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 왜 민주주의에서 마음이 중요한가
파커 J. 파머 지음, 김찬호 옮김 / 글항아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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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적 통치체제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체포의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한 사람들은 길거리에 모일 수 없습니다. 결사적인 삶은 권력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공적인 삶이 영위되는 곳은 차단됩니다. 진짜 목소리를 내는 시위는 불법으로 선언되고 강제로 종식되며, 그들이 쫓겨난 무대는 엉터리 정치 집회로 채워집니다. 그러나 구성원 모두가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색을 사용하라고 명령하는 흑백사회를 거부하고, 총천연색 사회를 만들고자 한 사람들은 언제나 어느곳에서나 존재했습니다. 우리 땅에서 일어났었던 6월 항쟁 역시 그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항쟁의 순간, 비통해하는 사람들 속에 분명히 민주주의는 존재했고, 그래서 우리는 민주화 운동이라고 부릅니다.

민주화 운동이 만들어낸 87년 체제로 인해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지만,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닙니다. 민주주의가 절차적 수준에서 제도화되었지만, 그것이 권위주의적 유산의 청산을 의미하는 것은, 또한 영구한 민주주의 사회임을 보장하지는 못합니다. 파커 J. 파머는 민주주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엇이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할 무엇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민주주의 국가임을 자처하면서 민주주의적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이름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 북한과 다를 바 없습니다. 피터 버거의 말처럼, 모든 상대주의에는 절대의 재래를 기다리는 광신이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불편합니다. 사람들 간에 긴장을 불러일으키도록 의도된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낯선 자와 만나고, 자신과 다른 의견에 대립하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절대적으로 생각하는 믿음이 허물어지는것을 지켜봐야 합니다. 남들 눈에 교만하고 이기적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이런 긴장관계는 분명한 스트레스의 일종입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긴장을 버티지 못하고, 에리히 프롬의 말처럼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시도하기도 합니다. 전문가들, 권위자의 말을 맹신하고, 복종함으로서 자유를 포기하는 대신 편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많은 유명 인사들, 정치인들과 관리들은 사람들이 가진 민주주의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합니다. 그들은 타자에 대한 두려음을 조장하고, 절대적 가치를 외치며 자신의 부와 권력을 획득합니다.

의심이 없는 한 민주주의도 없다. 절대적인 진리가 모든 형태의 전제정치의 핵심인 것처럼. 제도적 저항, 다당제, 대안 세력, 민주정치 체제의 핵심에 의심이 없다면 무엇이 있겠는가? 의심이 최종적이고 절대적으로 침묵한다면, 민주주의 그 자체가 종말에 이를 것이다. 더 이상 논쟁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민주주의가 뭐가 필요한가? -《의심에 대한 옹호》p.170


그러나 우리는 민주주의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피터 린더트는 독재적 방식은 일시적으로는 효율적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많은 부작용을 낳으며, 민주주의는 단기적으로는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고 지적한바 있습니다. 동의하지 않는 시민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불가피한 긴장을 창조적인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가 가진 특별함입니다. 절대 권력자가 모든것을 진두지휘하며 명료하게 계획하는 것보다, 국회의원끼리 대립하고, 정부부처간에 견제하는 긴장관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발전이야말로 아마르티아 센이 말한 진정한 발전, 자유로서의 발전입니다.

달리지 않는 자전거는 옆으로 넘어지는 것처럼, 민주주의 역시 계속 행동함으로서 유지됩니다. 민주주의는 헌법이 있다고 해서 생기는 것도,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단순히 선출직 공무원을 통해 국가를 운영하는것만으로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파커 J. 파머는 민주주의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선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이 마음은 자아의 핵심이며, 근원적인 앎의 방식들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가장 핵심적 층위에서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긴장과 불확실성을 끌어안음으로서 민주주의적 행동을 습관으로 발현하는 시민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비통함을 느낄 수 있고, 정치로서의 민주주의를 이끌거나 뒷받침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눈으로 정치를 바라보면 우리는 그것을 전진하고 대항하는 체스 게임, 권력을 잡기 위한 야바위 노름, 서로 비난만 해대는 두더지 잡기 게임으로 보는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제대로 이해한다면 정치는 절대로 게임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를 창조하기 위한 오래되고 고귀한 인간적인 노력이다. - p.41


민주주의적 마음의 습관을 지닌 시민은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가족, 교실, 직장 또는 다른 자발적 결사체를 통해 교육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정에서, 학교에서, 성인이 된 이후에 다양한 단체를 통해 민주주의적 가치, 갈등과 불확실성을 교육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아이는 부모의 권위에 저항하지 못합니다. 학교에서 학생은 선생의 권위에 의견을 내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어른들이 구성한 사소한 문제 이외의 사안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판단 능력이 없는 듯 취급됩니다. 대학생들은 충실한 정보로 가득 찬 민주적 가치에 관한 과목을 수강할 수는 있지만, 교사가 그 정보를 받아쓰게 하고 학생들이 그것을 달달 외워 시험에 적도록 한다면, 그들은 민주적인 가치를 배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재의 추종자로 살아남는 것을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성장시킨 교육은 우리를 사회의 배우가 아니라 관객의 일원으로 취급하며, 그 결과 어른이 되어서도 정치를 그저 관람할 뿐입니다.

손을 들어 질문하는것조차 꺼리는 사회에서, 갈등관계를 유발해 차이를 토론하고, 유머를 활용하고, 갈등을 타협할 수 있는 시민을 만들어내는 것을 바랄 수 없습니다. 낯선 자들과 함께하는 경험을 얻지 못한다면, 언제까지고 타자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일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행동해야 합니다. 거리에서, 술집에서, 광장에서 낯선 사람들이 모여 타자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사회적 연대감을 높이고, 공공적 책임을 외치는 것은 민주주의적 행동이며, 민주주의의 회복입니다. 국가의 펀더멘털은 단순히 엄청난 양의 금괴나 외환보유량만으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돈을 쌓고 계속해서 신제품을 생산하더라도, 그것은 확실한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파커 J. 파머는 가장 든든하고 확실한 국가의 자산은, 정부의 의견에 반발하고, 다른 사람과 의견 갈등을 벌이며, 불공정과 우둔함을 절대로 방관하지 않는, 민주주의적 가치를 실현하는 시민에 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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