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과 서재 곳곳에 흩어진 열린책들을 이벤트 덕분에 처음으로 모아서 사진을 찍어봤어요.

은근히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작업이네요;^^;;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과 카잔차키스전집은 원래 있던 자리에서 찰칵~


전집 양 옆의 빈 공간과 아래칸에 단행본들을 모아봤어요. 움베르토 에코와 줄리안 반스, 폴 오스터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더군요. ㅎㅎ


다른 책장에는 제가 무척 사랑하는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이 있어요~ 


거실 쇼파 위에는 Mr.Know 세계문학전집이 있구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컬렉션만 모은 칸도 있습니다.


앞의 촬영에서 누락된 책들과 여러 분야와 판형의 책을 임의로 한데 모아봤어요. 아이고, 다시 제자리로 원위치 시킬 일이 걱정... ㅎㅎ;;


도서정가제하기 전에 0순위로 구입한 로베르토 볼라뇨 컬렉션입니다. 촬영을 위해 미닫이 문짝을 떼었어요. 어디에 두어도 이쁜 케이스랍니다. 


두둥~ 제가 가장 받들어 모시는 뿌쉬낀 작품집입니다. 제가 가진 책 중에 가장 몸값이 많이 오른 책이예요..ㅎㅎ 물론 더 많이 올라도 팔 생각이 없어서 저랑은 상관없는 금액이지만요^^


어딘가 책들이 더 있을 것 같은데 여기까지만 찍었습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제일 아쉬웠던 건... 돈이 궁할 때 프로이트 전집을 팔아버렸다는 것과 정가제를 하기 전에 움베르토 에코 전집을 사지 못했다는 것이예요...쩝쩝~ (프로이트 전집의 흔적이 중고샵 판매자 매니저에만 유일하게 남아 있네요.......ㅜㅜ)



앞으로도 열린책들을 통해 좋은 책을 많이 만나고 싶습니다. 제 책장 속의 열린책들은 계속 증식 예정입니다. 항상 번창하세요, 열린책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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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6-02-12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멋져요^^

원더북 2016-02-12 17:33   좋아요 0 | URL
앗~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락방 2016-02-12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근사합니다!

원더북 2016-02-12 18:03   좋아요 0 | URL
책만큼 근사한 건 없는 것 같아요~ 저희집의 모든 누추함을 가려준답니다.. ㅎㅎ 칭찬 감사합니다^^

cyrus 2016-02-12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로이트 전집이 있었다면, 출판사 담당자들이 감동받을 만한 최고의 인증샷이 되었을 겁니다. 어쩌다가 그 좋은 책들을 파셨는지... 괜히 저 또한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

원더북 2016-02-12 21:38   좋아요 0 | URL
그..그래도 절판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언젠가 다시 만날 기회가 있으리라 희망을 가져봅니다~

오거서 2016-02-12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놀라워요 ~~

원더북 2016-02-12 21:41   좋아요 0 | URL
저는 더 많을 줄 알았는데 모아 보니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놀랐어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inblossom 2016-02-13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정가제 전에 꼭 사야만했던;;; (그러나 사지 못했던) 게 볼라뇨 전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럽네요 ^ ^;;

원더북 2016-02-13 12:51   좋아요 0 | URL
정가제 전에 산 이유는 가격 때문이기도 했지만, 케이스가 한정 판매일 것 같아서였는데 그래도 아직 절판되지 않고 나오네요~ ^^ 꼭 사실 수 있길 기원합니다!
 
