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이 워크숍을 가고 동생도 점차 바빠지는 시기. 어제 오늘 아기랑 단둘이 있었다. 어제는 비가 안 와 더위가 한풀 꺽일 무렵 유모차를 끌고 밀며 바깥바람을 좀 쐬었다. 오늘은 비가 오다 안 오다 하니 괜히 나섰다 비를 맞을까 꺽정스러워 나갈 엄두를 못냈다. 그야말로 셀프 감금이다. 아기랑 놀다 누군가 오거나 잠깐 나갔다오면 분위기 전환도 되고 나도 잠깐 숨쉴 틈이 있는데 이건 꼼짝없이 대기상태로 아기가 잠들 때까지 있어야 한다. 혼자 아기 키우는 게 힘든 것보다 아기에 대해 말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게 더 적적하달까.

 

 아기에 집중하면서 몇개 발견한 건 있다. 아기는 이유식을 잘 먹지만 아직까지는 우유를 배부르게 먹고 싶어한다. 새로운 물건을 엄청나게 좋아한다는건 알고 있었는데 눈이 핑핑 돌아갈 정도로 집중하는 건 처음. 그리고 또 뭐가 있었더라. 긴장이 툭 끊어져버리니까 기억도 뇌도 기능이 툭 저하된 듯하다. 아기는 순한 편이고(이젠 무슨 주문 같다.) 낮잠도 두번이나 자고 밤에 자면 쭉 자니까 요령껏 나 혼자 쓸 시간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런데 혼자인 시간엔 이유식을 만들고 마늘을 까고 (그걸 대체 왜!) 멸치를 까는 등 집중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아냐. 일을 하지 않고 멍하니 드라마 보는 시간도 필요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기가 기어다니기 시작하면 좋은 시절 다 갔다고 사람들이 겁줄 때 콧방귀 뀌었는데. 누가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배밀이를 하고 플랭크 자세로 무릎을 들 때 아찔한걸 보면 그 콧방귀 반납하고 싶다. 아기 낳기 전엔 '그때가 제일 편할 때다', 아기가 태어나서 누워있을 때는 '지금을 누려.'라고 하던 사람들에게 일일이 미안하다고 하고 싶다. 그럴거면 왜 아기를 낳냐고 따져묻지 않아 다행이다. 손에 닿는 모든 물건을 다 만지고 물고 뜯고 빤다. 조금만 가까이 가면 머리카락을 휙 잡아당겨 머리 끝이 얼얼해진다. 이해할 수 없는 괴상한 소리를 내고 보행기에서 펄쩍펄쩍 뛴다. 가끔씩 너무 사랑스러워 꼭 깨물어주고 싶다가도 앞서 말한 것들을 순차적으로 혹은 뒤죽박죽 시전해보이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난다.

 

  점심에 국수를 하려다 좋아하는(이라고 적고 처치해야하는 이라고 읽는다.) 야채들이 눈에 띄어 다시마 육수를 내서 채소 샤브샤브를 했다. 무려 아기랑 나 단둘이 있는데!  그 전에 이유식을 먹이고 아기 기분까지 다 체크했다. 낮잠 시간 한참 전이고 배도 불렀다. 정말이지 시작은 좋았다. 국물 맛도 괜찮았고 야채 손질도 금방이었다. 젓가락을 들고 먹기를 몇번, 으응 응거리는 아기. 고음까진 아니었지만 저 깊은 곳에서 소리를 끌어모아내고 있었다. 기저귀를 갈려고 봤더니 응아다. 씻기고 기저귀 갈아주고 보행기에 태웠더니 잘 논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먹어볼까. 알맞게 익은 청경채와 배추를 소스에 찍는데 으으 응 으 아!!

