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의 고양이 - 고양이를 사랑한 젊은 예술가를 만나다
고경원 글.사진 / 아트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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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크게 세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고양이란 동물이 지닌 예술적인 매력’에 대해서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고양이의 다채로운 털 빛깔과 무늬만큼이나, 작가들이 매료된 고양이의 모습도 다양합니다.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그런 고양이의 숨겨진 매력이 전해지길 바랍니다.

두 번째로, 젊은 작가들이 만들어가는 다양한 작업실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나만의 작업실을 만들 수많은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책상 하나, 방 한 칸만 있어도 멋진 작품이 탄생되는 모습을 보면서, 작업실이란 단순히 돈과 땅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마지막으로, ‘고양이와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동물과 함께 살고 싶다고 마음먹을 때, 사람들은 그들이 주는 기쁨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기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사랑스런 모습뿐 아니라 생로병사까지도 함께 겪었을 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그 순간을 어떻게 책임지고 견뎌갔는지, 그 과정에서 느끼는 기쁨과 보람은 어떤 것인지, 함께 살아보기 전에는 알 수 없을 그 순간들을 전하고 싶습니다.

「고경원, 책을 내며」에서

말없이 다정한 나의 '고양이 삼촌' 일러스트레이터 유재선

신비로운 고양이 왕국의 창조자 일러스트레이터 마리캣

박활민이 만든 고양이 그림 액자를 하나 집어 들고 쌀집고양이를 나선다. 액자에는 갑갑한 삶에서 탈출구를 찾는 사람에게 실마리가 되어줄 고양이 스승님의 말씀이 적혀 있다.

당신은 나이가 들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불안 때문에 죽어가는 것이다. 당신의 삶을 죽이는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렇게 싫어하는 불안을 누가 당신에게 주었는가? 불안의 정체가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하지 않는다면 불안은 평생 당신을 따라다니며 삶을 망칠 것이다.

쫓기듯 불안한 삶을 사는 한국의 길고양이들과는 달리, 사뭇 여유로운 다르질링 고양이들의 매력에 자꾸 시선이 갔다. 그때부터 틈틈이 그곳의 길고양이를 그리기 시작했다. 돌멩이에다 고양이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전통 자수와 목각을 배우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알 수 없는 평안함이 찾아왔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그리는 일에는 지친 마음을 다독이는 치유력이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그렇게 다르질링에서 보낸 시간을 ‘인생 방학’이라고 불렀다. 인생에서 드물게 찾아온 선물 같은 휴식의 시간이었다.

금속공예가 신유진의 고양이의 추억 담은 나만의 장신구

노란 줄무늬 고양이 동식이,
"동식이는 집에 있는 남자 고양이들 중에서도 덩치가 좀 작고, 다른 애들에 비하면 꼬리도 못생기고 약해요. 하지만 겉으로는 덩치가 커 보이고 잘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아서, 이렇게 커다란 옷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 모습을 표현해봤죠."

길고양이 찍는 '찰카기 아저씨' 생활 사진가 김하연

화가 성유진의 작품.

<불안한 식욕> 고양이인지 털 뭉치인지 모를 커다란 얼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수많은 손은, 토하고 싶어도 토해지지 않는 마음속의 지옥을 그대로 보여준다. 먹은 것을 반복해서 토해내는 심리의 밑바탕에는 자기 부정과 혐오감이 깔려 있다. 상습적으로 구토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토해낼 수 없으므로 한때 자신의 몸과 하나였던 것, 즉 먹은 음식을 토해낸다. 이들이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는 행동은 제 살을 허물어내는 자기 학대에 가깝다.

성유진의 그림에서 반복되는 구토의 이미지는 자학과는 다른 정화의 의미를 지닌다. 우울증에 걸려 폭식과 구토를 경험한 적이 있는 작가는, 자신의 몸이 속한 불안한 세계를 보타로스로 규정하고, 그 세계를 토하듯 몸 밖으로 밀어냄으로써 평안을 되찾으려 한다. 보타로스란 몸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바닥없는 지옥, 타르타로스가 조합된 개념으로, 무저갱처럼 깊은 마음의 심연을 뜻한다. 사람이 싫다면 헤어지면 되고, 몸담은 곳이 싫으면 떠나면 되지만, 정작 무서운 건 마음이다. 마음이 나를 베고 찌른다 해서, 내 몸에서 떼어낼 수 있을 리 만무하므로.

도예가 김여옥의 작품

인형작가 이재연
<어린 왕자를 만나다> 비스크, 혼합재료, 2010

같은 작가의 작품.
어린왕자에서 나온 노란 뱀과 장미

화가 신선미의 <당신이 잠든 사이 6>

작가가 만들어낸 개미요정들은 순수함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상상력을 되찾아주는 고마운 존재다. 하지만 신선미의 그림 속 여인들은 대부분 깊은 잠에 빠져 있어 개미요정의 활약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줄어든 주스를 보고 의아해하거나 사라진 물건을 찾아 온 집 안을 뒤질 때도 그것이 개미요정의 소행일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한다. 심지어 깨어있을 때도 사람들이 개미요정을 보지 못하는 건, 그들이 이미 상상의 세계로 가는 문을 닫아버린 어른이기 때문이다. 헌데, 어른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개미요정도 고양이의 날카로운 눈은 피할 수 없다.