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1월 달에는 제가 좋아하는 문학 관련 인문서가 듬뿍 발간되어서 새해 첫달부터 행복했습니다~ 추천 페이퍼를 얼른 작성하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했지요. 이번 추천 페이퍼는 한 분야에 너무 심한 편애가 드러나지만;; 추천 도서로 부족함이 없는 책들이라고 자신있게 외쳐 봅니다~ ^o^




1. 작가의 책(패멀라 폴/문학동네/2016--1-23)


책 좋아한다는 분들에겐 이미 소문날 대로 소문난 책이지요. 책을 좋아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이 무슨 책을 읽는 지가 왜 이리 궁금한지 모르겠어요. 더구나 좋아하는 작가들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읽을 때는 추천 도서 중 가장 가뿐하고 말랑한 책이겠지만, 읽고 나면 몹시도 묵직하고 든든한 책이 되지 싶습니다. 읽을 책들이 쌓일 테니까요~  



2.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테리 이글턴/책읽는수요일/2016--1-15)


당대 최고의 문학 비평가가라 불리는 테리 이글턴이 "초보자를 위한 문학 입문서"로 내어 놓은 책이라고 해서 환호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 문학을 더 깊이 있게 읽을 수 있는 내공이 다져지리라 기대됩니다. 십년 전에 [문학이론입문]을 사두곤 제대로 읽지 않았는데 이번에 나온 책으로 워밍업하면서 주욱 달려봐야겠습니다. 



3. 풍성한 삶을 위한 문학의 역사(존 서덜랜드/에코리브르/2016--1-20)


서양 신화부터 시작해서 시대순으로 가로지르는 문학에 대한 개설서로, 전공서적처럼 딱딱하지 않아서 읽기에 부담없어 보입니다. 지금까지 읽었던 소설들을 시대순으로 정렬해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책으로 추천해봅니다. 더불어 문학의 변화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시야도 키울 수 있겠지요~



4.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모리 코리건/책세상/2016--1-20)


우와. 개츠비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400페이지가 넘는다니 사실인가요?? 저도 개츠비를 무지 좋아하는데 저자와 삼각관계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이네요. 어쩌면 동료 의식이 생길지도...ㅎㅎ 여튼 개츠비의 매력을 다각적으로 보여준다고 하니 어찌 이 책을 읽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개츠비가 가진 마성(?)의 매력 속으로 풍덩풍덩 빠져보고 싶습니다. 



5. 글쓰는 여자의 공간(타니아 슐리/이봄/2016--1-28)


열정적이고 치열한 삶을 살아간 작가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그들의 작품과 별개의 매력이 있고 의미가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분명 더 부지런히 읽고 더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겠지요. 더 많은 작가들과 더 두꺼운 책으로 만날 수 없어서 아쉬울 따름이지만 이만해도 좋습니다. 이 책을 읽을 생각에 벌써부터 두근두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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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에 있는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책과 고양이가 있는 사진들만 추려봤어요. 

추운 겨울엔 옆구리에 책과 고양이를 끼고 있는 게 최고!^^ 
고양이 이름은 ˝지지˝예요. 
늦은 밤 책 읽는 제 곁을 지키는 소중한 친구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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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1-20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콜레트라는 프랑스 출신의 여류 작가가 쓴 소설 제목이 `지지(Gigi)`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국내에서 이 작품의 연극 버전이 공연된 적이 있어요.

원더북 2016-01-20 20:24   좋아요 0 | URL
와~ 몰랐어요. 마녀 키키에 나오는 고양이 이름을 따서 붙인 건데...^^ 덕분에 관심 가지고 콜레트의 책들도 검색해봤어요~ 감사해요~~

cyrus 2016-01-20 20:26   좋아요 0 | URL
`지지`라는 글은 학원사 세계문학전집 속에 수록된 작품이라서 구하기 힘든 책입니다. 나온지 오래됐어요. 《여명》이 콜레트의 대표작입니다. ^^

cyrus 2016-01-20 20:27   좋아요 0 | URL
아! 콜레트도 고양이를 좋아했습니다. 그녀가 쓴 소설 제목이 《암코양이》입니다. 그녀가 키운 고양이가 암컷이에요. ^^

원더북 2016-01-20 20:33   좋아요 0 | URL
지지가 깔고 앉은 문학동네전집 케이스 속에 [여명]이 꽂혀 있었어요.ㅎㅎ [암고양이]이랑 같이 읽어봐야겠습니다~
 