 

 보행기가 맘에 안 드나보다. 장난감은 자주 갖고 놀았다고 애초에 관심밖이다. 부엌에서 쓰는 깔때기와 주걱을 대령했다. 심히 만족스러운 듯하여 다시 젓가락을 짚었다. 다시 으으 응 아! 이유식으로 배가 덜 찼나보다. 우유를 타서 먹이니 자려고 한다. 그래, 자거라 너는 자고 엄마는 맘마를 먹겠다. 우유를 다 먹어서 잘 눕히고 자리를 뜨려고 하니 눈을 땡그랗게 뜨고선 놀자 한다. 엄마 밥 좀 먹고.

 

 주걱을 물고 씹고 뜯으며 노는 동안 국수까지 넣어서 점심식사를 끝마쳤다. 시계를 보니 식사를 하는데만 2시간이 걸렸다. 포만감이 안 드는 건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정리하고 설겆이 하려고 하는데 잠이 온다고 칭얼댄다. 재우려고 같이 자장자장 하다 나도 같이 잤다. 기저귀도 빨고 설겆이도 해야하는데. 깨어보니 저녁. 다시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이유식을 데우고 밥을 하고 찌개를 끓이고 그리고. 하, 뭔 얘기를 하려다 여기까지 온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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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갑고 무뚝뚝한 인상이라 누군가 내게 호감을 보일 때면 일단 경계를 한다. 대개는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이거나 약장수, 혹은 무심결에 베푼 배려가 다일 경우가 많다. 그래서 누군가의 호감에 최대한 호들갑을 떨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익숙하지 않다보니 오바해서 피하거나 홀로 상처입을 때가 많다. 유리멘탈 같으니. 보자마자 서로 혹 반해서 맺어진 친구 사이도 좋지만 서로 조금씩 호감을 쌓아가는 관계도 좋은데 살면서 그런 경우는 한두번 정도였다.

 

 어렸을 때도 그랬지만 나이 들어서 친구를 만들기는 만만치 않은데 요즘 호감가는 사람이 생겼다.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바르고 예쁘다. 좁은 동네다보니 여기 가면 만나고 저기 가면 스쳐서 오다가다 몇번 인사하다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는 사이가 됐다. 아직 서로 나이는 모르고 어떻게 여기로 흘러들어왔는지, 공통의 주제 정도만 얘기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참 좋다. 지금 내 역할에 맞는 친구를 사귀어야한다거나 이런 압박 없이 말이다. 누군가가 궁금해진게 참 오랜만이다. 꾸며낸 상냥함이 아니라 본래 갖고 있는 다정다감함에 스르르 빠져든달까.

 

 통통볼도 아닌게 통통 튀려고 애쓰던 시절에는 무례하게 사람 간을 봤다. 에둘러가지 않고 바로 궁금한 것을 묻고 사람을 파악했다고 자신하며 관계를 맺었다. 지속될리 만무했다. 파악한 것도 거즘 겉핥기가 다였다. 지금은 그러지 않으려고 모처럼 계속 만나고 싶은 사람을 봤는데 함부로 나대지 않으려고 자중하고 있다. 누군 이런 나를 보면서 사람이 바뀐거 같다, 사람이 쉽게 안 바뀐다면서 훈수 두지만 그 말 때문이라도 확 바뀌어야겠다.

 

