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공지영 지음 / 해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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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 #2024 #에세이 #신앙 #예루살렘 #가톨릭 #유대교
#공지영 #너는다시외로워질것이다 #해냄

예약판매 소식을 듣자마자 구매했던 공지영 산문,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작가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온라인 서점 한줄평에는 책을 구매한 사람들도 아닌, 심지어 한 줄 읽지도 않고 비난의 글을 남기는 걸 종종 보았다. 작가와 아무 관계도 없는 내 눈과 맘에도 좋지 않았으니 당사자인 작가는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절필까지 생각했다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던 일부 사람들의 끝모를 비난을 넘어 그는 평사리에서 나름의 평화를 찾는 듯 했다. 그 무렵 출간했던 #그럼에도불구하고 역시 잘 읽었지만 이번 신간은 느낌이 사뭇 다르다. #작가 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이야기 같았다.

#책속글귀
누군가의 말대로 성모는 하느님의 아들을 낳아서가 아니라 그 아들이 하느님의 뜻ㅡ자신의 뜻이 아니다ㅡ을 행하도록 놔두고, 내버려두고, 그리고 떠나보냈기에 거룩한 어머니가 된 것이리라.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살아갈수록 더 생각하는데 인생에서 얻는 것보다 내려놓는 것이 백배는 더 어렵다. 그중에 제일 어려운 것이 아마도 자식일지 모르겠다.


묵주기도 고통의 신비1단을 바칠 때 꼭 묵상하게 되는 #성경 구절,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기도는 저리 하면서도 지난 날 내 뜻에 주님 뜻이 맞춰주시기를 청하는 기도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특히 아이와 관련된 문제에서는 다른 답은 결코 없어야 한다고 기도했다. 아이를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내 삶의 첫 째 자리에 있어야하는 차이를 이제사 아주 조금씩 짐작할 뿐이다. 작가는 지인의 부고 소식에 예루살렘으로 가야할 때임을 알았고 늘 망설이던 여행인데 이번에는 그런 주저함이 전혀 없었다고했다. 삼엄한 경비와 차별까지 어느새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보다 나를 비우고 감사하는 길을 걸어가는 모습에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에서 ‘그렇게 하겠습니다’로 나 또한 변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작가만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가 된다. 그렇게 무수히 많은 ‘나’와 ‘변화’들이 사랑을 말하고 몸소 그 사랑을 실천한 그 분의 바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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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클래식 수업 8 - 차이콥스키, 겨울날의 찬란한 감성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8
민은기 지음, 강한 그림 / 사회평론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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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클래식수업 #클래식수업 #클래식 #차이콥스키 #차이코프스키 #백조의호수 ##호두까기인형 #오페라 #발레음악 #쉬운클래식 #❄️

민은기 교수의 <난처한 클래식 수업> 시리즈 8권은 특히 겨울이면 더 많이 듣게 되는 차이콥스키를 다뤘다. 해당 시리즈는 이전에 바흐를 다뤘던 3권에서 만났었는데 그때도 워낙 흥미진진하면서도 수록된 곡들을 오랜 기간 들었던터라 기대가 컸다.

차이콥스키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설명 전 유럽의 민족주의 음악이 탄생과 배경 부터 등장한다. 매 쳅터마다 필기하듯 기억해야 될 내용을 한페이지 분량으로 알아서 요약도 해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난처한 클래식 시리즈는 책과 함께 관련된 작곡가의 음악 혹은 낯선 악기의 원리등을 들어가면서 읽을 수 있어 작품을 들었을 때 연상되는 분위기와 느낌 묘사에 공감할 수 있었다. 초반에 다소 놀랐던 것은 백남준 아티스트와 유사한 부분이 많았다는 점이다. 우선 경제적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유년시절 부터 음악을 배웠지만 아버지나 가족들이 당사자를 예술가로 키우려고 했던 것은 아니라는 점,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점도 그랬다. 차이콥스키의 경우 심지어 법학을 공부했을 뿐 아니라 졸업 이후 바로 법무성에 취업까지 했지만 결국 2년 뒤에 음악원에 입학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음악으로 치유했던 만큼 음악이 줄 수 있는 무한한 힘을 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더군다나 초기에 작곡했던 곡도 들을 수 있었는데 저자 말대로 비전문가인 내가 듣기에는 그마저도 너무 멋지게 들렸다.

내가 음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리고 내가 유일하게 잘하는 게 음악이라는 걸 너도 알 거야. 내가 신이 주신 재능을 개발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하는 이유를 알겠지? 117쪽


그런가 하면 빈 고흐와 비슷하게 느껴진 부분도 있었는데 동생에게 편지를 보내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를 적거나 자신의 첫사랑에 대한 설렘과 또 실연 중에도 초연할 수 있었던 마음을 적어 보낸 부분이 그렇게 느껴졌다. 유리로 만든 것처럼 여린 그였지만 상처가 많다고 해서 사랑이 부족했던 아니었던 셈이다.

