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도 에어컨을 켜야 하느냐, 켜지 말아야 하느냐, 갈등을 일으켰다. '까짓 얼마나 살겠다고..' 요즘 내 입에서 버릇처럼 나오는 말이다. 저 말을 입 밖으로 뱉으면 좀 더 뻔뻔해지면서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대담해진다. 고민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들어 처음으로 에어컨을 켜봤다. 시원한게 좋았으나 이내 전원을 끄고 말았다. 아직 댕댕이가 덥다고 헉헉대지도 않고 얌전히 있는데 인간인 나도 좀 참아야 하지 싶어서다. 그보다도 이런 내 행동을 들여다보고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을 읽어서일 게다.
















구르지예프의 존재조차 몰랐다고 생각했다. 북플이 알려주는 몇년 전 내 기록을 보고서야 언젠가 내 손으로 구르지예프라는 이름을 써본적이 있다는 걸 깨닫고 급관심이 생겼다. 그땐 무심히 지나갔는데 이제야 눈에 들어오는 건 뭘까. 설렁설렁 읽는 책은 인생에 별 보탬이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깨닫게 된다. 흠, 그걸 또 어쩌나. 그게 나란 사람의 습성인데...이런 얕은 생각을 꼭 찍어서 구르지예프는 이렇게 설파한다.


"인간은 기계라네. 인간의 모든 업적, 행동, 언사, 생각, 감정, 신념, 의견, 습관은 외부의 영향에 의해 만들어졌고, 외부의 인상들에 의해 빚어진 것들이야. 인간은 자체적으로는 그 어떤 생각도, 행동도 만들어내지 못해."               -p.54


이 책은 그냥 스쳐지나가는 책일 수가 없겠구나, 라는 생각을 내내 했다. 어떤 깨달음을 주는 책인 건 분명한데 아직 입 속에서만 맴돌고 있다. 재독을 하면서 구르지예프가 했던 말을 한번 베끼기라도 해야 할 것 같다. 내 행동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책, 어떻게 해야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  















구르지예프가 쓴 책이 오늘 도착했다. 읽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차오르면서도 버겁게 느껴진다. 건성건성 읽으면 남는 게 없을 텐데...걱정이 앞선다. 책을 앞에 두고 걱정이 앞선 건 <수학의 정석>과 <성문 종합 영어> 이후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다. <수학의 정석>은 오르지 못한 산이었고, <성문 종합 영어>는 거듭거듭 노력해서 여러번 정상에 올랐는데, 이 책은 무엇이 될까?



2. 















몇년 전 보관함에 넣어두었으나 잊고 있었던 책.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들고 탄성을 질렀다. 역시 대단한 책이다. 서문만 읽고도 행복해지니...


3.














역시 도서관에서 접한 책. 이런 미술 관련 에세이는 대게 고만고만하다. 읽기 편하고 머리에 쏙쏙 들어오지만 금방 머리에서 빠져나가는 게 흠.


1세대 페미니스트 예술가를 기억하고자 한다.

*메리 베스 에델슨 Mary Beth Edelson(1933~2021)

*레이첼 로즌솔 Rachel Rosenthal

*캐롤리 슈니만Carolee Schneemann


기억해두고 좀 더 알아보고 싶은 화가 마담 르브룅


마담 르브룅은 여성이 미술계에서 성공하기 힘든 시대적 상황에서 순전히 개인적인 재능과 도전적인 태도로 엄청난 예술적 성취를 이룬 화가였다. 게다가 조국과 남편을 떠나 12년간 타국을 방랑하며 당시의 여성으로서는 드문, 혹은 불가능에 가까웠던 강인하고 독립적인 삶을 살았다. 모성애를 표현하는 그림을 그렸다고 해서, 현대 페미니즘의 패러다임으로 18세기 여성의 삶을 비판할 수 있을까? 마담 르브룅은 치열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며 예술혼을 보여준 위대한 작가였다.   - p. 281


4. 















