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 길에 마주쳤던 개의 이름은 ‘사랑이’다. ‘사랑아’라고 부르면 눈꼽이 잔뜩 낀 얼굴을 내밀며 꼬리를 흔든다. 사랑이는 아이들을 네 번 낳은 베테랑 엄마고 함부로 사람들을 타고 오르거나 무턱대로 짖지 않는 점잖은 개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사랑이가 보이지 않았다. 사랑이가 있던 자리에는 흙과 돌이 한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주인 아저씨는 군에서 공사를 한다고 사랑이가 살던 곳을 비워줘야 했단다. 아저씨 땅이 아니라 군 땅이니 어떻게 할 수 없긴 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엄청나게 큰 흙산을 만들어버렸을 때는 무척 놀랐다고 한다. 지금은 없지만 언뜻 본 공사 안내 표지판에는 물을 끌어올리는 공사를 진행해서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보다 쾌적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취지가 적혀 있었다.

 

  과연 그 물을 끌어올려 전기세 들여가며 분수를 돌리고 밤에는 촌스러운 조명을 밝힌다고 관광객이 올까? 취지부터 잘못됐다. 언젠가 지역 경제의 중요성에 관한 강의에서 춘천 닭갈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춘천에는 닭갈비가 유명하다. 맛있기도 하지만 지역 사람들이 즐겨 먹기 때문에 유명해졌다는 것이다. 관광객은 한때지만 그 지역에서 계속 살고 있는 사람들이 찾아야만 가게도 영업이 되고 맛도 유지가 되는 것이다. 지역 주민들이 즐겨 찾지 않고 밖을 향한 관광을 위한 공사란 첫걸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원래 계획한 것이니 그냥 밀어붙여도 된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공무원은 주민 의견을 모아서 집행할 뿐인데 주민들 뜻과 상반되거나 무리한 일로 예산을 써도 책임지는 일이 없다. 계획이 방만해지고 무책임해지는 일이 허다하다. 이번에도 그렇지 않을까 넘겨짚는 것이다. 하지만 계획의 무모함과 방식의 야만성, 성과에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구조라면 넘겨짚는 얘기가 그리 억지만은 아닐 것 같다.

 

  군의 땅을 무단점유한 아저씨가 권리를 행사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아저씨가 방귀 꽤나 뀌는 지역 유지였다면? 지역 유지가 아니어도 한가닥 성질하는 사람이라면? 혹은 주변 사람들을 끌어들여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랬더라도 이렇게 무기력하게 당했을까 싶다. 물론 이건 ‘떼쓰기’ 밖에 안 된다. 옳은 일도 아니고 추천할 방법도 아니다. 하지만 왜 국가권력은 이렇게 떼쓰기조차 못하는 사람들에게만 영향을 행사하는지 모를 일이다.

 

  이사를 간 사랑이는 낯선 환경에 많이 긴장한다고 들었다. 밤마다 늑대처럼 구슬피 울며 주인 아저씨를 속상하게 한다. 아저씨는 주변에서 개 울음소리 때문에 신경 쓰인다고 개를 치워달라는 얘기가 있다며 혹시 사랑이를 키울만한 곳이 없는지 묻는다. 그럴만한 장소가 없어 그저 죄송하다는 말씀밖에 드리지 못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