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허수경 지음 / 난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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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표지를 넘기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허수경의 손글씨. 이 세상에 더 이상 살아있지 않은 사람에 대한 애잔한 슬픔이 몰려온다. 만나본 적도 없고, 그의 시를 성실하게 읽었다고도 할 수 없지만,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선 조용히 목례를 올리게 된다. 자신의 죽음을 끝까지 지켜보며 견디었을 고통의 시간을 생각하면 더욱 숙연해진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라는 말처럼 허망한 표현이 있을까만, 그 말 밖에 할 수 없다니...

 

이 책을 완독해도 대부분의 글은 곧 잊혀질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아마도 노화의 속도에 따라 가속도가 붙겠지. 마음에 들어오는 두 편을 옮겨 때때로 읽어보련다.

 

 

시커먼 내 속

 

  녹차와 아주 친한 아는 분이 언젠가 물의 상처에 대해 들려주셨다. 물은 서로 부대끼며 흘러가다가 서로에게서 상처를 받는다. 아래로 떨어지면서 또 상처를 받는다. 녹차를 끌일 물은 그러므로 그 상처를 달래주어야 한다. 물을 두서너 시간 전에 받아두어라. 그런 다음 물을 끓이는데, 물은 또 끓을 때 상처를 받는다. 그러므로 끓고 난 뒤 물을 미지근하게 식혀라. 모두 물의 상처를 달래주는 일이다. 그런 다음 차에 물을 부어라.

  내 속이란 얼마나 컴컴한가. 아마도 물에게는 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제일 상처 입는 일이 아니었을까. 흐르다가, 끓다가 입은 상처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진탕에서 입는 상처......

 

 며칠 전 선암사 템플 스테이를 할 때, 저녁 공양 후 스님과의 차담 시간이 있었다. 그날 템플 스테이에 참여한 14명은 스님이 손수 타주신 녹차를 얻어 마셨다. 참가자들보다 연배가 많은 스님이 손수 따라주시는 녹차를 두 번씩이나 얻어 마시면서도 우리는 작은 소리로 궁시렁거렸다.

 

"차가 미지근해. 좀 뜨거워야 제 맛인데 말야."

 

아마도 내가 그간 마신 녹차 중에 제일 미지근하지 않았나 싶다. 저 글을 읽으니 왜 스님이 차를 천천히 우려냈으며, 왜 느릿느릿 주전자에 옮겨 담았는지 그 깊은 뜻을 알 것 같았다. 분명 스님은 녹차와 아주 친할 테니까.

 

 

고마웠다, 그 생애의 어떤 시간

 

  그때, 나는 묻는. 왜 너는 나에게 그렇게 차가웠는가. 그러면 너는 나에게 물을 것이다. 그때, 너는 왜 나에게 그렇게 뜨거웠는가. 서로 차갑거나 뜨겁거나, 그때 서로 어긋나거나 만나거나 안거나 뒹굴거나 그럴 때, 서로의 가슴이 이를테면 사슴처럼 저 너른 우주의 밭을 돌아 서로에게로 갈 때, 차갑거나 뜨겁거나 그럴 때, 미워하거나 사랑하거나 그럴 때, 나는 내가 태어나서 어떤 시간을 느낄 수 있었던 것만이 고맙다. 

 

 

떠나간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이유가 있다면 바로 '내가 태어나서 어떤 시간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지 싶다. 비록 그것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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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7 1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17 16: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po 2018-10-17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뜨거운 커피만을.... 국은 뜨거워야 제 맛....
고집해 온 자신을 뒤 돌아보게 합니다.

nama 2018-10-17 20:45   좋아요 0 | URL
그래도 커피는 뜨겁게 마셔야지요. 상처 받는 물을 애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