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독서노트 (tetley 서재) &gt; 마이리뷰</title><link>http://blog.aladin.co.kr/nirimca/category/7256</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01 May 2026 23:37:00 +0900</lastBuildDate><image><title>tetley</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73787143.jpg</url><link>http://blog.aladin.co.kr/nirimca/category/7256</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tetley</description></image><item><author>tetley</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괜찮은 책 - [지리, 세상을 날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nirimca/3179128</link><pubDate>Thu, 29 Oct 2009 19: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nirimca/317912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4833824&TPaperId=317912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20/coveroff/8974833824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4833824&TPaperId=317912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지리, 세상을 날다</a><br/>전국지리교사모임 지음 / 서해문집 / 2009년 04월<br/></td></tr></table><br/>원래 리뷰를 안 쓰는데, 딱 하나 있는 리뷰가 너무 혹평이더라.&#160;&#160;
책 살까 말까 고민하면서 리뷰 참고하시는 분들 많을 텐데, 다른 의견도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다.&#160;&#160;&#160;
일단 제목이나 표지를 봐도 알 수 있겠지만 깊이 있는 지식을 전달하는 책은 아니다.&#160;지리에 관해서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독자라면&#160;이게 뭐야? 이런 거 모르는 사람도 있나?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거 모르는&#160;사람, 있다.&#160;좀더&#160;전문적인&#160;정보를 원하는 분이라면 그에 걸맞는 책들을 읽으면 될 것이고, 이&#160;책의 타겟(이라고 생각되는)&#160;아이들, 그리고 나같은&#160;지리 무식쟁이 성인에게는&#160;충분히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20/cover150/8974833824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62031</link></image></item><item><author>tetley</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대가만성에서 대기면성으로... - [숨어있기 좋은 방]</title><link>https://blog.aladin.co.kr/nirimca/263535</link><pubDate>Thu, 31 Aug 2000 21: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nirimca/26353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5577034&TPaperId=2635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noimg_off_b.gif"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5577034&TPaperId=26353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숨어있기 좋은 방</a><br/>신이현 지음 / 살림 / 1994년 11월<br/></td></tr></table><br/>대기만성은 흔히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해석되어왔다. 그러나 이 말의 출전이 노자인 만큼 여기에는 많은 논란이 있었다. 알다시피, 그 말은 공자라면 모를까 노자의 가르침에는 전적으로 위배되는 진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 성어는 원래 대기만성이 아닌 대기면성이었음이 밝혀졌다 한다. 그 말을 풀이해보자면 '큰 그릇은 이루어짐을 면한다' 혹은 '큰 그릇은 이루어지지 않은 듯 보인다'는 의미이다. 아하! 그제서야 아귀가 들어맞는다. 장자의 붕, 보들레르의 알바트로스, 니체의 어린아이 등 동서고금을 통틀어 모든 위대한 영혼들이 꿈꾸어온 것은 너무도 거대한 것이어서 그것은 흔히 아무것도 아닌 듯 보였다. <BR><BR>신이현의 처녀작인 &lt;숨어있기 좋은 방&gt;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나는 겉표지에 쓰여진 '경쾌한 정신, 니체적 질문으로 가득 찬 소설'이라는 문구가 과장이 아님을 알았고 한국에서 이런 소설이 쓰여졌다는 사실에 엄청나게 흥분했다. 좁은 의미의 리얼리즘의 틀 속에 갇힌, 혹은 나약한 감상을 대단한 고뇌인 양 주절대는 나약한 소설들에 넌더리가 나 있던 참에 발견한 이 소설에 나는 즉각 빠져들어갔다. <BR><BR>신이현은 우리 나라 문단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작가적 허영에서 승리한, 혹은 '거꾸로 된 허영'을 실천하는 작가이다. 당연히, 그녀의 작품은 희극의 형식을 띤다. 쿤데라의 말을 빌리자면 비극은 우리에게 인간의 위대함이라는 멋진 환상을 줌으로써 위안을 제공하지만 희극은 이보다 훨씬 혹독하다. 