 오늘처럼 비 오는 날이나 너무 해가 쨍쨍한 날 말고 선선하거나 살짝 흐린 날 맛있는 김치볶음밥을 해서 그이를 초대하고 싶다. 아기 또래의 친구랑 아기는 거실에서 놀고 나는 그이랑 맛있는거 먹으면서 밥을 먹고 코코아를 넣어 카페모카 맛을 내는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싶다. 호구조사 말고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이야기를 조금씩 듣고 내 얘기도 조미료 치지 않고 건네고 싶다. 아기 얘기 말고 우리 얘기를 진득하게 나누고 싶다. 아기들이 가만 놔둘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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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에 대하여 - 판타스틱 픽션 WHITE 1-1 판타스틱 픽션 화이트 White 1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송정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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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으면 5시, 아닐 때는 4시에 아기 밥을 먹이고 7시에서 8시쯤 잠에서 깬다. 아기가 조금 더 자다 일어나면 기저귀를 갈고 아기 밥을 주고 나서 나도 밥을 챙겨먹는다. 이틀에 한번 꼴로 아기 기저귀를 빨고 저녁마다 젖병을 씻는다. 아기는 아침 무렵 1~2시간 놀다 잠이 든다. 전에는 포대기로 업어줘야 잤는데 요새는 우유를 먹다가 잠이 든다. 가끔 다른 곳에서 잘 때 잠투정을 하기도 하지만 잠은 잘 자는 편이다. 아기가 잠든 사이 방을 쓸고 닦거나 그냥 널브러져 있는다. 아침에 응아를 한 경우에는 기저귀를 빨고 아기를 씻기기도 하면서 체계 없이 마구잡이로 집안일을 하며 아기를 돌본다.

 

  오후에도 다시 비슷한 일과가 반복된다. 5시 무렵부터는 저녁 준비를 한다. 외벌이를 한다면 가사와 육아를 내가 전담하리란 예상은 했지만 너무 전담이라 가끔 협박과 한탄으로 신랑이 할 부분을 맡긴다. 하지만 이게 또 애매하다. 처음에 확고한 맘으로 일정 부분 집안일을 분담하게 하리란 다짐을 했다면 지금은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고 온 사람에게 걸레를 빨라거나 설거지를 하라고 하기 미안하다. 그래서 지금은 은근한 압박은 하되 막 시키지는 않는다. 주인의식을 갖으라거나 향후 내가 돈 벌러 나갈 때를 대비하라는둥 말이다.

 

  아기가 비교적 순한 편이고 밖에 안 나가면 벌떡증 나는 사람도 아니라 집에서 지내는 생활이 그렇게 나쁘진 않다. 우울증이 올만한 시기에는 가족들과 동생이 귀찮을 정도로 곁에 있어줬다. 신랑은 퇴근 후 다른 약속 잡아서 노는 것보다 아기 돌보는 걸 낙으로 생각한다. 신랑에게 아기를 맡기고 가끔 영화를 보거나 도서관에 가서 놀다 오기도 한다. 그럭저럭 이 생활에 적응하고 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아기를 낳기 전 대단한 성취를 거두고 승승장부하던 여자였다면 어땠을까. 아기와 함께 그 모든 경력과 성취를 고스란히 반납하고 집에서 아기만 키워야 한다면? 신랑이 나보다 돈을 적게 버는데 꼼짝없이 육아를 해야 한다면 말이다. 딱히 아기를 원한 것도 아니고 갖은 고생 끝에 낳은 아기가 맹렬하게 나를 거부한다면? 그것도 모자라 주위에 나를 응원해줄 사람 하나 없는데 신랑마저 나를 아기에게 해로운 사람 취급한다면?

 

 서늘한 기운, 차갑게 굳어버린 에바의 얼굴, 빛나다 끝을 향해 으스러지는 조명.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보고 남은 건 영상의 이미지와 큼직한 감정 덩어리였다. 결과의 도덕적 판단은 명확하지만 원인은 유보할 수 밖에 없는 사건과 그 후에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를 영화는 이미지로 전달한다. 전지적 시점으로 내려다보며 주인공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이창동 화법은 아니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관객의 시도를 매번 좌절하게 만든다. 목요일의 사건은 누구 편을 들 수 있는 사안도 아닐 뿐더러 단서 역시 부족하다.

 

  책을 읽는 건 반신반의였다. 영화로 충분히 압도당했는데 책이라니. 그런데 책이 더 좋았다. 미국의 문화를 모르면 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고 잘 안 읽히는 문장과 오역, 오탈자가 여럿 있었는데도 한동안 푹 빠져 책을 읽게 만들 정도였다. 라이오넬 슈라이버는 단박에 나를 사로잡았다. 남편인 프랭클린에게 편지쓰는 형식은 탁월했다. 당사자인 에바는 긴장감 없이 넋두리를 늘어놓는 게 아니라 남편과의 미묘한 갈등, 케빈의 비밀과 속마음을 검열하고 조정하며 객관적으로 전달한다.

