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a야. 밤공기가 찬데 아기를 방으로 옮기는건 어떨까.

- 어. 나 뭐랑 뭐 하고 조금 있다가 할게.

- (한숨은 쉬되 다시 숨을 들이마시며) a야. 너는 내가 언제 맘에 들어?

- 음... 당신이 나한테 잘해줄 때. (잘해주는게 뭐야?) 음... 그러니까 까불면서 재미있는 말 할 때. 나를 웃길 때 (그게 잘하는거야?) 어. 그럴 떄 당신이 좋아.

- 그럼 내가 당신이 좋을땐 언제일 것 같아?

- (므흣하게) 언젠데?

- 해야할 일을 미루지 않고 바로 할 때.

 

 a는 번개와 같은 속도로 일어나 거실에서 자고 있는 아기를 방으로 옮겼다.

 

* 마이너한 영화를 보고 기분이 착잡해졌다. 영화 만듦새가 별로였고 주인공으로 나온 사람은 예술적이라기 보다는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보였다. 상영 후 GV를 하는데 영화 속 인물과 한 시대를 함께한 사람들은 같이 울고 그 시대를 추억했다. 참혹한 실상을 알리기 위해 참혹한 장면을 즉물적으로 보여줘도 될까, 그들만의 추억은 왜 지금 세대에게 공감을 주지 못할까. 슬픔을 강요하고 화를 불러일으키는건 현실을 바꾸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추상적이고 복잡한 마음이었다. 주말에 도서관에 들렀다 사서로 일하고 있는 언니랑 얘기하다 이 영화 얘기가 나왔다. 언니도 영화를 봤는데 기대한 것과 너무 다르고 감정을 강요하는게 너무 싫었다고 했다. 주인공의 예술성이 의심스러우며 연출도 아주 뭣같다고 했다. 나랑 똑닮았지만 어디가서 하지 못할 이야기를 같이 나눈다는데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 c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묻는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준비하기는 귀찮고 실직 상태가 붕 뜬 것 같다고 했다. 이 지역과 나는 안 맞는지 모르겠다고도. 언니는 지역의 문제보다는 지금 아치 상황이 그런게 아니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하긴 어딜가도 잘 사는 사람은 지금 이곳에서도 잘 살겠지.

 

 언니를 파악하기가 힘들다. 독설을 툭툭 뱉다가도 다른 사람에 대한 통찰력이 상당하고 헐렁해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똭, 존재감을 드러낸다. 나는 사람을 확신한다. 이 사람은 이럴거고, 저 사람은 저럴거라고 믿어버린다. 몇가지 단서와 그 사람의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을 파악했다고 믿는다. 그래서 늘 관계가 짧고 가벼웠다. 어제와 오늘 내가 다르듯 다른 사람도 그런건데. 물론 어제와 오늘의 나 사이에는 아치란 변별력 있는 정체성이 있지만 어떤 때는 그마저 흐릿해진다. 다른 사람도 그런데. 나는 특별하고 다른 사람은 범주화할 수 있다고 믿다니.

 

 하긴 어느 정도 범주를 정해야 상대방을 대하는게 유연해지기도 하겠지. 나 역시 화남 모드와 견딜 수 있음, 즐거운 상태, 에너지 넘침 등등 상태 표시등을 반짝이는 것처럼. 하지만 규정 짓는 순간 그 틀 밖으로 상상할 수 없다는건 위험한 일이다.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 평이한 대화만 가능한 사람, 일손이 필요할 때 부를 수 있는 사람. 선뜻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 나는 어쩌면 사람을 기능적으로 소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져서 페이퍼로 두서없는 글을 썼다. 친구공개로만 했는데 나는 친구가 하나도 없어 '나만 보기' 글이 됐다. 다행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어린이집이 방학이다.