그것은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노골적으로 폭로하는 까닭이다. 얼핏 보면 단순한 패배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윤이금이라는 주인공의 무위 속에는, 그리하여 결코 희극적이지 않은 결연한 의지가 숨어있는 것이다. <BR><BR>'오 한 쥐의 꼬리를 문 쥐의 꼬리를 문 쥐의 꼬리를 <BR>문 쥐의 꼬리를 문 쥐의 꼬리를 문 쥐의 꼬리를......'<BR>위의 시는 최승자의 '악순환'이라는 시의 마지막 연이다. 거기에 딱 한 문장만 보태보자.<BR>'...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을 테야.' <BR><BR>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 글은 대기만성을 부르짖는 이 세상에 포위된 채 대기면성을 꿈꾸는 낯설고 매혹적인 사이렌의 노랫소리가 된다. 그러나 차라리 나무라면 무하유향(無何有鄕)―무위무작(無爲無作)의 절대 자유의 경지. 장자가 추구한 무위자연의 이상향을 뜻한다고도 한다―의 광막한 들판에서 도끼날에 찍히지 않은 채 편안히 대기면성을 즐길 수 있겠으나 인간은 그럴 수가 없으니,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그러한 인간 조건에 대한 어찌할 수 없는 연민이다. <BR><BR>'나는 아직도 서른이 되지 못했고 그것은 여전히 멀고 아득하게만 느껴진다.'<BR><BR>1분중 0분께서 이 리뷰를 추천하셨습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img/noimg_150_b.gif</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21481</link></image></item><item><author>tetley</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너는 그러나 창가에 앉아 그 소식이 전달되기를 꿈꾼다, 저녁이 오면. - [오드라덱이 들려주는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nirimca/263534</link><pubDate>Sun, 30 Jan 2000 01: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nirimca/26353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09821&TPaperId=26353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67/coveroff/8932009821_1.gif"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09821&TPaperId=26353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오드라덱이 들려주는 이야기</a><br/>프란츠 카프카 지음, 김영옥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01월<br/></td></tr></table><br/>작가들이 가장 존경하는 작가란 어떤 존재일까? 그는 무언가 획기적인 것을 '발명'한 사람인가? 물론 그런 부분도 있을 것이다. 문체라든가 구성이라든가 하는 기술적인 문제에서 말이다. <br><br>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더욱 근본적인 위대성은 그가 어떤 것을 '발견'해냈다는 데 있지 않을까 싶다. 이를테면, 카프카 이전에도 '카프카적' 상황들은 늘 존재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러한 상황들을 하나의 뿌리로 연결시킬 수 있게 된 것은 카프카 이후이다. 바로 이것이 첫 문장에 대한 어렴풋한 대답이 아닐까.<br><br>  처음에 그를 읽었을 때의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첫번째 느낌은 그가 문학적 분위기--그닥 좋지 않은 의미에서의--에서 멀찌감치 비켜서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어느 누구와도 닮지 않았다. 나는 그처럼 어리둥절할 만큼 멋부리지 않은, 동시에 완벽하게 독창적인 문장을 본 적이 없다. 쿤데라가 '까만색의 기이한 아름다움'이라 표현한 그런 낯선 아름다움 역시.<br><br>카프카 이후로 거대 서사는 끝났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 후, 내가 쓰고 있는 서평보다도 훨씬 짤막짤막한 글들이 실려 있는 '오드라덱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게 되었고 나는 카프카 이후에 모든 우화 역시 끝났음을 느꼈다.<br><br>'진정한 길은 공중 드높이 쳐진 게 아니라 땅바닥에 닿을 듯 말 듯 쳐진 줄 위로 나 있다. 그것은 지나가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걸려 넘어지게 하기 위해서 있는 길인 듯 보인다.'<br><br>그가 말하려는 것을 위해서 이 두 문장 이상의 말이 필요할까?<br><br>그는 참으로 침묵의 달인이었다. 그러나 그가 적게 말하면 할수록 그 파장은 더욱더 넓고 깊어진다. 잠언, 혹은 우화라는 것은 한 순간 강한 충격을 줄 순 있지만 곧 더 정연한 다른 논리에 의해 잊혀지기 쉬운 것이나, 그의 글은 그러한 허망한 불꽃놀이 같은 것이 결코 아니다. <br><br>그것은, 이 작은 책의 행간마다에서 자라나는, 글자들을 압도하는 침묵 때문이다. 그는 진리를 말하고 있지 않다. 