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가사 도우미 제도를 생각하다가 2012년 알라딘 서재에 쓴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뭐 배울거라고 '이런 나쁜 사례를 베끼려고 하는지'...앞이 뻔히 보인다. 

옮겨본다. 


<홍콩의 한인 민박>

https://blog.aladin.co.kr/nama/5400963


어쩌다 홍콩에 여러 번 가게 되었다. 딸아이의 말이, 부산보다 홍콩을 더 자주 가게 되는 것 같단다. 일부러 홍콩에 간 것은 단 한번. 인도 여행 끝이나 말레이시아 여행 끝에 잠깐 들르다보니 홍콩에 자주 가게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홍콩은 무엇보다도 공항에서 시내까지의 접근이 무척 단순하고 옥토퍼스라는 교통카드의 사용이 편리할 뿐더러 넓지 않은 지역에 재미있는 여행 요소가 많아서 여행하기 좋은 곳이다.

 

홍콩에 가게 되면 편리함 때문에 그냥 별 생각없이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을 이용하게 된다. 빌딩의 한 부분을 임대해서 여러 개의 방으로 개조하여 여행자 숙소로 만든 곳이다. 내가 그간 묵었던 곳은 세 곳이었는데 공통점은 아침밥이 제공된다는 것, 방이 비좁다는 것, 실내에서 빨래를 건조한다는 것, 외국인 여성을 가정부로 두고 있다는 것 등이다.

 

이번에 묵었던 민박은 유달리 정갈한 곳이었다. 다른 두 곳은 청소도 대충이었고 음식도 그저 그랬는데 이번 민박은 청소, 음식이 모두 만족스러웠다. 이틀째 되는 날은 솔직히 청소는 기대도 하지 않았었다. 다른 곳처럼 대강하거나 내버려두겠지 싶어서 입던 옷도 그냥 침대에 걸쳐놓고 양말도 침대 머리맡에 널어놓고 가방도 구겨진대로 방치해 놓고 외출했다. 그런데 돌아와보니 너무나 말끔히 정돈되어 있어서 놀랍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이럴줄 알았으면 정리해놓고 나가는 거였는데, 싶었다.

 

다음 날 아침, 아침밥을 먹고나서였다. 어젯밤부터 눈물을 글썽거리던 필리핀 출신의 가정부 아주머니가 나를 보더니 울먹거리는데 눈에는 눈물이 그득 고였다. 왜 우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간밤에 한국인 주인이 와서 혼을 내고 갔다고 한단다. 누군가 홈페이지에 그녀가 손님에게 소리를 질렀다는 불평을 했다고 한다. 그녀의 서러운 호소를 들어주었다.

 

그녀가 보여준 그녀의 작은 방에는 침대가 없었다. 침대 자체가 들어갈 방이 아니었다. 아주 작은 공간에 단지 얇은 매트 한장 깔고 자는 방이었고, 그 방마저 누군가에게 주고나면 그녀의 잠자리는 빨래를 널어 말리는 구석진 곳 바닥이라고 한다. 천정에는 빨래 건조대가 걸려있고 바닥에는 냄새 제거를 위해 선풍기 따위가 널려 있는 아주 협소한 공간이다. '그게 네 방이다'라는 소리를 듣는다며 6년간 일한 곳에서 그런 대접을 받고 있다며 그녀는 다시 울먹거린다. 

 

잠깐만 보아도 민박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열 개 가까운 방을 운영하고 있는데 관리하는 사람은 그 필리핀 여성 혼자였다. 아침 밥 준비부터 청소, 손님 체크인, 체크아웃 등 모든 일을 혼자서 감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혼자 운영하는 곳 치고는 정말 완벽하게 깨끗한 곳이었다. 웬만한 호텔 수준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빨아널은 양말은 건조대에 걸려 있었고 화장실 바닥은 물기가 닦여져 있었고 소지품 등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민박에서 이런 대접을 받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당황스러웠고 미안했다.

 

아직 싱글인 이 필리핀 여성은, 하루 중 자기 시간이라고는 잠잘 때 뿐이라며 하루 종일 일, 일, 일, 일 뿐이며 휴일도 없다고 한다. 마치 노예의 하루 같았다. 한국인 주인이 꼬박 챙기는 것은 손님의 숙박 요금이라며 아마도 철저하게 챙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손님 대부분이 한국인인데도 한국말을 가르쳐주지는 않고 그냥 영어만 사용하란다며 그 부분에도 불만이 쌓여 있었다. 6년간의 분노와 슬픔과 피곤으로 얼굴의 표정이 몹시 상해있었고 아마도 우울증에 걸려 있는 것 같았다. 아마 내가 그 입장이라도 그랬으리라. 더하면 더했을 터.

