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젱킨스는 짧은 머리를 한 단신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다. 자리에 앉으면서 두 손으로 내 한쪽 손을 잡고는 그가 활짝 웃었다. 나를 만나서 무척 기쁜 듯 보였다.


「젱킨스 씨, 저는 브라이언 스티븐슨이라고 합니다. 당신과 통화했던 변호사이며 」


그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초콜릿 밀크셰이크를 가져왔나요?」


「죄송한데 뭐라고 하셨죠?」


여전히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그가 물었다. 



「내게 줄 초콜릿 밀크셰이크를 가져왔나요? 초콜릿 밀크셰이크를 먹고 싶어요.」


장거리 운전과 남부 연합을 상징하는 트럭, 교도관의 희롱에 더해서 이제는 밀크셰이크를 달라는 요구까지 갈수록 별난 하루가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조급함을 감추지 않았다.


「아니요. 젱킨스 씨, 초콜릿 밀크셰이크는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변호사입니다. 당신 사건과 관련해서 도움을 주러 왔으며 당신이 다시 1심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아시겠어요? 저는 그래서 여기 온 겁니다. 지금부터 몇 가지 질문을 통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볼 거예요.」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질문이 시작되었고 그는 한 단어로만 짤막하게 대답했다. 때로는 퉁명스럽게 <네> 또는 <아니오>로만 대답했다. 나는 그가 여전히 밀크셰이크를 생각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앞서 교도관을 상대하느라 이 남자에게 어떤 장애가 있는지 깜빡했던 것이다. 나는 질문을 멈추고 몸을 앞으로 당겼다.



「젱킨스 씨, 정말 미안해요. 내가 당신에게 초콜릿 밀크셰이크를 가져다주길 기대하고 있는 줄 미처 몰랐습니다. 미리 알았더라면 틀림없이 가져오려고 했을 거예요. 교도소 측에서 당신에게 초콜릿 밀크셰이크를 가져다주어도 된다고 허락하면 다음에 올 때는 꼭 그렇게 할게요. 반드시 그렇게 할게요. 그러면 될까요?」


그러자 그의 얼굴에 미소가 돌아왔고 기분도 좋아진 듯했다. 교도소 기록에 따르면 그는 자주 정신병 증세를 겪었고 그럴 때면 으레 몇 시간씩 비명을 질렀다. 나와 면담하는 자리에서는 대체로 친절하고 너그러운 모습을 보였지만 그럼에도 아픈 게 분명했다. 그의 재판 기록에 어째서 정신 질환에 대한 언급이 없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앞서 조지 대니얼 사건을 겪은 터라서 놀랄 일은 아니었다.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젱킨스 씨의 배경을 보다 깊이 조사하기 시작했고 한 사람의 가슴 아픈 개인사를 알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전에 살해당했고 어머니는 그가 한 살일 때 약물 과다 복용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두 살 때부터 위탁 가정에서 자랐는데 그곳에서 보낸 시간은 한마디로 끔찍했다. 여덟 살이 되기 전까지 열아홉 곳의 위탁 가정을 전전해야 했다.



그는 일찍부터 지적 장애 증후를 보이기 시작했다. 물리적인 뇌 손상을 암시하는 인지 장애와 정신 분열증 그리고 심각한 정신 질환을 암시하는 행동 장애도 앓았다. 열 살 때는 양부모에게 학대를 받으며 살았다. 양부모의 엄격한 규칙 때문에 늘 불안에 떨었다. 젱킨스는 자신에게 정해진 모든 규칙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었고 그 결과 자주 옷장에 갇히거나, 음식을 먹지 못하거나, 매질을 비롯한 다양한 물리적 학대를 당했다. 그럼에도 행동이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양어머니는 그를 없애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그를 숲으로 데려가 나무에 묶어 두고는 그대로 떠나 버렸다. 그는 사흘 뒤 몹시 위독한 상태로 사냥꾼들에게 발견되었다. 이 일로 그는 심하게 앓았고 건강을 회복하자 다시 정부 기관에 맡겨졌으며 재차 위탁 가정으로 보내졌다. 열세 살 무렵부터는 마약과 술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열다섯 살이 되자 경련이 시작되었고 정신병 증세를 겪었다. 열일곱 살에 이르러서는 관리가 불가능한 상태로 여겨져 집 없이 떠도는 신세로 전락했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구치소를 들락거리던 에이버리는 어느 날 정신병이 발작한 상태로 자신이 악마에게 공격당한다고 생각하며 낯선 집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 집에서 한 남자를 잔인하게 칼로 찔러 숨지게 했다. 그 남자를 악마라고 믿은 것이다. 변호사들은 재판에 앞서 젱킨스 씨의 과거를 조사하지 않았으며 그에게는 금방 유죄 판결이 내려졌고 사형이 선고되었다.