 이 말에서 암울한 기운이 느껴진다면 당신은 풀타임 육아 담당자다. 선생님들도 쉬어야하니까 방학하는건 당연하며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가도 된다. 방학이어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도 되는데 나는 눈치가 보여서 못보냈다.  잠깐 알바를 했지만 아주 잠깐이고 맞벌이가 아닌 이상 내가 집에 있는게 뻔한데 방학까지 아기를 맡기기가 좀 그랬다. 집안일도 엄연히 재생산 노동이고 블라블라하지만 현실에서 집안일은 경제적 가치가 없는걸로 취급된다. 취업 준비중이거나 공부를 한다거나 다른 활동하는건 부차적이다. 돈 버는 일이 아닌 이상 맞춤형 보육을 해야하고 맞춤형 보육인데도 부득불 방학때까지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면 누군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맘이 불편하다.

 

 그래서 아기랑 단둘이 하루종일 같이 있다.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도 그랬잖아. 문제될거 없다고. 나는 프로 엄마? (어?)라고. 오전은 어떻게 잘 지나갔다. 새벽부터 일어나는 아기 덕분에 뭐하고 뭐하고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 고작 10시 뿐이라 시계가 고장난줄 알았지만. 더위도 복병이었다. 둘 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목욕을 했다, 선풍기 앞에서 놀았다, 얼린 물수건으로 땀을 식혔다 했지만 몸이 스스로 달아오르는걸 막지는 못했다. 여차여차해서 어거지로 낮잠을 재우고 한숨 돌렸는데 방금 피난 채비를 마친 집처럼 집이 어수선하다. 하지만 나는 저질체력 아치니까 간단히 모르쇠하고 잠깐 눈을 붙였다.

 

 오랜만에 오랜 시간을 같이 있다보니 내가 이전에 아이랑 하루종일 있었던 생각은 못하고 아기랑 거리를 두고 싶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하루종일 있으면 할 말이랑 할거리가 없 듯 아기랑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고 잡기 놀이를 하고 춤을 춰도 여전히 많은 시간이 남았다. 조금만 떨어져 생각한다면 아기가 느끼는 것을 같이 바라보고 공감하고 새로운 발견에 박수를 쳐주며 환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막 혼자 있는게 좋아졌는데 맘이 선뜻 그렇게 되지 않았다. 게다가 아기와 같이 있으며 해야하는 일상적인 뒤치닥거리가 너무 귀찮았다.

 

 나 또 이 책 들고 나왔는데 '부모로 산다는 것'에 보면

 

 아기가 사랑스러운 순간은 대부분 그저 바라볼 때, 아기는 수동형으로 존재하고 그 존재 자체에 감탄하는 '나'로 내가 존재할 때라는 얘기가 나온다. 잘 시간이니까 재우고 이를 닦이고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할 것, 밥 먹은 자리를 훔치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 등을 처리하느라 정작 아기 눈을 보며 기운차게 웃지 못했다.

 

 낮잠 시간이 늦어져 자는 시간도 늦춰진 아기를 재웠다. 다른 때 같으면 아기를 재우고 내 볼일을 보려고 조급해졌을텐데 맘이 느긋해져 그냥 아기를 바라봤다. 아직 잠이 안 오는지 책을 본다, 물을 먹는다, 땀띠가 난데에 약을 발아야한다던 아기가 조용해졌다. 토끼 베개를 가져다 베고선 나를 바라본다. 나도 같이 누워서 아기를 바라봤다. 초롱초롱한 눈이 나를 한번 봤다 감았다, 다시 나를 보고선 감는다. 초점이 없어진다. 눈에 힘이 풀리고 스르르 눈이 감긴다.

 

그리고 사랑스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동아리 활동을 한다. 우리를 가르치는 사람은 보수 없이 재능기부 형태로 참여하다. 지역에 이런 동아리 하나쯤 괜찮겠다고 했고 선뜻 같이 하겠다고 했다. 항상 이 사람한테 불만이 있었다. 자신의 몸상태와 기분, 사람들이 얼마나 모였는지에 따라 연습량과 가르치는 스타일이 들쭉날쭉했다. 올해 공모사업에 지원해서 적은 금액이지만 보조금을 받는다. 강사비를 지급한지 얼마 안 됐지만 가르치는게 눈에 띄게 달라졌다. 시간도 웬만하면 지키고 제대로 가르치려고 노력한다. 나는 그동안 우리가 잘 안 나와서, 날씨가 흐려서, 이 사람 몸상태가 정말 안 좋아서 연습이 잘 안 된줄 알았다. 재능기부의 헛헛함이란.

