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은

 

       무엇으로도

              침묵하지

                 않는다

 

언니야 선생님이 사랑고백은 함부로 하는 것 아니래. 우리 둘한테 하시는 말씀 같았어. ㅋㅋㅋ하하하. 그녀와 나는 너무 쉽게 고백을 하는 유형의 인간들이다. 그런가? 그랬었나? 생각해보게 되지만. 암튼. 그 때 그 때 순간의 진실이 넘쳐나서 늘 감정 또한 흘러 넘친다. 소설을 펼치기 전에 에세이로 먼저 호흡을 고른다. 오늘 펼친 페이지는 사랑하는 사람은 무엇으로도 침묵하지 않는다였다. 쉽게 하는 사랑고백이 떠올라서 또 웃게 되었다. 사랑을 하면 자주 웃고, 자주 운다.

 

사랑을 통해 성장하는 사람, 사랑을 통해 인간적인 사랑을 이루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명백히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랑은 사람의 색깔을 더욱 선명하고 강렬하게 만들어 사람의 결을 더욱 사람답게 한다. 사랑은 인간을 퇴보시킨 적이 없다. 사랑은 인간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이병률<내 옆에 있는 사람>

 

마지막 문장인 사랑은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 적이 없다에서 인간적인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인간을 퇴보시킨 적이 없다는 부분에서 나는 좌절한다. 성장하고 더 인간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사랑이거늘 사랑 앞에서 늘 바보가 되는 나는 퇴보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의 온전한 결은 훼손 받고 색깔이 더 불분명해진다. 상처 받고 훼손된 모습으로 네 앞에 서 있는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

 

몸통의 이런 결절에서 가느다란 가지나 기형의 굵은 가지가 돌출하는 야생 나무들은 여기 늪지대에 군락을 이루고 있네. 물론 모래나 돌 틈에서 자란 나무들에도 그런 것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건 정상적으로 자란 오리나무의 돌연변이라고 할 수 있네. 가느다란 자기나 기형의 굵은 가지들을 돌출시켜 키워나가려는 나무의 다면적 경향으로 인해 섬유와 나무껍질이 뒤틀리고 꼬이는 현상이 일어나네. 그 부분을 톱으로 잘라 단면을 깨끗이 닦아내면 나이테의 색깔과 무늬는 가히 환상적이라 할 만하지. 그런 이유로 이 오리나무 종은 최고로 귀한 가구 재료로 대접받네. 143쪽 아달베르트 슈티프터<늦여름1>

 

 

어제 산책길에 수피가 마치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나무를 보았다. 거목이었는데, 손으로 만져봐도 이거 시멘트인가 할 만큼 단단하고 은회색빛을 띄고 있어서 진짜 시멘트인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름이 궁금하여 나뭇잎을 하나 주워와서 인터넷으로 찾아 보는데 도무지 정확한 이름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겨우겨우 어찌어찌 아마 생달나무 같다.라고 짐작해보았다. 수피가 정확하게 나오지 않아, 정확한 판단이 어려운데, 수피라는 것도 10년생과 30년생의 수피가 다르니 올려 놓은 사진만으로 이거다 싶지 않았다. 그냥 녹나무과이구나 정도로만 정리를 해야겠다. 녹나무를 찾으며 알게 된 것이 녹나무가 단단하여 도마로 많이 만들어진다는 것이었다. <늦여름1>을 읽는데 오리나무 이야기가 나오니 어제 산책길과 묘하게 오버랩 되는 부분이 있다. 나무의 결절. 나무야 말로 신기하게 죽 뻗기만 한 나무가 있는데, , 신기하다 이렇게 직선으로 죽 자랄 수도 있나 하고 쳐다야 보지만 매력이 없다. 적당한 곡선으로 구불거리며 자란 나무들이 예쁘다. 산길의 운치를 더해주는 것은 그런 나무들이다. 결절은 상처가 있어야 만 생긴다. 그것을 깍아낸 무늬는 아름답고 무늬들이 있는 도마가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이런 작가도 있나? 하고 빼어 든 <늦여름>의 작가 아달베르트 슈티프터는 오스트리아 사람이다. ‘오스트리아의 괴테라고 불리며 니체가 상찬한 <늦여름>을 썼다. 마침 한중일 성장소설을 비교해서 읽어 보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던 터라 인연이 있는 책인가 보다 한다.

 

 

다시 사랑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산책길에서 봐지는 나무와 꽃들 때문에 괴롭다. 이름 알고 싶은 병이 도지는 것이다. 존재 그 자체를 즐기면 되지 무어 그리 이름을 꼭 알려고 드느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이름을 부르는 게 내 사랑의 방식이다. 내가 너를 허물어뜨렸지, 내가 너를 너일 수 없게 했지. 마구 이름 불렀지. , 마구 이름 부르는 내 사랑의 방식은 인간관계에 놓이게 되면 다분히 폭력적이라는 것을 안다. 그 사람의 고유성 안에 침범하여 리듬을 깨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물과 나와의 관계에서는 그 이름을 불러줬을 때 더 친근해지고 한 번 만나버려져서 헤어지기 힘든 관계가 형성 되는 것 같다. 내가 노랑 토끼풀이라고 이름 붙여준 잔개자리, 보라색 꽃이 앙증맞은 등심붓꽃은 이번에 처음 보았다. 하루 한 식물은 커녕 한 달 한 식물도 알아가기 힘든 일상들이 우리를 먹여 살린다고 해서

너무 주변을 외면하지는 말자. 그게 사람이 되었든 식물이 되었든, 사랑이 되었든. (주변을 피해 와병을 핑계로 도망와 있는 사람이 할 이야긴 아니지만..)어린이날이 저물고 있다. 다들 무사히 하루를 잘 보내었는지. 조카들이 생각나는 밤이다. 어린이, 어른 모두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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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5 21: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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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5 21: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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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5 21: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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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5 21: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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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5 21: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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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5 21: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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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5 21: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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