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글이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페이퍼에 분명히 토요일 열리는 촛불집회에 간다고 쓴 덕에 사지 늘어짐증과 귀차니즘의 발동으로 집에서 뭉개고싶어 죽겠는 맘을 떨쳐낼 수 있었다. '서재 의무감'이란 단어가 생각날 정도였다. 집에 계시는 부친께 같이 나가보자고 했지만 예전 시위 당시 최루탄 때문에 곤혹을 치르셨다며 싫다고 하셨다. 아빠, 그게 언제적 일인데. 아빠를 설득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는 것 플러스 저지하려고까지 하시길래 그만뒀다. 이거, 괜히 뻘쭘해지는거 아닌가 싶은 맘도 있었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지방에서 해봤자 어떤 의미가 있겠어란 나름 자조적인 생각이 끼어들기도 했다. 걔중에는 직접 시위 참여하는 사람들의 진정성과는 별개로 굳이 서울까지 가서 시위를 한다는 사람들까지 있는 판이니. 그래도 안 하고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보다 해보고 판단하는게 더 낫단 생각에 몸을 질질 끌며 집을 나섰다.


음향시설차량

 시민문화회관에 사람들이 제법 모여있었다. 다들 삼삼오오씩 모여 수다를 떨기도 하고, 깔깔대며 웃기도 했다. 예전엔 효순,미선 촛불시위때와는 달랐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많아서 분위기가 통통 튀었다.

 


피켓을 만드는 친구들

 한쪽에서는 피켓으로 쓸 구호를 적는 친구들이 보였다. 어디서 저런 말을 생각했을까 싶은, 창의력 부재형 인간으로선 저중에 졸작이라도 좋으니 하나 물려받고 싶은 마음까지 들정도였다.

 나이도 바라는 바도 다 달랐지만, 우리가 분명히 원하는건 광장에 모여 자신들이 원하는바를 말하는 것이었다.

 날이 저물고

 자유발언 시간. 아저씨들이 주로 나오셨다. 100분 토론 관련해서 서울 시위가 폭력 시위가 아님을 피력하신 분도 있었고, 당신들의 일상에서 건져올린 정치적인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단연 기억에 남는 사람은 1분 1초가 아깝지만 도저히 공부가 할 수 없어 나왔다는 고3 여학생. 그녀는 말을 하는 도중 감정이 격해져 간신히 눈물을 참았다. 너무 감상적일 수도 있었지만, 모든게 다 논리적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건 아니니까. 말도 너무나 똑부러지게 잘하고, 자신은 어떤 문제로 이 광장에 나오게 됐는지를 분명하게 밝혔다. 나 고3때는 노느라 바빴는데. 격세지감은 나중 평이고 사실 부끄러움이 앞섰다. 그건 그곳에 나온 분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지못미까지는 아니어도 대체 무엇을 위한 교육이고, 소신있게 아이를 키우는게 어떤건지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다같이 공감 했으리라 생각된다. 학교 가고 싶어 아침 일찍 잠이 깨는 아이들이 많아진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그녀 어깨의 짐을 같이 져줄 수 있다면 좋으련만.



할아버지도

꼬마 친구도


거리시위내내 피켓을 들고 씩씩하게 구호를 외치던 친구까지

 모두가 바라는건 각각 달랐다. 누구는 0교 폐지를 위해, 정말 그야말로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 오빠들이 광우병 걸린 소고기를 안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대운하는 결사 반대(그래, 군산은 새만금이 있다. 그것 자체에 어쩌면 함정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검역 주권 지키기 등. 하지만 지금 우린 여기에 모였다. 굳이 공통점을 찾는다면 그것 하나. 그리고 그 자체만으로 가장 큰 힘이 되는 사실.


천지연, 사물놀이패와 같이 걸었다



  당신들과 같이 걷고 같이 노래해서 전 하나도 안 뻘쭘했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이렇게 당연한 말이 이렇게 자연스럽지 못한 분위기에서 불린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군산에선 과격한 분위기도 없었고, 문화제 형식으로 이어져 시종일관 평화로운 집회의 면모를 보여줬다. 군산고 친구들이 나와서 노래를 하는데 홀딱 반할 정도로 정말 잘했다. 여학생들 춤솜씨도 압권이었고. 사회자 말처럼 이 친구들이 공부뿐만이 아니라  자신들이 하고싶은 일을 찾아서 열정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난 촛불집회가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정말 살기 싫다고 하는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욕구가 뭔지, 어떤식으로 사회와 조율을 해갈 수 있을지 광장으로 나와 토론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내가 바라는건 옥찌들이 공부는 좀 못해도 다른 재미로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지원이 되는 사회, 일하는 시간이 너무 많지 않은 사회, 연대의 힘을 믿는 사회, 돈이 아닌 가치들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사회. 다양한 의견이 그 나름대로 의미를 압아가는 사회. 뜬구름 잡는 얘기 같지만 난 그런 사회가 올거라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선 힘을 분산시켜 꾸준히 집회에 참여해야겠다.

