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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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을 읽을 때, 이야기 초반에는 괴로운 전쟁이야기를 다루긴 해도 동료들의 이름대신 별명으로 부르고, 운명의 책을 만났을 때의 설레임과 감동을 이야기하는 도리고를 보면서 적잖이 공감도 하고 피식 웃어가며 괜찮은 소설을 만났음에 기뻐했다. 좋아하는 여인을 만나는 연애사도 등장한다. 소설 끝까지 그의 연애사와 동료 병사들과 가족과의 이야기들이 계속 반복되지만, 도리고의 신분이 촉망받는 외과의가 아니고 포로군 장교로서 전쟁 한가운데에 서있는 동안 나의 표정은 굳어져가고 두눈과 페이지를 넘기는 손의 긴장만 커졌다. 잊고 지내던 다키 가디너의 구타사건을 기억해 가는 과정이 그랬다.

오랫동안 다키 가디너를 생각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그의구타사건을 글로 쓰려고 했을 때에 비로소 그를 떠올렸으니까. 76

노년의 도리고가 여전히 여성편력으로 인해 부도덕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결국 전쟁이란 씁쓸한 것이구나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인 줄 알았다. 후반부에 가면서 그가 잊고 있던 다키 가디너의 구타장면이 등장하면서, 일본인들의 을 위해 인간과 짐승의 을 잃어버린 전쟁의 참혹함을 마주하는 순간 이 책을 괜히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다키의 구타장면이 수십페이지에 걸쳐 등장하는 내내 내 마음속에는 그의 죽음만을 바라는 고통스러운 싸움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보통 전쟁이나 혹은 범죄상황에서 왠만해서는 피해자가 살아남길, 신체 부위 어느 하나 망가지더라도, 설사 회복불가능한 상태가 되더라도 살아만 주기를, 바라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눈을 껌뻑였다라는 문장이 등장할 때 마다, 힘없이 손을 내저었다고 할 때마다 제발, 이제 그만 제발 다키를 죽여달라고 저자가 아닌 누군가에게 빌기 시작했다. 나의 바람과는 달리 다키는 그 구타에서 살아남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도리고 에번스의 마음속에서 뭔가가 변하고 있었다. 삼백 명의 사람들이 자신이 아는 사람을 세 명이 망가뜨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계속 이렇게 지켜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동의했고, 저 진동에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365

종교와 무관하게 예수가 십자가형에 처하던 상황을 성서가 아닌 영화를 통해서라도 접했을 것이다. 마치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청하듯 군중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오늘 먹을 저녁에 대해, 자신들의 굶주림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애쓰는 병사들의 심리가 이해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결국 우리가, 책을 읽는 독자중에 하나인 나조차 동조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굶주림이 오스트레일리아 병사들을 은밀이 따라다녔다. 병사들의 모든 행동, 모든 생각 속에 그것리 숨어 있었다. 그것을 상대로 그들이 내밀 수 있는 것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지혜뿐이었지만, 사실 그 지혜는 그들의 배보다 더 텅 빈 말에 불과했다. 그들은 오스트레일리아인다운 건조함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욕설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추억과 오스트레일리아다운 동료애로 힒을 합쳐 이겨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오스트레일리아는 이와 굶주림과 각기병 앞에서, 도둑질과 매질과 점점 늘어나기만 하는 노동시간 앞에서 갑자기 의미를 잃어버렸다. 71

고통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무엇인지를, 누구인지를 잃어버린다. 이성을 잃고, 기본적인 인간성마저 상실한 그 자리에서 다키의 구타사건은 모든 나약한 인간의 본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곳에서의 자신의 삶이 어찌 영웅이 될 수 있을까 도리고는 생각했을 것이다. 그가 내어준 스테이크 한 덩어리는 다른 병사들에게는 인간성 마저 상실하게 만든 굶주림을 잠시라도 잊게 해주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었다. 자신에게 기대하는 것, 그가 자신들에게 해주길 바라는 것에 대한 무언의 강한 요구로 버틸 수 있었기에 그 요구가 사라진 전후의 삶은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현상유지를 했었어야 할 도리고에게 가족은 어떤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아슬아슬한 선 위를 걸어야 했던 그를 팽팽하게 당겨주던 선이 사라졌을 때, 그 곳에 있지 않았던 가족들이 어떻게 그를 위로하고 이끌어줄 수 있을까.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으며 함께 살아온 두 사람의 고통과 절망, 함께 살면서도 함께 하지 못하는 삶, 애정과 질병과 비극과 농담과 수고로 이루어진 음모, 결혼생활, 기묘하고 무서운 인간 존재의 한없음. 가족. 523

선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걷던 도리고가 하이쿠 시인의 마지막 작품을 통해 깨달은 것은 유한한 인간의 삶의 허무였다. 인간의 삶이 결국 허무일 수 밖에 없음은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이전에도 많았지만 이 작품이 다른 소설과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도리고 스스로가 허무라고 깨닫는 그 이전까지 그의 삶을 어느 누구도 감히 허무하다라고 할 수 없었다는 데 있다고 본다. 도리고는 열심히 살았다. 부도덕했던 어찌했던 그는 열심히 살았다. 가족을 구하러 불길속을 뛰어 들어갔고, 떠밀리듯 그랬다 할 지라도 동료 병사를 구하려고 노력했고, 지켜보기만 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상황에서는 자신이 가장 먼저 그 상황을 받아들였음을 인정했다. 그랬기에 독자 중 누구도 감히 그 삶을 허무하다고 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뭔가가 시들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점점 위험부담을 파악해서 최대한 제거한 뒤, 지루한 새 세상으로 바꿔놓을 것이다. 그 세상에서는 시를 읽는 일보다 음식의 조리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더 감동적으로 느껴질 것이며, 직접 뜯어온 풀로 끓인 수프에 돈을 내면서 사람들은 기분이 들뜰 것이다. 103

시 한 줄 보다 맛있는 케이크 한 조각 먹기를 주저 하지 않는 우리의 삶은 분명 허무할 지도 모른다. 총 포탄이 사방을 오가는 장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나가는 누구가가 어느 순간 돌변 해 나를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 세상은 허무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이 허무하지 않게, 우리 사회가 허무하지 않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도리고가 다키 가드너의 구타사건이 그 뿐 아니라 우리에게 있어 기억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기억으로 남겨두어야 할 것인지 부터가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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