 

내가 보기에도 그랬다. 작은 민박이었지만 일거리는 상당했다. 살림하는 사람이라면 그 일거리의 정도가 금방 파악이 된다. 하루종일 종종거리며 일을 하지 않으면 그렇게 깨끗하게 유지될 수가 없다. 그래서 미안하고 창피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 하루종일 종종거리며 일을 한 덕분에 누군가는 하루종일 밖에서 맛있는 것 먹고 룰루랄라 놀다 들어와서는 깨끗하고 깔끔하게 치워놓은 방을 보고 콧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을, 그걸 당연한 대우라고 여겼다는 사실을 곰곰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한 돈을 냈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저렇게 뒤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보고는 그게 당연하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있게 먹는 아침 밥과 만족스러운 방 청소 뒤에는 보이지 않는 한숨과 눈물이 숨어 있는데 그걸 몇 푼의 돈으로 맞바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여행이 징그러워지기 시작했다.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있고, 그 고통을 무시하며 자기 이익만을 노리는 한국인 주인과 내가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게 부끄러웠다.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 하루종일 빨래를 했다. 빨래를 건조대에 널면 몇시간 동안은 세제냄새가 온집안에 가라앉아있어 냄새를 견뎌야한다. 냄새가 싫어 헹굼을 여러번해도 냄새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빨래 냄새를 맡으니 다시 그 필리핀 여성의 눈물 범벅 얼굴이 떠올랐다.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은 그 가녀린 몸매와 큰 눈망울이 내내 떠올랐다.



이 글에 달린 누군가의 댓글도 옮긴다.



참 공감가는글이네요.

그 아줌마는 대단하네요.

저도 얼마전에 셩완에 민박을 오픈+테스트운영 중인데, 루이아줌마는 위에서 소개하신 분 정반대로 보시면 됩니다.
민박을 새로시작한건 아니구요, 그동안 임대하는 집여러 곳중 일부를 한인관광객들에게 오픈했는데, 다녀가신 분들의 입소문으로 일이 많아지면서 아줌마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울 아줌마는 인도 사람인데요, 마음씨착하고, 정직한편이고, 일은 못하나 음식은 잘하는편. 허나 민박한다는이유로 월급을 두달치요구를 해서 지금은 다른 아줌마를 물색해서 데려오는 중예요.
방청소를 해도 제가 다시해야하고, 제가 검사 안하면, 보이는데만 잘해놓고,그렇다고 저희 집이 더럽거나그롷진 않아요
인태리어가 무지 밝게 되어서 조그만 머리카락도 다보이는 그런 집이예요.
울 아줌마는 혼자서는 방 6개짜리 집을 혼자 청소 못해요. 우리는 조식포함이 아니라서
일도 적어요, 우리식구 밥도 저녁한끼만 채려주면되는데,하루 종일 꿈지락, 그리고 전화 통화..또 통화..또 통화...그러고도 월급 두배.아줌마침대는 손님들침대와 동격인 질좋고 깨끗한 침대.
방이 모자라면, 아둠마는 방의 침대에서, 나는 바닥잠....우린 이래요.

다 위에 소개한 아줌마 같지 않아요. 홍콩엔 노동법이란게 있구요, 그아줌마도 특별 페이를받으면서 불평을 할것이예요. 물론 힘든일이죠. 그 아줌마도 월급 많이 더 받을껍니다.보통월급에 그렇게 많은 일해야한다면, 벌써 노동청에 일러서 다른집에 갔을껄요..
물론 돈만 더준다고 고용인들이 행복해하고 고마워 하진 않습니다.
인격대접을 원하는데, 어떤 가정부들은 인격대우해주면, 주인을 괴롭힙니다.

모든게 양면이 있지만, 그 아줌마는 특히 맘이좋고,일도 열심히 하고, 참을성도 많고 그런 사람 같네요.

그민박집도 딱하네요. 빨래건조기하나면,일이 훨 수월할텐데...
그래서 우리집에 오시는 분들이 그러셨군요.

홍콩원룸텔 잠자리가 뽀솔뽀송하다구요,
이상입니다.다음엔 홍콩섬쪽 민박도 체험해보세요.



위 글은 고용주의 입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글이다. 과연 홍콩의 노동법이 제대로 구실을 할까 의문스럽다. 다음은 오늘 한겨레 신문에서 읽은 글이다.


