래 걸린 60대 할머니 등 상상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종주에 성공한 사람 중 상당수는 섹션 하이커(section hiker)로 몇번에 걸쳐 구간을 나눠서 종주하는 사람들이다. 한번에 종주하는 사람은 스루 하이커(through hiker)라고 하는데, 상당수 사람들은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갔다가 숲을 떠나지 못하고 다시 남쪽까지 종주를 한다고 한다 -_-;;&nbsp;
18킬로나 되는 장비를 지고 시작한 종주는, 사람의 신체를 현대적 일상의 안락함과 이완으로부터 완전히 격리시키는 과정의 연속이다.&nbsp;엄청난 무게의 장비를 지고 끊임없이 걷는다. 어디까지 왔다, 오늘은 어디까지 갈 것이다라는 지식이나 계획이 무의미하다. 당연히 그렇지 않을까, 오늘도 내일도, 한달 후에도 이렇게 똑같은 숲을 걷고 있을테니까. 그나마 한두달쯤 똑같은 숲을 계속 걷다보면(!!) 주경계를 지나 다른 국립공원으로 넘어간다, 그렇게 되면 조금 다른 경치와 환경을 경험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너무 먼 얘기다. 종주를 시작한 사람들은, 책의 표현 그대로 하루 몇천번 숨쉬기를 하듯, 하루 몇만보의 걸음을 걷는다.&nbsp;&nbsp;
음식은, 무게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스니커즈나 국수와 같은 건조하고 간편한 음식으로 때운다. 물론 씻지도 못한다. 저녁이 되면 적당한 야영지에 텐트를 치고 국수를 끓여먹고 책을 읽다가 슬리핑백 안에 들어가 잠이 든다. 아침이 되면 다시 또 걷기 시작한다. 그러는 와중에 트레일에서 종주 중인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nbsp;&nbsp;
물론 이렇게 산적처럼 육개월을 지내지는 못한다. 중간 중간에 (보통 일이주일에 한번&nbsp;나올정도의 빈도로) 휴게 지역이 있다. 세탁, 목욕을 하며 제대로된 잠자리에서 잠을 자고 식량과 필요한 물품을 보충하기도 한다. 때때로 치즈버거와 콜라를 먹을 수도 있는 이런 휴게지역을 주인공과 그 일행은 열광한다. 그러면서도 진열장과 상점과 아스팔트 도로가 즐비한 이런 휴게지역은 막 트레일에서 내려온 산사람들을 낯설게 하고, 어리둥절하게 한다. 
이 책은, 몇번의 작은 경험에서 산에서 느꼈던 소중한 느낌들을 되살려주었다. 몸과 마음이 정화되고 맑아지는 느낌, 몸이 가벼워지고 스스로 내 몸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기쁨, 새벽에 졸린 눈을 비비고 억지로 잠든 몸을 이끌어 산행에 다시 올랐을 때 문득 바라본 안개낀 계곡풍경, 마침내 해냈다는 뿌듯함 등. 물론 이 책에서 수행하는 산행은 내가 했던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그런만큼 더 많은 경험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37/cover150/8970902597_1.gif</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3794</link></image></item><item><author>쏘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예전에도 그랬고, 여전히 그런, 흡연 여성 잔혹사 - [흡연 여성 잔혹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589310</link><pubDate>Tue, 14 Dec 2004 15: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58931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045842&TPaperId=58931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9/32/coveroff/8901045842_1.gif"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045842&TPaperId=58931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흡연 여성 잔혹사</a><br/>서명숙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4년 05월<br/></td></tr></table><br/>가벼운 잡담 형식이어서 술술 읽힌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이 나보다 한 연배 위인 만큼 나조차 아직 겪어보지 않은 극단적인 경험들도 많이 나온다. 아...끔찍해... 술집에서 술마시다가 여자들이 담배피운다는 이유로 술잔을 끼얹어버리는 그런 시대에 산다는 건 대체 어떤 걸까. 상상하기도 싫다.&nbsp;&nbsp;
그런 한편, 지금 나의 얘기와 별 다르지 않은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아직 나는 학교라는 비교적 자유로운 공간에 있고, 속으로야 무슨 생각을 하든 적어도 담배를 피우는 나를 보고 대놓고 뭐라고 할 남자는 없다. (대신 돌려서 말한다. 나중에 애기가 위험하다느니 건강에 안좋다느니, 너무 많이 피우는 거 아니냐느니...왜 남의 태어나지도 않은 애 걱정을 자기가 해주는지 알 수가 없다. 담배가 남자의 생식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모르면서 어쩜 여자 몸에 미칠 나쁜 영향에 대해서는 그토록 걱정해주는지. 젠장) 거의 대부분 시간을 학교 내에서 보내니 담배를 피우는데 별다른 불편함이 없다. 하지만 학교 밖에 나가면 사정은 달라진다. 일단 학교 밖에 나가면, 술집 밥집 만화방 이런 벽이 둘러진 곳이 아닌 길가에서는 담배피우는 것이 주저된다. 그래도 어은동 궁동에서는 그냥 피운다. 더 멀리, 둔산이라든가 대전역에 가면 정말 불편해진다. 의식적으로 사람들 눈 신경 안쓰고 그냥 피워버리려고 하지만, 그야말로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옆에 남자녀석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래도 괜찮다. 비루한 태도이긴 하지만, 지나가는 누군가가 시비를 걸어도 내 편(남자)되어줄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사실 옆에 남자가 있으면 흡연중인 여자(나)를 빤히 쳐다보며 궁시렁 댈지언정 대놓고 뭐라고 하지는 않는다. 내가 겪었던 몇 번의 봉변은 모두 나 혼자일 때이거나 다른 여자애랑 둘이 담배피울 때 일어난 일이었다.&nbsp;
낯선 고장, 특히 지방 소도시의 터미널이나 역 같은데서는 더더욱 담배를 꺼내들기가 힘들어진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나의 적이고, 내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는 순간 그들의 눈빛이 화살처럼 내게 박힌다는 느낌이 든다. 실제일 수도 있고 과장된 생각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울 때 따가운 시선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흘깃 보는 것도 아니고, 무슨 죄짓는 사람인양 일부러 빤히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다. 몇년이 지나도 그 가증스런 눈빛은 그냥 지나쳐지지가 않는다. 야 이 씹새꺄 몰 꼬라바!! 하고 멱살이라도 잡고 싶을 충동에 그 때마다 사로잡히곤 한다. 물론 혼자 씩씩대며 삭여버리지만.&nbsp;&nbsp;
