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른한 이불에서 썼 듯 누군가 맹렬하게 부러운 날이 있다. 나는 그럴만한 능력과 배짱과 용기가 없는데 내가 원하는걸 쉽게 얻고 쿨한 태도까지 겸비한 누군가.

 

 그런데 며칠 내가 좋아하는 언니와 부러운 누군가를 비교해봤더니 부러움의 정체가 좀 더 선명해졌다. 내가 좋아하는 언니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 나는 언니를 좋아하고 부럽지만 부러움이 좋아함을 압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언니의 약함과 한계, 나와 비슷한 면모를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부러웠던 건 부정의 기운이 하나도 비치지 않는 평온하고 신나는 일상을 전시해서인건 아닐까. 세련된 포장방식이 나같은 사람을 낚는건 아닐까. 아, 이런식으로 정신승리하는걸까.

 

 * 연기 수업을 받고 있다. 나는 집안일을 안 하는 남편역을 맡았다. 내가 주로 맡는 역은 누군가를 구박하거나 삐딱선을 타는건데 이런건 즉흥으로도 곧잘 한다. 내가 어려워하는 연기는 예쁘거나 순진한 사람, 아무 의심없이 다른 사람을 믿는 역할이다. 이건 고도로 의식적인 집중력을 보여야 한다. 암튼 남편 역을 하는데 즉흥으로 하는거라 연기할 때랑 실제 다른 친구들 앞에서 하는게 조금 바뀌었다. 원래는 (집안일 안 하는 남편과 갈등-> 아내의 고민-> 6년 후 남편에게 아기 맡기고 쿨하게 외출하는 아내) 이런 식이었는데 아내 역할을 맡은 분이 다른 대사를 날렸다.

 

 '나 갔다올게' 이러고 가면 되는데 '여보, 당신 집안일 좀 해.' 이렇게 돼버린거다. 나는 여전히 변하지 않은 남편이라 되는대로 말을 했는데 '여보, 당신은 6년째 어떻게 한결같냐'였다. 순간 빵터져서 상황이 그게 아닌데 웃음이 그치질 않았다. 6년째 참으로 끈질긴 남편이구나, 어떻게 6년째 지치지도 않고 비슷한 주제로 싸우나. 집안일은 정해져있는데 아직 남자가 어떤 역할을 맡아야하고 어느 정도 해야할지는 공식적인 기준이 없다. 대개 이럴 때 다른 사람들의 가사, 육아 기여도를 듣고 상대방의 노동 수준을 가늠하는 정도.

 

 연기를 하면서 느낀게 와, 그 눈치와 염치없는 순간을 계속 당하면서 꿋꿋하게 집안일을 안 하고 TV를 보는 남성의 정신력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주변 엄마 중 다시 돌아갈 일자리가 있는 사람은 단 한명 뿐이다. 대부분 전업이거나 새로운 일자리를 구해야한다. 나는 다시 돌아갈 곳이 있는 엄마가 미치도록 부러웠다. 게다가 육아휴직을 3년이나 할 수 있어 아기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 일년 정도 아기를 본다고 하는 순간 다시 샘이나서 어쩔줄 몰랐다. 그런데 일하면서 아기를 돌보는 엄마의 고충은 말해 무엇하나. 맞벌이인데도 여전히 육아,가사노동의 남성 기여율은 차이가 없고 엄마들은 위험한 줄타기를 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전업주부가 편한 건 아니다. 끊임없이 자기존재를 증명해야만하는 기로에 섰다. 얼마 전에 엄마들이랑  아이스브레이킹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나눈적이 있다. 대부분 하고 싶은 일로 무슨 자격증 따기, 집안 정리 잘하기, 다이어트가 들어가 있다. 나는 남자인 a에게 같은 질문을 했더니 세상에, 세계여행이라고 한다. 꿈조차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 같아 씁쓸해졌다. 어렸을 때 나를 설명하는 명함 하나가 그렇게 갖고 싶었는데 다시 명함 없는 삶으로 돌아왔다. 나는 전보다 잘 지내고 있는걸까.

