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이 워크숍을 가고 동생도 점차 바빠지는 시기. 어제 오늘 아기랑 단둘이 있었다. 어제는 비가 안 와 더위가 한풀 꺽일 무렵 유모차를 끌고 밀며 바깥바람을 좀 쐬었다. 오늘은 비가 오다 안 오다 하니 괜히 나섰다 비를 맞을까 꺽정스러워 나갈 엄두를 못냈다. 그야말로 셀프 감금이다. 아기랑 놀다 누군가 오거나 잠깐 나갔다오면 분위기 전환도 되고 나도 잠깐 숨쉴 틈이 있는데 이건 꼼짝없이 대기상태로 아기가 잠들 때까지 있어야 한다. 혼자 아기 키우는 게 힘든 것보다 아기에 대해 말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게 더 적적하달까.

 

 아기에 집중하면서 몇개 발견한 건 있다. 아기는 이유식을 잘 먹지만 아직까지는 우유를 배부르게 먹고 싶어한다. 새로운 물건을 엄청나게 좋아한다는건 알고 있었는데 눈이 핑핑 돌아갈 정도로 집중하는 건 처음. 그리고 또 뭐가 있었더라. 긴장이 툭 끊어져버리니까 기억도 뇌도 기능이 툭 저하된 듯하다. 아기는 순한 편이고(이젠 무슨 주문 같다.) 낮잠도 두번이나 자고 밤에 자면 쭉 자니까 요령껏 나 혼자 쓸 시간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런데 혼자인 시간엔 이유식을 만들고 마늘을 까고 (그걸 대체 왜!) 멸치를 까는 등 집중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아냐. 일을 하지 않고 멍하니 드라마 보는 시간도 필요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기가 기어다니기 시작하면 좋은 시절 다 갔다고 사람들이 겁줄 때 콧방귀 뀌었는데. 누가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배밀이를 하고 플랭크 자세로 무릎을 들 때 아찔한걸 보면 그 콧방귀 반납하고 싶다. 아기 낳기 전엔 '그때가 제일 편할 때다', 아기가 태어나서 누워있을 때는 '지금을 누려.'라고 하던 사람들에게 일일이 미안하다고 하고 싶다. 그럴거면 왜 아기를 낳냐고 따져묻지 않아 다행이다. 손에 닿는 모든 물건을 다 만지고 물고 뜯고 빤다. 조금만 가까이 가면 머리카락을 휙 잡아당겨 머리 끝이 얼얼해진다. 이해할 수 없는 괴상한 소리를 내고 보행기에서 펄쩍펄쩍 뛴다. 가끔씩 너무 사랑스러워 꼭 깨물어주고 싶다가도 앞서 말한 것들을 순차적으로 혹은 뒤죽박죽 시전해보이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난다.

 

  점심에 국수를 하려다 좋아하는(이라고 적고 처치해야하는 이라고 읽는다.) 야채들이 눈에 띄어 다시마 육수를 내서 채소 샤브샤브를 했다. 무려 아기랑 나 단둘이 있는데!  그 전에 이유식을 먹이고 아기 기분까지 다 체크했다. 낮잠 시간 한참 전이고 배도 불렀다. 정말이지 시작은 좋았다. 국물 맛도 괜찮았고 야채 손질도 금방이었다. 젓가락을 들고 먹기를 몇번, 으응 응거리는 아기. 고음까진 아니었지만 저 깊은 곳에서 소리를 끌어모아내고 있었다. 기저귀를 갈려고 봤더니 응아다. 씻기고 기저귀 갈아주고 보행기에 태웠더니 잘 논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먹어볼까. 알맞게 익은 청경채와 배추를 소스에 찍는데 으으 응 으 아!!

 

 보행기가 맘에 안 드나보다. 장난감은 자주 갖고 놀았다고 애초에 관심밖이다. 부엌에서 쓰는 깔때기와 주걱을 대령했다. 심히 만족스러운 듯하여 다시 젓가락을 짚었다. 다시 으으 응 아! 이유식으로 배가 덜 찼나보다. 우유를 타서 먹이니 자려고 한다. 그래, 자거라 너는 자고 엄마는 맘마를 먹겠다. 우유를 다 먹어서 잘 눕히고 자리를 뜨려고 하니 눈을 땡그랗게 뜨고선 놀자 한다. 엄마 밥 좀 먹고.

 

 주걱을 물고 씹고 뜯으며 노는 동안 국수까지 넣어서 점심식사를 끝마쳤다. 시계를 보니 식사를 하는데만 2시간이 걸렸다. 포만감이 안 드는 건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정리하고 설겆이 하려고 하는데 잠이 온다고 칭얼댄다. 재우려고 같이 자장자장 하다 나도 같이 잤다. 기저귀도 빨고 설겆이도 해야하는데. 깨어보니 저녁. 다시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이유식을 데우고 밥을 하고 찌개를 끓이고 그리고. 하, 뭔 얘기를 하려다 여기까지 온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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