아...흡연 여성 잔혹사 하니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참 많구나. 학교 앞에서 어떤 양아치 같은 놈이 담배 피우는 날 보고 "세상 말세네. 이년아 담배 그만 피워"하고 버럭 소리지르던 일. 그 인간은 학교 앞에 있는 자기 원룸에 들어가서는 창문밖으로 날 내다보고는, 아직도 피우고 있네 하면서 또 욕을 해댔다. (쓰다보니 또 열받네) 내가 어떤 대응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그다지 강하게 나가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남의 흡연권을 침해하고 생판 남에게 욕까지 해댄 인간은 그렇게나 당당하고, 잘못한 것도 없이 인격모독까지 당한 나는 왜 당당하게 나갈 수 없었던 건지. 한판 벌였어야 했는걸, 하고 두고두고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도 똑같은 일을 겪으면 과연 내가 욕이라도 한바가지 해주며 응수할 수 있을지 도저히 자신이 없다. 아, 여자여...]]></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9/32/cover150/8901045842_1.gif</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93292</link></image></item><item><author>쏘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사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개인의 정치학 - [남자의 탄생 - 한 아이의 유년기를 통해 보는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 과정]</title><link>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589307</link><pubDate>Tue, 14 Dec 2004 15: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58930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843772&TPaperId=58930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1/18/coveroff/8971843772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843772&TPaperId=58930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남자의 탄생 - 한 아이의 유년기를 통해 보는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 과정</a><br/>전인권 지음 / 푸른숲 / 2003년 05월<br/></td></tr></table><br/>기대했던 것과 어느 정도는 비슷하고 어느 정도는 다르기도 하다. 제목이 무슨 액션스릴러 같기도 하고 에로물 같기도 하고 암튼 좀 구리구리한데 부제를 보면 좀더 제목의 의도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부제 : 한아이의 유년기를 통해 보는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과정.&nbsp;
책은, 정말 개인적인 일기나 기록, 혹은 상담의사가 작성했을 법한 심리학적 보고서 같다. (물론 이런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는 의사는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런 의사라면 나두 함 상담 받아볼테다) 한 대여섯살부터 중학생이 되기 이전까지의 짧은 몇년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왜 이 시기를 자기분석의 대상기간으로 선택했는지도 흥미있는 문제인 것 같다.&nbsp;&nbsp;
아마도&nbsp;'나'를 근간을 형성해온 시간, 내가 형성'당했'던 시간 중에서 분석'가능'한 시기를 선택한 것 같다. 초등학생 때까지의 시간, 유년기라 불리는 이 시간은, 개인에게 있어서는 신화와 비슷한 기억이 아닐까. 나만해도 중학교 이후의 일은 거의 기억이 난다. 물론 에피소드나 이런건 워낙 잘 까먹긴 하지만, 현재의 '나'라는 사람과 연속선상에 있는 존재로서 중삐리적 '나'를 기억해낼 수 있다. 하지만 국민학교(이렇게 쓰니까 마치 일제 시대 소학교를 지칭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특히 3-4학년 이전의 일들은 기억은 나지만 남의 기억이나 사진,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5-6살 이전으로 가면, 그건 더 이상 '내'가 아니다. 그저 '나'의 과거라고 알려진 어떤 어린애일 뿐이다. 기억도 거의 없다. 아주 특수하거나 충격적인,&nbsp;나의 트라우마를 형성한 극소수의 경험 외에 기억은 전무이다. 그렇다면 이 시기는 분석의 대상으로 삼기 힘들 것이다.&nbsp;&nbsp;
중학교 이후 시기는? 글쎄.. 작가가 굳이 분석 대상을 유년기로 한정지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 생각에는&nbsp;타당한 선택으로 보인다. 중학교 이후 시기에서 내 인격의 형성과정은, 비유하자면 기본 모양은 다 만들어져 있는데 튀어나온 것 좀 깎고, 부족한 건 조금 메꿔주고 하는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바탕은 별로 변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다.&nbsp;
나보다 나이가 2배는 되는 -프로필을 보니 1990년까지 포닥을 했다- 아저씨의 유년기에 대한 그 상세한 기억과 회상은 참으로 대단하다. 경험과 느낌, 당시의 주변 정황에 대해, 정확하지 않으나 뚜렷한 감각을 갖고 그 감각 자체를 소재로 생각을 전개해 나간다. 이 지극히 개인적인 '아이'의 경험들은,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어른의 사고와 시각으로 분석되고 공감된다. 재미있는 것은 작가의 이야기가&nbsp;거의 아버지, 어머니로 집중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 책은 어머니 아버지 나의 유년시절 상호작용을 기록한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족' 관계도 아니다. 작가 집안의 특수성일 수도 있으나, 그의 많은 형제 자매는 그의 기억과 경험에서 주변부를 차지하고 있을 따름이다.&nbsp;