[야전과 영원]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야전과 영원 - 푸코.라캉.르장드르
사사키 아타루 지음, 안천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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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는 사람은 ‘집필하는 동안 직면하는 기댈 곳 없음’을 감당해야 한다. 여기저기 쓴 글을 긁어모으는 것이 아니라 일관성 있는 책을 쓰려 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아는 내용을 아는 방식으로 쓴다면, 그것은 쓰는 것이 아니다. 물론 개괄적인 계획은 있다. 오랫동안 작성해온 노트도 있다. 자료도 충분히 모아왔다. 하지만 쓴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우연성에 몸을 맡기는 일이다. 모르는 내용, 알 리가 없는 내용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망연해하는 일이다. 깊이 자실하는 일이다. 얕게 고동치며 하루하루를 혼탁하게 만드는 건망과 편집광적인 기억에 괴로워하는 일이다. 자신의 몸도 혼도 아니나 그 경계에 있는, 이 구분을 허용하는 그 어디인가에 조금씩 번지는 잉크로 문신을 새기고, 그 문양을 알아보지 못하는 자신에게 또 경악하는 일이다. 아련하게 광기와 열기를 머금은 볼, 그리고 망설임에 차가워지고 시들어가는 손가락 끝 사이로 엉켜 있는 신음 소리를 울리게 하는 일이다. 창백한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그 신음 또한 자신의 것이 아니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면서. 따라서 처음부터 책 전체의 구성을, 그 논지를, 그 논리를 명징한 도식으로 뇌리에 떠올릴 수 있다면 책을 쓸 필요는 없다. 모든 것을 안다면 왜 써야 할 필요가 있을까? 모든 것을 안다면 음습한 환상 속에 계속 취해 있을 것이라면. 이는 지식의 복사에 불과하다. 오만한,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지식의 ‘교수’다. 그러나 이런 것이 과연 쓴다는 행위일까? (p15)


저자가 가장 마지막에 썼다는 이 두꺼운 책의 서문을 처음 읽었을 때 어려운 책인줄 짐작하면서도 기분좋은 설레임으로 두근두근했다. 이런 멋진 서문을 읽는다면 누구라도 그 다음에 펼쳐질 내용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비록 라캉과 르장드르와 푸코를 잘 모른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 제1부의 제 1장을 읽었을 때 내 기분이란.... 준비운동도 안 하고 겁도 없이 선수용 풀에서 수영하겠다고 풍덩 뛰어들었다가 물의 깊이에 놀라서 뛰쳐나온 초보 수영 강습생의 기분이었다. 나는 준비운동 삼아 라캉과 푸코가 나오는 (르장드르의 저서는 번역서가 없으니까) 쉬운 구조주의 입문서를 찾아서 먼저 읽었다;;;


옮긴이의 말에 “이 책은 푸코와 라캉, 르장드르를 이해하는 길잡이가 아니다. 사사키 아타루가 생각하는 인간의 삶을 논하는 도정에 푸코와 라캉, 르장드르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므로 독자가 푸코와 라캉, 르장드르에 대해 사전 지식을 갖고 있을 필요는 전혀 없다.”라고 한 말은 무참하게도 내게 해당하지 않았다. 내게 있어 이 책은 누가 뭐래도 박사가 될만큼 공부한 사람의 박사 학위 논문이었다. 이 말인즉슨, 박사가 될만큼 공부한 사람만 읽어야 하는 수준의 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책이 일본에서는 많이 팔렸다고 한다. 그것도 사상가나 비평가, 전공자만이 아니라 현장에서 뭔가를 창조하고 끊임없이 운동하는 작가, 음악가, 미술가, 디자이너, 활동가들에게 찬사를 받았다고 하니 놀랍다. 나의 독서수준이 의심스러워져서 괜히 의기소침해졌다;;; 푸코의 『말과 사물』이 출간 당시 모닝빵(!)처럼 팔려 나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만큼 기죽었다. 근데 이 책은 『말과 사물』보다 더 어려웠다;;; 나는 이 책의 텍스트를 문자 그대로 읽는 1차원적인 독서만 했고, 텍스트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는 2차원적인 독서는 거의 불가능했으며 나의 관점을 투사해서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고 나의 의견을 더하는 3차원적인 독서는 엄두도 못냈음을 책 위에 손을 얹고 고해한다. (사실 면벽수행에 가까웠다. 진정 텍스트가 벽처럼 느껴졌다;;;)


