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부터 너무 바빠서 통 책을 읽지 못했다.

 

숫자랑 씨름하면서 너무 많은 것들을 생각하는 일이 버거웠나보다. 책을 펼쳐 읽는데 같은 쪽을 계속 읽고, 읽어도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한 달에 두 권 달랑 읽었다. 뭐, 그것도 장하다. 잘했어.

 

3월이 지나고 뒤치닥거리하면서 고개를 들어보니 벌써 4월도 끝나간다. 이게 무슨...

 

책도 안 사고 한 달 반이 넘게 지나다니... (읭?)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해서 장바구니에 있는 책들을 훑었다. 그 동안 사고 싶었지만 못 사고 담아두었던 책들을 보니 괜히 마음이 찡했다.

 

머리가 정말 좋아서 읽는 것도 빠르고 이해하는 것도 빠르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헛생각도 했다. 책을 읽는 속도보다 사는 속도가 백 배는 빠른 거 같다. 슬퍼지려는 찰나, 그럼 뭐 어때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런.. 이것도 병이려나.

 

솔직히 굿즈가 탐이 났다. 임시정부 컵과 컵받침. 너무 갖고 싶어서 이 책들을 샀다.

 

고려 열전이야 궁금하기도 하고 재밌을 것 같아서 샀지만, 무도 한국사 열전은 순전히 굿즈 받기 위해 끼워맞춘 책이다. 재미있겠지만 갑신정변부터 현재까지의 한국사는 솔직히 너무 우울하다. 순간 순간 승리의 순간들이 있어도, 그 안에 너무 많은 희생들이 울고 있어서 가슴이 아프다. 가해자들은 처 웃고 있는데 말이다.

 

마크 트웨인의 짧은 글들이라길래 <최면술사>를 읽었더랬다. 너무 재미있었다. 이게 뭐야, 대박.

이렇게 웃긴 사람이었던가. 물론 '붙일 수 없는 제목'은 좀 마음이 아팠지만.

일 때문에 짜증나고, 다 던지고 도망가고 싶었던 때 집어들었다. 아, 읽고 나서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뭔가 치유된 듯한 느낌.

이럴 때 이 책을 집어든 난 역시 대단해.라고 생각하게 해 준 멋진 책이었다.

 

 

몰랐는데, 논란이 되고 있는 책인 듯하다. 이런 책은 정말 소수의 사람들이 원하는 책이라 출판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원만하게 해결되면 좋겠다.

솔직히 '한정판'이라는 건 엄청난 유혹이다. 갖고 있는 책도 표지나 출판사가 바뀌어서 '한정판' 뭐 이렇게 나오면 나도 모르게 또 사고 있는데, 이런 책은 오죽할까.

나도 어릴 때부터 신화, 전설 이런 이야기들 좋아해서 즐겨 읽고 보고 찾고 그러는데, 확실히 서양이나 일본 괴물, 귀신들에 비해 우리나라 요물들은 딱히 제대로 정리된 곳이 없는 것 같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전래동화집, 야담집들에 흩어져 있을 뿐이었는데, 저자의 노력이 대단하다.

 

 <최면술사>가 좋아서 이 책도 샀다. 얇고 가볍고 책표지도 좋고 버지니아 울프도 좋다.

흰 표지라서 그런지 백석 시인이 생각난다. 쌓인 눈을 푹 푹 밟으며 시를 읽어야만 할 거 같다. 하지만 추워서 시인지 주문인지 알 수 없을테지. 그저 하얗게 쌓인 눈을 보면 따뜻한 방 안에서 고구마나 귤을 먹으며 만화책 보는 게 젤 행복한데... 다행히 난 부산에 살고, 부산에는 눈이 잘 오지 않는다. 쌓일 일은 거의 없다. 쌓여도 곧 녹는다. 흔적도 없이.

 

 

조셉 캠벨, 조지프 캠벨... 뭐가 맞는지 예전에 읽었는데 다 잊어버렸다. 요즘 들어 자주 잊어버린다. 말을 하는 도중에도 단어가 생각이 잘 안나서 그.. 그.. 이러다가 풀어버리거나 던져버린다. 머리에 과부하가 걸린 건지, 나이가 들면서 내 시냅스들이 끊어진 건지... 소중한 시냅스들아... 제발 계속 딴딴하게 연결되어 있어다오.

여튼, 난 신화가 좋다. 신화가 지배계급 이야기라든지, 이데올로기라든지, 그냥 옛날 이야기라든지 다 상관없다. 난 어릴 때부터 신화를 읽으며 많은 위안을 받았고, 모든 사람은 각자의 신화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사람이 태어나서 죽기까지, 모두 각자의 모험을 하고, 각자의 벽을 넘고, 각자의 틀을 부수고, 각자의 뿔, 솥, 성배 등을 찾는다. 그러는 와중에 누군가는 이카로스처럼 바다에 떨어질 수도 있고, 헤라클레스처럼 미치광이가 될 수도 있다. 곰이 인간이 될 수도 있고, 알에서 태어난 이가 왕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이들에게는 어머니, 여신들이 있다.

 

 엄청난 고민에 빠졌다.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2권짜리를 살 것인가, 한길사에서 나온 10권짜리를 살 것인가. 다음날 받을 수 있다길래 한길사 책을 샀다. 원두도 같이 구매해서 빨리 받고 싶었...

쓰다보니 말을 잇지 못하겠다. 저것이 내 진짜 속내였구나. 사실 2권짜리보다는 10권짜리가 더 알차겠지라고 막 합리화했는데, 생각해보니 동서문화사 책 정말 두꺼울 것 같다. 일단 1권부터 읽고 생각해야겠다. 드디어 <겐지 이야기>를 읽게 되는구나.

 

책이란 참 오묘하다. 읽어도 좋고 보고 있기만 해도 좋다. 밥 안 먹어도 배 부른 느낌. 그냥 책 냄새도 좋고 편안한 기분이다. 내용을 이해하든 못하든 그 안에서 내 마음이 위로 받았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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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4-19 16: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돈이 좀 들겠지만, 한길사 판본을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두 판본의 만듦새를 비교하면 한길사 판본이 더 좋죠. 10권짜리 한길사 판본을 모으면 책등에 그려진 그림이 완성된 형태로 나오는데, 직접 보면 소장 욕구가 생깁니다. ^^

꼬마요정 2019-04-19 17:39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좀 전에 1권 받았는데 정말 소장각입니다. 진짜 이뻐요 ㅎㅎ 근데 10권이면 가격이...(ㅜㅜ) cyrus님께서 추천해주시니 더 더욱 결심을 굳히게 됩니다. ㅎㅎ

북프리쿠키 2019-04-20 1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겐지이야기를 시작하시다니 결딴이 부럽습니다 ㅠ

꼬마요정 2019-04-20 17:58   좋아요 1 | URL
음.. 시작은 하지만 끝은 어떨지 모르겠어요 ㅎㅎ 뭐 어때요, 삶의 끝자락에 이를 때까지 못 읽을 수도, 다 읽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 못 읽는 책이 훠얼씬 많을텐데요 ㅎㅎ 맛이라도 보려면 한 장이라도 시작해보려구요 ㅎㅎ 북프리쿠키님도 같이 읽어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