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과 꽃 - 도법 스님 1966~, 끝나지 않는 생명의 순례
김왕근 지음 / 불광출판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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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못 가지만 미사에 참여하는 것을 좋아한다. 미사를 드릴 때면 ‘예수라는 한 사내‘와 그의 삶을 생각한다. 그가 행한 기적이나 부활의 이야기보다 내게는, 처형당하기 전날 사람들을 모아놓고 벌인 만찬이나, 십자가에 매달린 채 하늘을 향해 왜 나를 버리셨느냐고 울부짖었다는 ‘인간‘ 예수의 이야기가 어쩐지 더 가슴에 와닿았다. 그의 삶과 죽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을 어머니 마리아의 마음도.

예수는 인간이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고, 사람들은 그걸 잊지 않기 위해 책으로 기록하고, 정기적으로 모여 그가 한 이야기를 되새기고, 그가 했던 만찬을 재현하기로 했다. 내가 알기로는 이것이 성경이고 미사다. 미사에서 신부님이 포도주 잔을 높이 들고 ˝너희는 모두 이를 마셔라. 이는...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라는 구절을 읊을 때마다, 세상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놓을 각오를 한 사내의 힘든 결심, 그 선한 마음을 떠올린다. 이렇게 산 사람도 있는데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 생각한다. 이게 나에게 미사다.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입을 모아 같은 이야기를 읊고, 기억하고, 노래할 때 느껴지는 따뜻한 일체감은 내가 미사를 좋아하는 또하나의 이유다.

기독교와 불교는 다르다면 완전히 다른 종교지만 내게는 비슷하다. 한 인간이 그의 삶을 온통 바쳐 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달았고,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깨달은 것을 이야기했고, 직접 삶을 통해 보여주었다.

작년 봄부터 참가하고 있는 불한당(불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모임)에서 도법스님께 들은 불교의 핵심은, 우리 안에 이미 붓다의 마음이 갖추어져 있고, 우리는 그것을 깨닫고 그대로 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가르침은 이렇게 쉽고, 명확하고, 현실적인데, 삶은 여전히 어렵다.

나와 너무 다른 사람들에 대한 피곤과 분노, 내 바램과는 달리 곁에 머물지 않고 떠나는 것들에 대한 슬픔, 미래에 대한 온갖 걱정과 불안, 그리고 삶이, 이 모든 노력이 무슨 의미가 있긴 한가 하는 자괴감과 허망함 같은 것들이 삶을 짓누른다. 오죽하면 붓다도 깨달음을 얻은 후 ˝내가 아무리 진리를 설해도 이기심에 가득 찬 중생들이 그 진리를 알아들을 수 있을까, 이는 스스로를 지치게 하는 일일 뿐이지 않을까.˝라며 망설였을까(이 대목을 읽으며 반가워서 울 뻔했다. ˝나 이 심정 알아!˝하고).

얼마전 불한당의 김왕근님이 쓰신 도법스님 평전 ‘길과 꽃‘을 읽었다. 에필로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석가모니를 신의 자리에서 인간의 자리로 끌어내리는 것이 불교를 살리는 길이다. 석가모니가 인간이어야 우리가 그를 본받을 수 있다. 석가모니를 인간으로 알고, 또한 우리 자신이 바로 ‘붓다‘임을 알고 살자는 것이 ˝붓다로 살자˝ 운동이다.‘

‘(절대자로서의) 신이 있는가, 나는 그의 존재를 믿는가‘라는 의문은 보류해두었다. 절대자라면 당연히 강인하고 옳게 살았겠지. 근데 나는 그냥 약한 인간일 뿐이지 않나. 지금 내게 간절히 필요한 것은 내 소원을 들어주고 기적을 일으켜줄 신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자신의 온 삶으로 보여주는,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하는, 그래서 쉽지 않은 이 삶을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게 해줄 나와 같은 ‘인간‘이다.

어려운 것은 깨달음이 아니라 깨달음 후의 삶이다. 우리 인간의 마음은 너무 연약하고 잘 잊어버리니까. 기도를 하고 미사를 드리고 수행을 하는 것은 절대자에게 소원을 빌기 위해서도, 어떤 형이상학적인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도 아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모든 것이 불타고 있는‘ 일상이라는 전쟁터에서 ‘자신의 감각이나 탐욕, 분노에 붙들리지 않고 부처의 마음을 내고 살아가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도시락을 싸듯 그렇게 준비한 ‘마음‘을 가지고 또 하루하루 일상이라는 전쟁터로 나간다.

도법스님은 평생 이것을 해온 분이다. 도법스님이 쓰신 책이나 도법스님의 강연, 말씀을 옮겨적은 책들을 몇권쯤 읽었지만 정작 도법스님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관한 책은 처음이다. 열여섯에 출가해 간디와 화엄경을 만난 이야기, 안으로는 종단개혁과 대중공사, 밖으로는 실상사 불교귀농학교와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최근의 한상균 위원장 관련 사태와 ‘평화의 꽃길‘까지, 도법스님은 시대의 가장 뜨거운 전쟁터 한가운데 있었다. 한 인간으로서의 도법스님의 고민, 노력, 깨달음을 보며 ‘인간이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라고 또 생각했다.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고.