젱킨스 씨에게 밀크셰이크를 사다 주도록 교도소 측에서 허락하지 않았다. 



그에게 이런 사정을 설명하려고 노력했지만 매번 면담을 시작할 때마다 그는 내게 밀크셰이크를 가져왔는지 물었다. 그때마다 나는 계속 노력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를 밀크셰이크가 아닌 다른 것에 집중하게 하려면 다른 도리가 없었다. 몇 개월 뒤 마침내 그가 중증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는 증거를 가지고 법정에 설 날짜가 잡혔다. 


심리가 진행될 법원은 교도소에서 차로 세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했고 나는 법원에 도착해서 에이버리를 만나기 위해 법원 지하 유치장으로 갔다. 밀크셰이크를 둘러싼 일상적인 통과 의례를 거친 다음 그에게 잠시 뒤 법정에서 일어날 일들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에이버리가 위탁 가정에 있을 때 상대했던 사람들을 증인으로 세웠기 때문에 그가 그들을 보면 흥분할 것 같아 염려되었다. 아울러 전문가들이 제공하기로 한 증언도 그의 장애와 병을 설명하는 데 매우 직설적일 것이었다. 나는 우리가 왜 이런 일을 벌이는지 그가 이해하기를 바랐다. 그는 평소처럼 명랑했고 쉽게 동의했다.



위층 법정으로 올라가자 처음 에이버리를 만나러 갔을 때 나를 그토록 괴롭혔던 교도관이 눈에 띄었다. 불쾌한 첫 만남 뒤로는 마주친 적이 없었다. 나는 다른 의뢰인에게 그에 대해 물어봤는데 악명이 자자한 사람이었고 주로 야간에 근무를 선다고 했다. 그를 가까이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아마도 에이버리를 법원으로 이송하는 임무를 맡은 모양이었다. 나는 이송 과정에서 에이버리가 어떤 취급을 받았을지 걱정되었지만 정작 교도관 본인은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사흘간 우리는 에이버리의 배경에 관한 증거를 제시했다. 에이버리의 장애에 대해 증언한 전문가들은 정말 훌륭했다. 그들은 편파적이거나 편견을 갖지 않았으며 물리적 뇌 손상과 정신 분열증, 조울증이 겹치면 심각한 정신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는 무척 설득력 있는 설명을 들려주었다. 또한 젱킨스 씨를 괴롭히는 정신병과 다른 심각한 정신적인 문제들이 그를 위험한 행동으로 이끌 수 있는데, 그러한 행동은 그에게 심각한 병이 있음을 보여 주는 징후일 뿐 그의 인간성이 반영된 결과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가정 위탁 제도와 그 제도가 에이버리를 어떻게 망쳤는지 보여 주는 증거도 제시했다. 에이버리를 맡았던 양부모들 중 일부는 위탁받은 아이들에 대한 성적 학대와 부주의로 나중에 유죄 판결을 받았다. 우리는 에이버리가 마약에 중독되고 집 없이 떠돌게 되기까지 얼마나 불행한 환경을 전전했는지 설명했다.



나는 판사에게 1심에서 에이버리의 정신병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 다리를 잃은 누군가에게 <당신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이 계단을 올라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당신은 단지 게으름뱅이일 뿐이다>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또는 앞을 볼 수 없는 누군가에게 <당신은 이 혼잡한 고속 도로를 아무런 도움 없이 건너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단지 겁쟁이일 뿐이다>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잔인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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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한 수영이 2016-10-20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멋지다 확실히 1부의 모습과는 많이 성장한 주인공의 모습이 보이네요. 마지막에 판사에게 한 그의 말 너무 멋져요~ 이건 어쩌면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하는 말과도 같아보이네요. 실제로 버스에 탄 노인분께서 젊은이가 앉아서 일어나지 않으니 막 뭐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그 젊은이는 의족을 한 장애인이었다고 하죠. 진짜 이번화는 우리에게 전하는 바가 무척 큰 화였다고 생각합니다.

water0_1 2016-10-20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크 셰이크를 가져다 달라는 젱킨스를 대하는 브라이언의 태도와 그에 대해 꼼꼼하게 준비해서 법정에 서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그가 변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더 알고 싶네요. 책이 나오면 어서 읽고 싶습니다. 연재가 마지막이라니 아쉽지만 곧 책이 나온다고 생각하니 기쁘기도 합니다. 마지막 연재도 기다릴게요!

Chloe 2016-10-22 0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주면 마지막이라는게 괜히 아쉽네요... 물론
책으로 드디어 만날 날이니 기쁘지만요. 연재
보는 것도 참 두근두근 설레였거든요. 참,인스타
에서 사진으로 봤는데 책도 넘 예쁘더라구요.
`당신은 이 혼잡한 고속 도로를 아무런 도움 없이
건너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단지
겁쟁이일 뿐이다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잔인했다고
주장했다`를 저는 계속 읽고 또 읽게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