도서관에서 접한 책. 집밥을 열심히 해먹은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책이다. 어려운 걸 쉽게 설명하고, 어려운 음식을 쉽게 만드는 건 쉽지 않다. 몸과 마음으로 익혀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가능한 일이다. 집밥도 그렇다. 특히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된장과 간장, 온갖 잡채를 아무렇지도 않게 만든다는 점이다. 살림꾼으로서의 양희경은 존경스럽다.



5.















<맡겨진 소녀> 원작. 원문을 읽으면 감동이 더할까 싶었는데....메뚜기식 읽기는 피할 수 없었다는...



6.
















사은품에 눈이 멀어 정기구독을 신청했는데.... 연재소설 읽는 맛이 새롭다.


7.















편하게 쓴 책같다. 쉬운 글이 쉽게 나온 글이 아니듯, 편하게 보이는 책도 고심하며 썼으리라. 때로 과속방지턱같은 장애물이 있어야 긴장을 하는데...흠이 없으니 흠을 찾으려고 애쓰는구나, 내가. <창작과 비평> 사은품으로 신청해서 받은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적도를 달리는 남자 - 어느 문화인류학자의 인도네시아 깊이 읽기
김형준 지음 / 이매진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10년 전 얘기를 읽는 게 의미가 있을까...싶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재밌다. 몇년에 걸친 세 차례의 현지조사 이야기는 예의 일반적인 여행기보다 더 생생하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제공해 주었다. 따끈따끈한 여행기가 패스트푸드라면 이 현지조사 이야기는 정성 듬뿍 들어간 한식 정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학교에 근무하며 여러 교장을 겪어봤다. 


학교를 공사판으로 만들며 제 주머니 채웠던 교장

부임하자마자 목에 힘주며 분위기 휘어잡던 교장

교내 감나무에 열린 몇 상자분의 단감을 모조리 자기집으로 가져간 교장 

계급장 떼고 함께 어울리고 싶어하는 민주 교장이었으나 성희롱 사건에 얽혀 있던 교장 

어떤 회식자리건 시종일관 본인 얘기만 하던 독불장군 교장 

병문안 오는 교사의 출석을 체크하던 교장 

회식에 누가 빠졌는지를 칼같이 잡아냈으나 정작 자신의 송별식엔 불참했던 교장 

오로지 부동산에 심혈을 기울였으나 얼마 안가서 병으로 쓰러진 교장 

두루뭉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남에게 상처는 주지 않으나 일처리엔 무능한 교장


아, 이건 옛날옛적 교생실습할 때였는데

영어가 어렵다고 손수 영어교수법을 만들어 수업시간에 가르칠 것을 강압했던 교장도 있었다.

g, k 는 ㄱ, ㅋ

s 는 ㅅ

d, t 는 ㄷ, ㅌ........

영어 공식이라며 한 학년 전체 학생에게 외우게 했다. 

영어선생들은 영어과 출신이 아닌 교장이 시키는대로 해야 했다.


교장은 왜 필요하지? 의문을 품은 적이 많다. 

트러블메이커보다 무능한 교장이 그래도 견딜만 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산골 노승의 화려한 점심 - 있으면 행복하고 없으면 자유로운 삶
향봉 지음 / 불광출판사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슨 말을 보태겠습니까. 조용히 스님 말씀 되새기겠습니다.

아가야! 마음이 몹시도 아프구나. 이 세상에는 그 어느 것도 영원한 것은 없는 법이란다. 우리처럼 이렇게 만나면 이내 헤어지는 아픔 속에서 나날이 철이 들고, 철이 들면서 서서히 사라져가는 것이란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는... - P135

요리학원을 다닌 적은 없지만 즐겨 먹는 미역국이 때에 따라 조리법이 진화하여 다양해진 미역국을 먹고 있다. 미역국에 치즈 두 장쯤 넣고 끓이면 미역줄기가 부드럽고 고소하다. 양파를 다져 넣는다든지 된장을 조금 풀어 끓여도 미역국은 다른 맛으로 내게 온다. 사자암에 혼자 머물고 있어 부목처사 몫도 공양주 역할도 나의 차지이다. 그런 만큼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 P78

