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슬비님의 피드에서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 제목을 처음 본 순간! 

 

 '나오키상을 수상한 일본 최고의 여류작가 4인의 만남. 그들이 유럽의 작은 마을을 다녀와 써 내려간 음식과 사랑 그리고 치유에 관한 소설'

 

이란 띠지의 문구를 본 순간, 그리고 결정적으로

 

"당신의 소울푸드는 무엇인가요?"

 

에 현혹되어 덜컥 이 책은 바로 내 것이다를 외친, 그 책을 오늘 읽었다. 하드 커버의 적당한 사이즈 예쁜 책이었다. 선물로 받기에 넘 어울리는 소녀소녀한 느낌의 책. 딱히 오늘 읽어야지하는 마음으로 펴든 것도 아닌데, 술이 넘어가듯 수리술술 순식간에 책장이 넘어가버렸다. 동생의 서가에서 간혹 보여 어쩌다 한 권쯤 읽었던, 엇! 신선하네 싶었던 에쿠니 가오리를 제외하면 모두 처음 들어 본 이름의 작가들.

 

요즘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를 읽으며 뭔가 좌절하는 심정이 되곤 했는데, 그 좌절의 근원을 들여다 보면, 난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글은 못 써. 하는 마음이 밑바닥에 있었다. 선생님께서 강의 시간에 '육체성'이란 단어를 언급하시기 이전에 나는 도스토예프스키를 몸으로 글을 쓰는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머리로 재단하고 계획하고 쓰는 작가가 아니라 그냥 손가락이 자판을 두들기듯 막 써지는 경지의 작가.

 

이상이 높으면 현실이 피곤하다고 했던가. 고전들을 읽는 틈새에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 같은 소설들을 좀 읽어야 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게 뭐야 넘 가볍잖아, 내지는 이것도 소설이라고 쯧쯧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 그래 이런 스타일의 소설도 있는 거지, 이 정도도 읽어줄 만 하잖아. 이만큼만 써도 성공이지 라는  편안한 마음이 되었다.

 

음식이름 많이 나오고, 식물 이름도 많이 나와서 내겐 아주 취향적 독서가 되었다. 중간부터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읽었는데, 표지에 '여류'라는 친절한 안내 없이 이 책을 읽었으면 어땠을까. 그런 안내 따위 받고 싶지 않고 그냥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첫번째 소설을 읽었다. 첫번째 소설 '신의 정원'은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지역이 배경이다.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이 배경인 세번 째 소설 모리에토의 '블레누아'랑 컨셉이 겹친다.  '모리 에토'라는 이름이 낯설어 검색을 해보니 청소년 소설을 많이 쓴 작가다. 원전을 소재로 한 그림책이 있어 더 관심이 갔다.'

 

두 편 모두 여행과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환타지고 뻔한 결말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삶의 중요한 부분과 지켜야할 가치를 쉽게 잘 읽히게 썼다는 점에서 두 편 모두 재밌게 읽었다. 다만 종착점이 '엄마'라는 것이 좀 진부하게 여겨졌다.

 

에쿠니 가오리는 포르투갈의 알렌테주를 다녀와서 '알렌테주'란 제목으로 단편을 보탰다. '올리브 나뭇잎 뒤쪽은 하얗다'로 시작하는 그녀의 감각적인 소설에서는 이런 부분이 공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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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지? 그렇게 넋을 잃고 볼 만큼 좋은 경치는 술이랑 같이 몸 안에 잘 넣어 둬야 하는 거야."

 

친구들은 마누엘을 두고 알콜중독 일보 직전에 있는 애주가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마누엘이 정말 좋아하는 것은 술이 아니라 술자리다. 그 자리에는 대화가 있고 침묵이 있고 사람이 있고 인간관계가 생겨난다(혹은 무너진다). 시간이 독특한 방법으로 흘러서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사람들과 기억들이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자리를 좋아하기에 바텐더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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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처음으로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사보았다. 워낙은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고 알아도 관심밖인 일이었지만 오늘 아침에 뉴스를 봐버리는 덕분에 점심 먹고 길을 걷는데 무심코 생각이 났다. 주말부터 왠지 밥맛을 잃어버려서 주말도 굶다시피 하고 오늘 아침도 건너뛰고 점심을 겨우 먹었다. 굶었다고 하면 더 많이 먹으라고 할 것 같아서 언니한텐 많이 먹었다고 반대로 이야기했다. 2년전 여름에도 이유없이 밥맛을 잃어서 한 달 정도 절로 다이어트가 된 적이 있는데, 이 밥맛없음이 좀 오래 유지되었음 좋겠다. 음식은 탐하지 말고 음식이야기로 포만감을 느끼는 생활도 괜찮을 것 같다. 종종 그런 즐거움을 느껴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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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5 15: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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