 

* 하, 아기 올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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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집 차에 아이를 태워보내고 집으로 오는 길에 윗층 엄마를 만났다. 집에서 차 한잔 하자며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윗층 엄마는 여전히 아이 돌보는게 어렵다고 했다. 다른 엄마들은 아이를 어떻게 보는지 다들 잘하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아이를 너무 일찍 어린이집에 보낸 건 아닌지, 아이 편식이 심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을 했다. 나는 윗층 엄마가 잘하고 있고 좀 더 확신을 갖고 아이를 대하면 좋겠다고 얘기해줬다. 아이는 엄마 뿐 아니라 자기 기질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과 관계에서 성장하는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윗층 엄마한테 한 얘기지만 실은 나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아빠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아이에게 양가감정과 죄책감을 느낀다. 육아로 감정과 정신, 육체가 닳을대로 소모되지만 ‘좀 더 잘해야하는데, 좀 더 잘할걸’ 같은 내면의 다그침을 듣는다.

 

 ‘부모로 산다는 것’에 보면 아이와 놀 때 아이의 세계에 빠져서 함께해야만 진정으로 놀았다고 생각하는 엄마가 나온다. 그녀는 탈진할 정도로 아기에게 맘을 쏟지만 이내 다 마치지 못한 집안일과 아기를 낳기 전 누릴 수 있었던 작은 일상을 미치도록 그리워하는 맘 때문에 죄책감을 느낀다. 아이 입장에서 야속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나는 육아의 전형에 빠지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내 시간을 갖으려고 a와 싸웠고 사회가 압박하는 ‘좋은 엄마’상을 거부했다. 육아의 굴레에 틀어박혀 나를 소진하며 유일한 희망으로 ‘자식의 성공이나 행복’ 같은걸 바라는 부모가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고비가 있었다. ‘그 어린애를 어린이집에 맡겨? 엄마가 노는데 좀 더 보면 되잖아.’ ‘ 요즘 엄마들은 애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거저 본다니까.’ 란 공격적 말에 웃으며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정신 근력을 키웠지만 마음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른 아침 잠에서 깬 아기가 침대로 올라와 부스럭거리며 내가 전날 밤 읽던 책을 뒤적였다. 언제 이렇게 커서 침대 위까지 올라오니, 너무 작아서 안는 것만으로 아스라했는데 언제 이렇게 컸니.

 

 아이는 금세 자랐다. 하루는 길고 길었는데 아이의 성장은 눈깜짝할새 이뤄졌다.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놀아줬어야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손목이 아프고 어깨가 빠질 것 같아도 더 안아줄걸. 나는 좋은 엄마였을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평온한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맘이 미어졌다. 아침 댓바람부터 엉엉 우니까 a는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장난을 쳤다. 아이 보고 엄마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물으니 아이는 내 얼굴을 쓱 만지며 배시시 웃는다.

 

 어린이집에 다녀온 아이는 차에서 내려 나를 덥석 안는다. 조금 더 안아주고 싶은데 야옹이를 보겠다며 나를 밀어낸다. 지금부터라도 두려움 없이 장난처럼 아이를 많이 안아줘야지. 그리고 계속 나는 잘하고 있고 괜찮다고 얘기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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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7-06-23 1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치님 잘 하고 계시는 것 맞아요.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해요.^^
아이는 정말 쑥쑥 잘 커가요.^^ 걱정 안 하셔도 되고 정말 괜찮아요. 많이 안아주는 것 정말 필요하죠.^^

Arch 2017-06-24 00:05   좋아요 0 | URL
아기를 돌보며 자아가 분열되는 느낌이... ㅋㅋ 페이퍼가 혼란해도 이해해주세요.
 

 3주간의 적응 기간이 거의 끝나간다. 아이는 오늘 처음으로 내 앞에서 울음을 그치고 먹먹하지만 감정을 추스린 얼굴로 어린이집 차에 탔다. 처음 몇번 울 때 걱정됐지만 가슴이 찢어지진 않았다. 아이가 잘 할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계속 울고 울어서 어린이집을 못다니면 어쩌나란 걱정은 했다. 나는 이기적이고 손뼘만한 내 시간이 중요한 엄마였다. 20개월 동안 옆에 끼고서 아이의 요구와 필요에 따라 움직이는 일에서 잠시 벗어났다. 그리고 닥치는 적막. 이제 뭘하지.