 

 그동안 접한 틸다 스윈튼의 영화 속 역할은 비현실적이었는데 ‘케빈에 대하여’만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 속 ‘에바’가 훨씬 더 현실적이었다. 영화에서 아기의 울음소리를 피해 공사장 찾아 안도한다거나 공놀이를 하는 씬이 기억에 남는데 책 속 에바는 더 맹렬하게 집요하고 차갑다. ‘어쩌면 내가 셀리아를 사랑하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었어’란 말이 인상적일 정도로 에바는 케빈과의 악전고투에 너덜너덜해졌다. 게다가 사람들은 아이가 왜 그런지를 엄마에게 묻는다. 변명과 자기방어가 무색할 정도로 끈질기게 추궁한다. 에바가 할 수 있는 건 자기변명 대신 무방비 상태로 자신을 노출시키기. 사람들의 의혹은 더 커져간다. 무정한 엄마라면 아이가 그랬을 수도 있다는 가정도 서슴치 않는다.

 

 앞서 얘기한 것과 달리 아기를 돌보는 일은 본인이 아기를 낳기 전 어떤 사람이었는지와 별개로 고달프고 힘들다. 집에 갇혀 아기의 욕구와 활동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아기를 통해 인식과 기쁨의 지평은 넓어지되 사회적인 나는 콩알만하게 쪼그라들고 만다. 그럼에도 앞의 이야기를 한 건 이러저러한 변수들이 고된 육아를 좀 더 가볍게 할 수도 더 무겁게 자신을 짓누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에바에게는 그런 부수적인 도움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케빈은 너무나도 영리했다. 둘은 서로를 너무 잘 파악하고 싶어 쉽게 부모 자식 역할에 빠질 수 없었다.

 

“요즘에 무슨 밴드 음악 듣는지도 물어야지?” 그 애가 진지하게 말하더군. “다음엔 첫째 줄에서 날 간질이는 작고 귀여운 보지가 있는지도 알아낼 수 있겠는걸. 물론 그 단계로 넘어가는 건 전적으로 내 결정에 달렸지만. 하지만 복도에서 영계를 굴리기 전에 난 내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릴 거야. 자, 이제 디저트도 나왔으니 약물에 대해서도 물어봐야지. 조심해, 당신도 날 겁줘서 고개를 떨어뜨리게 하고 싶진 않을 테니까. 당신은 당신이 그걸로 무슨 실험을 했는지 말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나 역시 실험을 했다는 뜻은 아니야. 결국 그 한 병을 다 빨고 나면 당신의 눈은 끈적거리는 시선으로 바뀔 거고, 함께 귀중한 시간을 보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하겠지. 그리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꽉 껴안을 거야.”

“네 말이 맞아, 비평가 선생.” 난 상추를 던져버렸어. “그래,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지?”

“이건 당신 아이디어였어. 난 이 빌어먹을 것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어.” 426p

 

“... 아줌마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는 ‘무식한’이야. 그다음으로는 ‘자랑하는’이고. 잘난 척을 하는 게 아니라면 ‘바보 천치 미친놈 개새끼들보다 내가 훨씬 잘났어.’는 대체 어디서 뚝 떨어진 거지? 그 여자만 옳고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 같잖아. ‘믿고 있기... 다른 나라 사람들이 미국인들을 참지 못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거야.’” 그 애는 이 말에 밑줄을 그은 다음, 혐오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내 눈을 바라봤어. “음. 당신이 다른 멍청한 미국인들과 계속해서 서로 닮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당신이 뚱뚱해지지 않는 거야. 당신이 독선적이고 우월하게 행동할 수 있는 건, 단지 당신이 말랐기 때문이니까.” 여기서 독선적이란 거들먹거리는 걸 말하는 거야. “어쩜 나한테는, 이 빌어먹을 나라에서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생각하지 않는 커다란 암소 같은 엄마가 있었으면 더 나았을 뻔했어.” 433p

