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여자는 연신 아기가 예쁘다고 했다. 아동심리학자나 발달학자들이 딱 좋아할만한 적절한 반응과 추켜세움, 환한 미소. 아기는 자꾸만 나 대신 여자를 쳐다본다. 이모가 좋으니까 이모만 보네, 하니까 그만큼 엄마한테 안정감을 느낀다는 말을 한다. 아, 이런 초긍정과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걸까. 그렇다고 이게 또 과한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적절하고 센스있고 위트있다. 배우고 싶다가도 기운 없어, 라고 포기하게 되는 그 어떤 기운.

 

 나는 아기를 낳은 이후로 화장을 한번도 한적이 없고 주로 냉장고 바지에 티셔츠만 입었다. 아기랑 같이 백일 무렵에 빠진 머리카락이 나는터라 머리에 까슬거리는 머리칼이 자라있어 지저분했다. 피부에는 잦은 외출로 반점 같은 게 생겼고 표정은 늘 그렇듯 피곤해 보인다. 새옷을 입은 것처럼 깔끔한 흰바지에 햇노랑빛 하늘거리는 블라우스는 정말 잘 어울렸다. 원래부터 딱 맞춰진 듯 자신에게 어울리는 악세서리와 단정하게 묶은 머리. 비교되고 부럽고 신경쓰였다.

 

 전화가 걸려왔는데 여자가 도레미파'솔'로 전화를 받았다. 항상 '솔' 리액션이면 힘들지 않냐는 소리에 전보다 더 환하게 웃는다. 자신의 아들이 자랑할 게 있으면 '엄마, 이거봐라'이러면서 미리부터 예고를 하는데 최대치 리액션을 장전해서 아들을 북돋는다는 말을 한다. 말 안 해도 행복이 뚝뚝 떨어진다.

 

 사실 여기에는 다른 각본이 있다.

 

 우린 정말 모처럼 만났다. 우리 사이에 아기를 낳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공감대가 형성됐다. 나는 그녀의 사근한 말투와 환한 미소가 좋다. 나보고 왜 기운없냐고 다그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간다. 페북 친구 100명이 부담스러워 친구 1300명 있는 그녀 앞에서 친구 정리를 했다는 얘기를 했다. 그녀는 콧방귀를 뀌었다. 근데 그게 하나도 밉지 않다. 경단, 경력단절여성은 사회적 배려 대상자라는 말에 아득했는데 지금은 이 일의 끝이 어딘지, 자신은 어디에 닿아있을지 모르겠다고 한다. 아직 시작도 안 한 나는 그 아득함이 가늠이 된다.

 

 막연했던 계획을 술술 털어놓고 홀린 듯 맘을 털어놓았다. 다른 일로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자리를 옮길까 어쩔까 망설이는데 자연스럽게 다음을 기약한다. 다음에는 꼭 같이 밥 먹자며 헤어졌다. 네가 부럽다고 그런데 참 좋다고 말하고 싶다. 밥을 먹으며 네 화려한 이력에 살짝 기죽은 나를 보여주며 얘 웃긴거 보라며 실없는 농담을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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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5 02: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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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5 21: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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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5 22: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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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6 10: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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