'나'의 형성과정에 대한 그의 솔직한 고백은, 나는 어머니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구성되어졌다고 말한다. 그럴 것이다. 어린 시절 인격 형성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가족, 그 중에서도 부모라고&nbsp;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과연 '나'와 '나의 부모님'이 어떤 인터랙션을 가져왔고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나'는 알고 있는가. 솔직히, 거의 아는 게 없다. 작가가 얘기하듯이, 표면적인 이유로 '한국 사회에서 부모란 하나의 성역이고, 부모를 연구대상으로 삼거나 관찰하고 비판하는 것은 금지된 장난이며, 그러다 보니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두분과 나와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도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또 '내가 나의 부모를 잘 몰랐던 이유 중에는 어머니와 아버지, 선배 세대를 무시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난 우리집에서 유별난 존재야 나만 별종이야, 혹은 부모에 대한&nbsp;미움과 경멸,&nbsp;무시, 현재의 내 삶에 집중하고 부모에 대해 무관심해지면서 자신을 무연고 인간으로 파악하는 것 등. 사실 집을 벗어나 대학에 오면 다들 겪는 증상이고 나도 역시 그랬다. 지금도 그렇기도 하고.&nbsp;
이 책은 특별한 어떤 내용이나 메세지를 전달한다기 보다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분석해보는데 있어 표본이 되는 텍스트로 볼 수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 성숙해진다는 것, 자신의 상처와 사고와 행동 느낌을 직시하고 포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 그건,&nbsp;자기성찰에서부터 시작되는 과정일 것이다. 나도 죽기 전에 이런 보고서 하나 정도는 써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1/18/cover150/897184377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11840</link></image></item><item><author>쏘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나, 늙었나봐. -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title><link>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589302</link><pubDate>Tue, 14 Dec 2004 15: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58930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488273&TPaperId=58930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19book_75cover.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488273&TPaperId=58930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a><br/>무라카미 류 지음, 한성례 옮김 / 동방미디어 / 2004년 02월<br/></td></tr></table><br/>생일 선물로 후배가 사준 책이다. 무라카미- 로 시작하는 소설은 물론 일본 소설 자체를 별로 읽지 않았고, 내가 읽은 소설의 목록에서 상당히 튀는 항목일 것이다.&nbsp;&nbsp;
기성 사회의 가치관이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할 때, 그만큼의 거대한 사회변화가 진행되고 젊은 세대는 새로운 진실에 직면하게 될 때. 더이상 자신이 나아갈 수 있는 사회에서는 희망도 자신을 위한 공간도 발견할 수 없어, 자신들만의 유랑을 시작할 때. 무라카미 류의 30년 전 소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그렇게 유랑 중인 일본의 전후 세대의 퇴폐적이고 자기파괴적인 이야기이다. 보통 전공투 세대라고도 하는 그 세대 젊은이들.&nbsp;&nbsp;
대충 미국의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나 히피들이랑 비슷한 느낌이고 실제로 그들의 문화에 아주 큰 영향을 받으면서 형성된 것 같다. 하지만, 히피에 대해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막연하게 얻게된 이미지를 근거로 과감히 얘기해도 된다면, 이 일본판 로스트 제너레이션은 종주국의 그들처럼 깃털처럼 가볍게, 정처없이&nbsp;떠돌지 못한다. 그들은&nbsp;무거운 현실의 무게에 짓눌리고, 마약에 취한 몽롱함조차 마치 악몽처럼 진행된다.&nbsp;
이 소설의 인물들은, 미군기지 주변에서 자라나 미국과 미군에게서 떨어져나온 쓰레기들을 입고 먹고 마시고 흡수하며 살아간다. 작가 본인임이 너무도 확연히 느껴지는 주인공은, 미군들과의 연줄을 이용해 미군들과 국내 여성들의 파티를 주선하며 살아간다. 그의 애인은, 아마도 미군들을 대상으로 할법한, 미국인이 사장인듯한, 바를 운영하며 살아간다. 주인공의 친구들은, 역시 기지 근처의 술집을 운영하거나 혹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방법으로 돈을 벌고 있다. (아직 창녀나 미군의 정부가 되거나 하지는 않은 것 같다) 남자들은 어떤 식으로 먹고 살고 마약까지 소비하는지 알 수없으나, 짐작컨데 여자친구들에게 빌붙어서 먹고 사는 것으로 보인다.&nbsp;
소설 줄거리 (그런 게 있다면)는 단순하다. 주인공과 그 주변인물이 마약에 취해, 미군들과 대단한 파티를 벌이고 (소설이 19세 미만구독 불가인 이유가 이 파티들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고등학생 정도일 때 가장 감동받을 법한 내용이고 그런 삘로 쓰여진 책이다), 죽일듯 패고 싸우고 미친 짓하고...그러다가 뿔뿔이 각자의 알 수 없는 미래로 가는 내용. 그들의 파티와 일상에는 항상 종주국 비슷한 무리의 우상이었던 그룹들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미군들이 흘리고 버린 것들로 살아가는 그들은 유일한 휴식이자 공감대에서조차 자유롭지 못하다.&nbsp;
나이 먹고, 기성사회에 이만큼이나 편입된(?) 지금&nbsp;읽자니 상당히 겉도는 방식으로 읽히는 소설이었다. 하지만, 언제 어딘가에 이러한 시대 혹은 시기를 겪어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안다. (아, 정말 난 기성세대가 됐나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img/19book_150cover.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71101</link></image></item><item><author>쏘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잘 만들어진 소설 하나 - [다 빈치 코드 - 전2권 세트]</title><link>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589301</link><pubDate>Tue, 14 Dec 2004 15: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58930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590501&TPaperId=58930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9/71/coveroff/8957590501_1.gif"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590501&TPaperId=58930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다 빈치 코드 - 전2권 세트</a><br/>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06월<br/></td></tr></table><br/>드/디/어 다빈치 코드를&nbsp;읽었다.&nbsp;워낙 광고를 많이 해서 기대를 하기도 했고, 별 거 없을 거다 싶기도 했다. 읽고 난 소감은? 딱 예감했던 만큼이다. 광고 많이 하고, 사람들이 많이 읽을만큼 스피디하고, 적당량의 흥미로운 지식과 지적인 취향을 가미해 괜찮은 스릴러가 되었다. 음...스릴러 자체로서는 과연 존 그리샴 같은 정통 스릴러 작가보다 나은 작품을 썼냐면 장담 못하겠다. 하지만 신비주의 전통이나 기독교의 이면 역사를 다룬 비슷한 소설 중에서는 대중적으로 읽힐 만한 속도감과 무게를 적당히 잘 줬다고 본다.&nbsp;&nbsp;
