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 라이프
허안화 감독, 유덕화 외 출연 / 이오스엔터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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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 야스지로의 인장이 연상될 정도로 삶과 관계, 세월을 담백하고도 정밀하게 응시한 [심플 라이프]를 감상하는 내내 괴리감이랄까, 솔직히 약간의 이질감이 든 것도 사실이다. 대를 이어 양씨 가문의 하녀로 일해온 아타오(엽덕한 扮)가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요양원 행을 자처, 그녀의 손에서 똥오줌 가리고 중년이 넘도록 자라나다시피 한 독신 영화 제작자 로저(유덕화 扮)는 아타오를 물심 양면으로 지극 정성 보살핀다. 혈육이라도 저렇게까지 하긴 힘들 텐데. 헌데 어라. 로저의 죽마고우들을 비롯, 외국에서 찾아온 누이까지 매한가지 마음결이다. 그들의 관계엔 흐믓한 나눔과 기댐이 있을 뿐 사람들 간 응당 맞닥뜨리게 되는 밀고 당김의 역학, 마찰, 알력, 앙금이 거의 감지되지 않는다. 이거 참. 경제적으로 여유로우면서 선량하기 그지없는 특정 계층 사람들 얘기로구나 싶었다. 허나 영화가 중반을 지나 뒤로 갈수록 인물들의 조심스러운 표정과 사소한 동작 하나하나에, 작품 자체의 호흡과 흐름에 동조됨을 느꼈다. 아타오와 로저의 관점으로 요양원 사람들의 퍽퍽한 처지, 비루한 속내에까지 시선이 미치면서 노령화 사회의 문제들을 환기하는가 하면 점점 짙어가는 아타오의 병색을 따라 그토록 이상적인 유사 모자관계지간에도 불가항력이기 마련인 사별, 어쨌건 남남일 수밖에 없는 현실의 간극을 쓸쓸히 지켜보게 된다.

 

감상 개입의 여지없이 절제된 감정선으로 정서적 평정을 유지한 작품 어조와는 별도로 올드팬 입장에선 자꾸 울컥 치밀게 된달까. 연출도 연출이지만 [심플 라이프]는 무엇보다 배우들의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생무상, 30년 전 [법외정]에서 처음 만났던 엽덕한과 유덕화 두 베테랑 배우들의 주름진 얼굴에서 전해오는 정한이 어찌 말로 형용할 길 없는 감흥에 젖어들게 했다. 한 시절 제대로 풍미했으나 그 혼란스럽던 1997년 홍콩 반환을 거치며 누군가는 시대의 격랑에 떠밀려 등락을 거듭하고 또 누군가는 여전히 홍콩 영화계의 빅 브라더로 서있는 중견들 - 서극, 홍금보, 황추생 등 - 의 특별 출연은 격세지감마저 불러 일으켰다. 이렇게 허한화 감독은 화면 밖의 향수조차 필름에 꾹꾹 눌러 담으면서 동방에서나 서방에서나 이역일 수밖에 없는 홍콩이라는 공간의 추억과 운명, 떠나간(갈) 자들과 남겨진(질) 자들의 회한까지 애틋하게 보듬었다. 엔딩 타이틀이 오르는데 눈물과 미소가 동시에 번져났다. 여운이 오래 갈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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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9-04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인의 삶을 위로하는 일은
자신의 삶을 위로하는 일이 된다. 직접 고난을 겪고 위로를 배우게 되는 신의 사랑.
울고 웃고 나고 죽는 것, 그외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는 법. 때를 알고 곳을 아는 게 심플라이프가 아닐까. 담백하게살자. 코끝 찡해지는 영화다.
‥ 서쪽섬님 리뷰 읽으며 이 영화 보고 적었던 메모를 뒤적였어요. 참 좋은 영화였습니다. 3년전에 보았네요.

풀무 2015-09-04 17:39   좋아요 0 | URL
예.. 쓸쓸한 온기랄까요. 막상 화면에 배어들기 어려운 온갖 감정, 정서들이 자연스레, 담백하게 잘 표현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