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 빔 벤더스의 사진 그리고 이야기들
빔 벤더스 지음, 이동준 옮김 / 이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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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아무것도 아니다”란 속담이 있다.
내가 아직 어린아이였을 땐 이 말이 꽤 명쾌하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적어도 사진에 있어서 이 말은 옳지 않다.
사진에 있어서 한 번이란, 정말로 오직 단 한 번을 의미한다.


한번은

<파리, 텍사스>의 막바지 촬영이 한창이던 날,
캘리포니아의 어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클레르가 통화를 하는 동안
난 공룡 한 마리와 맞닥뜨린 적이 있다.

한번은

한겨울 아이슬란드에서
알 수 없는 상실감에 빠진 채 목적지도 없이 이리저리 차를 몰았다.
저녁 무렵, 유황 냄새가 약간 나는 따뜻한 수돗물을 보며 어리둥절해졌다.
알고 보니 레이캬비크에서는 중앙난방을 비롯해 모든 온수가
지하 온천수로 공급되고 있었다.
수영장의 물 역시 지하에서 솟아나는 온천물을 이용한다고 했다.
이튿날 아침 난 수영장에 가보았다.

한번은

뉴욕에 사는 친구 페터 한트케를 방문한 적이 있다.
페터는 소설 <느린 귀향>을 집필 중이었다.
그 무렵 그는 센트럴 파크 동쪽에 있는 한 호텔에서 수도승처럼 세상을 등지고 지냈다.
나의 짧은 방문조차도 그는 혼란스러운 듯했다. (...)
나중에 그의 소설 <느린 귀향>을 읽고 난 후에야 비로소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내가 느꼈던 그를 짓누르던 부담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번은

잘츠부르크에서 베니스까지 알프스 산맥을 비스듬하게 넘어 여행한 적이 있다.
며칠 동안 난 사람을 전혀 보지 못했다. 사진도 거의 찍지 않았다.
일정한 속도로 걷다 보면 멈춰 서는 것마저 부담스러워진다.
아주 오래된 한 농가에 들러 잠시 휴식을 취했다. 농부는 500년도 더 된 집이라고 했다.
수도도 없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다.
할머니는 연신 만족스런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며 혼잣말을 했다.
그날 이후 난 중세시대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상상할 수 있게 됐다.

한번은

그래머시 파크 근처, 22번가와 렉싱턴 애비뉴가 만나는 코너에서 이 젊은 여자를 만났다.
그녀는‘태양 숭배자’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준 사람이었다.

한번은

덴파사르의 시장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질 때였다.
한 소녀가 내 앞에 멈춰 서더니 마치 비의 마법에 걸린 듯 손을 내밀어 빗방울을 받기 시작했다.
잠깐 내 카메라를 응시하는 듯 했지만 날 본 것 같지는 않았다.
소녀는 마법에 걸린 듯, 홀연히 손을 내밀어 빗방울을 받았다.

한번은

해리 딘 스탠턴과 함께 터무니없이 기다란 리무진을 타고
<파리, 텍사스>를 상영하고 있는 극장으로 가던 길이었다.
뉴욕 한복판에서조차 여전히 해리는
(영화 속에서)동생의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아무 말 없이 황야를 달리던 트레비스처럼 보였다.

한번은

휴스턴에 잠시 머문 적이 있다.
그 무렵 휴스턴은 중심 시가지가 막 솟아오르던, 기이한 도시였다.
휴스턴에서 나는 마치 거대한 놀이터에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가능한 모든 색깔로, 가능한 모든 형태의 고층 건물들을 시험해보기 위해
그저 재미로 탑들을 쌓아올린 레고 도시에 사는 느낌.
하지만 고층 건물 가운데 상당수는 텅 비어 있었다.
그 당시 심각한 상태로 치닫고 있던 오일쇼크 때문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건 주차 건물이었다.
스트라이프 무늬속으로 들어가면 시네마스코프 같은 시야를 가능하게 했다.

한번은

할리우드의 번화가에서 타이론 파워의 핸드 프린팅을 열심히 닦고 있는 여인을 만났다.
난 그녀에게 다른 스타들의 핸드 프린팅도 이렇게 깨끗이 닦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타이론 파워의 것만 닦는다고 했다.
왜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는 파워를 가지고 있거든요!”