하지만 광고에서 피력하는 바나, 책 자체가 다루고 있는 소재를 얼마나 잘 살렸냐는 측면에서 보면 역시나 특별한 건 없었다. 워낙에 자주 다뤄진 소재인데,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신비주의 전통의 역사나 비밀 (음모론?)도, 그렇게 수없이 알려진 정통(!) 음모론에서 거의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책 몇 권만 읽어보면 다 아는 얘기를 적당히 섞어서 거기에 스릴러 요소를 끼워넣은 정도. 덕분에 이교도, 기독교에서 나타는 상징을 연구하는 기호학자에 성배에 관한 최고의 역사학자까지 등장시켰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벌이는 두뇌게임이라는 게 별로 대단치가 않다.&nbsp;&nbsp;
작가가 다빈치 코드의 주인공을 계속 등장시키는 소설을 써왔고, 앞으로도 나올 것 같다. 꽤 성공할 거 같다. 이쪽 계통 얘기가 워낙 흥미롭긴 한데, 읽는 사람은 읽지만 보통은 잘 안 읽는 내용이고, 그걸 나름대로 재미있고 가볍게 잘 쓸 거 같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다빈치 코드는 시류에 정통한 출판 기획자와 작가가 만들어낸 잘 만들어진 기획상품 같다.&nbsp;성배의 전설을 추적하는 실마리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선택한 것도, 왠 이름모를 고문서 같은 것보다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그림과 천재적이고 유명한&nbsp;역사적 인물(전면에 내세울 수 있고, 쉽게 친숙해질 수 있는)을 내세우는 게 낫겠다는 마케팅 차원의 판단으로 이뤄졌을 거라는 느낌. 뭐,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nbsp;&nbsp;
푸코의 추를 다시 한번 읽고 싶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9/71/cover150/8957590501_1.gif</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97199</link></image></item><item><author>쏘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목가적인 (절대 지루하지않은) 이야기 - [그루밍 업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589300</link><pubDate>Tue, 14 Dec 2004 15: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58930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7606756&TPaperId=58930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noimg_off_b.gif"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7606756&TPaperId=58930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그루밍 업 1</a><br/>마사미 유키 지음 / 세주문화 / 1999년 11월<br/></td></tr></table><br/>groom : 마부, 말을 돌보다. Grooming up! 이면 말을 잘 키워보자! 이쯤 되겠다. 
요새 재미있게 읽은 만화책이다. 전형적인 동경 범생 고딩이 우연히 홋카이도의 말생산 농장과 인연이 닿아 목장에서 일하게 되면서 겪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다. 잘 나가는 대농장은 아니지만 꽤 괜찮은 말들도 종종 나오고 자신들이 돌본 말이 큰 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감격을 맛보기도 한다. 농장 주인댁의 미녀 4자매와의 알콩달콩한 이야기, 이야기 후반으로 가면 결국 그 중&nbsp;일편단심으로 좋아하던 둘째 딸과 속도위반을 겸한 결혼에 골인한다. 처음에는, 경마장이나 기수 이야기도 아닌, 말 생산 농장의 일꾼들 이야기라 이게 뭐야, 싶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잔잔한 재미에 빠져들게 되었다. 등장인물들의 연애사건에 흥미진진해하고, 배경이 되는 목장에서 나온 말들이 경주에 출전하면 힘주어 응원하고... 재밌긴 하지만 불온한 스포츠라고 생각했던 경마도 이렇게 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애환을 통해서 보니 참 괜찮은 느낌이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img/noimg_150_b.gif</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11990</link></image></item><item><author>쏘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네 인생은 너의 것이다. - [너, 외롭구나 - 김형태의 청춘 카운슬링]</title><link>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589298</link><pubDate>Tue, 14 Dec 2004 15: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58929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8902920&TPaperId=58929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0/75/coveroff/8988902920_1.gif"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8902920&TPaperId=58929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너, 외롭구나 - 김형태의 청춘 카운슬링</a><br/>김형태 지음 / 예담 / 2004년 08월<br/></td></tr></table><br/>이 책은 김형태 (이 사람이 아마 씨네 21에 오, 컬트인가 하는 칼럼 연재하던 사람 같다)라는 '무규칙이종예술가'가&nbsp;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젊은이들을 카운셀링한 사례의 모음이다. 카운셀링의 중심에는 이태백 (이십대 태반이 백수)이라는 암울한 단어가 있다.
