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금요일, 전 직장의 지인으로 부터 얼굴을 한 번 보자는 전화를 받았다.
대구에서 알 던 사람이고, 당연히 서울 내지는 수도권에서 사는 걸로 알았다.
얘기를 해보니, 공교롭게도 바로 옆 동네에 살고 있었다. 만나서 저녁식사라도 하는게 어때요?
굳이 이 사람이 왜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조금 부담스런 맘이 앞섰다.

저녁이 되어, 약속장소로 나가니 부담보다 반가움이 컸다. 식사가 나오고 막걸리가 돌아가니 이내 맘이 편해져서
있는 얘기 없는 얘기가 다 나왔다. 그러다 내게 함께 일해볼 생각이 없냐고 했다. 자초지종을 물으니, 나와 함께 일했던 여직원이
정중하게 거절하며, 내 얘기를 꺼냈다고 했다. 술기운에도 정신을 바짝차려야 했다. 얘기가 잘 되면, 내 앞에 이 사람은 내 상사가 될 사람이기 때문이다. 얘기를 들어보니, 회사가 썩 나쁘지는 않아보였다.
“채용여부와 상관없이, 대표님과 함께 차 한잔 하시지요?”
라고 대답했다. 까짓것 무슨일을 하던 못할 게 뭐냐. 나이를 한 두살 더 먹으니, 당황하기도 쉽지 않다. 긍정적인 내 대답에 만족했는지, 다음 주에 연락준다며 헤어졌다.
그리고 이번주. 아침에 문자메시지가 왔다.

- 이력서를 먼저 보자고 하시네. 보내주세요.

이력서. 서류전형에서 몇 번이고 떨어져 본 경험이 떠올랐다. 평가하지 않는 항목은 시간이 지나면, 평가할 수 없는 항목이 되어 내 꼬리표가 된다. 그 동안 다른 회사에서도 생활하면, 잘 지냈다고 생각했다. 동료들과도 괜찮았고, 직장상사들과의 관계도 좋았다. 내가 사직서를 내지 않았다면, 굳이 나올 필요가 없었던 적도 많았다. 안타깝게도 이력서에는 좋은 관계를 평가하는 지표는 없기 때문에, 받아서 보는 사람은 알 수 없다. 이런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하니 긴장감이 흘렀다. 뭘 어떻게 포장해야 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의 회사생활이 머릿속에서 1분씩 영화처럼 흘러간다.

아직은 해가 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옷을 챙겨있고 나가서 걸었다. 머리가 아플 땐 땀을 흘려야 한다. 내가 살면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생각했다. 나는 어디에서 무얼하든 사람들과 잘 지내고, 재밌게 일하고 싶다. 시간이 나면, 도보여행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회사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해서 내 이런 행복에 지장은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이 분명하면, 쉽게 각오할 수 있다. 이력서는 최대한 간결하게 썼다. 자기소개서는 담백하게 적었다. 되면 새로운 경험의 시작이고, 안되면 다시 찾으면 그 뿐이다. 굳이 부담을 챙겨 가질 필요는 없다. 오래전 Ted Talk에서 김영하 작가가 한 말이 떠오른다. 글을 쓸 때는 최대한 빨리 그리고 정신없이 써야, 우리안의 악마가 쫒아와 방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력서를 쓰든, 어떤 일을 추진하든 내 스스로 부담스러워 하기 전에 후다닥 해야 일이 된다. 이 번 일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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