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니, 작년에 한드미 마을을 방문했을 때

사무장님께서 그분이 오셨을 때 심은 나무를 소개해줬다.

유명한 분이 특별히 심은 나무라서가 아니라

문구에 쓰인 평범한 구절 때문에 눈물이 핑 돌았다.


기억하지 않으려고 지나치려고 노력해야만 맘이 안정되는 세상에 살면서

한때나마 풀벌레 노래에 귀를 기울였던 대통령을 둔 사람들이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 매일 새삼 느낀다.


요즘 건배를 할 때마다 박근혜 대통령을 위하여를 외친다.

정말 그분이 잘 하길, 잘 되길, 사람들과 소통하며 아픈 사람 마음 헤아리길

올 한해는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보기만 해도 자꾸 다시 책을 꽂게 만들고 싶어지는 이 이미지는 '서재 결혼시키기'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공감할만한 것.

이렇게 책을 배열한 사람이 '서재 결혼시키기'를 읽고 반어적으로 해석한거라면 대박이겠지만

가서 책을 고를 때마다 입이 근질거리게 만드는 배치



 
 
바람돌이 2015-01-03 15:12   댓글달기 | URL
앗 제가 아는 그 아치님 맞죠? ^^
오랫만에 뵈어요. 서재 결혼시키기는 안봤는데 도대체 저 배치는 무슨 배치인가요?
필요한 책은 절대 찾아볼 수 없는 배치일듯.... ㅎㅎ

Arch 2015-01-03 16:11   URL
그죠.. 그 아치 ^^
그냥 책을 찾기보다는 둘러보다 맘에 드는 책을 골라야하는 방식!
책을 장식품으로 생각한 듯해요.

서재 결혼시키기는 적극 추천!
 

* 하우스콘서트 서울기타콰이엇 공연을 봤다. 무대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것 자체도 신선했고 기타 주법이며 손가락 움직임을 눈 앞에서 지켜보니 신기했다. 진지하고 사려깊게 기타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도레미송에 신이 나서 예전에 조카랑 외웠던 노래를 흥얼거리고 자작곡의 제목만으로 전해지는 음악 분위기와 감정들을 느꼈다. 앞으로도 이런 기획과 공연이 자주 열렸으면 좋겠다. 시골은 문화소외 지역이라고 하지만 문화가 꼭 공연만 있는건 아니라 그동안은 적적함이 크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 자체가,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어슷거리는 이야기들이 문화라고 생각했다. 다행스럽게 하는 일이 재능을 가진 분들을 접하고 함께 궁리하는 일이라 내 경우에는 오히려 도시에서보다 문화가 풍족해졌다. 게다가 흔한 말로 책 몇권은 됨직한 사연을 가진 어르신들과 함께 지내니 부족한건 세렴됨이요, 아쉬운 건 주류의 문화 같은 것 정도였다. 오랜만에 흔히 문화란 말에서 떠올리는 정형화된 공연을 접하니 그 나름대로 즐거웠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a의 핸드폰에서 가사를 찾아내 도레미송을 불렀다. '도'는 암사슴~ 레는 떨어지는 햇살, a가 부끄러워 저만치 도망쳤다.

 

 

                           야옹

 

* 워크숍을 빙자한 술자리에서 기타를 좀 칠줄 아는 사람이 기타를 집어들었다. 연가나 바위섬 같은 말랑말랑한 노래를 부탁했는데 맨 나오는게 김광석 노래였다. 감정에 심취한 연주자의 '서른 즈음에'가 나왔다. 잘 부르는 노래도 아니었고 그 분위기에 어울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툭, 눈물이 났다. 나는 내가 청춘이고, 내 청춘이 조금씩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 나이는 몇인지 알되(가끔 까먹기도 하지만) 별다른 인식을 하면서 살지 않았다. 어려보인다거나 늙어보인다는 남들의 이야기는 귓등으로 흘렸다. '나는 나'라는 것보다 무감각했다는 게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나이답지 않다거나, 나이보다 어쩌고란 덧붙이는 말에 우쭐한적은 있었지만 역시 무감했다.

