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기 전에 자기 자신을 OO맘이란 호칭으로 부르는 게 정말 싫었다. 아기를 낳으면서 자신은 없어지고 누구 엄마로만 호명된다니. 프로필 사진이나 자신을 나타내는 것들은 다 아기 사진이나 아기와 관련된 것으로 바뀐다. 그런 게 가당키나 한 건 둘째치고 그게 정말 본인이 원하는 삶인지 궁금했다. 내가 아이를 가진걸 알면서 주위 사람들은 압박까지는 아니어도 으례 아기 엄마가 될 여자가 받아들어야 하는 말들을 해댔다. 아기 낳는데 이렇게 저렇게 해도 돼? 아기가 좀 작아서 배가 안 나왔네보네, 혹은 아기가 커서 개월수에 비해 배가 나왔나보네 (어느 장단에 내가 춤을 춰야 돼?) 스스럼없이 태명을 따서 누구 엄마라고 할 때는 불쾌할 정도였다. 왜 나를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엄마로 규정하는데! 나는 아치인데!

 

 어느 여행기에선 한술 더 뜬다. 오랜만에(혹은 결혼하고 처음) 가족들과 떨어져 여행을 한 주부들이 가족 걱정에 여행을 즐기지 못한 것. 이를 본 비혼 여성은 왜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지 못하는지 궁금해했다. 왜 결혼을 하고 나면 여자는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없는걸까. 혹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지 말라는 압력을 받는 걸까.

 

 나를 온전히 지우고 누구의 엄마로만 존재하고 역할을 수행하는 일이 정말 끔찍하게 느껴졌다. 물론 난 당연히 누구 엄마고 여러 역할과 정체 중 지금으로선 누구 엄마인게 정말 좋다. 하지만 그 틀에 끼워 넣어 ‘왜 엄마 역할을 안 하냐, 엄마가 그러면 안 되지’란 훈수 두는 소리를 들을 때면 반발심이 생겨 아무말이나 지껄이게 된다. 결국 OO맘을 경계한 것은 내가 OO맘의 정체로만 만족하고 그렇게 살까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아기가 태어나고 나는 자연스레 누구 엄마가 됐다. 엄마라는 정체성이 낯설어 가끔 아기보고 ‘이모가 해줄까’라고 할 정도로 아직도 엄마 역할이 어설프다. 여전히 OO맘이란 호칭은 안 쓰지만 내가 엄마라는 사실을 충분히 느끼고 엄마인 나로 사는데 만족한다. 그때 그 여행기에서, 그 엄마들은 가족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맘 그대로를 표현했을 뿐이다. 각자의 가치관대로 사는 건 문제될 것 없지만 엄마란 이유로 어떻게 살아야하고 이렇게 해야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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