한번은

몇 주 동안 텍사스를 이리저리 돌아다닌 적이 있다.
만약 텍사스를 단 한 장의 그림으로 정의해야 한다면 난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카우보이 모자를 쓴 노인’이라고.

늙은 카우보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참으로 감동적인 형상을 하고 있다.

한번은

이른 아침, 도쿄의 거리를 산책하다 어렸을 적 자주 하던 놀이를 떠올렸다.
“너는 안 보이는 게 나는 보이지, 그게 뭐냐면...”
이렇게 시작을 하고, 설명을 하는 거다.
지금 같은 경우에 그건, 우선 빨갛고, 플라스틱으로 만들었으며, 도쿄의 어느 거리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그날 아침엔 정말로, 빨간 모자처럼 생긴 저 물건을 피해서 사진을 찍는 것이 힘들었다.
피하고 싶다면 그저 하늘을 향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번은

호주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이 거대한 바위산을 찍기 위해 상당히 이른 아침에 눈을 떴다.
그날 하루 종일 에이어즈락 주변을 걸었다.
걷는 동안 단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단지 호텔을 나설 때부터 앞장을 섰던 개 한 마리만이 내내 나를 쫓아다녔다.
정말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더운 날이라,
나처럼 확고한 의지를 지닌 독일인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무모한 행군을 할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이곳 지리에 밝은 가이드 덕분에 숨겨진 아름다운 장소를 몇 군데 구경할 수 있었다. 마침내 내가 바위산을 오르려고 하자 개도 상황을 파악했는지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개는 가파른 경사 아래에서 나를 기다리다가 내가 다시 내려오자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었다.


(음악평론가 차우진의 글)적어도 태도에 있어서, 빔 벤더스는 모범적이다. 그는 여행자로서의 시선을 거부하고 또 부정한다. 눈에 보이는 풍경을 낭만적인 배경으로 전락시키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단지 찍은 사진에 한 줄 감상평을 슬쩍 끼워 넣는 오만한 풍류가 아니다. 스쳐지나가도 그만인 것들을 기어코 붙잡아 질문하고 얘기 듣고 또 기록하는 성실함이다. 바로 그 점이 마음을 쿡, 찌른다. 사진만 봐서는 짐작도 못했을 풍경의 역사와 이야기가 사진 옆에, 앞에, 뒤에 정돈된 문장으로 새겨진다. 그건 흡사 영화의 한 장면처럼 소설의 한 단락 같다.

직접 본 것과 경험한 것, 들은 것을 충실하게 묘사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는 그의 글쓰기는 따라서 사려 깊다. ‘한번은’으로 시작하는 이 모든 문장은 사진에 찍힌 피사체를 함부로 소비하지 않기 위해, 현실 밖으로 던져버리지 않기 위해 적당한 중력을 만들어낸다. 그 힘에 사로잡힌 사진들은 비로소, 현실감을 가지고 지금 여기의 이야기가 된다. 빔 벤더스는 천상 예술가이자 철학자다. 그의 카메라는 렌즈의 뒤, 바로 자신을 바라본다.



 
 
다락방 2011-12-19 17:43   댓글달기 | URL
맨 마지막 감상이 아치의 감상이로구나, 하면서 잘 썼다고 감탄하고 있는데 에에, 음악평론가 차우진의 글이었어요? 흐음. 그러니까 아치도 이 책이 좋다는 말이에요?

Arch 2011-12-19 18:12   URL
아, 다락방이 감탄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어요!
저도 좋았어요. 그런데 뭐가 좋은지 차우진처럼 쓰지 못해서 안타까웠어요. 언젠가 페이퍼로 이런 느낌과 관련된 글을 써보고 싶어요.

LAYLA 2011-12-19 22:26   댓글달기 | URL
오 느낌 좋아요. 책을 읽고 싶어졌어요 :)

Arch 2011-12-21 15:06   URL
`정말, 아주 최고야`까지는 아니지만 아껴가면서 본 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