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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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아빠가 철학관에서 사주보고 받아 오셨다한다.

딸이긴 하지만 첫째니까. 

준비해둔 아들이름 대신 언니랑 비슷하게 붙여주는 미자숙자상숙필숙 같은 이름과는 다르다 내이름은. 

아빠가 받아온 이름은 두개였는데 하나는 지금 내이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지영"이었다. 


책장을 펴고 몇페이지 채 읽지도 않았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져 당황스러웠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던 적이 있다. 지구가 멸망해도 어찌어찌 살아남을 몇몇 사람중에 내가 포함될 것 같았다. 

그러나 점점, 이 좁은 우리나라에서 그중에서도 일부인 30대 여자 중에서도 

나는 그닥 특별할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엄마들의 인생이 불쌍했었다. 

엄마는 첫째였고 외할아버지는 돌림자가 들어간 이름을 지어줬다. 엄마는 공부도 잘했고 주산도 잘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아들 딸 구별없이 공부잘하는 놈을 공부시킬거라고 하셨단다. 

그런데 결국 엄마는 남동생 두명 학비 때문에 인문계가 아니라 상고에 갔고 은행에 취직했다. 은행일도 잘해서 윗사람들한테 칭찬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랬던 첫 직장을, 나를 낳고 그만 두셨다. 한번도 명절 당일에 친정에 가본적이 없다고 했다. 늦게 시작한 대학공부도, 자격증 공부도 자식들 때문에 중간에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우리 엄마만 그런줄 알았는데 시어머니도, 친구엄마도, 또다른 친구의 엄마도 그때는 다 그랬던 것 같다. 


한많고 억울한 엄마들의 세대가 지났고 그런 엄마들을 보면서 나는 그렇게 안살꺼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이 불쌍한 82년생 김지영에게 과하게 감정이입되는 이 상황은 도대체 뭐지

나는 당당하고 용기있고 능력있는 21세기 신여성이어야하는데 나도 모르게 불쑥불쑥 빨개지는 눈가는 무척 당황스럽다. 


어째 살아야하는지 모르겠다. 

뭐가 맞고 뭐가 차별인지도 모르겠다. 

이게 변화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그렇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보글보글 끓어오른다. 

이 책을 우리 아빠가, 남동생이, 시아버지가, 모든 남자들이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공감과 이해는 둘째고, 

알고는 있어야 할 것 같다. 


딸이 생긴다면, 

내 딸은 엄마의 인생을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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