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12
서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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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 】     서진 / 한겨레출판

 


 

책을 열면 익숙한 용어들이 이 소설의 분위기를 예견해준다. Rewind(되감기), Fast Forward(빨리감기), Record(녹화하기), Pause(일시정지), Stop(정지), Skip(건너뛰기), Fade In : 점점 밝아짐, Fade out : 점점 어두워짐.

 

 

때로는 진실로 살기 위해서, 당신은 몇 번 죽어야만 한다.” _Hubert Selby Jr.

 

덜컹덜컹, 덜컹덜컹. 저 멀리서 들리는 지하철이 움직이는 소리.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처럼 들린다. 사내는 지하철 안에서 잠이 들었었다. 눈이 안 떠진다. 13그램밖에 안 되는 눈꺼풀이 작동을 안 한다. 오직 귀만 열려있다. 사내는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은 그런 적이 없었냐고. 악몽에 시달린 적이 없었냐고.” 묻는다. 없을 리가 없지.

 

 

사내가 지금 있는 곳은 지하철 안이다. 뉴욕의 코니아일랜드와 아스토리아 사이를 왕복하는 N트레인이다. “나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행선지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건 그렇고 내 이름은 뭔가? 왜 지하철에 앉아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보다 이건 더 큰 문제다. 나는 누구인가?”

 

 

그는 그의 주머니를 뒤진다. 다행히 지갑이 있다. 신용카드에 금박으로 이름이 박혀있다. ‘KIM HA JIN’. 김하진이라. 그래도 사내는 그 이름이 낯설기만 하다. 분명 그의 이름일 텐데..매우 낯설다.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지하철 밖으로 나가는 길, 지상의 세계로 나가는 길이 두렵다. 용기를 내어 올라가보지만 번번이 되돌아오고 만다. 나갈 때 마다 몸 어딘가에 상처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무 눈이 부시다.

  

 

뉴욕의 지하철. 24시간 운행이 된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이 있던, 몸을 누이러 들어갈 집이 있든 없던 상관없이 지하철은 밤새 움직인다. 밤새 달린다소설의 무대는 사내 스스로 갇혀있는 지하철 외에 사내가 아내와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된 이야기, 그의 가족들 이야기와 공사가 중단 된 지하철 터널을 장악하고 살아가는 지하생활자들의 이야기가 겹쳐진다. 지하철 안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지하생활자들의 이야기는 따로 빼놓아도 한 편의 스토리가 될법하다.

 

 

소설의 제목인 ‘Underground’의 사전적 의미는 광범위하다. ‘지하라는 뜻 외에 (예술의)전위적 경향(운동)이라는 의미도 있다. underground film은 반체제 영화를 뜻한다. 이 소설에서 의미하는 underground는 지하철, 지하생활자를 뜻한다. 덧붙인다면, 주인공인 김하진이라는 사내의 무의식을 표현했다는 생각도 든다.

 

 

작가가 의도했던 안 했던, 이 소설은 뉴욕의 방문객들에게 주는 뒷골목 가이드 역할까지 한다. “컴퓨터 바탕화면에서 매일 보아왔던, 티브이나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뉴욕은 화려하지 않으니까. 섹스 앤 더 시티는 잊어라. 브로드웨이는 싸구려다. 그런데 당신은 아는지 모르겠다. 그 좁은 맨해튼 섬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살아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높은 빌딩 때문이라는 것을. 그 빌딩들은 1970년대에 지어진 것이 아니라, 1900년대 초반부터 지어진 것들이다.” 그리고 사내가 스스로 갇혀있는 지하철 이야기가 펼쳐진다. “Fun Pass 7달러면 하루 종일 무한정 뉴욕을 누빌 수 있다. 언제나 추가 비용 없이 버스로 갈아 탈 수도 있다. 투어 버스는 잊어라. 서울의 지하철보다 훨씬 어둡고, 지저분한 지하철을 타야한다.” 지하철을 타야만 뉴욕의 냄새를 제대로 맡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나저나 사내는 지하철을 탈출했을까? 기억을 회복했을까? 가족을 만났을까?

나는 눈을 감는다. 덜컹덜컹. 전철이 움직이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린다.(...) 해가 지고 있다. 어둠이 다가온다. 머릿속이 전철 소리와 함께 멍해진다. 마치 내가 가진 모든 기억이 사라져버리는 것만 같다. 덜컹거리는 전철 소리와 함께 세상 모든 것이 어둠 속으로 천천히 사라지고 있다. 이제 그만 눈을 떠야 할 것 같은데도 이상하게 눈꺼풀이 무거워져서 뜰 수가 없다.” Rewind, Rewind, Rewind..... Fade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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