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아이들에게 꿈을 묻는 대신 어떻게 살건지를 물었다. 꿈은 추상적이고 현실에 발 딛지 않지만 자신이 지향하는 어떤 바대로 사는 게 좀 더 믿음직스러웠달까. 그렇다고 어떤 직업을 갖을지 묻는 것도 이상했다. 어른의 세계에서 직업은 현실적이지만 아이의 현실에서 직업은 추상적이다. 내가 평소에 어떤걸 좋아하고 어떻게 지내는게 좋은지 한번쯤 곰곰하게 생각하고 해줄 수 있는 답변, 그게 어떻게 살거야.로 압축된거란 생각을 했나보다.

 

 임경선의 글을 찾아 읽지는 않았는데(이래놓고 내가 예전에 그녀의 글을 얏호! 좋아! 이랬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건 집이 데워지고 있어서인걸까) 이 책을 보면서 차분하고 조용히 짚어주는 느낌이 좋았다. 개인의 노력과 사회제도의 개선이란 이분법만 있는 게 아니라 오늘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해 만족하는 개인의 성실함에 대해, 자존감은 어렸을 때 완성돼서 끝나는게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들여다보고 조금씩 나아져가는거란 얘기, 현실과 꿈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현실적인 문제도 해결하면서 꿈을 꾸는대로 살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지점 등 사람들을 상담해주며 쌓인 내공이 '태도'란 가치로 가지런히 정리됐다.

 

 그 중에서 좋았던 '가사노동' 부분. 내가 막연하게 불쾌감을 느꼈지만 정리되지 않은 생각과 감정을 제대로 짚어준 글, 에세이를 이 맛에 읽는다. (군데군데 뺀 부분 있음)

 

 평균적인 386세대의 남자라거나 그가 자란 남아선호적 환경을 고려해보면 지금 이만큼 가사 분담을 하는 게 감개무량하다. 그런데 여기서의 슬픔은 남편이 환골탈태해서 노력한들 그 수준은 내가 원하는 가사 분담의 기준을 완벽히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물론 남편들 중엔 시키면 거부하고 하지 않거나, 꾸물거렸다가 투덜대며 하는 이들도 있다. 시키면 하라는 대로 해주는 남자는 양반일까? 한데 나는 그게 성에 차지 않는 것이다.

“네가 하라는 대로 할게.”

 마님의 분부만 기다리겠다는 머슴 같은 대사가 그다지 기쁘지가 않다. 그 말의 행간에 스스로가 가사일에 대한 주인의식이 없음이 드러난다. 주도권이나 자발성, 책임을 갖지 않겠다는 얄미운 선언처럼도 들린다. 그러니까 자신은 어디까지나 ‘협조적인’ 비관련자의 입장으로 남고 싶다는 거? 뭐 하나 시킬 때마다 사랑과 존중의 마음으로 ‘부탁’하고 일을 어설프게 끝내놓은 다음에도 반드시 ‘칭찬’해주는 것. 아, 이것 자체도 피곤한 일이다.

 가사 분담에 대한 ‘파블로프의 개’ 훈련을 반복하면서 남편에 대해 한 가지 오해를 풀었던 것은 그들이 일부러 몸을 사리는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내 남편 포함 많은 남자들은 몰라서 먼저 하지 않거나 해야 된다는 의식 자체가 자동 탑재 되어 있지 않았다. ~ 남자들은 (여자들의) ‘피곤하고 힘들다’를 곧이곧대로 ‘피곤하고 힘들다’로밖에 이해하지 못한다. 반면 여자들은 남자들이 상상하는 만큼 깔끔하지도 않을뿐더러 은근히 더럽고 게으르지만 가사일에 대해서는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이 있음을 어느샌가 슬프게 체득하고 만 것이다. 그런 전후 사정에 대한 센스가 없는 그들에게 “당연히 같이 해야 하는 일인데 왜 내가 ‘부탁하듯’ 말해야 돼?”도 만만치 않게 열받는 지점이다.

 처음 일을 시키고 몇 차례 반복하면 하나의 습성이 생긴다. 말을 굳이 부드럽게 부탁 식으로 하지 않아도 아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주지시켜주면 남편은 그 일에 반자동적으로 착수한다. 경험이 더 쌓이면 이젠 문장이 아닌 단어 몇 마디, 눈에서 뿜어지는 빔 한 줄기로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곧잘 알아듣게 된다.

 어느덧 남편은 ‘어떤 경우에 아내가 자신에게 일을 시킬 것인가’를 사전에 감지하기에 이른다. 이제는 어떤 ‘징조’가 보이면 내가 시키기 전에 “밥 먹고 설거지할 테니까 놔둬~”같은 선언을 먼저 함으로써 어린아이처럼 칭찬을 바란다. 물론 나는 “그래, 고마워”라고 대꾸하지만 뚜꼉을 덮어 반찬 통들을 냉장고에 집어넣는 것부터가 설거지임을 깨달을 날이 올 때까지 칭찬은 하고 싶지가 않다.