 

 어제 저녁부터 느긋하게 쌓아놓은 설겆이와 빨래, 마늘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바닐라라떼를 한잔 만들어 천천히 음미하며 마셨다. 정새난슬의 '다 큰 여자'를 읽는다. 넘치는 열정과 분노, 혼란스러움이 나와 닮은 사람. 모순된 자신을 바라보며 전진하는 사람. 그의 모습에서 나를 보며 조용한 아침을 보냈다.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다 SNS에 댓글을 남긴 a의 타래를 타고 그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아기가 초등학생이 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이내 생협 위원장이 되었단다. 로망이었던 취미를 하고 역량개발 워크숍을 다니는 a의 일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조용한 아침은 들썩이기 시작했다. 자기소개란에 누군가를 부러워한적이 없다고 적을 정도로 다른 사람이 선망할만한 삶을 사는 누군가. 나처럼 흔들리지 않고 무엇으로든 성공하고 어떤 순간에도 빛나는 사람.

 

 a가 누군가의 애타는 러브콜을 받으며 일을 시작한 것과 다르게 내가 구직을 하기 위해선 엄청 애를 써야한다. 그가 하는 활동들은 나 역시 하고 싶었던 것이거나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활동들을 통해 배우지 않고 경험을 쌓지 못했다. 일이 되거가는건 더디고 관계는 어렵다. 실력은 한참 지나도 도돌이표다. 으쌰으쌰 새로운걸 만들고 기획하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걸 꿈꾸지만 다른 사람을 포용할만한 사람은 되지 못한다. 그럼 다른 사람이 내미는 손에 감동하는 시늉이라도 해야하는데 이내 삐딱선을 탄다.

 

 여전히 '인기 많고 싶은' 바람이 맘 저편에서 미약하게 팔랑이는데 인기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행동이나 말은 하지 않는다. 진짜 이율배반. 남을 배려하거나 의식적으로 듣기 좋은 말을 하지 못한다. 얼마 전 역할극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낸 아이디어인데 나는 서브 악역을 맡으려고 했다. 누군가 '아치는 왜 누굴 때리고 구박하는 역할만 해?'라고 묻지 않았으면 생각해보지 못했을 빈틈. 나는 악역이나 서브가 편하지 주인공을 하는 건 어색하다. '못할 것도 없지 뭐.'란 생각으로 어색한 역을 맡아했는데 역시나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아무도 의식하지 않고 난 막 나서고 주목받는 것 좋아하는데 숨고만 싶었다.

 

 긍정적인 기운, 밝고 명랑한 것, 또랑또랑한 건 나랑 어울리지 않는다. 혹은 나는 그런걸 안 좋아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좋아한다. 나도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삐딱선을 타고 트집을 잡아내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건 신문사설로 충분하다. 누군가 관계를 맺는데 그런 점들은 마이너스이다. 그런데 이게 난걸. 여전히 인정욕구에 허덕이고 남들의 말 한마디에 팔랑이는 사람이 나인걸 어쩐담. 시크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누군가의 성공에 진심으로 기뻐하고 비판 대신 응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창밖으로 뒷동 베란다에 널린 이불이 보였다. 초여름 햇살에 바짝 말라가는 두툼한 이불이 나른해보였다. 나른하고 더없이 충분한 표정으로 당신을 응원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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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정

 

 그동안 아기는 울고 웃는 표정 밖에 짓지 않았다. 단순하고 투명한 욕구가 바로 얼굴에 나타났다. 그런데 지금은 다양하고 풍부해졌다. ‘어린이집 가서 친구들이랑 놀거야’는 물음에 고개를 연신 끄덕이다가 ‘그런데 엄마는 같이 못 가. 안 가.’이러면 입을 삐쭉 내밀고 슬픈 표정을 짓는다. 우는 게 아니라 표정으로 자신의 감정을 얘기한다. 이것도 몇 번 하다 보니까 처음 질문에는 고개를 끄덕이다 두 번째에는 살짝 고민하더니 씽긋 웃어버린다. 엄마가 장난치는걸 알아버린거다.

 

아기의 감정이 다양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내용은 선명하다. 감정을 숨길줄 모른다. 자신이 원하는대로 되지 않으면 바닥에 뒹굴고 기분이 좋으면 원숭이처럼 킥킥거린다. 웃음소리가 커졌고 감정의 폭이 넓어졌다.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들여다볼줄 아는 아기로 자랐으면 좋겠다.