<진퇴양난> 장지에 채색, 30*130cm,2007

설치 미술가 김경화의 <굿모닝>전, 부산 대안공간 반디 설치 전경, 2008

유희성과 체험성이 강조된 작품을 주로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어린이 체험전시의 단골 초대작가가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서울대학교 대학원 조소과에서 공부를 시작한 게 2004년이었다. 하지만 대도시 서울은 홀로 부산에서 올라온 작가에겐 냉담한 도시였다. 며칠 동안 사람들과 말 한마디 할 겨를 없이 보낸 날도 있었고 4.5평짜리 원룸에서 지내다 보니 갑갑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바삐 돌아가는 세상의 속도에 자신만 따라가지 못하는가 싶어 무력감이 들때면, 작업도 다 포기하고 그만 부산으로 돌아가야 하나 싶었다. 밤이 되면 착잡한 마음을 달래려고 산책을 나서는 게 유일한 숨구멍이었다. 그때마다 눈에 밟혔던 동물이 길고양이였다.
“낮에는 못 보던 고양이가 밤이 되면 보이는거예요. 안쓰러워서 부르면 도망가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길고양이와 나를 자연스럽게 동일시했던 것 같아요. 도시라는 곳은 왜 이렇게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까, 하는 생각을 늘 했거든요.”

화가 안미선의 작품

“제가 본 완두는 늘 어딘가에 갇혀 있는 고양이였어요. 가끔 산책을 시키면 무서워하고 나가는 걸 꺼려하지만, 늘 집 안에서 창밖을 멍하니 내다보면서 동경하는 것 같았고요. 완두는 봄을 참 좋아했어요. 빌라에 살 때 화단에 꽃이 많았는데, 완두는 늘 거길 내다보면서 나비나 벌이 보이면 잡으려고 헛발질을 하는 거예요. ...... 제가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었지만 성격상 하지 못했던 일, 나를 드러내고 싶었던 마음의 한 부분을 고양이로 표현하게 된 것 같아요. 안전한 곳만 찾아 숨는 완두지만, 언젠가는 자연 속에서, 또 더 넓은 세상에서 거닐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 실크에 혼합재료

펠트공예 인형작가 권유진

작가는 그 사이에 동네 길고양이들을 돌보는 캣맘으로 살고 있었다. 고양이를 좋아하게 되면 길고양이의 삶에도 눈이 가고, 예전에는 모르고 지나쳤던 문제들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용기를 내어 그들의 삶에 도움을 주려고 뛰어들었다가 병들어 죽는 고양이들을 보며 상처입기도 하고, 버려지는 고양이들이 끊이지 않는 현실에 분노하기도 한다. 때로는 ‘왜 그들의 삶에 개입했을까’ 후회도 하지만, 결국 다시 마음은 그들을 향할 수 밖에 없다. 혼자의 힘은 미약하기에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내가 아는 어떤 고양이의 삶은 좀 더 나아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길고양이에게 다시 손 내밀 수 있는 힘도 거기에서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가 만드는 모헤어 인형만큼이나 따뜻한 마음을 권유진에게서 본다.


책을 읽다보면 취재하고 기획한 글에서 자료조사 업적을 전시하는 구태를 심심치 않게 본다. 상대방 얘기를 듣고 그 사람의 세계를 보는게 아니라 자신의 좁은 시야에 갇혀 글의 생동감을 떨어뜨릴 때도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취재와 사전 조사의 절차를 밟되 과하거나 부족함없는 글솜씨로 자신이 본 세계를 얘기한다. 아마도 고경원이 고양이 취재 전문 작가란 점과 고양이처럼(고양이가 실제로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조심스럽고 사려깊게 취재원과 고양이, 작업실을 대했기 때문인 것 같다.

고경원의 글과 사진은 누군가의 작업실만 구경하고 나오려는 발길을 그 장소와 사람들, 고양이 곁에 머물게 한다. 글이며 사진, 구성까지 군더더기없이 잘 빠졌다. 야무지고 끈기있는 그녀의 손에서 다음엔 어떤 책이 나올지 기대된다.



 
 
말없는수다쟁이 2011-09-26 00:39   댓글달기 | URL
고양이가 참 다채롭네요. 귀엽기도, 신비롭기도, 아름답기도 해요.
또 다른 야무지고 끈기 있는 책이 나오길 기대해봐야겠네요 :)

Arch 2011-09-26 19:43   URL
그동안 여러 기획의 책을 읽었는데 이 책처럼 단단하고 읽을 맛 났던건 오랜만이었어요. 고양이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길고양이에게까지 맘이 미치는 부분들은 아릿하고 좋았어요.

알로하 2011-09-28 16:32   댓글달기 | URL
신선미씨 작품은 참 고와서 좋아해요. 고양이는 매니아가 참 많은 거 같네요. 저도 이 책 술술 넘겨만 봤는데 흥미로웠어요~ㅋㅋ

Arch 2011-09-29 09:40   URL
그냥 술술 봐도 좋고 읽어도 좋았어요. 신선미씨 그림, 저도 좋았어요.
예술가와 고양이는 뭔가 어울리는데 개와 예술가라던가, 소와 예술가 이런건 좀 안 어울려요. 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