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의 시간들
올가 토카르축 지음, 최성은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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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시간들 올가 토카르축 지음/ 최성은 옮김


태고. 작가 올가 토카르축이 만들어낸 상상의 장소이자 우리가 살고 있는 어디라도 분명 태고의 모습을 닮고 있을 것이다. 말그대로 그곳은 '태고'였고,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은 우리가 겪었거나 혹은 들었거나 혹은 겪게될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건과 인물들의 모습은 완벽한 '허구'가 아닌 실제 사건들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특정 화자의 입이 아니기 때문에 지독하게 잔인하고 슬픈 상황마저 담담하다. 가령 누군가에게 아이를 출산하는 일은 축하받을 일이며 반드시 보호되어야 할 대상이 되는 일이다. 하지만 거리를 떠돌며 누구의 구속도 또 어느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 그녀에게 출산은 절대적인 존재를 맞이하는 계기가 된다. 그 댓가로 소중한 아이의 생명을 바쳐야 했을지라도 그녀는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세상에 저 혼자 태어나 버텨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그조차 어찌보면 거룩한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잃고서도 그녀는 거리를 맴돌았다. 거리를 떠돌지언정 그녀의 영혼은 그누구보다 희고 거짓이 없었다. 반면 우리가 '요조숙녀'라고 부르는 혹은 그렇게 판단하는 여인들의 속마음은 그녀와 다르게 검고 비밀스러웠으며 저도 모르는 죄의 길로 나아갔다. 남편이 아닌 남자에게 모든 것을 주는 여인, 어려운 이웃을 자신의 능력으로 돕는다고 믿는 교만으로 가득한 여인들이 그렇다. 하지만 이또한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과 사회질서가 얼마나 황당하고 허울뿐인지를 소설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예슈코틀레 성모는 이들에게 건강을 회복하는 힘과 능력을 주었다. 이러한 치유력을 예외없이 모두에게 주어졌다.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이것이 그녀의 본성이었기 때문이다. 44쪽

​사탄은 물과 같아서 매일, 매시간, 인간의 영혼을 삼키려 든다. 그러므로 인간은 둑을 쌓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한다. 사소하고 일상적인 종교적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은 이 둑을 견고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유혹하는 이의 집요함은 물의 집요함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59쪽


'무엇 때문에 그녀가 용서해주기를 바라는 거죠? 인간의 용서가 당신에게 무슨 소용이 있나요? 그러자 달이 대답했죠. '인간들의 고통이 내 얼굴에 검은 주름을 새기거든. 이러다 언젠가는 인간의 아픔 때문에 사그라들고 말거야.'달이 이렇게 말했어요. 137쪽


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집을 지어주는 아버지, 허나 이조차 순수하지 않다. 맘에 들지 않는 남자와의 결혼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한 방편일 뿐이었다. 이보다 더 못난 아버지는 제 딸을 함부로 대하면서도 지기싫은 마음에 형편없는 집을 지어주려는 아버지도 등장한다. 자녀를 사랑한다는 것, 지켜준다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의 꼬리를 물게 만들었다. 사랑받지 못한 아이들이 미래에 갖게될 가정의 모습은 또 얼마나 안타까운지도 보여준다. 호흡이 느린 소설인 줄 알았는데 아이들이 커가는 속도가 급하게 빨라진다.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을 잃은 여인이 비로소 신과 화해하는 사건도 등장한다. 우리가 만들어낸 신들은 약점이 많다. 유일신도, 전능한 신도 아니기 때문이다. 약점이 많은 신을 용서하는 가련한 여인은 진짜 '신'에게만큼은 보호를 받는다. 사제라 불리는 신부조차 받아보지 못한 자비를 누리기도 한다. 신이 과연 존재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라는 의문이 두 번째 꼬리를 물었다.




특정 인물의 이름도, 태고라는 지역외에 그 어떤 지역명칭도 리뷰에 적지 않았다. 누가 용서를 받은이고, 누가 어리석은 이었는지도 적지 않았다. 왜냐면 오롯이 악인이 사람이 없다. 짐승이 되어버린 '그'조차도 까닭이 있고, 그 나름으로 누군가를 보호하고 때로는 보호받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신이 없다고도, 있다고도 자신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우리가 과연 우리의 양심대로, 혹은 우리를 지켜준다는 신의 기준으로 '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만약 내가 저 '태고'라는 지역에서 태어났다면 누구의 모습으로 살아갔을지를 생각해 볼 뿐이다. 읽는동안에도 읽고나서도 오래도록 여운이 가시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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