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채 비빔밥과 참나무 장작 목살구이를 시켰다. 집에서는 거의 고기를 안 먹는데 나와서는 고기 탄 냄새를 지나치기 어렵다. 가져간 현미차를 한모금 마시자 음식이 나왔다. 잘게 썰린 나물을 큰 대접에 조금씩 덜어 젓가락으로 슬슬 비볐다. 아기는 나물을 덥석덥석 잘 받아먹는다. h는 생마늘을 입에 넣으며 고기를 우겨넣는다. 비빔밥은 끌어당기는 맛이 없고 목살은 그을린 맛이 났다. 

 

 한떼의 사람들이 옆자리에 앉는다. 군복을 입은 남자와 여자 둘, 나이든 여자 남자. 부산스럽게 이곳이 맛집이라며 열심히 주문을 한다. 다섯이 먹기에는 많은 양을 시킨 후 군복을 입은 남자에게 근황을 묻는다. 군대 버거를 먹어봤느냐는 여자들의 질문. 우리 때는 3년이나 있었는데 지금은 갈만하지란 늙은 남자의 거드름. 늙은 남자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여자들은 활달하게 이야기를 했다. '즐거운 나의 집'에 어울릴만한 요소들이 말과 태도, 표정에서 자연스레 묻어나왔다. 

 

산을 오르며 '그런 날에는'을 불렀다. h는 빠른 걸음으로 저만치 멀어져(도망)갔다. 밥을 먹은 아기는 유모차에서 잠들었다. 겨울치고는 조금 포근한 날씨라 안심했더니 아기는 그날 저녁부터 콧물을 흘렸다. 산에서 내려오며 포장마차에서 직접 농사 지은 호박과 팥으로 만든 호떡과 국화빵을 먹었다. 오뎅국물을 호호 부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유명한 산이라 외부 관광객만 스쳐지나갔었는데 처음으로 이 지방 사람을 만났다. 평소에 눈인사만 하며 지나치던 사이였는데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언니네는 둘 다 성적이 좋아야 들어갈 수 있는 학교를 나왔다. 언니는 평생 서울에서 살 줄 알았는데 남편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전향적으로 시골에 내려왔다. 요즘은 몸이 안 좋아 남편이 집안일을 많이 '도와'준다고 했다. 남편은 농사를 짓지만 일자리를 구해야할 것 같다고 했다. 처음 농사를 지어서 수익을 내기는 쉽지 않았다. 기반이 안 잡히니 삶이 불안정해진다. 검은 패팅 점퍼를 입은 언니 얼굴이 까칠하다.

 

 차에 태우자 아기는 잠이 깼다.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내 내 품에 좀 더 깊이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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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7-01-26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 보고 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떠올렸는데, 글을 보니 그 노래가 맞았군요. :) 헤, 아치 님 새해 복 많이, 아기랑 건강하시길.

Arch 2017-01-31 22:05   좋아요 0 | URL
치니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 노래 별거 없는데 참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