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안 가는 아이가 한 학교에 이렇게나 많나? 나뿐인가 했어." 후카가 툭 한마디 했고 그 말에 고코로의 가슴이 꽉 조여들었다. 고코로도 그 순간 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나만이 아니었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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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7회 의병제전‘ 팻말을 선두로 태극기, 취타대, 기수들, 병사들에 이어 곽재우 장군. 그리고 17장령이라고 묶여 불리는 부하 장군들이 늠름히 행진했다. ‘선봉장 배맹신‘, ‘도총 박사제‘ 등 17명 각각의 이름이 적힌 부대 깃발도 뒤따라 나부꼈다. 1톤 트럭에 실린 대형 북이 연신 둥둥 울었다. 장중한 북소리 앞뒤로 취타에 농악까지 버무려지니 정말 전쟁터에 나가기 직전 마지막 연회라도 되는 듯하여 살짝 애달파지려는 찰나, 나약한 감상에 빠지지 말라는 듯 앰프에서 마이크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조선의 의병들이여, 횃불을 들고 승리로 나아가자아아앗!" 그리고 그 뒤로 흐르기 시작했다. 수많은 빨간 사람들의 손에 들린 수많은 횃불들이.
횃불대열을 이룬 이들은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했다. 외국인도 있었다. 누군가는 진중하게 걸음을 떼었고, 누군가는 광경을 뛰었다. 누군가는 옆 친구 손을 꼭 잡고 흔들었고, 누군가는 인도를 향해 얼굴 모를 이들에게 손을 흔들었다(.우리도 마주 흔들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오가 얼마나긴가 싶어 후미를 향해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했다. 그리고 끄트머리에 다다랐을 즈음, 우리는 보았다. 모퉁이에서 합성을내지르며 행렬 끝에 합류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또 조금 후에는 편의점 앞에서 합류하는 학생들을, 또 이어서 합류하는농악대와 주민들을, 그 순간 우리 마음에 일어난 작은 동요를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이미 수차례 읽은 책 같은 풍경이었다. ‘이곳저곳에서 의병이 일어났다.‘라는 한 문장이면 끝나는 뻔한 이야기. 하지만 ‘이 곳‘ 안에도 또 ‘이곳저곳이 있었다. 읍내를 통째로 무대로 쓰는 이 거대한 연극의 한가운데에서 과거와 현재가 자꾸 겹쳤다.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휴대폰 가게, 영어 학원 등이 자리한 읍내가 너무 현실적이고(현실이니까….) 일상적인(일상이니까….) 공간이라서 더 그랬다. 아까 마주친 학생들과 주민들을 행렬 안에서 발견해서 더 그랬다. 자꾸 상상하게 됐다.
동네 친구들끼리 모이면 장난이나 치고 깔깔대며 소소한 일상을 일궈 가던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전란 앞에 의기투합하여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평범한 날들과 작별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7시에 GS25 앞에서 만나!" "김밥천국 앞에서 윗동네랑 합류하자!" 같은 약속아래 모여 드는 모습을, 그 안에서 모두가 의병으로서 만나는모습도.
우리는 의병의 역사를 안다. 선조수정실록은 1592년 6월1일, 의병에 대해 "국가의 명맥이 의병들 덕분에 유지되었다"
[國命賴而維持]라고 하면서도 그들이 "크게 성취하지 못했다"
[不得大有]라고 기록한다. 임진왜란에서 의병의 역할은 국가의 공식 기록보다 훨씬 크기에 이 두 구절의 사이는 아프고 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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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 좀 불편해도 산다는 것은 ‘조금씩 불편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에 우리는 이골이 나 있습니다. 사는 것은 참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지 않으면 자발스럽다고 생각하고, 방정맞다고 생각하는 것에 버릇이 들어 있습니다.
이제 그러지 마세요. 산다는 것은 ‘조금씩 불편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살아 있는 시간이 편하고 즐거워야 하고, 보람 있어야 하지요.
이제 몸부터 챙기세요. 알아서 척척, 그냥 건강해지는 착한 몸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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