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스투어 - 세상에서 제일 발칙한 요리사 앤서니 보뎅의 엽기발랄 세계음식기행
앤서니 보뎅 지음, 장성주 옮김 / 컬처그라퍼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완벽한 한 끼를 찾아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음식 에세이를 쓰는 요리사가 여행을 떠난다. 옆구리에는 카메라맨을 끼고 혀에는 오밀조밀한 미뢰를 장착하고 말이다.


 블랙 코미디가, 슬픈 스릴러가, 깊은 포옹 한 번 제대로 못하는 멜로드라마가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소재와 형식의 미스매치가 내는 까끌한 매력이다. 이 책이 퇴창으로 들여다 본 뉴욕 레스토랑의 부엌 풍경은 식도락이라는 유유한 단어와는 전혀 무관한 스릴과 냉소, 음모(?)로 긴박하다. (필자가 다닌 요리학교의 약자도 무려 CIA 다!)  이 책이 누설하는 요리와 레스토랑에 관련된 비화도 흥미진진하지만, 섹시한 에세이를 쓰고 싶은 사람에게도 좋은 참고서다.


 김혜리의 추천도서(그림과 그림자, 완전 사랑해)를 읽다가 위와 같은 구절을 읽고 키친 컨피덴셜, 키친 컨피덴셜하고 다녔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책은 절판이 됐다.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책은 없으니 다행이고 이 책을 만날 확률은 사려는 마음가짐 정도로는 어림도 없게 되었으니 불행이랄까. 그럼에도 섹시한 에세이라니, 섹시하다니!


 앤서니 보뎅의 다른 책을 찾아보다 이 책을 발견했다. 명작 속 음식 이야기라던가 내가 먹어본 음식들이란 기획으로 자잘자잘한 글들을 묶은 책과는 다르길 바랐는데 다행히 책은 재미있는데다 술술 잘 읽힌다. 특히 베트남 시장을 묘사한 부분에서는 어떤 기분에 도달하고, 그 기분의 재료를 이루는 요소들은 어떻게 쏙쏙 튀어나오는지 이러한 모든 것들이 뭉쳐 어떻게 짜릿해지는지를 보여준다.


 베트남, 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잔뜩 웅크린 토끼와 꼭꼭거리며 우는 닭과 발발 떠는 쥐들이 나를 반긴다. 고깃간 주인들은 맨발로 양반 다리를 하고 도마 위에 앉아 이 빠진 그릇에 담긴 밥을 묵묵히 먹는 중이다. 탁하고 나른한 냄새가 확 끼쳐 온다. 냄새의 진원지는 밋(빵나무 열매), 해산물, 그리고 동남아 어디서나 만능 조미료로 애용하는 생선장, 즉 느억맘이다. 채소 가게, 고깃간, 어물전, 닭집, 약장수 좌판, 보석상, 식료품점을 지나 시장 중앙에 이르면 노점이 즐비한 먹자골목이 나온다. 환상적인 음식들이 저마다 자태와 향기와 놀라운 신선도를 뽐내는 곳이다. 여기까지 오면 기분이 슬슬 좋아진다. 형형색색의 음식들은 저마다 개성 있고, 이국적이고, 낯설고, 그래서 매력적이다. 모조리 먹어 치우고 싶은 충동이 치솟는다. 예고 없이 찾아온 허기와 호기심이 무아지경의 행복 속으로 나를 이끈다. 조증의 파도에 휩싸인 조울증 환자가 이런 기분일까. 나는 순식간에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된다.


 성급하게 우아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부지런히 먹고 감탄하고 ‘이런 얘기를 책으로도 써도 되나’ 싶을 정도의 센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털어놓는 요리사, 에세이스트 엔서니 보뎅. 굴을 먹다가 생물학적인 얘기를 이렇게 와닿게 표현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굴이란 생물은 경력을 중요시하는 남자 배우라면 감히 꿈도 못 꿀 만큼 철저한 양성애 동물이다. 실제로 해마다 성을 바꾸기도 한다. 그러니까 굴한테 “가서 네 좆이나 빨려무나”라고 해도 그리 험한 욕은 아닐지도 모른다. 굴 수컷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물속에서 사방팔방 전방위적으로 정액을 내뿜기 때문에, 그해에 암컷이 된 굴은 이 무차별 임신 구름에 휘말려 꼼짝없이 수태하는 수밖에 없다.


 포루투갈에서 산짐승의 죽음을 보고 ‘먹을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일상의 잔혹성’을 느끼지만 그 맛은 훌륭했다며 다음엔 안 먹고 버리는 양을 줄이겠다고 다짐하고 러시아에선 보드카를 너무 안 먹어서 걱정인(매상과 월급이 관계있는)웨이터 때문에 과음을 한 후 비틀거리며 촬영 화면을 뜨기 위해 연기를 하다 절대 절대로 TV 촬영은 걷잡을 수 없이 피곤한 일이라며 투덜거린다. 베트남에서 산해진미를 맛보며 베트남 음식이라곤 쌀국수 밖에 모르는 우물 안 독자를 약올리다 베트남전으로 부상을 당한 사람들을 보며 혼란스러워한다. 어렸을 적 프랑스에서 먹은 음식을 그대로 재현하지만 사라진건 맛이 아니라 기억과 아버지의 빈자리라는걸 깨닫는다.

 

 결국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굉장하고 최고로 맛있는 음식 이야기가 아니라 음식을 먹는 사람들, 평범한 도시인의 식탁에서 사라진 풍경에 대한 이야기였다.


세상에서 제일가는 한 끼라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손이 많이 가는 요리나 제일 비싼 요리일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사실쯤은 이미 아는 바였다. 만찬 식탁에서 기적을 일으키는 데 중요한 요소는 요리사의 솜씨나 진귀한 재료가 아닐 수도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진정 의미 있는 한 끼를 꼽을 때에는 음식에 얽힌 뒷이야기와 추억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다락방 2012-01-18 17:46   댓글달기 | URL
굴 때문에 읽어보고 싶네요. ㅎㅎㅎㅎㅎ

Arch 2012-01-19 09:48   URL
히히

like 2012-01-18 21:29   댓글달기 | URL
키친 컨피덴셜, "쉐프"라는 제목으로 다시 나왔어요. (한권의 책이 2권으로 나누어졌지만,,)
키친 컨피덴셜속의 굴체험 이야기도 인상적이랍니다.

Arch 2012-01-19 09:49   URL
글만큼이나 저자가 맘에 들었어요. 쉐프도 조만간 읽어봐야겠어요.
라이크님 고맙습니다.

함께살기 2012-01-19 03:47   댓글달기 | URL
좋은 마음을 좋은 손길에 담으면
좋은 밥이 되겠지요~

Arch 2012-01-19 09:49   URL
그렇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