 

 선의로 할 수 있는 일은 어디까지일까.

 

 

 

 

 

 

 

 

 

 

 

 

 

 

 여성주의 시각으로 경제를 해석한 이 책은 우리가 흔히 '경제적이다'라고 할 때 수반되는 가치가 우리 일상과 사고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를 다룬다.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데는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다. 동아리의 경우 만약 참여자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연습을 잘했다면, 가르치는 사람을 인격적으로까지는 아니어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존중해줬다면, 의례적인 치켜세우는 말이 있었다면, 혹은 어쩌다 활동과 관련된 상을 받는다면?

 

 경우의 수와 해야할 일들을 하나하나 처리하는 것보다 돈을 주는게 어쩌면 훨씬 간단한 일이 된다. 적어도 상식적인 '돈값'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게 싫어서 협동조합 공부하고 공동체 연구했는데 다시 도루묵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선한 의지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자본이 아닌 가치를 나누며 함께할 수 있을까.

 

* 계란후라이를 두개 했다. 하나는 내 접시에 덜고 다른 하나를 아기 접시에 덜었는데 그을린 부분이 들어갔다. 그 부분을 떼서 내 접시에 담는데 아기가 '으힝'하는 소리를 낸다. 자기걸 내가 더 가져갔다는거다. 빙긋 웃으며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과장된 동작으로 접시를 보여줬다. 아기가 나를 따라서 웃는다. 나를 물려고 하는 아기한테 '무는 건 안 돼. 엄마가 너무 좋아서 앙하고 물어버리고 싶구나. 좋아하면 뽀뽀하는거야.' 아기는 춉춉 소리를 내며 내 볼에 입을 맞췄다. 그 느낌과 냄새, 촉감, 부드러운 양볼이 좋아서 계속 뽀뽀를 해달라고 했다. 아기는 다섯번까지 열심히 하다가 여섯번째에 '히잉'하고 싫은 소리를 낸다.

 

 아기가 어린이집에 적응할 때는 차라리 보내지 말까 고민할 정도로 떼쓰고 울고 종잡을 수 없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까 를 지나 요즘 아기는 사랑스러움이 뚝뚝 떨어진다.  아기가 노는걸 가만히 지켜보면 맘이 몽글몽글해진다. 자기 맘대로 되지 않으면 히힝 짜증을 내지만 흡족할 때는 돌고래 소리를 내며 환호를 한다. 명확한 호불호에도 불구하고 말을 하면 또 가만히 듣고 수긍을 하니 예뻐할 수 밖에.

 

 그래서 한번쯤 둘째를 가지면 어떨까란 생각을 했다. 아기에게 동생이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하지만 아기와 함께 놀 동생과 이즈음의 아기 키우는 재미 말고는 둘째에게 끌리는 이유가 없다. 둘째를 낳지 말아야할 이유는 별처럼 많다. 3년 가까이 아기를 다시 키우기 싫고 나이를 생각해야하고 모든게 다 준비된다고 해도 애가 생길지 모를 일이며 어떤 아이가 나올지 진심으로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엄마도 있다.

'저런 장난꾸러기를 엄마가 왜 낳았겠니? 다 너 때문이야. 너만큼 예쁘고 착하고 멋진 애가 나올 줄 알았거든. 아아, 이렇게 예쁜 아기가 둘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둘째를 낳은거야. 그러니까 둘째는 너 아니면 못 태어났어. 니가 조금만 덜 이쁘거나, 덜 멋졌으면 아기를 둘 갖고 싶단 생각을 엄마가 왜 했겠니?'

