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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독서에 애착을 가지고 살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이상의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너무도 쉽게 나는 독서따위는 안 하고도 살 수 있다고 말하고 다녔지만, 그것은 그저 내 어린 마음의 객기에 불과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렸을 적을 떠올려봤다. 나는 남들이 다들 읽었다는 세계명작도서나 동화따위는 전혀 읽지 않았었다. 독서같은 건 하지도 않았다.(그러나 간만에 만난 동창에게 들은 이야기가, 초등학생때의 나는 항상 책만 읽었던 공부벌레 이미지였단다. 나 원 참) 그나마 읽었던 책이 누나와 누나 친구들이 샀었던 순정만화같은 로맨스 소설과 누나가 글짓기 대회에 나가서 상을 타 부상으로 받아온 어린이용 세계문학전집 18권, 흡혈귀 가족과 인간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소년만화같은 소설. 이 정도가 그나마 기억속에 남은 독서였고, 아마 기억에 없는 부분에도 특별히 어떠한 식의 독서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중학시절부터 약간의 독서를 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드래곤라자가 나에게 독서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가깝게 해 주었던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넘어서 내 호기심과 다른 것에 관심이 많은 성격이 아마 독서나 그 외의 취미에 대한 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여하튼 그런 것들로 인해 삶에 특별히 내세울만한 것이 없던 자신에게서 약간의 취미라고는 할 만한 것이 생긴 것에는 무척 감사했지만, 여전히 겸손을 최상의 미덕 중 하나라 믿고 있는 자신에게 변화는 없었다. 독서는 다른 어떤 것보다 질이 좋은 문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데다가, 톨스토이가 귀여니보다 낫다는 어떠한 식의 근거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독서는 그냥 취미였을 뿐이다. 만화나 책이나 영화나 다 거기서 거기였을 뿐.

그리하여 미술을 한다고 꼴깝을 떨다가 포기하곤, 대학에 떨어지고 재수해서 국문과에 들어갔다. 뭐 결국 그렇게 될 모양이었나 보다. 그리고 윗 문장 사이에 아마 3-400권 정도의 책을 더 읽었으리라. 확실치는 않다. 당시에는 체계적으로 읽은 책을 기록해두지도 않았고, 그럴 필요성도 특별히 느끼지 못했으니까. 아마 대충 그 정도의 책을 지금 읽기 때문에 그렇게 써두었다. 그리고 읽은 책의 태반이 책 좀 읽는다고 목에 힘주는 사람들이 말하는 그저 그런 3류 소설이었던 것 같다. 다시 말하는데 체계적 기록이 없어서 확실치는 않다.

뭐 과거보다는 현재나 미래에 신경쓰는 타입이기 때문에 예전에 내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는 정말로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바꿔 말하면 읽어왔던 책보다 읽을 책을 더 신경쓰고, 읽지 않은 책이 더 좋다. 이따금씩 독서가를 위한 100문 100답 같은 것에서 무인도에 가져갈 책 3권을 고르라고 하는데, 나의 답변은 단지 읽지 않은 책 3권이었다. 책을 읽은 다음에 그 책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읽는 그 순간 자체가 역시 제일 좋은 거 같다. 무슨 이야기가 나올 지 모르는 상황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는 것은 너무도 즐거운 것이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나는 한 번 읽은 책은 잘 읽지 않는다. 다만 서로가 읽었던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도 즐거운 것은 두말 할 것이 없다. 하지만 그런 기회가 잦은 것은 아니다.

그리하여 왕년에 내가 책 좀 읽었어,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나는 경멸하는 것이다. 과거에 집착하는 당신네들에게 희망은 없다. 희망은 곧 미래라는 말에 다름 아니고, 내일이 없는 사람은 누군가. 죽은 사람에게는 내일이 없다. 난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다만 입닥치고 읽는다. 과거는 중요치 않다. 읽은 책은 덮으면 끝이다. 가슴 떨리는 순간은 책을 펴는 순간이다. 다만, 더 많이 끈질기게 열심히 성실하게 읽는다. 그러고 싶을 뿐이다.