홍콩의 아시아 가사노동자 노조연맹은 이주 가사노동자의 35.8%가 여권, 근로계약서를 고용주에게 빼앗긴 채로 일하고, 상한 음식이나 고용주 가족이 먹다 버린 음식을 제공받은 경우가 46.3%에 달한다고 2018년 1월 국제노동기구회의에서 밝혔다. 언어, 신체, 정신적 학대를 경험했다는 응답도 55.2%였다. 지친 몸을 누일 취침 공간에서는 사생활이 전혀 보장되지 않고, 전체 노동자의 4분의 1은 거실이나 부엌, 발코니, 계단 아래 공간, 화장실 같은 곳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



(한겨레 신문 '홍명교의 이상동몽 - 외국인 가사 도우미 제도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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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같은 라인에 사는 어떤 분은 나보다 13살 연상의 할머니인데 전직이 목사이시다. 오늘은 밥을 사주신다고 해서 아파트 현관에서 만났다. 만나자마자 갓 파마를 한 내 머리를 보고는 염색 좀 하라고 하신다. 벌써 몇번째인지 모르겠다. 그때마다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하는데도 변함없이 지적하신다. 순간 밥을 먹으러 가야 하나 고민이 스친다.


"제 나이가 60이 넘었어요. 이 나이에 머리 염색하라는 말을 계속 들어야 하나요?" 얼굴이 예쁜 것보다 말씨가 예쁜 사람을 좋아한다는데 나는 죽다 깨어나도 (둘 다) 안되겠구나 싶었지만 이미 뱉은 말. 사실 나는 벼르고 있었다. 한번만 더 염색 어쩌구 하시면 한방 먹여야지 하고. 


염색 권하는 사회에 대해서. 젊어보여야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사회에 대해서. 젊음을 동경하는 사회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분명 기 - 승 - 전 - 하나님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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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컴한 새벽. 늙은 개는 늙은 인간처럼 새벽잠이 없는지 머리맡에서 끙끙대는 통에 잠을 이을 수가 없다. 더듬더듬 목줄 채우고, 배변봉투 챙기고, 눈 비비며 흐느적 흐느적 걷다가 오늘은 그만 빗물이 질펀한 화단가의 진흙을 밟고 말았다. 오른쪽 무릎이 땅에 부딪히면서 양쪽 다리가 꺾여 거꾸로 된 w 자가 되었다. 당장 아프기도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있는 오른쪽 무릎 때문에 걱정이 앞섰다. 설상가상이다.




이 녀석을 하루에 두 번씩 숙제하듯 꼬박꼬박 산책을 시키며 수발을 들어준다. 나의 원래 지론은 이랬다. '개는 개답게 키워라.' 즉 개는 실외에서 줄에 묶은 채 키우는 게 맞다는 생각으로 살았는데 딸내미의 '전도'로 유기견을 키우게 되면서 새로운 세계에 진입하게 되었다. 


처음과는 달리 해가 지날수록 배변 실수가 잦아지는데 아마도 나이 탓이겠거니 여기다가도 짜증이 나는 건 나 또한 늙어가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딸이 어렸을 적에 이렇게 정성스럽게 딸이 누는 똥을 닦아줬던가. 부모가 늙고 병들었을 때 내 손으로 똥오줌 받아본 적이 있던가. 직장에 다닌다고 어린 딸을 시어머니께 맡기고 주말과 방학 때 잠깐씩 봐준 게 전부. 딸의 유아시절을 오롯이 함께 보내지 못했다. 정신차리고 보니 딸은 부모의 이상한 교육열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어린 딸의 똥오줌을 제대로 봐주지 못한 죄값이 컸다. 부모한테는 더 가혹했다. 역시 직장 핑계로 모든 돌봄에서 벗어나 있었는데 지나고보니 당장의 안일을 추구했을 뿐 생각과 행동이 한없이 가벼웠었다.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는 엄마의 똥오줌을 한번도 내 손으로 봐드린 적이 없었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부모한테 받는 것을 당연하게만 여겼다. 


그간 부모와 자식에게 못한 정성을 개에게 기울이면서 때늦은 감상에 젖는다. 어리석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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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은 있어서 언젠가는 읽게 되겠지, 하던 책을 도서관에서 만났다.
















프랑스에서 20여 년을 거주한 분이 '좋아서' 하게 된 이탈리아어 공부 얘기. '내 반평생 직접 경험한 진리, 고통과 인고의 시간 없이 다른 나라의 언어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다는 사실'. 나는 이 문장에서 얼마나 위로를 받았는지 모른다.


