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28일, 오랜 시간을 기다리게 한 뒤에, - 파묵의 말에 따르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작업이어서 결국 박물관 개관 날짜를 정해놓고서야 끝맺음을 시작할 수 있었다는, 한편 심포지움에 참석한 한 청중의 질문에 따르면, 박물관이란 사실 개관 이후에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라는 - <순수박물관>이 개관을 했다. 지방 일정이 있어 그날에는 참석하지 못하고 5월 3일에 방문할 수 있었다. 소설에 담긴 사물들과 물건들을 챕터별로 정리해두고 아주 세밀하고도 꼼꼼하게 정리한 박물관을 아주 천천히 둘러보며 새삼 소설에 몰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상상력은 대개는 현실을 포괄하기에 상상과 감흥으로 느껴온 물건들을 막상 바라볼 때의 괴리와 낯섬은 당연한 감정이었다.
0층에 세밀하고 치밀하게 케말이 모아둔 - 심포지움에서는 한 사람이 4백 개가 넘는 담배꽁초를 만들어내었다고 했다, 내 터키어가 틀리지 않았다면. 담배꽁초의 모양과 그 꽁초에 찍히는 루즈의 모양, 그리고 파묵의 정황 메모들은 매무 이색적인 느낌을 주었다. - 4213개의 담배꽁초를 바라보며 참 징하다는 생각을 했다. 사랑하는 건 어렵고 또 그 사랑을 보여주는 건 또 이토록 어렵고 그 사랑을 창조한 뒤 거짓된 이야기를 현실의 사물로 치환해 사실로 보여주는 건 또 이토록 징그럽고 독하다.
1층에는 1~51 챕터의 물건들이 있다. 2층에는 52~79 챕터의 물건들이, 3층에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소설가 오르한 파묵에게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설명하는 것으로 나오는 화자 케말 바스마즈(Kemal Basmacı)가 2007년 4월 12일 사망할 때까지 살았다는 설정 - 혹은 증거? - 으로 그의 침대와 주변 물건들, 전세계의 여러 언어로 번역된 오르한 파묵의 소설 <<순수 박물관>>의 책들이 있다. 퓨순의 귀걸이 한 짝과 노오란 신발 한 짝, 꽃무늬 드레스 등의 이미지가 마음에 박혔다.
박물관에 왠지 오랜 시간을 앉아 있고 싶었지만 뭔가 낯선 이질감이 점점 커져서 빨리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인 것이지. 사실과 허구, 현실과 소설이 뒤엉키는 느낌이 매우 생경한 것이지, 싶었다.
5월 5일과 6일은 미마르 시난 대학교에서 오르한 파묵의 소설 <<순수 박물관>>에 관련된 심포지움이 있었다. 파묵의 얼굴을 다시 본다는 것도 매우 기대가 되었고 또 그의 작품과 박물관이 터키 내에서 어떤 평가와 주목을 받는지도 궁금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오르한 파묵을 바라보는 터키 사람들의 모습을 너무 보고 싶었다. 예상보다는 더 많이, 더 우호적인 모습을 보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5일은 몸이 좋지 않아 쉬었고 6일에서나 가보게 되었다.

다양한 주제와 관점으로 파묵의 소설이 이야기되었고, 소설을 박물관으로 만든 의미에 대해서도 깊이있게 이야기되었다. 그리고 박물관을 만드는데 참여했던 건축가와 코디네이터와 음향전문가와 사진작가와 도와준 후배 작가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후배들이 파묵과 작업하면서 느꼈던 이야기들이 인상깊었다. 그리고 박물관 개관과 더불어 오르한 파묵의 신작 책이 나왔는데 그 작품은 원래는 순수박물관의 카달로그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점점 이야기와 구성과 계획이 커져서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오누르 카라오울루(Onur Karaoğlu)라는 젊은 기획자가 재미난 말을 했다. 보통은 소설로 영화를 만드는데 우리들은 소설로 박물관 만드는 일을, 그리고 그 박물관에 관한 카달로그에 대해 작업을 했다며.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영화는 보아도 원작 소설은 안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카달로그를 보게 되는 많은 터키 밖의 독자들은 정작 박물관을 보지 못할 확률이 높으며, 더구나 그 박물관을 원작으로 한 소설까지 있는 경우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말했다. 청중들은 다들 크게 웃었다.



심포지움 도중 우아한 발걸음으로 검은 고양이가 들어오더니 무대에서 한참을 죽치고 앉아 털을 고르고 엉덩이를 핥고 누워 쉬더니 다시 우아하게 퇴장했다. 얼룩 고양이 한 마리는 들어올까 고민하며 머리만 내밀고 들어오진 않았다.
파묵의 폭주하는 듯한 말하기는 여전했으며, 오히려 더 심해진듯 조금씩 말을 더듬었다. 손짓과 몸짓언어는 더 현란해졌으며 그의 목은 예전보다 훨씬 굽었다. 질의 시간에 한 엉뚱한 녀석이 마이크를 잡더니, 나는 책을 안읽었고 질문도 없지만 책의 부정적인 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며, 내 이야기를 듣고 싶냐고 말을 했다. 파묵이 잽싸고도 단호하게 책을 읽지 않았으니 싫다고 말했다.
오늘은 터키 갈라타사라이와 베쉭타쉬, 트라브존스포르와 페네르바흐체의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다. 아주 시끄럽고도 격렬한 밤이 예상된다. 골과 동시에 온 골목이 큰 함성으로 뒤덮인다. 자기 팀의 유니폼을 입은 젊은이들로 거리가 북적인다. 집에 들어와서, 언제 이후 먹는 것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김치찌개를 먹으며 가만히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