덕분에 삶은 더 복잡해졌다(;ㅅ;). 이전에는 의견이 다른 사람을 굳이 설득하려 하지 않았고, 나와 맞지 않는다 싶으면 무슨 일이든, 무슨 관계든 미련없이 발을 뺐다. 그런데 이제는 한번 더 마음을 내고, 한번 더 얘기해보자 생각한다. 어디까지가 최선이고 어디서 그만둬야하는지를 아직은 잘 모르겠어서 힘이 든다. 신기한 것은 사람들과 부대끼는 와중에 이전처럼 내가 자괴감을 느끼거나 피폐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의견이 다른 사람과 부딪힐 때 ˝위협적으로 들리는 험악한 말도 잘 들어보면 ˝내 삶을 도와달라˝는 간절한 요청일 때가 많다˝는 이 책의 한 구절을 되새긴다. 그 사람의 말과 더불어 그 사람을, 그 사람의 처지와 마음을 들여다본다. 거기에 나와 다르지 않은 마음을 가진 한 사람이 있다. 우리는 서로의 슬픔, 절망, 혹은 탐욕이나 거짓을 바라보고, 그것을 바라보는 상대방을 바라본다. 우리는 얘기를 할 수도 있고, 더 나은 해결책을 낼 수도 있다. 애써 준비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도법스님은 ˝찻잔으로 물을 떠내면 호수는 찻잔 한 잔만큼 달라지고, 절을 하기 전이나 절을 한 다음이나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절한 만큼 달라진다˝고 말했다. 여기에 적어도 상대방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달라진 내가 있고,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이 아는 만큼 상대방은 달라질 수 있다.

생각해보면 쉽지 않은 삶을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게 하는 게 어디 예수나 석가모니, 도법스님 뿐일까. 내가 지켜보는, 나를 지켜봐주는 모든 인간이 나를 이끌어가는 ‘붓다‘이다.
그렇게 서로를 지켜봐주는 것이 사실은 우리 삶의 의미가 아닐까.

발췌 보기 : http://noyuna.tistory.com/2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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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그림일기
이새벽 지음 / 책공장더불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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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본 고양이 그림책 중 최고였다(이토 쥰지의 ‘욘 & 무‘를 생각하며 잠깐 망설였음). 그림도 글도 섬세하고 아름답다. 낄낄거리다 역시 울고 만다. 다음호가 있다니 완전 기대된다!
노땡한테도 보여줘야지. 그리고 조카3호한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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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고양이와 사랑에 빠지는 방법들
이용한 지음 / 피커북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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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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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의 탄생 - 뇌과학, 진화심리학이 들려주는 성격의 모든 것
대니얼 네틀 지음, 김상우 옮김 / 와이즈북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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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게 다라고? 엉엉.

댄 맥애덤스는 사람의 성격을 세가지 범주로 나눴는데:
1. 5대 성격 특성 수치 2. 개인별로 독특한 행동 패턴(개인이 가졌던 기회나 선택 등 객관적 행동들) 3. 개인적인 라이프 스토리(개인이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하는, 즉 주관적 인생사)이다.

이중 앞에서 말한 것처럼 1번은 바꿀 수 없고, 2번은 힘들고 성공 보장도 없으며, 3번은 그나마 가능하다는 것.

이 책을 보고 있는 사람들 중 자신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 나처럼 높은 신경성을 가진 사람들일 것이라는 예측과 함께, 이런 이들에게 ‘자신의 라이프스토리를 긍정적으로 재구성하라‘고 조언한다. ‘여러분의 것이 아닌 일에 시간과 정력을 낭비해선 안된다‘고 했다. 자신의 단점보다 장점을 집중적으로 살려가라고.

그래. 지금까지 그렇게 잘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성격의 5대 특성 중 본질적으로 좋고 나쁜 것은 없다지만 사실 신경성이 높다는 건 힘든 일이다. 이런 유전자를 더 퍼뜨리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이 책을 읽고 다시한번 생각했다. #어쩐지결론이이상하닼ㅋㅋㅋㅋㅋ
#books #성격의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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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중년은 처음입니다
사카이 준코 지음, 조찬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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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있는 글이고 허심탄회하게 쓴 것 같긴 한데 중년, 여성, 행복에 관한 온갖 편견과 잔소리가 가득해서 그만 읽어도 될 것 같다. 지난번 ‘퇴사하겠습니다‘와 비슷한데 좀더 쓸데없는 잔소리 느낌? 같은 회고나 잔소리라도 사노 요코의 글은 이렇게 쓸데없이 솔직하고 평범한(혹은 쓸데없고 솔직하고 평범한) 느낌은 아니었는데. 역시 아직 중년이라서인가. 나 말고 작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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