 ... 내 마음이 불편하느니 차라리 힘들겠다라고 생각해서 그 순간을 참지 못하면 시간이 지나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힘들어질 것이다. 가사 분담은 한 가정에 대해 부부로서 책임을 함께 지는 문제이자 가정 자체가 불행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기에 내가 남편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가정은 남편과 나, 둘이 같이 구축한 세계다. 우리가 더럽힌 것, 먹는 것, 우리가 낳은 것, 모두 우리가 직접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효율적인 노동력을 빌리기보다 우리는 우리대로 효율성을 기해보기로 한다.

 초기에는 가사일을 한 번 시키는 게 그렇게 힘들어도, 가사 분담 문제로 불편하거나 싸웠다 해도, 가사 일에 관한 소통 패턴을 만들어서 주도하면 어느새 점점 부부간의 자연스러운 협업 체제가 만들어져간다. 남편도 몸에 익어 점점 덜 버거워하고 가사일을 하면 할수록 보기보다 힘든거구나, 를 통감하면서 그간 아내의 수고를 이해하고 자신이 더 해야 할 책임을 느낀다. 해보지 않으면, 그것도 의무적으로 반복적으로 해보지 않으면, 그것이 보기보다 얼마나 고된 노동인지를 알 수가 없다. 이제는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 없이 도움이 필요할 때 남편에게 말하면 바로 한다. 서로의 노고를 고마워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걸로 경시하지 않는 것,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많은 것들은 사랑으로 함께해나갈 수 있다. 인간적인 공정함과 낭만적인 관대함을 최선을 다해 양립해나가고 싶다.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더 나아질 것이다.

 

 

 

 

 

 

 

 

 

 

 

 

 

 

 그녀는 페북에서 팔로우 한 한 작가가 매번 '좋아요'를 누른 유저 중 한명이다.그녀의 글을 읽으면 내가 '가위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걸 가위의 섬세한 매력과 단호한 절단력 같은걸로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게 신기하고 부러웠다. 얼마 전 '유혹의 학교'란 책을 냈는데 나는 최근에야 '관능적인 삶'을 읽었다. 관능이 발끝에서 몸 전체로 퍼지는 끈적거리지만 질척이지 않은 글을 읽는건 짜릿했다. 다양한 글들이 있는데 그 중 임경선의 책 같은 글이 좋았다. 작가 외에는 해볼 수 없는 감성의 깊이에 다다르는 것 말고 나도 한번쯤 해볼 수 있는 것. 일테면 사랑하는 사람을 지긋이 바라보며 어제와 달라진 점, 표정의 변화, 내가 좋아하는 부분 찾기 등

 

 a를 가만히 바라봤더니 a왈,

- 왜 째려봐.

이래서 김새긴 했지만 모처럼 누군가를 응시하면서 그의 눈이 나이들어가는걸, 웃을 때 작은 주름이 아른거리는 얼굴을 보는게, 입매가 오물거리는걸 보는게 좋았다.

 

 

 

 

 

 

 

 

 

 

 

 

 

  이 책을 왜 이제야 알게 됐나 아쉬운 맘으로 허겁지겁 읽다가 조금 지루해졌다가 반짝이는 부분에서 같이 눈을 빛내며 읽었다. 나도 그녀처럼 어렸을 때 섹스를 하고 싶었다. 쫌탱이에 겁이 많아 그 바람이 이뤄지진 못했지만 '처녀막' 따위가 나를 억압하는 것 같아 빨리 섹스를 하고 싶었다. 스무살 넘어 어거지로 한 첫 섹스에서 처녀막 아닌 질주름에서는 피가 나지 않았다. 상대가 나를 처녀로 생각하지 않아, 그동안 자전거를 타왔던 게 '어떤 효과'가 있는 것 같아 뿌듯했다.

 

 오로지 섹스만을 즐길 줄 아는 여자는 쉽게 다리 벌리고 다니는 년이라고 욕먹고, 섹스하고 싶은데 ‘허락’해 주지 않는 여자는 비싸게 군다고 욕먹으며, 버리려는데 자꾸 눈치 없게 들러붙는 여자는 구질구질하다고 욕먹는다. 그 어디에도 ‘여자’들의 욕망과 생각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남자들 비위 맞추는 법만이 침대에서 남자에게 사랑받는 법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포장돼 여자들을 현혹시킬 뿐이다.