 다음 10일엔 옥찌들과 참가해야지. 이건 정말 '서재 의무감'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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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6-12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촛불을 하나 밝히는 것, 우리 모두의 희망이고 힘이지요! 수고하셨어요 토닥토닥~ ^^

Arch 2008-06-13 13:45   좋아요 0 | URL
^^*
 


아, 바람 너를 담을 수 있다면

 옥찌들이랑 월명산에 갔을때다. 지희랑 평상에 누워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지민인 개미들과 대화를 하고.

 -(기괴한 목소리를 내며) 옥찌야 사랑해.

-응? 이모가 낸 소리지?

-아냐. 바람이 지희한테 말한거라던데?

-아닌데, 나무 입은 가만히 있잖아. 이모 맞는데.

-아니야. 얜 나무가 속상해하겠다.

-뭐, 그럼. ( 조금 있다가 지희가 입을 가리며) 큰이모 사랑해.

-옥찌. 이건 옥찌가 한거 같은데. 나무가 어떻게 큰이모인줄 알아? (그러는 나는, 이름까지 말해놓고)

-(지희 혼자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생각을 하더니) 시.니.에 이모 사랑해.

 품안에 쏙 들어오는 옥찌를 꼭 껴안아줄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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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6-07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의 순발력과 순수성은 따라 잡기 힘들어요.^^

Arch 2008-06-08 13:1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요즘에서야 제가 창의력 부재형 인간인줄 알았지 뭐에요.
 


 나중에 조금 더 나이가 먹으면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

 먼데 나설땐 자전거를 굴리고, 마당에는 고추랑 상추를 심고, 마당엔 포장을 하지 않아 비오는 날이면 땅이 좀 패이고, 바람에 흙먼지도 날리게 하고싶다.

 옥찌들이 놀러오면 작은 밭에 심어둔 옥수수를 따서 가마솥에 쪄내고 놀이터 모래흙보다 더 찰기있는 마당흙으로 소꼽놀이를 할 수 있게 하고싶다.

 나중에 아주 가까운 날엔

 꼭 이런 집에서 두런거리는 새소리에 잠을 깨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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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6-07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난 어릴 때 저런 집에서 살아서 그런 로망은 없어용! ^^
시니에님이 살면 그때 놀러갈게요~ 괜찮죠? ㅎㅎ

푸하 2008-06-07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도 이런데서 살고 싶네요. 뭐가 필요할지 차차 알아봐야 할듯...^^:
안녕하세요 시니에님. 처음 인사드립니다.

Arch 2008-06-08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뭐 사람에 따라서 다르니까요. ^^ 놀러오신다면 제가 온돌 좀 뜨끈하게 해놓겠습니다.// 푸하님 반가워요. 필요한건 글쎄 뭘까요.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려는 것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삼일 연휴 아닌가. 오늘은 방청소를 하고 군산 시민문화회관에서 열릴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것 말고는 할일도 없었어요. 그래서 아침 댓바람부터 일어난 옥찌들에게 간곡히 부탁했죠.

-옥찌, 딱 한시간만 더 자자.

-그럼 우린 뭐해? 나 심심해.

-응, 이모가 조금만 더 자고, 같이 놀이터도 가고 정말 재미있게 놀아줄게.

-알겠어. 시계 어디로 가면? (지희는 아직 작은 바늘하고 큰 바늘을 헷갈려한다.) 그러니까 작은 바늘 8에 가 있고, 큰바늘이 12에 가있으면 8시거든. 그때까지만 잘게. 이모가 맛있는 것도 해줄게.

- 알겠어. 내가 지민이 데리고 잘 놀게.

 쉽게 수긍하는게 미심쩍긴 했지만 잠도 오고, 아까 꾸던 꿈이 간만의 훈훈한 내용이라 다시 이어서 꾸고 싶기도해서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들었죠. 꿈은 커녕 기억도 안 나는 뒤숭숭한 장면을 모자이크처럼 구겨 넣다가 더이상은 잠이 안 와 주섬주섬 일어났죠. 집안은 괴기할 정도로 조용했어요. 한시간도 채 안 됐지만 무슨 일인가 벌어지고 있다는 예감이 들었죠.

 거실 곳곳에는 옥찌들의 흔적이 있었어요. 베란다는 엄마 아빠 놀이용 요리터로 변해 물이 흥건했고, 방바닥은 뭘 뿌려놨는지 까슬거렸어요. 그나저나 얘넨 뭘하길래 이렇게 조용한거지?

 옥찌들의 방에 들어섰죠.


현장 사진, 증거 자료1

 콩순이 인형은 발가벗긴채 다리가 의자에 깔려 있고, 온갖 물건들을 다 끄집어낸 그야말로 난장판이었죠. 옥찌들은 어디? 요 녀석들은 창문가에 가서 종이를 뿌려대는 중이었어요.