음악이 쉼이고 치유라는 말을 몸소 체험한 차이콥스키에게 늘 영광과 찬사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심혈을 기울여 헌정했지만 노골적인 비판을 받은 적도 있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백조의 호수>가 발표 당시만 하더라도 여러이유로 혹평을 받기도 했다. 이밖에 러시아가 지리적 위치 때문에 서유럽에 대한 동경과 동시에 열등감을 극복하려 했던 다양한 시도나 차이콥스키 한 사람 뿐 아니라 러시아의 예술, 민족주의 음악 등을 훑어볼 수 좋았다. 전체적인 내용을 부드럽게 연결해주는 일러스트도 멋진 책으로 겨울에는 책과 함께 계속 찾아들을 수 있어 #추천 합니다.

#민은기 #강한일러스트작가 #사회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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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위한 정의 - 번영하는 동물의 삶을 위한 우리 공동의 책임
마사 C. 누스바움 지음, 이영래 옮김, 최재천 감수 / 알레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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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알레북클럽#마사너스바움 #동물을위한정의

마사 너스바움의 <동물을 위한 정의>는 그동안 주류를 이루었던 ‘인간의 시선에서’ 정의된 동물이 아닌 ‘동물’을 위한 정의를 내리기 위한 시도이자 내용을 담고 있다. 아주 단순하게 동물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조차 동물도 ‘고통’을 느끼는 종이 있기 때문에 무자비한 포획 혹은 학살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 동물원처럼 연구가 아닌 철저하게 인간의 ‘행복’을 위한 행위도 근절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들을 추종해왔다. 간혹 동물원에서 재롱을 부리며 조련사와 함께 친분을 나누는 것을 보고 우정이라 말하고 어쩌면 ‘행복하게’사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기도 한다. 마사 너스바움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감각의 일부분(쾌고감수능력)을 느낀다고 해서 존중받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동물이 종과 상관없이 그들이 가진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역량 접근법을 주장한다. 소위 ‘내 자식은 내 눈에만 예쁘다’라는 명제는 비단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반려동물에게 끔찍한 사람들 조차 저 먼 바다에서 무자비한 포획이나 제대로된 제도와 정책이 없어 플라스틱을 먹고 아사해버린 동물에게는 관심이 없다. 또 영장류처럼 인간의 모습과 비슷하거나 진화론과 연계되어 있는 일부 종에게만 좀 더 연민을 갖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얼마전 서평을 적었던 <위대한 파리>의 저자 에리카 맥앨리스터의 말처럼 동물을 존중하기 이전 이미 척추동물과 무척추동물의 연구비중 부터도 큰 차이를 보인다. (종수로만 치면 후자가 훨씬 더 많다) 이 모든 것은 지배계층의 시선이자 자연의 사다리, 바로 생물의 가장 최상위층이 인간이라는 오만에서 비롯된다. 공리주의자들의 주장은 저자의 견해와 일부 일치하지만 극명하게 다른 몇 가지가 있다.

하지만 중요한 한 사안에 있어서는 밀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밀은 쾌락에 대한 벤담의 급진적 민주화 대신 “고결한 쾌락”과 “저열한 쾌락”을 구분하는 친숙한 빅토리아주의를 다시 도입했다. 더구나 동물을 예로 들어 “만족한 돼지”라는 말로 이를 설명했다. 신체적 쾌락에 대해 밀에게 남아 있는 청교도적 잔재는 다른 동물과의 동류의식에 대한 올바른 사상을 세우고 그런 동류의식을 진심으로 인정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107쪽

본질적으로 역량 접근법은 노력하는 생물에게 번영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역량 접근법 이론가에게 번영할 기회란 고통을 피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후 우리가 역량 목록에서 만나게 될 긍정적인 기회의 목록, 즉 건강을 누리고, 신체 완전성을 보호하고, 감각과 상상력을 개발하고 발휘할 수 있으며, 삶을 계획할 가능성을 가지고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맺고, 놀고 쾌락을 즐기고, 다른 종 및 자연계와 관계를 맺고, 자신을 주요한 방식을 통제할 수 있는 긍정적인 기회의 목록을 의미한다. 143쪽

동물원과 테마파크는 관람객과 조련사 모두를 동물의 온전한 삶의 형태에 무지하게 만드는 데 열중한다. 따라서 관객과 조련사는 동물원 환경이 얼마나 피폐하고 불우한지 알아보지 못한채 우정이라는 환상에 빠져든다. 393쪽