 

 첫째가 둘째를 시샘할까 만든 이야기라고 하지만 둘째도 첫째처럼 예쁜 아기일거라고 생각했다는 부분에서 깜짝 놀랐다. 나는 아기랑 정말 잘 맞아서 -이유없이 짜증내고 울어도 나는 왠지 다 알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실제로 모르고 당황하는데도- 둘째가 태어난다면 둘째는 첫째만큼 나랑 잘 맞지 않을 것 같았다. 세상을 낙관하고 포용하는 눈이 있는가하면 의심하고 비판하고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머리가 있는데 나는 늘 후자쪽이다. 둘째 낳기는 계획에 없고 하늘을 볼 생각도 없지만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짚이자 '역시나' 하고 말았다.

 

 아, 이 책. 제주도 여행 준비하려고 짚어든 책 중 제일 좋았다. 객관적인 여행 정보보다 저자와 아이들 얘기가 많고 때로는 오글거리기도 하지만 제주를 쫙 펼쳐서 보여주는 느낌이다. 도서관이 많이 나오고 아이들과 조금씩 성장하는 저자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이를 낳고 키운다고 부모가 다 성장하는 건 아니지만 육아야말로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 중 하나라는,

'부모가 된다는 것'이 생각 난다. 좌충우돌 엄마가 책과 함께 육아하는 얘기도 생각나고.

막 추천 추천, 쉣끼쉣끼 쉣끼바리세움?

 

 

 

 

 

 

 

 

 

 

 

 

 

 

* 한개는 짧고 두개를 붙이자니 제목이 궁해지는 페이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 아내폭력에서 탈출한 여성들의 이야기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30
한국여성의전화 지음 / 오월의봄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대 중반, 일하다 친해진 언니네 집에 자주 놀러간적이 있다. 언니는 남자친구랑 같이 살고 있었다. 무슨 얘기 끝엔가 언니가 자신과 남자친구는 자주 싸우며 가끔 남자가 자길 때릴 때도 있다고 했다. '때린다'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장난으로 그러는거야'라고 되물었다. 언니는 남자가 자기를 어떻게 때리고 어느 순간 폭발하는지 얘기해줬다. 어떤 느낌인지 상상이 안 갔다. 일찍 집을 나와 혼자 살던 언니가 유일하게 의지한 사람이 폭력을 행사하고 언니는 그걸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다. 나는 폭발할 때까지 남자를 밀어부치진 말아야 한다는 콩인지 된장인지 모를 말을 내뱉었다. 언니는 심상한 분위기로 자신의 성격도 그렇지 못해서 결국 사단이 난다고 했다. 나는 그때 '아, 남자를 밀어부치면 안 되겠구나. 폭력적인 놈을 만나면 안 되겠구나, 언니 불쌍해서 어쩌지.'라고 생각했다.

 

 너무 심하게 때려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죽은 듯 매질을 견뎠다는 고모. 아빠의 폭력을 피해 맨발로 도망친 엄마. 열 손가락을 다 채울 정도로 도처에 매맞는 여성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혼하면 되는거 아냐? 아이 핑계로 왜 사는건데, 경제적으로 자립할 능력이 안 돼서 그러는거 아냐. 왜 그런 남자를 만났대. 도처에 뿌리내린 가정폭력보다 내 시각이 더 폭력적이었다. 엄마에게 그렇게 살지 말고 이혼하라고 했지만 엄마가 그 시기를 견딘 덕분에 화목한 가정까지는 아니어도 여전히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다. 둘 사이를 가로막는 모순에 맘 한켠이 싸해진다. 가정폭력은 신체적 폭력뿐 아니라 관계와 편견의 폭력이라 다시 새롭게 살겠다고 선을 그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란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여자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살기에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도 이제서야 알게 됐다.