꿈도 없고 희망도 없고 싸가지까지 없는 불쌍한 젊은이들. 입시기계로 길러져와서 스스로 뭔가를 해보려는 열정을 갖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 머리 속으로만 이걸 해볼까 저걸 해볼까 공상하고 정작 몸은 방바닥이나 컴퓨터 앞만을 맴돈다. 기껏 갖는 꿈이라는게 돈 많이 주는 안정된 직장이다.&nbsp;
'안정'을 지향할 수 밖에 없는 사회의 현실을 카운셀러는 모르는 게 아니다. 물론&nbsp;청년 실업의 원인이 장기불황이 아니라, 장기불황의 원인이 청년 실업(청년 실망)이라고, 너가 몸을 움직이고 두려움과 망설임을 벌이고 자기&nbsp;계발을 열심히&nbsp;하라고,&nbsp;이태백에게 모질게 쏘아대는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회가 어떻든 책임은 결국 본인이 져야한다는, 그&nbsp;쓴소리의 메세지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nbsp;
요새 나오는 처세술이나 소프트 심리학 책들과는 많이 다르다. 사회에 적응하고 편입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이 되라고 부르짖지도 않는다. 일종의 "꿈을 향해 달려라, 제발 좀." 스타일이다. 책에 나오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고민 (수능 준비하는 고등학생부터 30대 중반의 직장인까지 다양하지만 절대 다수는 이십대 젊은이들이다)이 남의 것 같지 않았다. 비록 백수도 아니고, 몽상만 하는 건 아니지만, 꿈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헌신적인 열정, 노력이 부족하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nbsp;
책을 읽고, 뭐든 진지하고 깊게, 적극적으로 대하려는 자세가 조금은 생긴 거 같다. 이 약발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나 역시 이 책을 많이 추천하게 될 듯하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0/75/cover150/8988902920_1.gif</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07527</link></image></item><item><author>쏘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폭력에 대한 반대 - [환경학과 평화학]</title><link>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589296</link><pubDate>Tue, 14 Dec 2004 14: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58929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274184&TPaperId=58929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3/18/coveroff/8990274184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274184&TPaperId=58929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환경학과 평화학</a><br/>토다 키요시 지음, 김원식 옮김 / 녹색평론사 / 2003년 09월<br/></td></tr></table><br/>여담으로 시작하자면, 일본 사람들은 뭔가를 종합해서 정리하는데 참 탁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판타지 라이브러리라는 시리즈가 있다. 온갖 동서고금의 판타지물들에 대해 항목별로 정리한 책들인데 이 시리즈를 보면 항상 감탄을 하게 된다. 이런 거, 일본 사람들이 참 잘하는 거 같다.&nbsp;
[판타지 라이브러리]와&nbsp;이 책은 주제상 거리가&nbsp;멀지만, 이 책 역시 '폭력'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매우 종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면에서 흡사하다. 책은 직접적 폭력과 구조적 폭력이라는, 폭력에 대한 다소는 모호한 구분으로부터 시작한다.&nbsp;즉각&nbsp;알아차릴 수 있듯이 직접적 폭력은 주체와 대상, 행동의 의도와 결과가 &nbsp;명확한 폭력이고 구조적 폭력은 그렇지 않은 것을 가리킨다. 환경 파괴, 대기업이나 강대국의 행위에 의한 피해 등을 폭력의 개념 내로 포괄하기 위한 범주화로 보인다. 개인 대 개인의 폭력이나 개인의 폭력성 문제는 책에서 다루는 범위 밖이다.&nbsp;
테러, 전쟁, 사형. 국가와 같은 공적 조직이 수행하는 대표적인 직접적 폭력이다. 테러는 나쁜 것, 전쟁은 불가피한 것,&nbsp;사형은 (악질범죄자에게) 당연한 것이라는 도식이 굳어져 있는 우리에게 이 세 가지를 한 데 묶는 건&nbsp;괘씸해 보이기도 한다. 사실 (근대) 국가가 UN을 제외한 다른 공적 조직과 대별되는 가장 큰 요인이 바로 합법적 폭력(전쟁 수행력, 사형 및 구금 등 경찰력)을 독점한다는 것 아닌가. 하지만 저자는 국가의 폭력이 과연 정당한가에 의문을 제기한다. 전쟁 중 사망 비전투원의 비율이 2차 대전 후&nbsp;증가하면서, 급기야 현대전에서는 80-90%의 사망자가 민간인이다. 그렇게 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nbsp;전략 폭격이다.&nbsp;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몇 만피트 위에서 폭격하는&nbsp;행위는 이제 일종의 게임 같이 되어버린다. 그렇다면 전략폭격을 중심에 두는 현대전이 테러와&nbsp;뭐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사형에 대해서는,&nbsp;요사이 여러&nbsp;글을 읽다보니 사형 폐지로 가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 역시 사형 폐지론자이다. 가장 중요한 원죄 형사 가능성 (오심으로 인해 사형당하는 경우)에 대해 저자는 미국과 일본의 원죄 형사 통계를 들이댄다. 정말 할 말이 없어진다.&nbsp;2003년 일리노이주에서 13명의 사형수가 무혐의라는 것이 밝혀져 한꺼번에 석방된 케이스는 매우 유명하다. 플로리다 주에서는 5명의 사형이 집행될 때마다 2명의 다른 사형수가 무죄방면된다고 한다. 정말 끔찍한 통계가 아닐 수 없다. 일본도 원죄 형사가 많기는 매한가지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왜 다르겠는가.
&nbsp;좀 간추려서 써야겠다.
책을 읽으면서, 군수산업, 담배산업, 남북 격차, 글로벌 대기업의 지배 문제, 핵 (전쟁용이든 민사용이든), 생명공학기술의 이용, 출산기술&nbsp;등의 문제를 '폭력'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환경학과 평화학이 무슨 관계일까? 처음 책을 집어들었을 때 좀 생뚱맞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둘다 잘 살아보자는 거고, 막연하게는 큰 관련이 있을 거 같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키워드는 '폭력'이다. 평화의 반대는 전쟁이 아니라 폭력이다. 환경 문제는 '지구에 대한 폭력' '자연에 대한 폭력'으로 압축된다. 우리의 환경학과 평화학은 공존, 자연과의 평화로운 공존, 타인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지향해야 한다. 이 때의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와 같은 소극적인 개념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구조적, 간접적 폭력까지 없애는 적극적인 평화여야 한다.