구조주의자들이 쓰는 문장들이 원래부터 읽기 쉽지 않다고는 누누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사사키 아타루의 독특한 문체가 주는 쉬운 듯 어려운 듯 묘한 방식의 설득력이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읽을 때처럼 이 책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될 줄 알았는데, 이 책에서는 독특한 문체 때문에 구조주의자들의 문장을 이해하기가 오히려 더 어려웠다. 거기다 분량 때문에 호흡도 너무 길고!  웬만큼 어려운 책도 진득하게 읽다보면 어느 순간 이해가 되거나 다 읽고 난 후에 이해 못한 부분을 부분적으로라도 다시 깨치는 그런 독서 경험을 해왔는데 이 책은 진정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어려웠다. 그러했던 가장 큰 이유는 라캉과 르장드르와 푸코에 대한 나의 배경지식에 깊이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다 읽고도, 아니 이건 어디 가서 다 읽었다고 하긴 무안하니 훑었다고 말해야겠다. 어쨌든 그러고도 라캉과 푸코와 르장드르가 공명하는 시공, 그들의 논리가 한순간에 소생하는 시공을 내 머리로는 포착하지 못했다. 좀더 공부하고 내공을 쌓은 후에야 제대로 이 책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어쩌면 가슴으로 포착했거나 어설픈 감상에 불과한 내 깨달음이라도 한 줄 남겨보려고 한다. 저자가 밝힌 바대로 라캉과 르장드르, 푸코에 대한 “통일된 시점”이나 “이 셋을 논할 필연성”은 없어 보였기에 나는 이들이 속한 구조주의의 대의와 대략이나마 이해한 기본적인 논지를 통해서 변증법적으로 혹은 상보적으로 병치하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그리하여 머릿속에 하나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 이미지가 무엇인지를 밝히기 전에 푸코가 말년(죽기 1년 전)에 했던 말을 인용해보려한다.


철학자의 일, 그것은 오늘이란 무엇인가 논하는 것이고, “오늘날의 우리”란 무엇인가를 논하는 것이라고 알려져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는 유래 없는 파멸의, 밤의 함몰지대라거나, 태양이 높이 솟아오르고 있는 아침이라거나, 그런 단언을 하고 마는 드라마틱하고 연극적인 안이함에 몸을 맡겨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다른 날들과 똑같은 하루이거나, 오히려 다른 날들과 완전히 똑같지 않은 하루인 것입니다. (p739)


그리고 저자의 결론, 혹은 결론을 대신한 문장도 인용해봐야겠다.


그렇다. 오늘은 다른 어떤 날과도 다를 바 없는 하루이고, 그 어떤 날들도 오늘과 다를 바 없는 하루, 다른 날들과 하나도 닮은 데가 없는 이 하루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끝이 없다. 우리가 태어나 죽는 찰나의 영겁, 짧은 영원 속에서 몇 번이나 밤은 도래할 것이다.(생략) 가자. 우리는 가자. 우리는 글 쓰고 노래하고 춤추고 사유하자, <거울>을 만들어내기 위해. 제3자를 만들어내기 위해. 근거율을 만들어내기 위해. 공격하기 위해. 손에 쥐기 위해. 지키기 위해. 굶주림에 저항하고 추위에 저항하고 죽음에 저항해 살아남기 위해. 모든 죽음과 위험의 선동을 웃어넘기기 위해. 전진하기 위해. 옆으로 한 발 나가기 위해. 소격을 유지하기 위해. 자유를 직조하기 위해. 투쟁하기 위해. 독박하기 위해. 이기기 위해. 지기 위해. 승리하고 패배하는 기쁨을 위해. 이윽고 이로는 다했다. 붓을 놓을 때가. 그러나 끝은 없다.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p773)