 
 
 

모르긴 몰라도 가네시로 가즈키의 'go'가 출판되었을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의 글을 읽고 열광했을 것이다. 일본이라는 거대 사회속에 마이너리티인 재일 한국인의 삶은 소설속에서 항상 어둡게만 그려졌었다.(유미리, 양석일) 하지만 가네시로 가즈키의 'go'는 달랐다. 결코 재일 한국인을 가볍게 다루지 않으면서도 쉽게 읽힐 수 있는 소설이라니!(유미리의 소설을 읽다가 어지러웠던 적이 있다) 그리고 'go'는 일본의 잘 발달된 자본주의적 문화 시스템에 따라 소설 이외에도 영화로 만화로 유려하게 만들어진다. 배 다른 형제라기 보다는 그냥 형제에 가깝겠지만, 소개해 본다.

go-소설

모든 'go'의 시발점. 작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가 적지 않게 들어간 듯 해 보이는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경쾌한 멜로디. 처참한 것은 무엇보다 처참하게 묘사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그 경쾌함 만큼을 잃지 않는다. 원작이 이렇게 뛰어나지 않다면 다른 장르로의 전환은 있지도 않았으리라. 단연 필독서.

 

go-영화

무엇보다 잘 영화화 되어서 기뻤었다. 구보즈카 요스케의 꼭 맞는 연기에 무엇보다 즐겁게 봤었는데, 그런 그의 자살미수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이 얼마나 저렸던가. 다행히 9층에서 떨어지고도 살아났고, 그 뒤로 결혼도 하고 잘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방황하던 스기하라가 엔딩부에서 비로소 조금은 잘 결말이 났던 이 영화가 떠올랐다. 대체적으로 소설과 비슷한 이 영화에서는 재밌게도 소설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스기하라의 한국 이름이 나온다.

 

go-만화

소설/영화 모두 재밌는 이 'go'시리즈는 만화까지 재밌다. 소설/영화와 조금의 차이점은 만화의 경우는 1인칭이라기보다는 3인칭에 가깝게 이야기가 서술된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만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가볍고 재밌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외엔 큰 차이가 없이 좋은 작품들이다.

 

작품 내에서 재일 한국인이라느 것에 신물 난 스기하라는 노르웨이 인이 되기로 결심하는데 그에 아버지는 말한다.

no soy coreano, ni soy japones, yo soy desarraigado.

"아까, 스페인 말로 뭐라고 한 거야?"

아버지는 책상 위에 나뒹구는 볼펜을 쥐고 자료 위에 스페인어로 문장을 술술 썼다.

"그 다음은 너 스스로 찾아봐."



 
 
 

소설 '핑퐁' 영화 '핑퐁' 그리고 '이나중 탁구부'

장르도 작가(감독)도 다르지만 세상엔 너무도 닮은, 그러니까 쌍둥이나 형제라고 하기엔 조금 다른, 곧 배다른 형제라고 표현해도 좋을 그런 작품들이, 있다. 그런 작품들을 스스로 발굴해 낼 때마다 무척 기분이 좋은데, 그것은 서로 다르지만 같은 그런 작품들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티비에서 본 영화 '핑퐁'을 보며 문득, 박민규의 소설 '핑퐁' 그리고 만화 '이나중 탁구부'가 생각났다. 셋 사이엔 버뮤다 삼각지대보다 미스테리한 무언가가 존재하는 듯 했다.

이나중 탁구부-후루야 미노루

후루야 미노루라는 작가는 좋아하지만 이나중 탁구부는 썩 좋아하는 작품은 아니었다. 때문에 완결까지 전부 보지 않았고, 잘 알지도 못한다. 하지만 세 작품에서 꼭 같게 그리는 '쓸모없는 청춘'은 이나중 탁구부에서 절정에 달한다. 자학을 하듯 스스로를 낮추어 하는 개그는 웃다가 정색을 하게 만드는 씁쓸함이 있다. 그리고 그 씁쓸함 속에서 '시가테라'와 '두더지'라는 만화가 나온 게 아닐까.