한때 환경운동이라든가 평화운동은 Main stream에서 떨어져 나온, 소위 '부문'운동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직접적, 구조적 폭력에 대한 적극적인 반대라는 관점은, 우리시대의 진보적인 이슈들을 아우를 수 있는 좋은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nbsp;&nbsp;
한가지 덧붙이자면. 현대의 폭력이 자본주의의 폭력인가 남성중심 사회의 폭력인가. 여성이 남성 대신 사회를 움직인다면 세상은 다를까.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봤지만, 결론지어지지 않은 문제이다. (하긴 나만 결론을 못냈을까)&nbsp;저자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언급한 다른 영장류들의 사례는, 내 개인적인 여성편애에 근거를 더해주었다. 일단 다른 영장류든 인간이든 여성이 주도하거나 남녀평등의 수준이 높은 집단은 4대 원초적 폭력(전쟁, 살인, 새끼죽이기, 강간)이 없이 평화롭고 평등하다. 하하 -_-v.&nbsp;이 문제에 대해서는 좀더 생각해 볼 것이 많다.&nbsp;
마지막으로, 책을 읽고 나서 생긴 추가 독서목록이다.
- 민족국가와 폭력, 앤서니 기든스
- The Anatomy of Human Destructiveness, 에리히 프롬
- 악마같은 남성, 랭햄 &amp; 피터슨]]></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3/18/cover150/8990274184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31843</link></image></item><item><author>쏘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이기적일 수 있는 여자가 되자. -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589291</link><pubDate>Tue, 14 Dec 2004 14: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58929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575731&TPaperId=5892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0/44/coveroff/895757573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575731&TPaperId=58929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a><br/>남인숙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07월<br/></td></tr></table><br/>진짜? 라는 의구심과 함께 왠지 꼬운 감정을 유발하는 제목이다. 예전 같으면 무심코 넘겨버렸을 것이다. 허나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수없이 쏟아지는 처세술, 경영, 재테크 책에-순진하고 이런데 무관심할 것같은&nbsp;학생들 사이에서 이런 책들이 의외로 상당히 많이 읽힌다. 항상 반납카트와 예약도서 코너에는 이런 책들이 몇 권이상 꼽혀있다-&nbsp;무방비하게(?) 노출되는 일이 잦다보니 가끔 제목에 따라서는 책을 훑어보거나 때로는 읽어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nbsp;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 일단 얇고, 잘 읽힌다. "속물이 돼라!" 라는 선동적인 구호로 시작하지만 충분히 합당한(내 생각에는)&nbsp;충고로 이뤄져 있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계산적인 사고 방식 아니냐라고 할 수도 있을 테고 어떤 사람들은 사회구조적인 문제들을 넘겨버리고 개인의 실천으로 문제를 축소시킨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 후자의 지적은 대부분의 무슨무슨 처세서, 지침서에 다 해당되는 얘기고 전적으로 공감하며, 그냥 그런 책들의 한계라고 생각해두자.&nbsp;&nbsp;
저자는, 당연히도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를 하라고 강조한다. 단, 영악한 방식으로, 철저하게 나에게 좋은 것을 챙기면서. 영악해지고 얌체가 되고 이기적이 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 책의 주요 메세지다. 
잘 살고 싶으면, '스스로를 귀족대접하고' '고급한 취향을 계발하고' '전략적으로 착해지고' '내 스스로 잘 살 운명이라고 자부하라'고 한다. 불행한 내 인생을 위로하기 위해 '행복한 사람은 인생을 모를 거야'라고 질투어린 편견을 갖지 말고, 오히려 행복하고 잘나고 자신감있고 성공한 사람들을 가까이 하면서 그들의 에너지와 아우라를 흡수하라고 말한다. 싹싹한 여자가 되어 (30대에는 오지랖이 넓다는 소릴 듣지만 20대엔 싹싹한거다. 그러니 20대에 시작하라~) 자신에게 더 좋은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줘라. 독서, 건강, 외모 등에서 자신에게 철저하게 투자하라. 돈 버는 법, 돈 쓰는 법을 제대로 배워라. 사랑에 희생하는 것이 아름답고, 조건을 저울질하는 것은 나쁜 짓이라는 생각에 어이없는 남자와 결혼하지 마라, 결혼은-특히나 결혼이 여자에게 일단은 손해인 한국사회에서- 선택이고 전략적이어야 한다. 등등&nbsp;
내가 보기에는, 내 나이 정도 되면 당연히 알아야 할 기본적인 상식 같은 얘기다. 물론 여기에 더해서 개인의 성격과 가치관에 따라 다른 견해나 선택이 있을 것이지만. 하지만 이런 내용이 처세를 가르치는 책으로 등장한다는 건,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서 여자가 '이기적'이 된다는 것이 그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는 반증일 것이다.&nbsp;감내하고 희생하고 수용하고 순수하고 야심을 갖는 것이 경계되고 길들여지고... 아직도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 책에 나오는 조언이 필요한 친구들을 내 주변에서도 떠올려볼 수 있다.&nbsp;&nbsp;
이 책처럼 사회 속에서 여성의 처지를 인정하고 이용하라고 조언하는 것을 넘어, 그 처지를 바꾸고자 하는 여성들이 어떻게 연대하고 싸우고 살아갈지를 조언해주는 그런 처세서가 나올 날을 기다려본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0/44/cover150/895757573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04477</link></image></item><item><author>쏘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새로운 시대의 생존 전략 - [낭만적 사랑과 사회]</title><link>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589288</link><pubDate>Tue, 14 Dec 2004 14: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58928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14485&TPaperId=58928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3/35/coveroff/8932014485_1.gif"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14485&TPaperId=58928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낭만적 사랑과 사회</a><br/>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09월<br/></td></tr></table><br/>피곤에 찌든 나를 주말동안 refresh하라는 미션을 부여받고 선정된 몇 권의 책 중 하나다. 정이현이라는 신예작가의 단편집.&nbsp;&nbsp;
주인공들은, 모두 여자들이고, 상당수는 매우 '나쁜년'들이다. 김연실전의 주인공 김연실은 당대의 관점으로 매우 '나쁜년'이고, 그 외 첫 세 단편-각각 오늘날의 30대, 20대, 10대를 그리고 있는-의 주인공들은 오늘날의 시각으로 봐도 '나쁜 년'들이다. 