 

 하, 어떻게든 뭔가를 쥐어짜서 결론에 도달하고 싶지만 이 리뷰는 많은 물음을 남긴채 끝을 맺는다. 일반적인 도덕은 지루하고 차원이 다른 논의는 낯설다. 나는 다만 서늘한 기운과 날카로운 시선에 압도당한 채 결코 왜 그랬는지에 답할 수 없는 이야기를 읽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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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겨울, 북콘서트 자리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이창근씨 가족이 있었다. 대기실에서 그 가족의 얼굴을 실제로 본 이들은 일순 숙연해졌다. 뭐라 잘 설명할 순 없어도 그동안 버텨오신 날들의 이력이 두 분 얼굴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였다. 가장이 수많은 동료들의 죽음을 견디며 보낸 몇 년과 아내가 생활을 꾸리며보낸 몇 해, 엄마아빠의 투쟁 현장을 따라다니며 아이가 보낸 나날의 세목은 다른 듯했다. 하지만 세 시간 다 보통 시간이 아니었을 거라는 점만은 분명해 보였다. 북콘서트 2부 때 두 분은 고통을 나누는 과정과 의미에 대해 얘기했다. 그리고 두 시간 남짓 주최측에서 준비한 프로그램이 모두 끝났을 때 사회자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 지금 당신을 가장 절망케 하는 건 무엇입니까.

(중략) 이윽고 이창근씨 아내인 이자영씨 차례가 왔을 때, 그녀는 누구도 건너본 적 없는 시절로 혼자 돌아가듯 담담하게 말했다.

“저를 가장 절망하게 만든 건, 더 노력해야 된다는 말이었어요.”

 

  그 말 앞에서 나는 좀 놀랐다. 그리고 또 ‘놀랐다’는 사실 때문에 내가 철저히 그녀의 고통 바깥에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무리 노력한들 세상에는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고통과 그 고통이 담긴 타인의 몸이 있다는 걸 알았다. 이자영씨는 여기서 어떻게 더 노력하라는 건지, 어떻게 더 힘을 내라는 건지 알 수 없어 때때로 절망스러웠다고 했다. 그녀의 대답 속에선 황량한 외로움이 느껴졌다. 육체적, 정신적, 금전적 고통의 끝이 보이지 않을 때, 세상의 무관심과 폭력 속에 홀로 버려진 느낌을 받을 때 그 시간에 잠겨본 자만 알 수 있는 외로움이었다.

 

  그런데 최근 진도 앞바다에서 나는 비슷한 장면을 봤다. 바닷물에 맨발을 담근 채 쪼그려앉아 울고 계신 분의 뒷모습에서였다. 한밤중 ‘우리 아이들을 빨리 꺼내달라’고 진도에서 청와대를 향해 어둡고 캄캄한 길을 십여 킬로미터나 걸어간 분들의 초조 속에도, 파도가 거세게 이는 바다를 향해 ‘힘없는 엄마 자식으로 태어나게 해 미안하다’고 외치던 분의 울음 속에도 그런 한기가 있었다. 보통 사람은 가늠할 수 없는, 표현할 수도 없는 거대한 외로움이 그것이었다.

 

[눈먼자들의 국가]에서 김애란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

 

 

 

 

 20대 국회에 오는 6월 8일, 41만 6천명의 서명을 받아서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개정 입법청원을 하려고 합니다. 아직까지 많이 모자라다고 하네요. (지난주까지 약 15만명).
 세월호 참사 특조위가 세월호 조사까지 할 수 있도록 조사기간을 보장할 것, 성역없는 조사를 보장할 것, 특조위의 독립성 강화 등을 요구하는데요. 서명하셨다면 안 한 분들 동참시켜주세요.