내 죽거든
이웃들에게 친구들에게 알리지 말길
관이니 상여니 만들지 말길
그저 입은 옷 그대로 둘둘 말아서
타오르는 불더미 속에 던져버릴 것
한 줌 재도 챙기지 말고 버려버릴 것

내 죽거든
49재다 100재다 제발 없기를
쓰잘 데 없는 일로 힘겨워 말길
제삿날이니 생일이니 잊어버릴 것
죽은 자를 위한 그 무엇도 챙기지 말 것
죽은 자의 사진 한 장도 걸어두지 말 것

내 죽어
따스한 봄바람으로 돌아오리니
피고 지는 들꽃무리 속에 돌아오리니
아침에는 햇살처럼 저녁에는 달빛처럼
더러는 눈송이 되어 더러는 빗방울 되어 - P144

영혼이 없다는 내용, 하나만로도 불교도들은 많이 당혹해하며 신앙이 흔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미 경전에서 밝히셨지만 영혼 따위는 없는 것이다. 육도윤회도 없는 것이다. 당생윤회와 현생정토가 있을 뿐이다.
49재를 아무리 잘 차리고 준비해도 귀신 따위는 오지 않는다. 다녀갈 영혼이나 귀신 따위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 49재는 죽은 자를 위함도 있지만 산자의 빈 가슴을 채워주는 의식임도 잊니 말 일이다.

불교는 전생과 내생을 키우지 않는다. 불교는 오늘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영원하다. 영원한 오늘의 주인공으로 자유와 평화와 행복을 누리며 살 일이다. - P2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행 전에는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아도 보이지 않던 책들이, 여행 후에 하나씩 눈에 들어오는 이 신비한 현상. 여행이 주는 선물이겠다. 꼭 고구마나 감자를 캐는 기분이 든다. 뿌리를 들추면 줄줄이 엮여 나온다. 인도네시아 여행은 언제 끝나려나,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 책에서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시인 박인환이 인도네시아와 인연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박인환 시인은 일제 치하를 거친 한국과 같은 처지에 놓인 인도네시아를 향한 강한 동질감을 노래하였다. 이 시를 읽으면 동시대 인도네시아인과 아픔을 같이하는 그의 시대정신에 놀랍고, 그가 한때 한 해운회사에 입사해 자카르타에 아주 잠깐 머물다 갔으면서도 어쩌면 그렇게 인도네시아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해박한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때부터 이미 인도네시아 사람과 한국 사람은 애달픈 식민사에 대해 같은 정서를 공유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p.189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1948)


                                         박인환


동양의 오케스트라

가믈란의 반주악이 들려온다

오 약소민족

우리와 같은 식민지의 인도네시아

삼백 년 동안 너의 자원은

구미 자본주의 국가에 빼앗기고

반면 비참한 희생을 받지 않으면

구라파의 반이나 되는 넓은 땅에서

살 수 없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가믈란은 미칠 듯이 울었다

네덜란드의 58배나 되는 면적에

네덜란드인은 조금도 갖지 않은 슬픔에

밀시密柹처럼 지니고

육천칠십삼만인 중 한 사람도 빛나는 남십자성은

쳐다보지 못하며 살아왔다

(중략)

네덜란드인은 옛날처럼 도로를 닦고

아세아의 창고에서 임자 없는 사이

보물을 본국으로 끌고만 갔다

(중략)

제국주의의 야만적 제재는

너희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욕

힘 있는 대로 영웅 되어 싸워라

자유와 자기보존을 위해서만이 아니고

야욕과 폭압과 비민주적인 식민정책을 지구에서

부숴내기 위해

반항하는 인도네시아 인민이여

최후의 한 사람까지 싸워라

(중략)



하기야 내가 언제 박인환 시인의 시를 꼼꼼하게 공부했던가. 찾아보니 박인환 시집에서 이 시를 발견할 수 있다.

















무엇인가를 제대로 안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닫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