위의 발췌문만 보더라도 단순하게 동물의 권리가 고통없이 덜 죽이는 정도로 생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가령 국제포경규제협약에서 잔인한 포경을 금지하는 것에 순응하지 않고 사회적 규약을 넘어 ‘고유 문화‘라며 예외를 두는 경우도 있다. 이를 두고 저자는 ’문화‘라는 개념 자체의 정의도 제시(283쪽)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동안 너무나 당연했던 동물 존중, 인간 존중을 위한 근거가 부족했던 이들, 여전히 차별적 존중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꼭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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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죽인 여자들
클라우디아 피녜이로 지음, 엄지영 옮김 / 푸른숲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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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신간 #추리 #스릴러 #추천 #신앙 #믿음 #신을죽인여자들 #클라우디아피녜이로 #스릴러소설 #미스터리소설 #추리소설 #신을죽인여자들서평단 #푸른숲 @prunsoop

클라우디아 피녜이로의 소설 <신을 죽인 여자들>은 30년 전 일어난 한 사건에 대해 리아, 마테오, 마르셀라, 엘메르, 훌리안, 카르멘의 입장에서 다루고 마지막엔 사건의 피해자였던 아나의 아버지, 알프레도의 고백으로 끝난다. 대부분의 추리소설이 ’진범‘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면 이 소설은 조금 달랐다. 진범보다는 무신론자(가 되버린) 리아, 마테오와 신실한 가톨릭 신자인 훌리안과 카르멘이 바라보는 ’신‘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 사건, 30년 전 아나는 처참하게 살해되었다. 큰 언니 카르멘은 금새 회복했지만 리아는 동생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고, 그 책임을 신에게 돌렸다. 신이 존재한다면 동생이 그렇게 죽을리가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범인을 찾기 전까진 가족을 만날 생각도 하지 않았고, 이따금 아버지 알프레도와 주고 받은 편지내용도 가족의 안부는 전혀 다루지 않았다. 산티아고 순례길 도착지에 서점을 차린 리아는 지난 30년간 동생이 왜 그렇게 죽어야 했는지 알 수 없어 괴로웠다. 그렇다고 자신의 삶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삶도 동생 아나의 죽음도 포기 하지 않았을 뿐이다. 반면 카르멘은 한 때 아나가 좋아했던 신학생 훌리안과 결혼 해 아들 마테오를 낳았다. 그들의 결혼 소식을 알프레도가 보낸 편지를 통해 알게 되었지만 마테오의 실종으로 30년 만에 만나게 되었다. 여전히 아나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리아를 카르멘은 못마땅해했지만 유년 시절 리아에게도 아나에게도 그녀는 이중적인 성격에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하려는 폭력성과 동시에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매력은 집안에서만 내보이지 않았을 뿐 문밖을 나서는 순간 누구라도 그녀에게 동호되었다. ’신‘을 믿는 이들에게 불행은 ’하느님의 계획‘이거나 훈련을 통해 ’성장‘해야 할 광야로 인식한다. 가톨릭 신자인 내게도 이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어떠한 신도 인간에게 다른 인간을 ’희생‘시켜가며 자신의 신앙을 지키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희생해야 할 것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옳다는 교만‘이었다. 진범은 바로 이 부분을 완전하게 착각하고 말았다. 신을 향한 믿음을 위해 자신을 속이는 줄 도 모르고 속였고, 신은 자신들이 지은 죄를 ’고해‘를 통해 모두 용서하신다고,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죄책감은 무의미하며 아무도 그 책임을 자신에게 물을 수 없다고 말한다.

“부디 거짓말에 현혹되지도 망상에 사로잡히지도 말고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렴.” 할아버지는 내게 보낸 편지, 나만 읽을 수 있는 편지에 그렇게 썼다. 무엇보다 그가 노력하다라는 동사를 골랐다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중요했다. 할아버지는 내게 행복하라고 요구하는 대신 행복해지려고 노력할 것을 당부했다. 86쪽

내가 사실을 밝혀낸다고 해도 아나는 살아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리아는 돌아올지도 몰라. 그렇게만 된다면 내 마음의 짐과 괴로움을 조금은 덜 수 있을 거야. 우리가 다가갈 수 없는 진실은 마지막 날까지도 고통스러울테니까.“ 213쪽

”믿음에서는 생각보다 말이 더 중요하다.“
”믿음은 외부에서 인간에게 들어온다.“
”그것은 내가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듣는 것, 내게 말을 걸고 질문을 던지는 것, 나를 사랑하는 것, 그리고 나를 생각되어지거나 생각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지 않는 것이다.“ 295쪽