영문과 아니면 대학을 보내지 않겠다는 아버지의 회유와 겁박. 내가 영문과에 가야 할 이유를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1. 앞으로는 너희가 살아갈 세상에서 영어가 많이 그리고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2. 너는 성격이 내성적이니 좀 외향적으로 바꿔야 한다. 영어를 공부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영문과에 진학했는데 아버지의 말씀 중 1번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영어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2번은 외국어를 배우는 데, 특히 영어로 밥벌이를 하는데는 치명적인 결점이라는 걸 아버지는 하나도 모르는 채 세상을 뜨셨다.


아버지가 바라던 대로 영문과에 합격했다. 4남매 중 막내인 나는 가족 중에 처음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아버지는 입학 선물로 동네 시계방에 나를 데리고 가서 금색의 세련된 일제 세이코 손목시계를 6~7만 원 주고 사주셨다. 당시 대학 입학금이 36만 원이었다. 당신의 배우자인 엄마에게도 시계 한번 사주신 적 없는 분이었다. 얼마 후 카세트 테이프 라디오, 책 3권과 몇 개의 카세트테이프로 구성된 영어회화 세트를 사다 주셨다. 편애의 절정이었다.


그런데 아버지, 영어가 책 몇 권 읽고 테이프 몇 개 듣는다고 되는 게 아니랍니다.


그후 영어로 밥벌이를 시작하기까지 외롭고 고단한 영어와의 싸움이 있었다. 술에 만취하거나 노망이 든 노인네들이 허구헌날 과거를 되씹고 되씹듯이 나 또한 어디선가 썼던 영어와의 싸움 얘기를 또 하고 있다. 아마 노망이 들면 더 하지 않을까 싶다.


밥벌이용 외국어만 아니라면 외국어 공부는 참 매력적이다. 어렸을 적 보았던 낯선 언어의 책이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미얀마어 비슷한 문자였는데 묘한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책을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했던 것이 생각난다.


스페인어. 2010년. 금연은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남편이 느닷없이 담배를 끊겠다고 한다. 기특한 생각에 '당신이 담배를 끊으면 나는 스페인어를 공부하지요.'라고 선언했다. 몇개월의 노력 끝에 남편은 금연에 성공했지만 나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여전히 영어가 목에 걸린 가시였다. 약속을 지켰더라면 지금쯤 스페인 실력이 상당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기억력이 짧은 남편은 나의 다짐을 담배 연기처럼 날려버렸다. 기억하려나...


힌디어. 두번째 인도/네팔 여행 때 힌디어 몇 마디를 공부했다. 네팔 어느 식당에서 힌디어 한두마디 사용했더니 자기네들끼리 '이 사람 힌디어 할 줄 알아.' 하는 것이었다. 신기했겠지.


외국어의 잘 함과 못 함은, 외국어를 사용해서 돈을 버느냐, 외국어를 사용해서 돈을 쓰느냐에 달린 것이다. 돈을 쓰기 위한 외국어는 뭐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 듣기 마련이다. 돈을 벌기 위한 외국어는 찰떡같이 말하려면 그 길이 험난하고 고통스럽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돈을 쓰기 위한 이탈리아어 공부를 전심전력으로 해낸다. 그 결과를 책으로도 썼다. 이 분의 열정과 노력에 자연 경의를 표할 수밖에.


더불어 볼로냐의 어학원 얘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볼로냐 한 달 살기를 꿈꾸고 있던 차였다. 볼로냐에서 감히 이탈리아어를 배워보겠다고 덤비진 않겠지만 혹시 모를 일. 거의 독학으로 공부해야 했던 영어였지만 다른 외국어 하나쯤은 사람들과 어울려 유쾌하게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외국어로 돈 벌 일도 없을 테고, 흰머리 휘날리는 할머니의 발음이 좀 이상한들, 뭐 그럭저럭 봐주지 않을까. 혓바닥과 입술 모양을 달리해서 발음하는 외국어의 맛을 즐겨본들 어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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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3-09-19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 책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너무나도 공감가는 외국어 이야기.
그저 재미로, 아무런 욕심 없이, 조금씩 야금야금 익히는 외국어는 재미있지요.
하지만, 외국어 하나를 제대로 익히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예요.

nama 2023-09-19 19:38   좋아요 0 | URL
외국어 공부의 슬픔과 기쁨이라고 할까요. 아니 고통과 보람?
재미도 있고, 위로도 되고, 공감도 되는 책이지요.
다 읽고나면 ‘나도 한번 도전해볼까?‘하는 의욕도 생긴답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동요에 담긴 부동산 시장의 진리'라는 꼭지에 한참 웃다가 급 씁쓸해졌다.