 

한계

 

  아기가 말을 알아듣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면서 한계 짓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전부터 안전과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영역에서는 경계를 정하고 그 외에는 자율적으로 지내도록 했는데 최근 식사와 잠자리 습관을 들이면서 어느 선의 한계가 적당한지 고민을 했다. 특히 감기 기운으로 입맛이 떨어졌을 때는 정말 헷갈렸다. 밥은 먹는 둥 마는 둥이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장난을 친다. 밥을 뱉고 수저로 식탁을 친다. 일어나는 건 안전에 관한거니까 제재했지만 밥을 뱉는 건? 밥을 잘 안 먹는 건? 밥을 먹는 시간을 정해주고 그때까지 다 먹지 않으면 그릇을 치우는 방법으로 써보았다. 처음에는 계속 배고프다고 칭얼대거나 여전히 장난을 쳤지만 점점 익숙해지면서 앉은 자리에서 밥을 잘 먹는다.

 

 그 다음에 잠자리. 앞에 썼지만 그동안 잘 때 아기 스스로 자지 못하는걸 감안해서 자는데 도움이 되는 건 다 수용한 편이었다. 앉았다 일어났다, 엉덩이를 두드렸다 어부바를 했다, 책을 읽다 노래를 불렀다, 물을 가져오는 것 등등. 그런데 내가 아기라면 굉장히 혼란스러울 것 같았다. 어떤 욕구든 한계 없이 다 들어주는게 과연 좋은걸까. 오히려 한계 없는 욕구가 아기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건 아닐까. 한밤중에 악을 쓰면서 우는 것도 그런 연유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잘 때는 자기 잠자리에서 잔다’ 외에는 다 허용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다양한 요구를 하다가 며칠 지나니 편하게 잠이 든다.

 

 a는 이러한 육아방식이 아기의 기를 죽일 수 있다고 한다. ‘안 돼’란 말을 남용하면 자신이 하고 싶은걸 생각하기 전에 엄마 눈치를 볼거라고 한다. 아기가 눈치를 볼 정도로 ‘안 돼’의 영향력이 센 걸까. 자신의 행동이 어느 선까지 수용되는지 확인하고 그 경계를 인정하는게 좀 더 안정적이지 않을까. 정말이지 육아는 답이 없다. 나 역시 아기와의 관계로 서로의 한계와 접점을 찾아가며 맞춰가는 수 밖에 없다.

 

넛지

 

 넛지는 ‘주위를 환기시킨다’는 영어로 강압하지 않고 부드러운 개입으로 사람들이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뜻한다. 밥을 먹고 이를 닦는다거나 제시간에 잠자리에 드는 활동을 아기 스스로 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아기가 어렸을 때는 내가 직접하면서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수월하게 했다. 하지만 걷기 시작하고 자유의지가 생긴데다 장난치고 싶은 꾸러기가 숨겨져 있는 20개월에는 모든 것을 설득해야한다.

 

 기저귀를 갈자고 하면 도망을 간다.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데 관심 없던 자동차를 탄다고 한다. 밥을 먹으랬더니 뱉고 자랬더니 물을 먹는다, 나갔다온다, 어부바를 하겠다 난리난리다.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가 차라리 낫다. 바르지 않은 행동은 감정을 읽어준 다음 제지를 하면 된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을 안 할 때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쫓아다니면서 밥을 먹이고 이를 닦이고 옷을 입히고 싶지 않다. 그래서 고안한 게 바로 넛지.

 