 

 나이가 들든 하루하루 해내야할 일이 있고, 그 일을 잘하고 싶은 맘, 조금씩 아픈 어깨, 뭐 이런 것. 그래서 '서른 즈음에'의 어떤 것이 이렇게 맘을 아프게 했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무감하게 살아도 되는지, 이대로도 족한지에 이르자 다시  툭, 눈물이 나왔다. '기다려줘'를 목터져라 부르는 사람에게 왜 시간을 주지 않고 다그쳤는지도 생각했다. '일어나'란 노래가 나오자 부흥회처럼 다들 일어나 박수를 치고 난리도 아니었다. 아무런 결론이 필요하지 않은 술자리에서 나라 잃은 백성들처럼(이 표현은 짠하면서 적절하다) 먹고 마셨다. 

 

 

 

 

 *

 

 

 

 

 

 

 

 

 

 

 

 

 

 어깨가 아팠다. 운동을 하거나 병원 가는 대신 책을 집어들었다. 수술과 물리치료로 통증을 치료하는데 문제의식을 갖은 의사가 내 몸은 내가 잘 알고 돌볼 수 있다는 입장에서 쓴 책. 자신의 세계에 빠져 글을 쓰거나 강압적이지 않게 몸의 원리와 통증의 원인을 다뤘다. 이 책을 읽는다고 단박에 아픈 어깨와 어깨에서 목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나은 건 아니다. 요가를 시작했고 자기 전후로 스트레칭을 한다. 30대가 넘어서면서 안 아픈데 빼놓고 다 아프다. 20대 때 왕성한 활동을 보여준바 없음에도 왠지 그 시절 젊은 몸에 대한 아련함 같은 게 생기는 계절이다.

 

 

* 평상에서 까치발을 해가며 짖는 멍멍이.

시골에는 멍멍이가 많다. 멍멍이들은 좁은 철장에 갇혀있거나 짧은 끈에 묶여있다. 며칠동안 밥을 안 먹었는지 모를 정도로 초췌한 멍멍이도 지 주인이 나타나면 꼬리가 안 보일 정도로 흔들어댄다. 안쓰럽고 속상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속상하고 보답받지 못한 사랑에 애를 쓰는 모습이 안쓰럽다.

 

 

* 오늘 밥 먹으러 가는 길에 슬슬 단풍이 올라오는 게 보였다. 요즘 내가 일하는 곳에서 컨설팅을 받는데 모든 것을 수치화한 데이터를 갖고 있어야 정보로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감각적으로 단풍이 조금씩 들기 시작한다는 말보다 전체 산의 20%가 단풍이 될 때부터 단풍철이란 수치화된 정보. 좋아하는 언니는 그런 말을 했다. 일을 열심히 하는 건 역량이 자라는 것이고 관계 속에서 나를 투영하고 부딪히면서 쌓아가는 건 성장이라고. 자꾸 일로 우회하는 건 관계맺음의 고단하고 피곤한 과정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 일생의 목표가 성장인 나는 부지런히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고 침묵한다. 대화할수록 이해한다기보다 오해한다. 상대방의 말을 듣기보다 자신의 말이 먼저다. 자신이 처음 갖은 씨앗 생각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만날수록 답이 안 나오지만 이렇게 만나고 사귀면서 조금씩 서로가 할 수 있는 것, 양보되지 않는 부분등을 파악한다. 어렸을 때 사람들 사이에서 부딪히거나 고민하기보다 혼자 있길 좋아해서 여전히 이 부분이 가장 어렵다. 혼자 심각하고 예민하게 받아들여 상처받는다. 하지만 첫 마음, 이거 하나 믿고 계속 밀고간다. 그리고 조금씩 재미있다.

 

 

 



 
 
뷰리풀말미잘 2014-09-26 13:40   댓글달기 | URL
간만에 아치님 페이퍼를 그냥 넘어갈 수 없지. ㅎㅎ 구텐탁! 글도 마을도 아름답군요.

