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두 번 보았다. 처음엔 딸아이와 두 번째엔 남편과 함께. 친구와 한 번 더 이 영화를 보고, 양배추와 당면이 듬뿍 들어간 즉석 떡볶이를 먹는다면 완벽하게 1980년대로 돌아갈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떡볶이를 함께 먹던 옛 친구와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 80년대에 들었던 무수한 팝가수들. 비틀즈, 비지스, 올리비아 뉴튼존, 밥 딜런, 나나 무스끄리, 샤데이, 레너드 스키너드,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딥 퍼플..... 퀸도 그 중의 하나였다. 누구를 더 좋아하고 덜 좋아하고도 없었다. 라디오를 틀면 늘 이들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생각해보면 그 때가 내 음악인생(?)의 전성기였던 셈이다. 음악을 만들고,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불러야만 음악인생인가, 세상에 존재하는 음악을 잘 즐기는 사람도 인생에 음악을 투입시켰으니 음악인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직도 '보헤미안'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가슴이 설렌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련하게 마음속에 젖어드는 단어가 이 단어였다. 세상과 어울리지 못할 때 혹은 어울리기 싫을 때 이런 단어 하나 마음에 품고 있으면 위로가 되기도 했다.

 

bohemian: 예술가 등 습관 · 풍속을 무시하고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사람.(daum 사전)

 

가슴으로만 품고 있는 단어. 그 단어가 들어간 노래. 그 노래를 부른 퀸이라는 밴드. 내 음악인생의 한 귀퉁이에 늘 자리 잡고 있었다. 비록 그들의 음반을 구입한 적은 없지만.

 

 

 

빅토르 최. 이 이름을 알게 된 건 1990년대 중반 무렵이었다. 여전히 LP판이나 카세트테이프로 노래를 듣던 시절이었다. 드디어 나도 남자를 만나 데이트를 하고 결혼도 하게 되었다. 지금의 남편과 데이트할 때 남편의 옆구리를 찔러서 얻어낸 카세트테이프가 딱 하나 있는데 그게 빅토르 최의 노래였다. 몇 번 듣긴 들었지만 깊이 있게 듣지는 못했다. 러시아어로 된 가사는 그 뜻을 알 길이 없었고 생활인으로 사느라 음악을 접어야(?) 했다.

 

영화 <레토>를 남편과 보았다. 우리가 어떤 사이인가. 빅토르 최 노래가 담긴 카세프테이프를 주고받다가 결혼했으니 그를 추억하는 건 우리의 밋밋한 일상에 영화 한 편을 선사하는 일이며 새롭게 음악인생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다는 의미가 되겠다. 책장 서랍 어딘가에 있을 낡은 테이프를 찾아냈다. 다행히 버리지 않고 아니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잡다한 물건으로 가득 찬 서재는 이제 더 이상 서재가 아니라 창고방이었으니...

 

 

빅토르 최의 노래를 낡은 테이프로 듣고 유튜브로는 영상을 보았다. 20대의 청년이라기보다는 30대의 연륜이 느껴지는 깊이 있는 목소리와 차분한 표정이 보였다. 러시아어 가사가 여전히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다가오지만 그래도 그의 분노, 절망, 꿈 등을 노래에서 읽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영화는? 영화<보헤미안 랩소디>의 프레디 머큐리 역이 그렇듯 <레토>의 빅토르 최는 그저 배우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다행이다. 어느 누구도 프레디 머큐리가 될 수 없고 아무나 빅토르 최가 되는 게 아니니까. 그래서 더 그리워지는.

 

<레토>를 보며 <보헤미안 랩소디>의 완성미와 감동을 기대했으나 어딘가 보다가 만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초점이 빅토르 최에게만 맞춰졌다고 보기에도 어렵다. 마이크라는 또 다른 인물과의 관계 및 갈등이 줄거리처럼 보인다. 하기야 28세에 사망한 빅토르 최를 한 편의 영화로 풀어내기에는 그의 인생이 너무나 짧았을 수도 있다. 그는 그저 노래를 만들고 노래를 부르는 단순한 삶을 살았을 테니까.

 

 

 

재즈계의 대모박성연을 오래 기억하고 있다. 그의 노래 <물안개>는 언제 들어도 새롭다. 20대에 처음 들었을 때나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이나 노래가 주는 묘한 축 처짐은 변함이 없다. 어떤 소설을 읽다가 카페 야누스얘기가 나와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말로만 듣었을 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카페이긴 하지만. 한동안 이 재즈계의 대모를 잊고 지내다가 얼마 전 기사에 올라 다시금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프레디 머큐리도 좋고 빅토르 최도 좋은데 잊혀져가는 우리 재즈계의 대모도 함께 기억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서.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87180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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