&nbsp;나쁜년들은, 새로운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아무도 모르게 전략을 세우고 음모를 꾸미는 이들이다. 새로운 시대란, 더이상 여성이 참하게 자라서 자신의 처지에 맞는 착하고 믿음직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행운을 얻으면 행복해 질 거라는 기대를 갖기 힘든 시대이다.&nbsp;이 시대의 여성은, 자본주의적 기획이 도처를 장악하고 있는 사회를 홀로 살아내야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것이 직업적 성공을 통해서이든, 그럴싸한 연애와 결혼을 통해서이든 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이 시대의 여성은 여전히 유효한 가부장적 시선에 포위된 채 그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는 '여자'로서 살아야한다. 여기에서 그녀들의 음모가 발생한다. 드디어 잡은 잘나가는 그와의 첫날밤에 한사코 지켜왔던 자신의&nbsp;'처녀성'을 드러내보이려는 몸짓 같은 것. 사회가, 남성이 요구하는 여성성을 연기해주고 가장하는, 그 밑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한 필사적으로 헤엄질친다, 마치 백조처럼.&nbsp;&nbsp;
그녀들은 과연 성공할까. 알 수 없다.&nbsp;성공가도를 달리던 커리어 우먼, 그&nbsp;욕망추구를 가속시켜줄 새 자동차에는 시체가 들어있다 (트렁크). 낡은 팬티를 마지노선으로 지켜왔던 순결을 마침내 '바친' 그 남자는 그날밤 짝퉁인지 진짜인지 알 수 없는 명품 가방을 내민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 온갖 '난관'을&nbsp;헤치며 마침내 결혼한 그들은 성병에 걸린채, 가끔씩 바퀴벌레가 나타나는 아파트로 들어간다 (홈드라마). 때로 예기치못한 인생의 덫에 걸린 여자는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의 기준에 맞추기 위한 자기 학대에 빠지기도 한다 (신식키친). 그들은 위태로워보인다.&nbsp;
요전에 읽었던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가 바라는 인간상의 묘사, 그리고 반론 같은 이야기.<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3/35/cover150/8932014485_1.gif</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33550</link></image></item><item><author>쏘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아, 청춘의 피가 끓는다~ - [메이저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443110</link><pubDate>Thu, 08 Apr 2004 15: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44311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6000025209&TPaperId=44311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12/coveroff/6000025209_1.gif"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6000025209&TPaperId=44311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메이저 1</a><br/>미쯔다 타쿠야 / 제우미디어 / 1999년 01월<br/></td></tr></table><br/>주변의 많은 이들이 재미있는 만화 좀 추천해보라고 하면 이 만화를 추천하곤 했다. 그러나 듬성듬성한 그림체, 주인공이 국민학교 때부터 야구를 시작한다는 점 등 별 거 아닌 이유들이 왠지 맘에 걸려 메이저의 시작을 늦추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날 집어든 이 시리즈, 올인하고 말았다.
고로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프로야구 선수를 꿈꾸며 야구소년으로 성장한다. 아버지가 꽤 잘나가던 프로야구 선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로는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고, 여차저차한 인연으로 유치원 시절 선생님과 아버지의 친구 밑에서 자라게 된다. 이렇게 얘기를 들으면 상당히 불쌍한 사연이 있는 듯보이지만 읽어보면 별로 그렇지도 않다. 그냥 고로와 관련된 여러가지 사연들 중 하나일 뿐이다. 
메이저의 장점 중 하나는,&nbsp;주인공 고로 외에도 그 주변 인물들,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충실하게 그려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만화는 야구 만화이기도 하지만, 고로라는 소년의 성장만화이기도 하고, 그 주변 인물들이 소사이기도 하다.&nbsp;너무 열혈만화인 나머지&nbsp;약간 신파 느낌이 나기도 하고,&nbsp;주인공이 너무 잘나가고, 인물들의 감정 같은 것도 도식적이고...전형적인 열혈 스포츠 만화인 슬램덩크와 비교해보았을 때 카리스마가&nbsp;부족한 만화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무식하기 그지없이 자신의 청춘을 불사르는 고로는 여전히 우리의 피를 끓어오르게 하기에 족하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12/cover150/6000025209_1.gif</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1221</link></image></item><item><author>쏘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손때묻은 내 책 - [오만과 편견]</title><link>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443103</link><pubDate>Thu, 08 Apr 2004 15: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44310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882&TPaperId=44310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3/68/coveroff/s93746088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882&TPaperId=44310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오만과 편견</a><br/>제인 오스틴 지음 / 민음사 / 2003년 09월<br/></td></tr></table><br/>어린 시절부터 즐겨읽은 책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다독 횟수 1위를 꼽자면 오만과 편견을 따라올 게 없다. 중학교 때 친구가 재밌다고 추천해줘서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좀 재밌네'하는 정도였다. 아직 그 안에 담긴 유머나 예리함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nbsp; 그러나 일단은 재미있게 읽었고, 언젠가 심심해서 이 책을 다시 읽은 이후로 오만과 편견은 내가 가장 즐겨 읽는 책 중 하나가 되었다. 