나는 라캉과 르장드르와 푸코의 ‘관계’에서, ‘오늘’이라는 하루의 연속성이 가져다주는 짧은 영원 속에서, 사사키 아타루의 ‘영원한 야전’이라는 개념에서 자신의 꼬리를 문 원형의 뱀인 ‘우로보로스’를 떠올렸다. 라캉과 푸코와 르장드르가 공명하는 시공, 그들의 논리가 한순간에 소생하는 시공 속에서 내가 본 것은 “거짓은 요새의 안쪽에 숨어 있고 순간적이지만, 진실은 바깥의 야전에 있고 영원하다”는 것이다. 안다는 것, 그리고 산다는 것은 이전의 허물을 벗고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듯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고, 시작이 없는 끝, 끝이 없는 시작, 시작과 끝이 연대하는 ‘영원한 야전’은 바로 우로보로스의 형상을 한 삶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을 듯하다. 나 또한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하여 재독할 때는 더 발전한 나를 만나고 싶다.


- 별점은... 너무 어려웠으므로,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만큼의 글쓰기 수준으로 독자를 만나줬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 때문에 별 세 개입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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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불감증]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도덕적 불감증 - 유동적 세계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너무나도 소중한 감수성에 관하여
지그문트 바우만.레오니다스 돈스키스 지음, 최호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11월
평점 :
품절



‘도덕적 불감증’이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떠오르는 지난 뉴스들이 있었다. 태국의 방콕에서 일어난 테러로 파손된 문화재 앞에서 웃는 얼굴로 셀카 인증샷을 찍어 SNS에 올린 관광객,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폭격하는 광경을 언덕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구경하고 심지어 박수치며 환호하는 이스라엘 시민들, 뉴욕 지하철역에서 한인이 선로에 추락했는데 지하철이 진입하는 순간을 특종 사진이라고 찍은 기자……. 사람들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사람들의 이런 감정 상태를 무어라 말로 표현해야 할지 막연했었는데 ‘도덕적 불감증’이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바로 설명이 되었다. 도덕적 불감증에 빠진 사람들을 굳이 뉴스에서 찾을 필요도 없다. 흔하게는 인터넷에 쏟아지는 댓글들의 내용만 봐도 도덕적 불감증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알 수 있다. 세상은, 사람들은 왜 이렇게 되어가고 있는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깊어지는 고민 속에서 만난 책이 바로 ‘도덕적 불감증’이다.  


그런데 처음 책을 몇 페이지 읽는 순간 도덕적인 고민이 아닌, 엉뚱한 고민에 빠졌다. 서평으로 올라온 다른 사람들의 한줄평에서 번역의 문제가 언급되어 책을 읽기 전부터 내심 불안했는데 직접 읽어보니 나도 번역의 문제를 부정할 수가 없었다. 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번역이 매끈하다해도 쉽게 읽을 내용이 아니다. 혹시 번역은 매끈한데 내 이해력이 딸려서 문장이 머릿속에서 해체되나 의심도 해봤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였다.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조차 맞지 않은 문장이 빈번하게 보였으니까. 그런 이유로 번역된 문장을 다시 재구성해서 이해해야 하는 수고가 필요했고 읽는 속도가 더욱 더뎌졌다. 솔직히 중간에 덮어버리고 읽은 내용만 가지고 다 읽은 척하며 적당히 리뷰를 써볼까 하는 유혹도 있었다. 하지만 새해에 읽는 첫 책에, 그것도 ‘도덕적 불감증’이라는 책을 읽는데 나부터 도덕적 불감증을 가지고 리뷰를 쓰면 안 되니까;; 도덕적으로 열심히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끝까지 읽길 진짜 잘했다. 번역 때문에 읽지 않고 지나치기엔 너무 아까운 책이다. 물론 더 나은 번역으로 개정판이 나와준다면 좋겠지만. 바우만의 다른 책들을 몇 권 읽어서인지 번역의 오류를 나름 극복하고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읽고 나서 느끼는 가슴의 묵직함이란 이루 말로 형언할 수가 없다….