 

 가정폭력 생존자들의 '여성 살해의 현장에서 탈출한 여성들'은- 본 제목보다 정희진 선생의 개인적 의견이 더 나아 리뷰에서는 이 제목으로 책을 지칭한다- 가정폭력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수기이다. 가정폭력에는 이유가 없다. 그저 그래도 되니까 하는 것 뿐이다. 집 밖이었다면 당장 고소 당하고 형사 입건 할 사건을 집 안에서는 집안일이라며 쉬쉬하고 넘긴다. 가정폭력에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해결을 하고 가해자를 구속한다면 어떨까. 구속을 넘어 무조건 감옥에 가야하고 사회적으로 매장당한다면? 아마 엄청난 분노조절장애 배우자도 상대방을 손끝 하나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타인에게라면 어떻게 저러나 싶을 행동들을 나는 a에게 한다. 했던 말을 다시 되물으면 불같이 짜증을 내고 얘기한대로 하지 않으면 눈을 부라리며 a를 공격한다. a의 유일한 낙은 술 먹는 것이고 자신도 나처럼 화내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는 같이 살지 못하니까 참는다고 했다. 나는 아빠를 꼭 닮았다. 아빠가 일하고 와서 쉬는 편안한 집, 내키면 가끔 청소 한번씩 하면서 생색내는 집에서 12시가 넘도록 열무김치를 담그는 엄마가 꼴보기 싫어 집에 잘 가지 않는다. 나와 가정폭력 가해자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무엇이 내가 그래도 된다는 생각을 갖게 했을까.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고 마냥 거리를 두면서 성찰할 수가 없었다. 나 역시 관계를 무기로 다른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으니까.

 

 언니를 다시 만난다면 언니와 그 남자를 떼어놓고 싶다. 언니 잘못으로 그놈이 도발하는게 아니고 그놈은 원래 그런 놈이라고  이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a를 비난하는 대신 나부터 잘해야겠다. 집안일 개미지옥에서 벗어나 유연한 시선으로 타인을 대하고 싶다.

경험은 겪은 것이 아니다. 선택적인 기억이다. 경험은 철저히 정치적인 것이다. 무엇을 잊고, 무엇을 의미화하는가, 내가 겪은 일은 어떤 것인가. 경험은 저절로 기억되지 않는다. 자신의 경험을 인식할 수 있는 시각이 생길 때, 비로소 ‘떠오르고‘ 인지되고 해석된다. 남성 사회에서 여성에게는 자기 경험을 바라볼 수 있는 렌즈가 주어지지 않는다. 남성의 언어가 여성의 삶을 장악하는 사회에서, 여성들은 자기 경험을 믿지 못한다. 자기가 겪은 일을 남 이야기하듯 말한다. 나도 그랬다. 가부장제는 모든 인간을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한다. 가해 남성들과 상당하다보면, 자기가 저지른 일을 남의 얘기인 양 비웃고 ‘동료‘를 비난한다. 어떤 여성들은 자신이 겪은 폭력이 훨씬 심각한데도 ‘덜 맞은‘ 여성들을 보며 놀라고 걱정한다. 경험, 몸, 인식의 분리 속에서 우리는 생각할 능력을 상실했다.

8p

여기 실린 여성들의 글을 유심히 읽으면, 문장과 문장 사이가 떠 있음을 깨닫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하면, ‘연결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글이 ‘비논리적‘으로 보인다. 이런 문장은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 데 일조한다. 왜일까. 내 해석은 이렇다. 녹취록처럼 가해 남성의 행동을 상세히 묘사해도 문장들 사이가 연결되지 않고 ‘뭔가 말이 안 된다‘. 그것은 남성들의 행동이 정말 그렇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들을 이해하려고 해도, 도무지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고민은 여기서 끝나야 한다. 왜 때리는가? 이런 질문이 바로 폭력이다. 그들을 이해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때릴 수 있으니 때리는 것뿐이다.thdy do because they can. 단지 그 뿐이다. 대신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왜 사회는 여성의 경험을 믿지 않는가? 왜 국가는 이 문제를 사소하게 다루는가? 왜 우리는 언제나 이 문제가 ‘사소하지 않다‘고 외쳐야 하는가?

9p

나를 사로잡고 있던 두려움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나에게도 가정성공신화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고 이혼을 내 인생의 실패라고 생각했다. 겉으로 보기에 아름다운 나의 유리거울이 깨져서 내 모습이 찌그러져 보이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남편이 마치 장애를 앓고 있는 자식처럼 여겨져 차마 버릴 수 없었다는 것도 알았다.

