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같았으면, 후지와라 신야의 이런 책은 출간되자마자 무조건 구입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다렸다. 도서관에 왔다갔다 해보면 언젠가는 만나리라. 나보다 발 빠른 누군가가 분명 신간구입을 신청했을테니 나는 그저 몇개월 조용히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남보다 먼저 구입하고 서평 대강 올리면 Thanks to 같은 소소한 기쁨을 누릴 수 있겠으나 도서관에서 빌려 보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다. 흠, 내가 어쩌다 이런 살림꾼이 되었나 모르겠다.

 

 

 

각각 1993년, 1994년에 출간된 초판본이다. 영혼으로 읽었다면 과장이려나. 이 책 이후로 인도에 관한 책을 백여 권 넘게 읽었으나 '언제나 마음은 고향' 같은 책은 바로 이 두 책이다. 누구에게도 빌려줄 수 없는, 고이 간직하고 있는 책이다. 지금도 저 <인도방랑>을 펼치면 마음이 저릿저릿해진다. 그러니 저 책을 쓴 후지와라 신야는 내게는 여행의 스승과 같은 사람이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라고. 나도 변했다. 절대적인 스승의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보다니...기껏 빌려서는 꼼꼼하게 읽지도 않다니. 그러나 단 몇쪽만 읽어도 기분이 충만해지는 책도 있는 법. 이 책 또한 그러하다.

 

노승의 입에서 두 번째 도주승의 이름을 듣고 나는 조금 놀랐다. 산사에서 도망치는 승려가 많으리라는 생각을 못 했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물었다.

"달아난 사람이 더 있었군요. 그런데 스님께서는 이 절에서 40년 가까이 사셨는데, 그동안 달아난 스님들의 얼굴을 기억하세요?"

노승은 눈을 감았다. 조금 있다가 왼손에 쥔 염주를 돌리면서 뭐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경을 외는 줄 알았는데 가만 보니 사람의 이름을 웅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도주승의 이름을 기억해낼 때마다 염주 알을 하나씩 돌렸다.

노승은 무서울 만큼 기억력이 좋았다.

과거 40년 동안 이 절에서 도망친 승려의 이름을 모조리 외우고 있었다.

그것은 사람의 이름을 빌린 훈계의 독경처럼 들렸다.

도주승의 이름은 물론이고 나이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노승은 내 눈앞에서 염주 알을 다시 헤아려보였다. 염주 알은 전부 서른여섯 개였다. (287쪽)

 

인도의 북부, 히말라야에 있는 라다크 지방. 그곳에서도 외지인이 쉽게 갈 수 없는 깊은 산사에서의 일화 부분이다. 여행사를 통해 라다크를 다녀와도 제법 우쭐해지는데 이 양반은 홀로 여행의 끝까지 파고들어간다. 그의 여행 방식이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경지의 여행. 그리고 떡하니 풀어놓는 위와 같은 글.

 

마음이 어지러울 때, 책이 손에 안 잡힐 때, 마중물로 읽기에 좋은 글이다. 조금만 맛을 봐도 정신이 맑아진다. 나에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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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5 00: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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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6 20: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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