 기저귀를 갈아야하는데 벌써 눈치 채고 저만치 도망가는 아기. 쫓아가서 데려올 수 있지만아기가 스스로 오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넛지를 시도해보았다. 동물들과 대화를 한다거나 비닐 소리를 내면서 먹는 시늉을 하는거였다. 처음 몇 번 아기는 호기심에 내 옆으로 와서 슬쩍 본다. 하지만 비슷한 수법이 반복되자 아기는 동물이랑 얘기하며 먹는 소리를 내는 내게 토끼 인형을 던져주고 갔다. 시늉을 할거면 인형이라도 데리고 하라는건가. 넛지 실패. 넛지는 처음 몇 번 반짝이는 아이디어 수준이었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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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a보다 어린 아이가 있는 집에 놀러갔다. 이제 막 뒤집기를 시작하고 앉을 줄 아는 어린 동생 b는 a를 보고 방긋방긋 웃었다. a를 데리고 다니면 자식을 다 키운 분들이 아기를 어떻게 키운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하곤 했다. 나 역시 a가 저만할 때가 불과 1년 전인데 가물가물했다. 하지만 아기 사이에서 1년은 엄청 큰 차이인지 b는 이내 a가 내는 소리와 움직임에 심기가 불편해졌나보다. 우는 일이 별로 없다는데 계속 칭얼댔다. a는 a대로 놀만한거리가 없으니까 심심해했다.

 

 나와의 관계, a 또래와의 관계에서 a는 똑똑하거나 야무지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하지만 웬일인지 b랑 있으니 a의 문제 행동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괜히 누워있는 b의 머리카락을 밟는다거나 손으로 눈을 찌르고 아, 예쁘다 하는 척 머리카락을 잡아당긴다. 간만에 다른 아리 엄마 집에 놀러왔는데 좌불안석이었다. b의 엄마가 b가 왜 우는지 살피기보다는 조금만 우는 시늉을 보여도 바로 안는 통에 a는 아무 짓을 안 해도 좀 뻘쭘해지기 시작했다.

 

 a가 또래랑 있을 때는 안 그랬는데 동생이라 그런건가.

 

 b의 엄마가 a에게 뭐라고 하진 않았지만 a 딴에는 자신이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다고 느꼈나보다. 자신의 존재를 밀쳐내는 동생과 어른,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엄마 사이에서 a가 선택할 수 있는 몇가지 방법 중 하나가 동생을 자극하는거였을까. 그런 것까지 생각한건 아니고 a의 자연스러운 소리와 움직임이 b에게 낯선 것 뿐이었을까.

 

 얼마 전부터 아기는 어린이집을 다닌다. 적응 기간 동안 아기랑 어린이집에 앉아 있는데 가끔 지나가는 말처럼 선생님이 그런다.

- 누구가 어머니한테 자꾸 안기는건 일찍 엄마랑 떨어져서 그래요.

- 어머니도 알겠지만 누구가 발달이 좀 늦어요.

 

 아기를 이 선생님한테 맡겨도 되는지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선생님 말로는 a가 애착 형성이 잘 돼서 어린이집 적응을 잘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기준에서 벗어난다면 어떻게 되는걸까. 선생님이 귀뜸한 아기들은 사랑스럽고 순진하다. 일부러 자세히 봐서 선생님이 얘기한 지점을 확인하려 들면 못할 것도 없지만 다른 아이들도 정도만 다를 뿐 다 갖고 있는 특징이다. 별 일 아닌데 소란스러워지면 선생님은 특정한 아기한테 이유를 묻고 아기의 감정과 별개로 타이르거나 훈육을 했다. 며칠 봤는데 그랬다.

 

 그래도 아기는 적응을 잘한다니 괜찮지 않을까란 맘 이면에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자리잡았다. 정상에서 탈락하면 어쩌나란 염려. 나 역시 정상 혹은 일반에서 멀었는데 되물림 되는건 아닐까란 걱정.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a가 아무리 잘해도 한번 눈 밖에 난다면 어떡하지. 이 선생님은 아기들의 다른 여건을 포용하기 보다는 규제할 것 같은데.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아기를 계속 어린이집에 보냈다. 시간이 지나 선생님과 얘기하며 내가 막연한 불안감을 느낀다는걸 알게 됐다. 선생님이 조금 다른 아이들한테 유난스럽게 구는 건 아니었다. 인권 어쩌고, 내가 과민했다. 아니아니, 말 몇마디로 그 사람에 대해 판단하기에 어린이집 선생님의 업무량과 기대치, 근무조건이 너무 열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a는 나랑 떨어져 어린이집 차를 탈 때마다 눈물바다가 된다. 씩씩하고 개구지고 엉뚱한 아이가 어느 순간 감정이 복받쳐 앙하고 울어버린다. 고집을 부리는, 엉성하게 우는 흉내 내는 것도 아닌 울음. 아기에게 슬픔이 생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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