진리란 공유되거나 발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는 다만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뿐이고, 그것에 대답하는 것은 고스란히 우리들 각자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br><br>그리고 바로 그러한 사실, 그의 책이 '침묵의 서'이자 '질문의 서'라는 것에 카프카의 위대성이 있는 것이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0/67/cover150/8932009821_1.gif</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6745</link></image></item><item><author>tetley</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다른 누구도 감히 실패할 수 없는 식으로 실패한다는 것이다. -사무엘 베케트 - [굶기의 예술]</title><link>https://blog.aladin.co.kr/nirimca/263533</link><pubDate>Thu, 27 Jan 2000 01: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nirimca/26353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2811885&TPaperId=2635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53/coveroff/8982811885_1.gif"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2811885&TPaperId=26353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굶기의 예술</a><br/>폴 오스터 지음, 최승자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06월<br/></td></tr></table><br/>허먼 멜빌, 조셉 콘라드, 마루야마 겐지 그리고 폴 오스터.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배를 탄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하나의 은유로 이해할 때 우리는 그들의 공통된 강박을 희미하게나마 감지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들과 비슷한 질감의 강박을 가졌다고 느껴지는 작가들, 카프카, 베케트, 함순, 파울 첼란, 로라 라이딩 등의 작가들을 통해 폴 오스터는 그러한 강박을 성공적으로 언어로 표현해냈다. <br><br>그러나 책의 내용을 살펴보기에 앞서 우리는 일단 그의 약력을 알 필요가 있다. 그가 거친 직업들은 선원에서부터 통계조사원, 강사, 전화교환원 등 어지러울 정도로 다양하다. 최종학력이 문학 석사임을 생각하면 그 직업 목록은 의아하게 느껴진다. <br><br>학력 따지기로는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이지만 다른 나라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생각할 때 그런 의구심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가 왜 그런 식으로 사서 고생을 했는가는 그의 글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br><br>그는 미국 작가, 더 정확히 말하면 뉴욕의 작가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그는 국경과 상관 없이 '걸신들린 단식'에 뿌리를 둔 일군의 작가들의 계보를 잇고 있다. 앞의 용어에서 우리는 가장 먼저 카프카의 단식사를 떠올릴 것이다. <br><br>그렇지 않아도 이 책에는 카프카에 관한 글이 두 개나 있다. 이 책의 첫머리에 위치해 있는 글은 아예 '굶기sult' 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크누트 함순의 소설에 관한 것이다. 그 글을 시작으로 그가 경의를 표하며 탐구하는 작가들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최후에 발견하게 되는 것은 폴 오스터의 내면이고, 나아가 우리들의 내면이다.(최승자 시인은 역자 후기에서 이것을 'The perceiver and the perceived are one'이라 표현하고 있다.)<br><br>직접 그의 말을 빌리자면 '이해받지 못하는 예술가에 대한 고전적 이야기들'은 그가 말하려는 바가 아니다. 행간에 숨어 있는 진정한 의미는 바로 '단식의 본질 그 자체가 이해를 거부하는 것'임을 밝히는 것, '처음부터 그 자신이 불가능한 일임을 아는 것, 그리고 그 자신에게 어떤 실패를 선고하는 것, 그것은 좌절이나 파괴에 도달하도록 운명지어진 것이 아닌, 징후 없이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한 과정이라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이다. <br><br>요컨대 그의 모든 말은 '너무 멀리 간 예술가들'이라는 하나의 이야기로 집약된다. 그의 소설을 읽어보면 이것은 더욱 확실해진다. 그는 견자가 되기 위해 오랫동안 엄청난 노력을 들여 의식적으로 감각의 착란을 꾀했던 랭보의 정신적 후예이며, 이 책에 소개된 모든 작가들은 실상 폴 오스터 자신의 내면이다. <br><br>당연하게도, 그렇게 무(無)를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무릅쓰려 하는 데에는 엄청난 정신적, 육체적 노력이 요구된다. 처음에 말한 '사서 고생'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는 진공 상태에서 머리로만 글을 쓰는 안일한 작가가 아니며, 직접 겪지 않고서 자기 것인 양 이야기할 수 있는 뻔뻔한 작가는 더욱 아니기 때문이다.<br><br>  나는 폴 오스터의 모든 글을 좋아하지만 특히 이 산문집은 영혼이 닮아 있는 타인들을 통해 드러난 그 자신의 의식인 까닭에 소설과는 다른 방향의 샛길을 통해 우리를 폴 오스터의 내면으로 안내한다. 삶이라는 것이 무언가를 더덕더덕 붙여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하나 벗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수긍하시는 분들 모두를 여기, 걸판진 굶주림의 잔치에 초대한다. 와서 마음껏 즐기시라!<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53/cover150/8982811885_1.gif</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5399</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