신을 죽인 여자들은 누구일까.
동생의 죽음으로 신의 존재를 부정하게 된 리아일까? 아니면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을 선택한 아나인가. 아니면 신을 자신의 방식대로 판단한 카르멘일까. 아니면 가족을 포함 해 지인들에게 신의 축복이 아닌 신의 형벌을 느끼게 해 준 그녀들의 엄마 돌로레스일까. 아니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여전히 일어나는 낙태 시술 혹은 여성 모두인가. 모두 다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녀들이 죄를 지었다고 신을 죽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녀들이 신을 죽였다고 믿는 ’누군가‘야 말로 신을 죽인 이들일 것이다. 신은 죽었는가? 아니면 누군가 죽인 것일까에 대해 여전히 의문이 든다면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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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듣는다
루시드 폴 지음 / 돌베개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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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듣는다

#책속의문장

•지난여름, 나는 공사장 소리를 채집해서 음악을 만드는 일에 매달렸다. 괴물 같은 소음을 음악으로 바꿔내는 건, 버려진 플라스틱으로 새 물건을 만드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소리 폐기물‘을 음악으로 나 자신과 나무들 그리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을 위로하고 싶었다. 27쪽

• 인도 출신 음악가 안수만 비스와스는 ’듣는 다는 건 세상과 함께 춤을 추는 일‘이라고 했다. 다 함께 춤출 수 없는, 말하기 중독에 빠진 세상이 온 건 아닐까. 그런 세상은 너무 끔찍해서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지만, 분명한 건 듣지 않으면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듣지 않는 말은 쌓이고, 말이 쌓이면, 썩는다. 58-59쪽

• 내 음악이 많이 사랑받고 싶다면
나도 그만큼 많은 음악을 사랑해야 한다. 83쪽

• 인간이 금을 그어 규정한 12개의 소리 계단을 생각 해본다. 그러나, 무지개에는 7가지 색깔만 있을까? 흐르는 물을 나눌 수 있을까? 무한한 연속체를 ’나눈다‘는 건 인간이 발명한 도구일 뿐, 보편 법칙은 될 수 없다. 123쪽

• 유령처럼 떠도는 무의미를 붙들어 의미로 바꾸어내는 일. 허공에 떠다니는 무의미를 ’한데 두어‘, 의미 있는 세계로 만드는 일.
그래서 우리는 만들고, 산아간다. 크든 작든, 내가 붙들어둔 의미의 성채에 몸을 뉘고 싶으니까. 165쪽

루시드폴 산문집 <모두가 듣는다>. 아이가 잠든 밤, 책상 위 스탠드를 켜고 책을 읽었다. 적어도 내 가족 ’모두가 잠든‘ 조용한 시간, 나는 루시드폴의 음반과 그가 언급한 음반들을 헤드폰으로 들었고 중간 중간 헤드폰을 벗고 아이의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리지는 않는지 귀를 기울였다.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저자의 말처럼 그에 대한 애정이거나 적어도 관심을 갖는 일이다. <모두가 듣는다>를 펼치기 전에는 음악을 만들고, 소리를 생성하는 다양한 존재들에 대해서만 생각했지 ’듣는 주체‘로서 그들을 생각지는 못했던 것 같다. 책은 시작부터 그와 함께 곡을 만든 ’보현‘이라는 개와 ’귤나무‘ 그리고 이밖에 그가 건져올린 많은 소리들에 대한 사연들이 등장한다. 음악과 노래, 그리고 소리에 대한 저자가 가진 생각들 그리고 고민들, 왜 많은 것을 배우고 연구하게 되었는지, 또 그런 배움과 지식이 소리 혹은 음악을 만드는 일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특히 <녹음 수첩> 편에서는 여러 페이지에 밑줄이 그어졌다. 줄이 그어지면서 나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무엇보다 책을 읽는 동안 부스럭 거리거나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를 누군가 혹은 무언가 듣고 있지 않을까, 곁에 있던 화병 속 꽃들이 듣고 있으리란 생각도 들었다. 저자의 말처럼 그렇게 ’듣는다‘라는 건 그 어떤 것보다 ’소통‘의 기본이자 ’함께‘하기 위한 가장 기본이자 필수일 것이다. 저자가 공사장에서 들리는 극에 달한 소음을 재편했던 이유도, 제약회사와 함께 ’고통의 소리‘를 듣는 것도 마찬가지다. 식물이 지르는 비명을 우리는 듣지 못하지만 감지되고 확인되는 것처럼 들어야 할 것들을 너무 많이 놓치고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

모두가 듣는다.
읽는 동안 제목을 중간 중간 따라 읽어본다.
‘모두가 소중하다’ 라는 말로 들리기 시작했다.

#루시드폴 #산문집 #돌베개 #산문 #듣다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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