현장 사진. 증거 자료2

 막 소리를 지르려고 하는데 아래를 내려다보며 뭐라고 떠드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무야 어쩌고.

-옥찌, 대체 이게 뭡니까. 이모가 정말 딱 1시간이라고 했지 않았습니까. 옥찌 방으로도 모자라 온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으면 대체 이모가  몸이 몇개도 아니고 이걸  다 치우란 말입니까? 그리고 지금 위험하게 창문 열어놓고 뭘 하는겁니까.

 내가 잔 잘못도 있고 해서 조근조근 얘기를 했더니 평소엔 말 많은 누나 덕분에 발언권이 없던 지민이가 한마디 했다.

지민 -이모, 편지.

잠꾸러기 이모 -무슨 편지

지희 - 이모 내가 나무한테 편지 써서 보냈거든. 나무한테 잘 받았냐고 물어본거야.

 범행 현장을 바로 잡아내긴 했으나 이거 혼내지도 못하고, 대충 후다닥 방을 정리하곤 나무가 반송시킨 편지를 회수하러 나갈 수 밖에요.

 사건 조사 결과 방바닥의 까끌거리던건 뛰어 다닐때 미끄럼 방지용으로 뻥튀기를 부숴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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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8-06-08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니에님 조카들 얘기 읽다보면, 동화작가도 아니면서 동화의 모티브가 불쑥불쑥 떠올라요 ^^

Arch 2008-06-08 13:17   좋아요 0 | URL
이참에 동화 한편^^ 잘 쓰실 것 같은데.

2008-06-08 1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숨 쉬는 항아리 - 개정판 전통문화 그림책 솔거나라 2
정병락 글, 박완숙 그림 / 보림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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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아파트에 사는 요즘 아이들은 항아리가 뭔줄 잘 모른다. 기껏해야 못생긴 그릇 정도로 생각한다. 우리 지희도 그랬다. 그래서 이 책, 숨쉬는 항아리를 보자마자 아이는 항아리가 들려줄 이야기를 궁금해했다.

흙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준다. 항아리도 흙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다. 흙을 이겨 옹기를 만들고, 옹기는 가마에 들어가 구워진다. 완성된 항아리는 트럭에 실려 나가는데 그늘에서 잠이 든 작은 항아리는 그만 집에 남게 된다. 잠이 깬 작은 항아리는 집안을 둘러보기로 한다. 예쁜 도자기들은 항아리 보고 못생겼다며 약을 올린다. 항아리는 슬퍼하다가 장독대에서 자신과 닮은 항아리들을 본다.

-너희는 누구니?

-우리는 숨쉬는 항아리야.

-숨쉬는 항아리?

-응, 숨쉬는 항아리.

-그럼 나도 숨을 쉴 수가 있니?

-그럼, 네게도 곧 뭔가가 담겨질거야. 그땐 온몸으로 숨을 쉬는걸 잊지 말아야해.

작은 항아리엔 메주와 소금물, 숯과 고추가 담겨진다. 메주는 항아리가 숨을 쉬지 않으면 맛좋은 된장이 될 수 없을거라고 걱정을 한다. 작은 항아리는 염려 말라며 온몸으로 숨을 쉴 것을 약속한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 메주와 소금물은 맛있는 된장과 간장이 된다. 흙으로 만든 항아리들은 저마다 자기 소릴 내며 자신들이 숨을 쉬어 음식을 더 맛있게 해주는 쓸모있는 물건이란 말을 해준다.

어린이 동화책은 다양한걸 넣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교훈이나 상상력, 재미와 감동 같은 가치 말이다. 하지만 동화책의 몇 페이지 안에 그 욕심을 다 구겨넣으면 산만해지는데다 제대로된 것 하나도 보여줄 수가 없다. 그런 면에서 '숨쉬는 항아리'는 항아리가 숨을 쉰다는 사실을 재미있게 표현하면서 우리가 가진 것의 소중함도 일깨워준다. 어거지로 구겨넣는 작위가 보이지 않는다. 그건 화자가 항아리이고, 항아리가 자신이 어떤 쓸모가 있을까 고민을 하는 과정을 담아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나 이 책이 좋았던건 읽을 때 감칠맛이 난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다보면 대체 이건 어떻게 번역을 한 건지, 이건 어떻게 읽으라는건지 의심스러운 부분이 가끔 눈에 띄곤한다. 딱딱 말이 끊기거나 비문도 간혹 보이기까지 하는 동화책은 내용 여하를 떠나서 낭독하며 글을 익히고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아이들을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곤한다. 너무 빳빳한 종이로 동화책을 만들어 아이들의 여린 손을 상처나게 하는 동화책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숨쉬는 항아리는 지문과 대사를 많이 갈고닦은 솜씨가 보인다. 읽다보면 대사나 설명문이 입에 착 달라붙어 대화하듯이 아이와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이도저도 아닌 그저 항아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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