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에 관하여

- 누구나 읽어야 할 면역에 대한 모든 것


#7 여성 치료사와 비난받는 어머니들


출산은 의사들이 제일 마지막으로 점령한 의료 분야 중 하나였다. 정숙함과 전통이 남자가 출산에 참여하는 걸 막았기 때문에, 산과의사들은 자신들의 서비스를 팔기 위해서 산파를 무지하고, 더럽고, 위험한 존재로 그리는 홍보를 펼쳤다. 19세기에 도시의 가난한 산모들은 자선 병원에서 무료로 출산했지만, 부유한 산모들은 여전히 집에서 아기를 낳았다. 출산이 차츰 병원으로 옮겨지자, 산모 사망률이 급등했다. 검진 사이사이 손을 씻지 않는 의사들 때문에 산욕열이라고 불렸던 산후 패혈증이 퍼진 것이었다. 그러나 의사들은 그것을 꽉 조인 페티코트, 성마른 성미, 나쁜 도덕 관념 탓으로 돌렸다.



20세기 심리학자들은 조현병을 자식을 숨 막히게 만드는 고압적인 어머니들 탓으로 돌렸다. 1973년까지 정신 질환으로 분류되었던 동성애는 자식을 싸고 도는 근심 많은 어머니들 탓이라고 했다. 1950년대까지 유력하게 여겨졌던 이론에 따르면, 자폐증은 냉정하고 둔감한 <냉장고 엄마들> 탓이었다. 요즘도 어머니는 <세균론의 빠진 고리로 간편하게> 동원된다는 게 심리 치료사 재나 맬러머드 스미스의 지적이다. 스미스는 <원인이 바이러스도 세균도 아니라면 엄마겠지>라고 비꼬았다.



1998년, 영국 소화기(消化器) 의사 앤드루 웨이크필드는 어머니들이 아니라 제약 회사들이 자폐증을 일으킨다는 가설을 제기했다. 지금은 철회되었으나 당시 『랜싯』에 실렸던 그의 논문은 12명의 아이를 사례 조사한 것이었고, 홍보 비디오와 기자 회견이 수반되었다. 그것을 통해서 웨이크필드는 이미 백신이 안전하지 않다고 믿고 있던 부모들의 의혹을 지지했다. 그의 논문은 MMR 백신이 자폐 증상을 포함하는 행동 증후군과 관계 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한 내용이었다. 논문이 널리 보도되자 홍역 백신 접종률이 뚝 떨어졌지만, 사실 논문의 결론은 <우리는 홍역, 볼거리, 풍진 백신과 앞서 말한 증후군 사이의 연관성을 증명하지는 못했다>라는 거였으며 논문의 주된 발견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거였다.



이후 십 년 동안, 숱한 연구가 MMR 백신과 자폐증의 관계를 밝히려 시도했지만 족족 실패하기만 했다. 웨이크필드의 가설에 호의적인 연구자들조차 그의 연구를 재현하지 못했다. 2004년, 백신 제조업체들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던 한 변호사가 웨이크필드에게 연구에 대한 대가를 지급했다는 사실을 한 탐사 저널리스트가 밝혀냈다. 그리고 2007년, 영국 국가 의료 심의회는 웨이크필드의 의료 윤리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여 그의 처신이 <무책임하고 부정직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가 아이들에게 불필요한 침습성 조사를 가했으며 <의학 연구의 기본 원칙들을 반복적으로 어겼다>는 것이었다. 웨이크필드는 더 이상 영국에서 의료 행위를 할 수 없게 되었지만, 이미 그는 미국으로 이주한 뒤였다. 평결에 대해서 웨이크필드는 <체제는 늘 반대 의견을 이런 식으로 다루는 법>이라며, 스스로를 박해받는 사람으로 포장했다. 자신의 연구가 억압당하는 것은 자신이 부모들의 말에 과감히 귀 기울였기 때문이라고, <특히 부모들이 주장한 백신과의 연관성에> 귀 기울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나처럼 변변치 않은 지식만을 갖춘 사람이 압축된 의학사의 개요를 대강 실눈으로 훑어보기만 해도, 지난 200년 동안 과학으로 통했던 것 중 적잖은 부분은, 특히 여성과 관련된 부분은 과학 탐구의 산물이라기보다는 기존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할 요량으로 과학을 거부한 것에 가까웠단 사실을 알 수 있다. 웨이크필드의 연구는 그 전통을 좇는 것이었다. 그의 연구는 이미 퍼져 있던 가설을, 특히 냉장고 엄마 이론이 남긴 여파에 여태 시달리던 여성들에게 특별한 호소력이 있던 가설을 지지하는 데 쓰였다. 확정적이지 못한 웨이크필드의 연구를 가져다가 백신이 자폐증을 일으킨다는 가설을 지지하는 데 썼던 사람들의 죄는 무지나 과학 부정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전부터 우리가 허술한 과학을 이용해 왔던 방식대로, 즉 다른 이유에서 사실이라고 믿고 싶은 생각에 거짓 신뢰성을 부여하려는 용도로 과학을 이용한 죄였다.