링크 참조해서 서명에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온라인 서명: https://docs.google.com/forms/d/12wFEU8xCJ47vsEZ3_OXZOiYjTqgQhVQ5oCu4-lYs52c/viewform?c=0&w=1

4.16 연대 홈페이지: http://416act.net/notice/14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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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기를 안았는데

 아기가 엄마 옷을 잡는다는 게 살을 찝었다.

작고 통통한 손인데도 따끔했다.

아파서 인상을 쓰며 '엄마 아프잖아. 잉잉'이랬더니

아기가 입을 삐쭉거리며 울려고 하는거다.

삐죽거리는게 귀여워 요 며칠 괜히 한번씩 우는척을 했다.

울것처럼 입을 삐죽거릴 때도 있고

딴짓을 할 때도 있고 그냥 환하게 웃기도 한다. 

아기를 감정적으로 힘들게 하고

우는척 하느라 목이 아프니 그만둬야하는데

맘처럼 되지를 않는다.

인풋 대비 아웃풋이 일정하지 않으니 감질나서 더 하고 싶다.

 

인생을 따라다니는 격언이 있다.

모두가 갈 수 있는 헬스클럽이라면 그다지 가고 싶지 않다는 (애니홀에 나왔던 대사인가)

모두가 울릴 수 있다면 나는 우는척을 하지 않는다. 엥?

 

* 아기가 잠든 후 이것저것 하다

핸드폰으로 낮동안 아기를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봤다.

엄마가 내는 돼지 소리와 킁소리에 깔깔 웃는 모습

내려놓은 모빌을 집어서 입에 넣으려는 필사적인 모습

펼쳐지는 책을 이리저리 갖고 놀다 결국 입에 넣는 모습

잠든 아기를 깨워서 한참동안 놀아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잠깐

낮에 집안일하고 드라마 본다고 아기랑 잘 놀아주지 않으면서 

이게 무슨?

 

* 스스럼없이 지내던 언니랑 소원해졌었다.

내딴에는 언니가 너무 스스럼없이 구는데 상처받고

언니딴에는 내가 언니가 고민하는 지점을 

무려 세번에 걸쳐 툭툭 아무렇지 않게 얘기한 것에 맘 상했다. (난 기억도 못하는데)

지난번 쭈꾸미볶음 회동에서 소주 다섯병을 마시며

그동안 쌓인걸 풀었다.

나는 나만 맘 상한줄 알았지, 언니가 그런 맘인지 눈치조차 못챘다.

어제 한 김치찜이 맛있어서 좀 가져가랬더니

오는 길에 현미로 만든 백설기를 갖다준다.

김치찜이 입맛에 맞았냐고 물었더니

맛있게 잘 먹었다며, 고맙다고 했다.

그 말 속에는 김치찜 잘 먹어서

소주 먹으며 화해해서

전처럼 스스럼없이 잘 지내줘서

고마운거란걸 어렴풋이 느낀다.

안 보면 그만. 가족도 그런데 오다가다 알게 된 친구는 더하지.

안 보면 그만이라고 선을 그었거나

알아서 멀어진 사람들에게 일일이 안부를 전하고 싶은 밤이다.

 

* 아 이 드라마 얘기를 하고 싶었다.

또 오해영!

서현진에 대해서 잘 몰랐고 관심도 없었는데

이 드라마 보면서 완전 반했다.

에릭은 뭔가 갇힌 연기를 해서 별로.

특히 누구에게도 말 못한 자신만의 비밀을 탱고로 승화시킨 씬에선 정말

오랜만에 깔깔대며 웃었다.

어느 범주로 묶을 수 없는 여주 성격도 좋고

억지스럽지 않은 진행과 현실적인 서현진 연기도 너무 맘에 든다.

모처럼 홀린 듯 드라마를 보고 있다.

외모주의와 다른 오해영을 '여우같은 여자' 범주로 취급하는 것

몇몇 조연급의 과도한 설정은 별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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