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맛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83
구광렬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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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한겨레 신문>을 통해 구광렬 시인을 알게 되었다. 다음이 그 기사이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95284.html 

모처럼, 그리고 오랜만에 시집 한 권을 완독(?)했다. 사 놓고 대강 읽다가 내버려둔 시집들이 좀 있기 때문에 '완독'이라는 표현은 내게 약간의 의미가 있는 말이다. 거칠게 읽긴 했지만 산에 오르는 듯한 인내심과 즐거움이 있었다. 그 시집이 바로 구광렬의 <불맛>이다. 

먼저 호기심이 생긴 것은 그가 스페인어와 한글로 시를 쓰는 이중언어의 시인이라는 점이었다. 평생 영어에 대한 두려움으로 지낸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이중언어로 시를 쓴다는 건 경외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년의 반을 보낸다는 중남미라는 공간이 그의 시에 어떻게 녹아있을까,도 궁금증을 일으켰다. 

한국과 중남미, 한글과 스페인어. 두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시 세계를 들여다보면 언뜻 어릴 때 텔레비전 만화로 보았던 손오공이 떠오른다. 공간 이동을 자유자재로 하는 그 손오공 말이다. '공간'이라는 코드로 읽어나가다 보면 그의 시 세계가 얼마쯤 이해가 되고 시 읽기는 '즐거운 노동'이 된다. 

단편적이고 자의적이지만 다음의 시구를 읽어보면 '경계' 라든가 '공간'의 개념이 잡힌다. 좀 더 구체적이면서 은유적으로는 '구석'이라는 공간이 포착된다.

'탄피를 쪼아보던 비둘기/찢어진 포문 속으로/들/어/간/다.....'<대포 속의 비둘기> 

'....살점은 이동하는 것이다/어제 네 살점은/오늘 내 살점이 되고/오늘 내 살점은/내일, 또 다른 살점의 살점이 되니....'<생선> 

'...비뚤비뚤, 이내 흐트러져버리는 줄개미들처럼/뒷사람 풀어지고, 뒤의 뒷사람 풀어지고/풀어졌다 조여지고, 그렇게 환승 내지 환생하는.<신도림역> 

'..가지보다 더 가지 닮은 나무의 뿌리는/지구별의 한복판을 뚫고 불쑥/반대편 이웃 정원의 나뭇가지로 솟아/남반구 북반구 대척점 사람들/모두 한나무에서 움튼 열매를 나누고/손자의 손자들은 집 한 채 크기 둥치에 대문보다 더 큰 구멍을 내/팔촌, 십이촌 한나무 한가족을 이룰 것이니...'<바오밥>  

'...그래, 그 목줄 2미터는 한계 이상이었다/우주비행사의 생명줄 같은 것이었지만/이제 반지름 2미터의 반질한 반원 속에서도/쑥과 냉이가 솟구쳐 오르니...'<목줄>

때로는 그 경계의 넘나듦이 위태로워 보이기도 하고 안쓰러워 보이기도 한다. 

'..미워할 수 없다 같은 시각, 다른 장소에서의 나의 부재를 못 믿고 후생이 궁금하다며 불속까지 뛰어들려는 내 뿌리'<신경증을 앓는 나무> 

'..사랑을 위해선 머리만을 묻어서도 안 되며/물방울보다 더 차가운 지구별에서의 부화를 위해선/온 몸덩이가 발광해야 함을.'<방충망에 매달린 물방울> 

 공간의 한 개념인 '구석'이란 다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소외된 것, 작은 것'을 나타내기도 하고 구석을 좋아하는  경우 구석은 '숨는 곳'이자 '안식처'가 될 수도 있다. 그러면 지구의 이쪽 저쪽을 넘나드는 시인이 찾는 구석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제 반지름 2미터의 반질한 반원 속에서도/쑥과 냉이가 솟구쳐 오르니'<목줄>이라는 시에서 '그 면도날 같은 파도의 한 줄 구석에도/등짝을 곧게 펴는 고기들이 산다는 걸/갈대의 울부짖음을 /'<메르세데스 소사> 라는 시구에서도 펄펄 살아있는 구석을 발견할 수 있다. 그외 다른 시들에서도 이 '구석'은 말 그대로  구석구석 발견된다.    

시 읽기는 역시 어렵다. 그래서 이런 독후감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 한 편 만큼은 그대로 베끼고 싶어서 어설프지만 몇 자 적어봤다.

<메르세데스 소사>   
1. 지구 반대편 구석에서 노래 한 줄로 깨달았습니다  
   구석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건만 세상은 
   구석을 향해 닫혀 있다는 걸    
   세상 힘든 것들 구석으로 몰리건만 
   묵묵히 구석은 그 어깨들을 받쳐준다는 걸    
   수평선에도 구석이 있고 
   그 면도날 같은 파도의 한 줄 구석에도  
   등짝을 곧게 펴는 고기들이 산다는 걸    
   갈대의 울부짖음을 
   못에 박힌 빈 바가지의 달가닥거림을 
   구석에서 태어난 바람은  
   입이 꽉 틀어 막힌 것들을 대신해 소릴 내준다는 걸  
   그 바람 앞에선 
   작고 낮을수록 더 떳떳할 수 있다는 걸 
2. ......   
 그 다음은 직접 읽어 보시길.....구석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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