 ‘남자는 질투의 동물이기 때문에 섹스를 했어도 안 한 척 최대한 경험이 없는 것처럼 보여야 된다. 팬티 벗길 때도 허리는 절대 들지 말아야 한다. 남자는 섹스를 하고 나면 금방 싫증을 느낄 수 있으니 항상 새로운 이벤트를 준비해라. 남자는 시각에 예민하니 야한 속옷을 입어라. 침대는 여자하기 나름이다. 자지만 빨지 말고 불알과 항문 사이를 핥아라. 섹스를 많이 하면 보지가 늘어날 수 있으니 케겔운동을 꾸준히 해라. 남자는 의외로 섬세한 동물이니 섹스가 불만족스러워도 잘 돌려서 말해야 한다. 남자의 자존심을 죽이면 발기부전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조금만 바꿔 생각해 보면 전부 모든 일의 책임을 여자에게 돌리려는 말임을 알 수 있다. 발기부전도 남자 자존심 못 세워 준 여자 탓, 침대 분위기가 시들해도 섹시하지 못한 여자 탓, 싫증나서 바람나도 여자 탓, 쉬운 여자 취급받아도 다리 벌린 여자 탓. (85p)

 

다른 섹스 칼럼니스트들이 종종 인터뷰에서 “저 생각보다 얌전해요”, “섹스 칼럼니스트가 헤프다는 건 선입견이에요”라며 얼마나 자신이 바람직한 여성인지를 드러내려고 애쓰는 걸 보면 이건 나만 겪는 일(섹스에 대해서 글을 쓴다는 이유로 매일 같이 섹스하고 언제든 섹스 제안을 받아들일거라는 오해)은 아닌 듯하다. 아마 이건 섹스에 대해서 글을 쓰거나 편하게 말을 하는 여자가 그만큼 적다는 뜻이기도 할 거다. 눈치 없이 들이대는 남자들의 객체 수가 많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이런 ‘취급’이 무서워서 섹스에 대해 말하기를 피한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침대에서 더 이상 오르가슴을 연기하지 않고, 자지가 작은 남자에게 오럴섹스나 핑거섹스로 나를 더 즐겁게 해 줄 것을 요구하며, 좋아하는 체위에 대해 말하고, 섹스하기 싫은 날은 싫다고 말하는 순간, 더 재미있는 세상이 눈앞에 펼쳐질 거라고 장담한다.

 성해방은 섹스를 좋아하는 것도, 섹스를 무조건 많이 하는 것도, 섹스 제안을 거절하지 않는 것도, 섹스 후에 신비감이 떨어졌다고 차여도 상처받지 않는 것도 아니다. 어떤 것이 좋고 어떤 것이 싫은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성해방이다. 섹스에 대해서 여자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입을 열 때, 여자들이 자신의 ‘욕망’에 대해 알 때 비로소 진정한 성해방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87~88p)

 

그가 회사에 가 있을 낮 시간에 그의 오피스텔에 가서 서랍 안에 들어 있는 바이브레이터를 꺼내 몰래 재미를 보곤 했었다. 탁 트인 커다란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으며 혼자서 느꼈던 오르가슴은 끝내줬다. 자신이 상대방의 모든 욕망을 채워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자 인간의 오만이다. 딜도가, 바이브레이터가, 섹스토이가 상대방을, 그리고 나를 더 나은 쾌감의 길로 인도하리라는 것은 받아들여야만 하는 진실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남자들이 불쾌해가거나 자존심 상할까 봐 자지가 마음에 안 들어도 말하지 못해 왔던 여자들의 과거는 이제 떠나보낸 때가 되었다. 작다는 말 몇 번으로 자존심이 상해 발기부전이 되어버린다는 건 그만큼 소심한 남자라는 증거일 뿐이다. 타고난 이 작은 자지로 어떻게 더 즐거운 섹스를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삶을 대하는 건강한 자세 아닐까. 작다는 말을 한번도 못 듣는 바람에 자기가 작다는 것도 모르고 살다가, 작다는 말을 해준 솔직하고 고마운 여자를 오히려 문제 있다고 치부해 버리는 뻔뻔함이라니 말이 되는가. 그깟 작다는 말 몇 번 듣고 자지가 서지 않아서 괴로워하는 남자들은 그렇게 계속 괴로워하도록 두자. 다음번에 이 남자를 만날 다른 여자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인류애를 발휘해야 할 때가 왔다.

 

  20대 때는 여자에게만 씌어진 성적 억압은 싫다며 성해방'적'인 태도를 유지했지만 그것 역시 치기와 억지에 불과했다는걸 이제야 알게 됐다. 그녀의 말처럼 성해방은 내가 자유롭게 내 욕망에 대해 제대로 알고 솔직히 말하는건데 나는 섹스를 빨리 많이 하면 쿨한줄 알았다. 나 역시 이중규범에 꽁꽁 싸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관계에 매몰돼 허우적거렸다. 섹스할 때 좀 더 과감하고 자신에게 솔직했다면 어땠을까. 살짝 후회되는 부분.

 

 요즘 같은 세상에 10대가 그것도 모르는 사람과 섹스를 하는게 말이 되냐고 묻는다면 이 책을 오독한거라고 말하고 싶다. 여자만의 여행기와 에세이에서 그런 식으로 트집 잡을 건 얼마든지 있으니까. 오히려 이 책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솔직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섹스를 돌아봤으면 한다. 가짜 오르가즘을 연기하지 말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나와 상대를 즐겁게 하는 섹스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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