1.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강/호수 주변에 위치한 집이 핵심 지역임을 암시

2. 기찻길옆 오막살이....역세권의 중요성

3. 두껍아 헌집줄게 새집다오.... 재개발 재건축을 노리는 전략

4. 곰세마리가 한집에 있어...최소 20평, 쓰리룸인 30평대가 주력

5. 깊은 산 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그린벨트 지역과 같은 개발특수지역은 먹기가 쉽지 않음을 암시


1, 2, 3 은 언감생심,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집 값 동요 따위와는 전혀 상관 없는 위치에 있지만 그나마 4번이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고, 강원도 오지에 오두막이 있어 나름 기대를 품고 있는데 그것이 그러니까 말 그대로 깊은 산 속 옹달샘이라는 것.


깊은 산 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맑고 맑은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달밤에 노루가 숨바꼭질 하다가

목마르면 달려와 얼른 먹고 가지요


노래의 깊은 산 속 옹달샘은 야생 동물이 물만 먹고 가지만, 실상은 노루 대신 고라니가 숨바꼭질 하듯 텃밭의 푸성귀를 할퀴고 간다. 며칠 집을 비울라치면 상추 모종은 흔적없이 사라지고, 고구마순, 가지순, 고추순 마저 깔끔하게 잎사귀를 먹어치운다. 야생동물 초음파 퇴치기를 설치했더니 시도 때도 없이 지나가는 바람에도 울어대는 통에 소음공해를 일으킨다. 


그래도 개울이 있으니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는 해당이 되려나. 알고보면 그것도 꿈만 야무지다.



폭 20미터가 채 안 되는 저 개울을 건너기가 어렵고 어렵고 어렵다. 비가 내리면 계곡물이 불고 물살이 세차 빈 몸으로도 건너갈 수 없다. 물이 빠져도 건너기 힘든 건 마찬가지. 납작한 잠수 시멘트 다리가 있으면 차량을 운행하여 짐이라도 쉽게 나르련만. 다리라도 하나 놔달라고 군청에 읍소한지 어언 16~17년. 응답없는 메아리. 매미/루사의 태풍 피해로 유실된 도로변에 산다는 게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이야. 고민 끝에 수백만 원을 들여 사진 속에 보이는 폰툰을 설치했다. 비가 많이 오면 바위에 묶여 있던 한쪽 밧줄이 풀리면서 맞은 편 물가쪽으로 밀려가 폰툰 유실을 막을 수가 있다. 그런데 얌전히 밀려가서 맞은 편에 자리잡으면 좋으련만 가끔씩 폰툰 몸체가 뒤집혀지기도 한다. 건장한 성인 남자가 벌레 뒤집어주듯 뒤집을 수 있는 있는 무게가 아니다. 체인 블록을 이용해 겨우 겨우 힘들게 뒤집어 주는데...저 일을 혼자 묵묵히 감당하는 남편을 보면서 '저이는 삼손이었구나' 새삼 감탄과 존경의 마음이 샘솟는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으로 보이지만 저 길을 오갈 땐 가능하면 장화를 신는다. 언제 어디서 뱀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디 길 뿐이랴. 비가 많이 오면 전기가 누전이 되어 물을 쓸 수가 없다. 물 많은 동네에 물이 없다니...그렇다고 개울물 길어다가 화장실 변기통 채우기에는 몸보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 속 생활은 한번쯤 살아볼 만하다. 지방 소멸 시대에 작은 보탬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몇가지 장점이 있다. 우선 야생을 겪어본다는 것. 하늘, 바람, 비, 눈, 별, 나무, 야생화...이런 것들이 주인공이고 인간은 다만 기생적인 생물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봄철 양양과 간성(고성) 사이에 발생하는 양간지풍에 시달리기라도 하면 고해성사라도 하는 기분에 젖는다. 제 죄를 너그럽게 용서하시고...저절로 기도하는 마음이 된다. 북인도 레 지방의 산악지역에 덩그러니 위치한 곰파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고나 할까. 그리고 여행 욕구도 상당히 줄어든다. 청명한 밤 하늘에 총총히 떠있는 별들, 교교한 달빛에 서려있는 왠지 모를 오싹한 두려움, 시공간을 배분해서 들고나는 온갖 생명들과 그 짜임새 있는 질서, 칠흑 같은 밤. 여기 또한 이국의 땅. 도시와는 사뭇 다른 환경에서 불면증 없이 곤하게 잠자리에 든다. 다만 어려운 점이라면 역시 사람과의 관계. 인간 관계가 가장 어렵다는 법정 스님의 말씀은 역시 진리이지 싶다.


앞산 자락에 장막을 걷듯 내려 앉던 햇볕이 드디어 우리집 마당에 내려 앉는다. 빨래를 말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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