이 책은 돈스키스와 바우만의 대화체로 이루어져 있다. 돈스키스는 처음 듣는 이름이지만 이 책에서 비중이 상당했고(심지어 결론에 해당하는 책의 마무리도 바우만이 아니라 돈스키스가 한다) 질의 안에 포함된 내용이 질의 이상으로 의미 있었다. 인터뷰나 질의응답 방식의 글들이 대부분 내용의 체계가 떨어지고 단발적 구성이기 십상인데 이 책은 내용이 대화의 흐름을 타고 체계적으로 진행된다는 느낌이었다. 다만 다루는 내용이 쉽지 않기 때문에 목차에 나온 주요 문장들을 수시로 확인하면서 길을 잃지 않는 독서가 필요했다.


이 책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은 우리 시대의 악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도덕적 불감증은 이 시대에 어떻게 해서 초래되었고, 도덕적 불감증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문학작품이 언급되지만 자주 언급되는 소설들이 있다. 조지 오웰의 [1984],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의 [우리들]이다. 세 권의 소설을 읽었다면 내용의 이해가 더 쉬울 것이고 읽지 않았다면 이 책을 계기로 분명 읽고 싶어질 것이다. 그리고 미셸 우엘벡의 [어느 섬의 가능성], 바우만의 저서에서 자주 언급되는 이 책을 더이상 안 읽고 버틸 수 없어 보인다. 올해는 꼭 읽어보기로 했다. 


도덕적 불감증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하는 메타포들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중에서도 “우리의 악마는 이케아, 페이스북의 모습을 한 DIY다”라는 메타포가 이 책의 핵심이다. 이케아는 후반부에 나오는 어니스트 겔너의 ‘모듈형 인간’이라는 개념과 묶어서 이해하면 될 것 같고, 페이스북도 역시 후반부에 나오는 ‘절름박이 악마’와 ‘돈 후안’을 묶어서 이해하면 되지 싶다. (이게 나의 오독이라 할지라도 내겐 영감을 주는 멋진 내용이었다)


마지막으로 다들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그래서 어쩌라고?”일 것이다. 도덕적 불감증을 극복할 방안은 있느냐? 음……. 어느 신문의 신간 소개에서 이 책의 결론이 다소 어색하다고 기자가 적어둔 글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다소 어색하다는 그 결론 외에 도대체 무슨 결론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하고 그 기자에게 되려 묻고 싶어졌다.(기자분이 이 책을 끝까지 읽었으리라는 믿음이 없어졌다) 내가 생각하기엔 다소 어색하다는 그 결론이 가장 뻔하지만 가장 기본이고 가장 당연한 결론이다. 생각에서 행동으로 이어지기 가장 어렵다는게 문제지만. 두 지성의 대화를 과정을 따라 오롯이 읽어내야만 얻을 수 있는 답이기에 여기에 구태여 내용을 적지는 않겠다. 번역의 문제가 있음에도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분들께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내어야만 진정으로 얻을 수 있는 답을 통해 잃어버린 소중한 감수성을 발견하시길 독려해본다. (결론만 도려낸 답은 오히려 불감증을 야기할 것이다)


- 번역은 별 두개만 주고 싶은데 책에 담긴 내용 때문에 별 네개.

- 돈스키스와 바우만의 신간이 올봄에 해외에서 출간되나보다. “Liquid Evil”이라는 끝내주는 제목을 가진 책이다. 유동하는 악마쯤 되려나. 최근으로 이어지는 이 책의 뒷이야기일 것 같아 기대가 크다. 부디 이 책은 멀쩡하게 번역되어 출간되길.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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