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a야. 밤공기가 찬데 아기를 방으로 옮기는건 어떨까.

- 어. 나 뭐랑 뭐 하고 조금 있다가 할게.

- (한숨은 쉬되 다시 숨을 들이마시며) a야. 너는 내가 언제 맘에 들어?

- 음... 당신이 나한테 잘해줄 때. (잘해주는게 뭐야?) 음... 그러니까 까불면서 재미있는 말 할 때. 나를 웃길 때 (그게 잘하는거야?) 어. 그럴 떄 당신이 좋아.

- 그럼 내가 당신이 좋을땐 언제일 것 같아?

- (므흣하게) 언젠데?

- 해야할 일을 미루지 않고 바로 할 때.

 

 a는 번개와 같은 속도로 일어나 거실에서 자고 있는 아기를 방으로 옮겼다.

 

* 마이너한 영화를 보고 기분이 착잡해졌다. 영화 만듦새가 별로였고 주인공으로 나온 사람은 예술적이라기 보다는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보였다. 상영 후 GV를 하는데 영화 속 인물과 한 시대를 함께한 사람들은 같이 울고 그 시대를 추억했다. 참혹한 실상을 알리기 위해 참혹한 장면을 즉물적으로 보여줘도 될까, 그들만의 추억은 왜 지금 세대에게 공감을 주지 못할까. 슬픔을 강요하고 화를 불러일으키는건 현실을 바꾸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추상적이고 복잡한 마음이었다. 주말에 도서관에 들렀다 사서로 일하고 있는 언니랑 얘기하다 이 영화 얘기가 나왔다. 언니도 영화를 봤는데 기대한 것과 너무 다르고 감정을 강요하는게 너무 싫었다고 했다. 주인공의 예술성이 의심스러우며 연출도 아주 뭣같다고 했다. 나랑 똑닮았지만 어디가서 하지 못할 이야기를 같이 나눈다는데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 c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묻는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준비하기는 귀찮고 실직 상태가 붕 뜬 것 같다고 했다. 이 지역과 나는 안 맞는지 모르겠다고도. 언니는 지역의 문제보다는 지금 아치 상황이 그런게 아니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하긴 어딜가도 잘 사는 사람은 지금 이곳에서도 잘 살겠지.

 

 언니를 파악하기가 힘들다. 독설을 툭툭 뱉다가도 다른 사람에 대한 통찰력이 상당하고 헐렁해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똭, 존재감을 드러낸다. 나는 사람을 확신한다. 이 사람은 이럴거고, 저 사람은 저럴거라고 믿어버린다. 몇가지 단서와 그 사람의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을 파악했다고 믿는다. 그래서 늘 관계가 짧고 가벼웠다. 어제와 오늘 내가 다르듯 다른 사람도 그런건데. 물론 어제와 오늘의 나 사이에는 아치란 변별력 있는 정체성이 있지만 어떤 때는 그마저 흐릿해진다. 다른 사람도 그런데. 나는 특별하고 다른 사람은 범주화할 수 있다고 믿다니.

 

 하긴 어느 정도 범주를 정해야 상대방을 대하는게 유연해지기도 하겠지. 나 역시 화남 모드와 견딜 수 있음, 즐거운 상태, 에너지 넘침 등등 상태 표시등을 반짝이는 것처럼. 하지만 규정 짓는 순간 그 틀 밖으로 상상할 수 없다는건 위험한 일이다.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 평이한 대화만 가능한 사람, 일손이 필요할 때 부를 수 있는 사람. 선뜻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 나는 어쩌면 사람을 기능적으로 소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져서 페이퍼로 두서없는 글을 썼다. 친구공개로만 했는데 나는 친구가 하나도 없어 '나만 보기' 글이 됐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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