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간의 적응 기간이 거의 끝나간다. 아이는 오늘 처음으로 내 앞에서 울음을 그치고 먹먹하지만 감정을 추스린 얼굴로 어린이집 차에 탔다. 처음 몇번 울 때 걱정됐지만 가슴이 찢어지진 않았다. 아이가 잘 할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계속 울고 울어서 어린이집을 못다니면 어쩌나란 걱정은 했다. 나는 이기적이고 손뼘만한 내 시간이 중요한 엄마였다. 20개월 동안 옆에 끼고서 아이의 요구와 필요에 따라 움직이는 일에서 잠시 벗어났다. 그리고 닥치는 적막. 이제 뭘하지.

 

 어제 저녁부터 느긋하게 쌓아놓은 설겆이와 빨래, 마늘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바닐라라떼를 한잔 만들어 천천히 음미하며 마셨다. 정새난슬의 '다 큰 여자'를 읽는다. 넘치는 열정과 분노, 혼란스러움이 나와 닮은 사람. 모순된 자신을 바라보며 전진하는 사람. 그의 모습에서 나를 보며 조용한 아침을 보냈다.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다 SNS에 댓글을 남긴 a의 타래를 타고 그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아기가 초등학생이 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이내 생협 위원장이 되었단다. 로망이었던 취미를 하고 역량개발 워크숍을 다니는 a의 일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조용한 아침은 들썩이기 시작했다. 자기소개란에 누군가를 부러워한적이 없다고 적을 정도로 다른 사람이 선망할만한 삶을 사는 누군가. 나처럼 흔들리지 않고 무엇으로든 성공하고 어떤 순간에도 빛나는 사람.

 

 a가 누군가의 애타는 러브콜을 받으며 일을 시작한 것과 다르게 내가 구직을 하기 위해선 엄청 애를 써야한다. 그가 하는 활동들은 나 역시 하고 싶었던 것이거나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활동들을 통해 배우지 않고 경험을 쌓지 못했다. 일이 되거가는건 더디고 관계는 어렵다. 실력은 한참 지나도 도돌이표다. 으쌰으쌰 새로운걸 만들고 기획하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걸 꿈꾸지만 다른 사람을 포용할만한 사람은 되지 못한다. 그럼 다른 사람이 내미는 손에 감동하는 시늉이라도 해야하는데 이내 삐딱선을 탄다.

 

 여전히 '인기 많고 싶은' 바람이 맘 저편에서 미약하게 팔랑이는데 인기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행동이나 말은 하지 않는다. 진짜 이율배반. 남을 배려하거나 의식적으로 듣기 좋은 말을 하지 못한다. 얼마 전 역할극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낸 아이디어인데 나는 서브 악역을 맡으려고 했다. 누군가 '아치는 왜 누굴 때리고 구박하는 역할만 해?'라고 묻지 않았으면 생각해보지 못했을 빈틈. 나는 악역이나 서브가 편하지 주인공을 하는 건 어색하다. '못할 것도 없지 뭐.'란 생각으로 어색한 역을 맡아했는데 역시나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아무도 의식하지 않고 난 막 나서고 주목받는 것 좋아하는데 숨고만 싶었다.

 

 긍정적인 기운, 밝고 명랑한 것, 또랑또랑한 건 나랑 어울리지 않는다. 혹은 나는 그런걸 안 좋아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좋아한다. 나도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삐딱선을 타고 트집을 잡아내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건 신문사설로 충분하다. 누군가 관계를 맺는데 그런 점들은 마이너스이다. 그런데 이게 난걸. 여전히 인정욕구에 허덕이고 남들의 말 한마디에 팔랑이는 사람이 나인걸 어쩐담. 시크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누군가의 성공에 진심으로 기뻐하고 비판 대신 응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창밖으로 뒷동 베란다에 널린 이불이 보였다. 초여름 햇살에 바짝 말라가는 두툼한 이불이 나른해보였다. 나른하고 더없이 충분한 표정으로 당신을 응원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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