다락방 2014-09-26 20:14   댓글달기 | URL
가끔 소식 전해줘요 아치.

Arch 2014-09-27 11:01   댓글달기 | URL
자주 소식 전할게요. 일기 대신 페이퍼 모토로!
 

  출퇴근 길에 마주쳤던 개의 이름은 ‘사랑이’다. ‘사랑아’라고 부르면 눈꼽이 잔뜩 낀 얼굴을 내밀며 꼬리를 흔든다. 사랑이는 아이들을 네 번 낳은 베테랑 엄마고 함부로 사람들을 타고 오르거나 무턱대로 짖지 않는 점잖은 개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사랑이가 보이지 않았다. 사랑이가 있던 자리에는 흙과 돌이 한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주인 아저씨는 군에서 공사를 한다고 사랑이가 살던 곳을 비워줘야 했단다. 아저씨 땅이 아니라 군 땅이니 어떻게 할 수 없긴 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엄청나게 큰 흙산을 만들어버렸을 때는 무척 놀랐다고 한다. 지금은 없지만 언뜻 본 공사 안내 표지판에는 물을 끌어올리는 공사를 진행해서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보다 쾌적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취지가 적혀 있었다.

 

  과연 그 물을 끌어올려 전기세 들여가며 분수를 돌리고 밤에는 촌스러운 조명을 밝힌다고 관광객이 올까? 취지부터 잘못됐다. 언젠가 지역 경제의 중요성에 관한 강의에서 춘천 닭갈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춘천에는 닭갈비가 유명하다. 맛있기도 하지만 지역 사람들이 즐겨 먹기 때문에 유명해졌다는 것이다. 관광객은 한때지만 그 지역에서 계속 살고 있는 사람들이 찾아야만 가게도 영업이 되고 맛도 유지가 되는 것이다. 지역 주민들이 즐겨 찾지 않고 밖을 향한 관광을 위한 공사란 첫걸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원래 계획한 것이니 그냥 밀어붙여도 된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공무원은 주민 의견을 모아서 집행할 뿐인데 주민들 뜻과 상반되거나 무리한 일로 예산을 써도 책임지는 일이 없다. 계획이 방만해지고 무책임해지는 일이 허다하다. 이번에도 그렇지 않을까 넘겨짚는 것이다. 하지만 계획의 무모함과 방식의 야만성, 성과에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구조라면 넘겨짚는 얘기가 그리 억지만은 아닐 것 같다.

 

  군의 땅을 무단점유한 아저씨가 권리를 행사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아저씨가 방귀 꽤나 뀌는 지역 유지였다면? 지역 유지가 아니어도 한가닥 성질하는 사람이라면? 혹은 주변 사람들을 끌어들여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랬더라도 이렇게 무기력하게 당했을까 싶다. 물론 이건 ‘떼쓰기’ 밖에 안 된다. 옳은 일도 아니고 추천할 방법도 아니다. 하지만 왜 국가권력은 이렇게 떼쓰기조차 못하는 사람들에게만 영향을 행사하는지 모를 일이다.

 

  이사를 간 사랑이는 낯선 환경에 많이 긴장한다고 들었다. 밤마다 늑대처럼 구슬피 울며 주인 아저씨를 속상하게 한다. 아저씨는 주변에서 개 울음소리 때문에 신경 쓰인다고 개를 치워달라는 얘기가 있다며 혹시 사랑이를 키울만한 곳이 없는지 묻는다. 그럴만한 장소가 없어 그저 죄송하다는 말씀밖에 드리지 못했다.



 
 
 

 한달 전에 이사를 했다. 도배 바르고 장판 까는 것만 끝낸 상태에서 가구 없이 며칠을 집에서 지냈다. 장판을 바닥에 붙이려고 쓴 접착제 냄새에 머리가 띵하고 집은 여전히 낯설었다. 전기매트에서 눈을 뜬 아침은 우중충했다. 왜 나는 늘 어떤 계획도 계획일 뿐이란 각오로 사는걸까. 가구 들여놓고 좀 정리가 되면 짐들을 옮겨도 좋으련만.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 고생을 하는 걸까.