 

핑퐁-박민규

왕따 중학생 '못'과 '모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작품은, 실은 탁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물론, 제목이 버젓이 핑퐁이건만 왜 탁구를 하지 않는가, 라는 질문은 박민규가 작품 전체를 통해 내뱉는 질문처럼 대답하기 난감하기만 하다. 왜, 왜 인류는 이모양인가? 그러나 어쨌든 못과 모아이는 탁구를 통해 외계인과 지구의 운명을 건 대결을 하고, 썩 좋은 과정은 아니었지만 결국, 승리한다. 그리고 그들은 지구를 '언인스톨' 시킨다.

 

핑퐁-영화

죽마고우인 '페코'와 '스마일'. 페코는 어린 시절부터 탁구를 좋아해 탁구로 세계1위를 한다는 포부가 있다. 그리고 스마일에게도 탁구의 재미를 알려주기 위해 탁구를 가르쳐 주고 함께 탁구를 한다. 스마일에게, 큰 꿈을 가진 페코는 히어로(영웅)다. 하지만 타고 난 재능을 믿고 노력하지 않은 페코는 탁구 대회에서 어린 시절 친구 '악마'에게 패한다. 한편 스마일은 사실 페코보다 더욱 뛰어난 선수지만, 자신의 영웅인 페코에게 이길 수 없어 항상 실력을 감춘다. 이것을 알고 있는 코치는 스마일에게 투지를 불어 넣지만, 결국 탁구에 어중간한 마음으로 임했던 스마일 또한 중국 선수에게 진다. 스마일도 페코도 각자 고난과 시련의 시간을 겪는다.

단순히 탁구를 소재로 사용했다는 것 이상으로 세 작품은 너무도 닮아있다. 작게는 모두 콤비가 등장한다는 것(마에노와 이자와, 못과 모아이, 페코와 스마일)에서 크게는 청춘의 절망을 다루고 있다는 점 등에서 말이다. 앞의 두 작품이 중학교를 배경으로 마지막 핑퐁은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다만,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있다면 세 작품을 모두 보고 읽고 보고 비교해 보시면 좋겠다.



 
 
 

한 권 정도는 더 읽을 줄 알았지만 못 읽어서 결국 2007년에 2006년 결산. 모두 읽은 책은 111권.(+약 1-5권) 매년 비슷한 숫자라서 만족 하지만, 늘지 않아서 불만족. 올해도 역시 전부 문학(소설, 시, 수필)-_- 독서 편력만큼은 어쩔 수 없구나 싶다가도, 문학 내에서는 약간의 변화를 겪었다. 이제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가 아닌 이상 일본 소설은 잘 읽지 않으며,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가 아닌 이상 한국 현대 소설(하성란천운영김경욱백가흠 류)은 잘 읽지 않게 되었다. 전자는 현실과는 너무 먼 이야기들이어서 읽다보면 화가 나서 안 읽고, 후자는 대체 저런 소설이 현실에서 쓸모가 있나 싶어서 안 읽는다. 그도 그렇지만 이제 나도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을 좀 읽어야 겠다는 강한 자각에 독서의 스펙트럼을 넓히자는 마음으로 다른 책들을 읽는다. 물론 일본소설, 한국 현대소설<고전 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순차적으로 나 스스로가 일구어 낸 발전이기에 의미 있다. 마음에 든다.

2006년의 책들(best 5)

1.장정일.

1.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1.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1.김승옥

5.윤대녕.

장정일은 워낙에 내가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이므로 당연하고,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너무도 좋아하는 소설. 히치하이커의 경우는 내 취향과 거의 완벽한 일치를 보이는 소설이기 때문이고, 김승옥의 경우는 그저 엎드려 절할뿐. 윤대녕을 처음 발견했을 때는 환희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지만, 읽다보니 너무 지쳐서 그 감정은 빛이 바랬다. 아무리 위대한 소설이래도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인간을 바꿀 수는 있다. 그리고 인간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외에도, 이갈리아의 딸들, 박사가 사랑한 수식, 유혹하는 글쓰기, 사립학교 아이들, 밤의 피크닉, 달려라 아비 등을 좋았던 책으로 꼽겠다.(2006상반기에 뽑은 책, 전에 읽었던 책 제외)

worst

책을 '그냥' 빌리는 경우는 무척 드물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실망하지 않지만, 그래도 과다한 찬사 혹은 정말 가끔 진짜로 엉망인 책이 있다.