주인공&nbsp;엘리자베스 가족 면면에 대한 묘사, 다아시와의 복잡 미묘한 관계의 진행, 전지적 작가시점에서 거리를 두고 서술하면서도&nbsp;등장인물들의 의도와 행동을 여지없이&nbsp;드러내보여주며&nbsp;'재미있지 않니?'하는 듯한 대화장면 등이 아마도 오만과 편견의 장점이자 제인 오스틴 소설의 재미일 것이다.&nbsp;오만과 편견은 BBC에서 6부작 드라마로 제작하기도 했다. 소설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보면 브리짓 존스의 그 패거리들이 오만과 편견 드라마에 열광하는 장면이 여러번 나온다. 아참, 영화로 만들어진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마크 다아시 역을 맡은 콜린 퍼스가 드라마 오만과 편견에서 미스터 다아시 역할을 맡은 배우이다. (두 역할의 이름이 같은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헬렌 필딩이 오만과 편견에 대한 오마주이자 패러디로 쓴 소설이 바로 브리짓 존스의 일기이다.)
신랄하면서도 차갑지 않은 관찰자의 묘사, 마냥 버겁지도 않고 경박하지도 않은 중산층(?)의 여유... 딱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만큼이랄까. 아니, 사실은 '나'라는 사람이 사는 만큼을 제인 오스틴이 써내려갔는지도 모르겠다.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3/68/cover150/s93746088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36838</link></image></item><item><author>쏘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천재의 카리스마 - [스바루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443100</link><pubDate>Thu, 08 Apr 2004 15: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44310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847264&TPaperId=44310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31/coveroff/892584726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847264&TPaperId=44310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스바루 1</a><br/>소다 마사히토 지음, 장혜영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00년 10월<br/></td></tr></table><br/>발레 만화의 새로운 고전을 예감케 하는 진행작. 발레는 순정만화의 흔한 소재이긴 하지만 의외로 잘 만든 작품은 별로 없다. 그러나 동생의 강력추천으로 별 기대없이 읽기 시작한&nbsp; '스바루'에 빠려들어갔고 늘 신간이 나오길 목이 빠지게 기다리게 되었다.
스바루는 어린 시절 병이 들어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 채 병실에 하루종일 누우지내는&nbsp;쌍둥이 형제를 위해 방과후면 병원에서 밖에서 겪은 일들을 몸동작으로 표현해주는 일을 반복한다. 이것이 어느덧 춤이 되고, 스바루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몸의 언어를 익히기 시작하며 운명적으로 발레의 길에 접어든다. 아무리 빼어난 재능을 타고났어도 재능을 이끌어줄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소용없는 법, 하지만 스바루는 운도 좋다. 뒷골목에 은둔하고 있으나 한시대를 풍미하던 엄청난 발레리나의 지도 하에 어린 시절부터 발레를 해나간다.&nbsp;
만화는 독자로 하여금 감정이입이 되기 보다는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한 채 읽도록 만든다. 따라서 스바루는 굉장히 매력적인 인물이긴 하지만,&nbsp;가깝게 느낄 수 있고 그 행보에 울고웃게 되는 그런 인물은 아니다. 그저 이 녀석 어디까지 하는지 한번 보자, 이런 심정이 된달까. 그것도 나쁘지 않다. 우리네 범인들과는 너무나 다른 천재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울고웃다보면 갑자기 내가 사는 게 너무 평범해보일지도 모르니까. 안하무인(?) 폭주기관차, 천재 소녀 스바루. 그녀의 발레 인생은 대체 어디로 향할런지... 10권까지 출간됨.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31/cover150/892584726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3138</link></image></item><item><author>쏘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맥가이버 저리 가라~ - [마스터 키튼 15 - 신께 사랑받는 마을]</title><link>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443097</link><pubDate>Thu, 08 Apr 2004 14: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optimization/44309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258552&TPaperId=4430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1/68/coveroff/8984429740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258552&TPaperId=44309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마스터 키튼 15 - 신께 사랑받는 마을</a><br/>우라사와 나오키 지음, 가쓰시카 호쿠세이 스토리 / 대원씨아이(만화) / 1999년 12월<br/></td></tr></table><br/>미국에 맥가이버가 있다면 일본에는 마스터 키튼이 있다? 좀 안 어울리는 대비인가...? 고고학자이며, 전 특수부대 특수 훈련교관이면서, 보험 조사원(일종의 탐정역할), 폭력을 싫어하는 휴머니스트. 맥가이버는 미제국주의의 첨병이었다면, 마스터 키튼은 세계시민의 모델이 될만한 인물인 점도 그의 매력을 더한다. 보험 조사원 키튼이 온갖 종류의 사건을 추적,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 주인공이 고고학에 조예가 깊은 만큼 고고학과 관련된 사건이나 단서도 많이 나오고, 단순한 보험조사 치고는 위험천만한 거대&nbsp;음모도 많이 숨어있다. 워낙&nbsp;잘난(절대 비꼬는 것이 아님!) 우리 주인공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이정도는 해야한다.&nbsp;하지만 결코 허황되거나 비현실적이지 않다. 지구적인 규모의 사건이든 지나가는 어린 아이에게 벌어진 작은 사건이든 하나하나에 최선의 정성을 기울이는 휴머니스트 키튼. 키튼이야 말로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영웅이 아닐까.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1/68/cover150/8984429740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16838</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