백신 접종이 참혹한 질병을 일으킨다는 믿음은 우리가 이미 잘 아는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다시 들려주게끔 허락한다. 치료가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과학의 총합이 늘 진보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도나 해러웨이는 <자연 과학 지식이 여성을 해방시키는 게 아니라 여성을 지배하기 위해서 쓰여 왔다는 사실을 여자들은 잘 안다>고 말했다. 그녀가 볼 때, 이런 깨달음은 과학의 이름을 앞세워 절대적 진리를 자신하는 솔깃한 주장에 대해서 우리가 덜 취약해지도록 돕는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이해는 과학 지식의 영역과 중요성을 경시하도록 이끌 수도 있다. 해러웨이는 우리에게는 과학이 필요하다고 경고한다. 사회적 지배를 바탕에 깐 게 아닌 한, 과학은 해방적일 수 있다.



_ 『면역에 관하여』 출간 전 연재 8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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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간 전 연재] 글은 책의 본문 내용 중 편집을 거쳐 공개됩니다.

따라서 출간되는 책과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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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llmyhero 2016-11-22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산과 조현병에 관한 이야기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평소 관심 분야라 금방 몰입해서 읽었어요. 생명이 태어나고 지는 것을 병원에서 승인해야 한다는 게 어떨 땐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마지막에 과학이 여성의 해방을 가져온 게 아니라 지배를 더 공고히 한다는 의견도 잘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과학의 효용이 있다는 주장을 다음 화에서 혹시 볼 수 있을까요?ㅎㅎ 감사합니다!

고귀한 수영이 2016-11-23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읽다보니 출산이라는 이 위대한 분야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을 하게되고 그 초기 의학단계에 대한 우여곡절속에서 일어난 이 과정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을 하게 된 거 같아요.

ICE-9 2016-11-23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부산에서 일어난 무단 질주 인명 사상 사고도 조현병 때문이었죠. 그 조현병의 원인을 둘러싸고도 많은 논쟁이 있었군요. 특히나 이번 글은 과학이 온전히 객관적이지 않고 때로는 이데올로기에 봉사하는 측면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어 흥미롭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여기서도 인용하고 있는) 다나 헤러웨이 같은 페미니즘 학자는 과학이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일조해왔다는 것을 자신의 책에서 깊이 비판하기도 했었죠. 객관적인 사실에 오롯이 충실할 때 과학은 해방의 힘을 가진다는 것엔 저도 무척 동감합니다.

Nabisch_T 2016-11-28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싶었던 글이 바로 다음 회차에 있을 줄이야 *_*
여성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우리에게 과학이 필요하다>는 헤러웨이의 말이 와닿네요.
과학이 먼저 사회적 지배 관념에서 해방되어야, 우리(여성뿐만 아닌 전 인류)도 해방되겠죠?

https://www.facebook.com/hanabi.tschoe/posts/1869546073332090

carpe diem 2016-11-29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에게 가장 큰 죄책감을 갖게 하는 아기. 아기의 질병은 지금도 엄마 탓으로 몰아가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