88p

지난 상처는 음식물 쓰레기 같은 것이라고. 묶어두기만 하면 언젠가는 빵 하고 터지는데 터지고 나면 수습하기가 더 힘들다고 말이다. 나 역시 그랬다. 남편의 끊임없는 강박적 요구에 내 마음속은 미움과 두려움이 쌓였는데, 그런 감정들을 표출하지 못하고 억압하고만 있었으니 속에서 그것들이 상하기 시작했다. 얼굴은 웃고 있어도 늘 어두웠고 가슴은 항상 답답했다. 나는 쉼터에서 그것들을 하나씩 열어보았다. 압력을 빼듯이 내 속에 무엇이 있는가를 알고 이해하면서 상처를 치유했다. 차츰 마음이 시원해짐을 느겼다.

89p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7-19 03:40   좋아요 1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23 21:15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일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나는 재생산 노동을 하고 어쩌고 20개월 가까이 아기를 온전히 돌봤는데 좀 쉬면 안 되나 어쩌고 해도 내심 맘이 조급해졌다. 빨리 일을 시작하고 싶었다. 입으로 계속 주장하는 '일' 말고 남들이 알아서 인정해주는 일을 하고 싶었다. 현실적인 잣대대로 살지 않겠다며 날을 세웠는데 그 잣대대로 스스로를 평가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아 일하고 싶다며 떠들길 며칠. 마침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가 났다. 당장 하겠다고 했다. 먼저 하던 사람이 취업 최종결과가 안 나와서 대기를 해야하지만 만약에 하라고 하면 할거냐는 추접스러운 제안이었지만 나는 급했다. 네네. 어쨌든 한다니까요.

 

 일주일 넘게 기다리다 그 사람의 취업확정과 동시에 일을 시작했다. 문서와 책 등의 자료를 목록화하는 작업이었다. 신났다. 시간이 돈이 되고 내 쓸모가 됐다. 시답잖은 농담에 활기가 넘쳤고 흰소리 듬뿍 담아내는 점심시간도 즐거웠다. 여느 직장 다니는 사람처럼 같이 먹는 점심이라니. 평소라면 툭툭 받아쳐냈을 말들을 주워삼키며 네네 그렇죠, 그럼요 모드가 됐다. 그러길 고작 하루. 다음날부터 지루해 죽겠는거다. 지금 하는 일은 돈이 된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의례적인 말은 의례적이라 질색이고 점심시간은 따분했다.

 

 그제서야 비로소, 이렇게 바닥을 툭툭 치고서야 과연 어떻게 사는게 나다운건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주위 여성들이 임신 출산으로 생존단절(경력단절) 경험 후 밟는 비슷한 수순의 일들. 그 일 하나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저 멀리 달아났다. 보람을 느끼고 어느 정도 돈도 되고 재미있는 일. 그런 일이 있을까. 돈 안 돼도 좋으니까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은 있을까. 주부란 타이틀을 내걸고 노는걸 한번도 상상해본적이 없다. 남아도는 인력이 돼서 이곳저곳 불려다니고 언제든 불러다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돈벌이는 돈벌이 자체보다 지금 상황을 벗어나는 수단이었다. 돈을 벌어서 흔한 여행 한번 가고 싶다는 꿈도 꾸지 않았는걸.

 

  단순하고 의미없는 작업이 예정보다 일찍 끝났다. 나는 다시 자유의 몸이 되었다. 어쩌면 내가 했던 일은 잠시 머물렀던 기관의 자료 목록화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큰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의미가 없었다. 여전히 근사한 것, 대단한 것, 멋진 것을 막연하게 희망하면서 나에게 의미있는 것도 중요하다고 한다. 욕심이 너무 많아 선택을 못하면서 선택 못한 것들에서 흠을 찾아낸다. 고등학교 때 일기장에 썼던 그 마음에서 어떻게 한뼘도 자라지 않은걸까.

 

 밤이 깊어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