 

 가스 밸브도 연결되지 않아 두유를 먹고 출근했다. 읍내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안 먹던 김밥을 먹게 할 정도로 맛있는 김밥집에서 김밥 먹을 생각은 안 했다. 하지만 어스름한 아침에 불빛을 반짝이는 김밥집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김밥집에 들어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김밥을 주문하고 가만히 자리에 앉았다. 책도 텔레비전도 보지 않고 멍하니 있으니 아저씨 움직임이 보인다. 쌀쌀한 날씨라고 가스불을 켜놓고 김밥을 싸는 아저씨. 아줌마한테 말귀 잘 못 알아듣는다고 혼나기 일쑤인 아저씨. 그런데 아줌마보다 김밥을 더 잘 싸는 아저씨. 아저씨가 하던 단무지 포장을 마저 끝내고 김밥을 기다렸다.

 

 김밥을 먹는데 웬걸, 역시나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다. 게다가 이게 뭔가. 여러가지 재료로 푹 우린 육수에 끓인 오뎅국 아닌가. 오뎅에서 냉장고 냄새가 나긴 했지만 국물은 정말 최고였다. 너무 자주 써먹어서 너덜너덜해진 말이지만(굴라쉬 브런치 어디에선가 이 비슷한 말을 본 적이 있따다.) 오뎅국 맛이 지친 내 맘을 위로하는 것 같았다. 먹으면서 닝닝하지 않고 먹고 나서도 깔끔한 오뎅국. 아저씨가 끓여주신 오뎅국. 하, 이 집 수제비도 맛있는데. 그러고 보니 김치랑 깍두기도 직접 담궈서 맛있는데. 그런데 아줌마는 메뉴를 세개로 줄여버렸다지. 손님들이 세명 와서 제각각 세개를 다 시킨다고. 바쁜데 얌체 같이 그런다고. 그땐 아줌마가 참 무서웠는데 언젠가 수제비를 곱절로 더 주셔서 거침없이 친근해졌다.

 

 암튼

 접착제 냄새를 싹 날릴 정도로 든든한 오뎅국을 먹고 다시 회사로 향했다.

 

 사랑이 애기들 보고 조금 더 걸어가는데 얼마 전에 이사를 온 누렁 강아지가 보인다. 입 주변이 까매서 수염난 것처럼 생긴 강아지가 쫄래쫄래 나를 따라온다. 다른 때 같으면 줄에 묶여서 멍멍이라고 부르면 두발로 서서 아는척을 했는데 오늘은 어떻게 돌아다니는게냐. 멍멍이는 그런 물음 따위 대답할 생각이 없는지 여기저기 킁킁대며 냄새를 맡고 다닌다. 멍멍이 집에 거의 도착했는데 강아지 한마리가 바닥에 누워 있었다. 수염난 것처럼 생긴 강아지 친구다. 날씨가 추운데 왜 혀까지 내밀고 시멘트 바닥에 누워있는거지.

 

 강아지 주인은 강아지 끈이 풀려서 돌아다니다 차에 치인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는 짜증나 죽겠다고 했다. 죽인 개를 치우는 게 귀찮아서인지 복날에 팔아버릴 개가 죽어버려서 속상해서인지는 모르겠다. 수염난 것처럼 생긴 강아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쫄랑쫄랑 뛰어다닌다. 요즘도 아침마다 그 강아지를 본다. 혼자 남은 강아지는 전처럼 친구랑 아웅다웅하면서 노는 대신 짧은 끈에 매달려 바둥거린다. 추운 날에는 톱밥이 뿌려진 건물 구석에 코를 박고 있다가 '멍멍이' 이러면 목 아픈줄 모르고 반가워한다.



 
 
2014-03-07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10 1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