백가흠 김경욱은 앞에 썼던 대로 한국 현대소설을 대표하는 작가이기 때문에 감정이 좋지 않고, 오쿠다 히데오의 경우엔 보기에 좋지 않은 격한 말만 써질 정도로 싫다. 사긴 사서 읽긴 했는데, 최악이었다. 윤대녕은 '누가 걸어간다'만큼은 정말 최고최고를 외치겠으나, 읽다보니 정말 지겹다. 틈이 하나도 없는 문장이라니!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경우에도 내가 읽기론 약간 과대평가된 면이 있는 듯 하다. 오쿠다 히데오는 생각할 때마다 화가 나므로 당신이 최악.

 신년 계획이다 뭐다 말이 많지만 애초에 숫자에 신경 안 쓰기 때문에 별다른 계획을 세우진 않았지만 다만, 새해엔 좀 더 읽고 듣고 보고 싶다.



 
 
 

친구들이 누누히 경고했던 일이 일어난 모양이다. '넌 책을 너무 봐서, 간접 경험이 너무 많단 말야. 그런데 실제 일어나는 일은 꼭 책과는 같지 않다는 거지. 난 네가 거기에 빠질까봐 너무 걱정된다.' 아무리 친구라지만 왠지 그가 내 위에서 훈계하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지고 싶지 않은 괜한 자존심때문에, 그리고 평소 나의 단점을 말해달라는 식으로 스스로의 호탕함과 넓은 마음을 과시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쉽게 자신의 단점을 받아들일 만한 인간이 되지 못한지라, 쉽게 납득하지 못해 기우라며, 네가 잘못 보고 있는 것이라고 웃어 넘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들은 내 머릿속에 깊히 박히게 돼버렸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있어 일어난 일들에 대해 너무 경박하고 가볍게 생각하는 버릇이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생각이 많으니까 그 일이 일어난다면 결과가 어떨지 쉽게 예측할 수 있을거야,따위로 자부했었지만 실제로 내 수많은 가짓수와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나곤 했다. 단지 이분법적인 결과-이거 아님 저거-만이 있을 것 같던 일들도 세상에선 그렇지만도 않았다.

소설에서 '그리고 그 해에 나는 두 명의 여자를 사귀었고, 둘 모두 오래지 않아 쉽게 헤어졌다'정도로 서술될 것들에 대해 깊은 절망을 느꼈다. 친구들의 말대로 간접 경험만 가득한 나에게 연애라는 건 어떻게 쉽게 해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단지 그녀들에게 내가 좋다고 그럴싸하게 고백하면, 그녀들은 촉촉히 젖은 눈망울로 고개를 모로 돌리며 수줍게 나도, 라는 식의 대답을 할 줄만 알았던 것이다. 인생은 소설이 아니다. 단지 두 문장으로 서술될 일들이 실은 수백 문장의 일들을 축약할 뿐이었고, 실연을 당해도 인생은 끝장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 그녀가 내 손에 묶여진 실을 당김으로 움직여지는, 내가 만든 캐릭터가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결국 아니라면 대충 우울한 척 하다가 상처를 딧고 일어난 척 하려 했으며, 긍정했다면 손을 잡고 동물원이나 가려고 했던 나의 어숩잖은 생각과, 가벼운 태도가 문제였던 모양이다. 스스로의 삶을 가볍게 여긴 경박한 인간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훌륭한 결과가 아닌가. 실은, 어떻게든 아니라고 우기고 싶어, 변명을 댔지만 그녀의 첫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눈치챈 것은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너는 조금 더 괴로워 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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