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정여울 지음 / 민음사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 괜찮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늘 괜찮았던 나는 하루하루를 안간힘을 쓰며 견뎌내는 중이다. 느릿느릿 흐르기만 하는 시간은 켜켜이 쌓여 나를 짓눌렀다. 이 또한 지나가지 않는 것도 있더라.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내 마음을 지배하는 잿빛 감정. 명확한 명사로 명명하기 애매한 그것. 우울과 상실감과 허무와 슬픔이 뒤엉켜 찐득하게 들러붙은 빌어먹을 감정이다. 잠시 잊는 일은 있지만 어느 순간 돌아보면 마치 처음부터 있던 것처럼, 여기가 제 자리라 말하는 것처럼 거기에 있다. 바탕화면처럼 저변에 깔려있는 마음은 나를 늘 가라앉게 만들었다. 드라마를 마약처럼 취하며 벗어나려 해도, 가까스로 책을 붙들고 시를 쓰고 또 써도 나아지는가 싶다가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다. 어쩌면 그나마 이 정도로 끌어올려진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자주 슬펐고,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사실은 이런 시간들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아득함으로 펼쳐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었다.

 

제목만으로 구매를 결정한 책이다. 이것저것 고려하지 않고 결정했다는 점에서 실망할 위험이 상당히 높을 것이었다. 구입하고 얼마간은 읽지 않고 꽂아두었다. 작가가 쓴빈센트 나의 빈센트를 읽고 나니 이 책에 눈길이 갔다. 정여울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 같았다. 예감은 맞았다. 작가의 문장은 공허한 마음을 자주 토닥였다. 트라우마에 가까운 영향력으로 나를 잠식시키는 감정을 약간의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했다.

문학작품 속의 캐릭터를 심리학적으로 접근한 방식이 신선했다. 고전이 많이 언급된 점도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 한 달에 한 권 정도씩 고전을 읽으려는 계획을 갖고 있기에 얼떨결에 고전 맛보기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책 표지를 보고 찡했다. 따스한 햇살이 스며들어오는 환한 공간으로 빈 의자 두 개가 놓여있는 그림. 의자 위에 앉게 될 두 사람을 상상하니 부러워서였다. 두 의자의 방향에 주목한다. 오른쪽에서 창문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의자는 아마도 괜찮지 않은 사람일터이다. 그림을 바라보는 이를 등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민낯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리라. 반면 왼쪽 의자는 오른쪽 의자를 향한다. 오른쪽 의자의 얘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듯. 이 의자는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도 두루두루 모습을 보인다. 당신의 얘기도 들어줄 수 있다며 말을 건다. 왼쪽 의자가 작가의 분신인 것 같아 한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환하게 웃는 모습이 참 예쁘고 행복해보여. 근심걱정이 하나도 없는 사람 같아. 안정된 직장 있겠다, 자식들도 알아서 공부하겠다, 연금이 있으니 노후 걱정도 없고, 직장일도 잘 하고, 퇴근 후에 커피숍에 가서 우아하게 책 읽고 글도 쓰는 생활, 너무 부러워.’ 사람들이 내게 하는 말은 매번 날카로운 바늘이 되어 나를 쿡쿡 찔렀다. 책을 읽고 글이라도 쓰는 안간힘을 그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나의 껍데기를 보고 쉽게 판단하고 쉽게 말을 했다.

막연하게 작가가 될 생각을 한 것도 간절한 매달림이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으니까. ‘‘작가가 된다는 것은 그 모든 슬픔과 고통마저도 아름다운 이야기의 소재로 만드는, 모든 끔찍한 불행에 대한 정당한 복수의 길이었다.(p78)’ 글을 쓰면서 답답한 마음이 조금씩 나아졌다. 하지만 어느새 묵직한 감정의 물이 채워져 자주 길어 올려야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초인적인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다. 내가 쓴 시나 리뷰가 감정의 배설물 내지는 쓰레기 같다는 마음이 들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쓰고 글을 올린다. 나의 웃음을 갉아먹는 감정들을 언젠가는 모조리 글에 박제하여 봉인해버리리라. 작가가 된다는 것은 외면하고 싶은 자신의 민낯을 마주 보는 순간을 견뎌내는 일인 걸까.

 

사랑이 인생 최고의 가치였던 적이 있다. 그게 허물어지는 순간, 상실감은 생각보다 더 오래 머물렀다. 사랑만큼 허무한 것이 없었다. 한 때 그토록 가슴 뛰던 대상에게서 증오의 감정을 느꼈을 때, 나를 울적하게 했던 것은 슬픔이었다. 이 책에서 언급한 버지니아 울프의 유산이 마음 언저리에 확 다가왔다. ‘마음은 서로의 존재를 비추는 영롱한 거울이지만 서로의 가슴을 날카롭게 내리긋는 흉기이기도 하다.(p115)’ ‘사랑은 그 사람의 얼굴이라는 살아 있는 거울에 투영된 자기 자신을 비춰보는 일(p136)’이라는데. 내가 마주 보는 거울은 너무 차고 딱딱했다. 물리적으로 가까운 이의 마음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생각은 매순간 날카로운 흔적을 남겼다.

같은 식탁에 앉았으면서도 어색한 침묵을 반찬으로 먹는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즐겁게 웃음이 구르던 장면이 아득하게 떠올랐다. 당신과 나, 우리가 담겨있던 시간도 지나왔는데. 이제 우리라는 말은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 걸까. ‘우리가 가장 잘 안다고 믿었던 사람의 속내를, 우리는 평생 이해하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p119)’ 대화를 한다 해도 알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날카롭게 나를 찔렀다. 서로에 대해 아무런 기대감도 없는 마음이 아팠다. 3도 화상을 입은 건지도, 그래서 무감각해진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다시 슬펐다.

 

정여울의 빈센트 나의 빈센트에는 빈센트의 외로움이 언급된다. 거리를 지나면서 연인을 부러워했다는 마음을 알 것 같아서 울컥했다. 나 역시 가장 부러움을 느끼는 장면이기에 격하게 공감했다. 손을 잡고 걸어가는 연인의 모습이 제일 부럽다. 나는 스킨십을 좋아한다. 손의 감촉과 온기를, 사람의 품이 주는 아늑함을 사랑한다. 내게 그것은 19금 영화의 야한 장면보다 더 유혹적이다. 이런 이유로 견디기 어려운 난제가 존재한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내손을 잡아주지 않으니까. 나는 스킨십을 좋아해, 한 번 만져 보자, 으흐흐. 변태 새끼도 아니고 다짜고짜 손을 잡기도 상당히 뻘쭘하지 않은가.

간접 체험이라도 할까 싶어 책을 샀다. 손길이 닿는 순간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터치, 보디랭귀지, 몸의 일기등을 사들였다. 정작 구입만 해놓고 겉표지조차 넘기지 못했다. 학문적인 탐구는 개뿔, 백날 읽어봐야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 스킨십에 환장한 인간처럼 현실의 사람을 만지고 싶었다. 드라마 인간 말고, 책속에 등장하는 멋진 간지 남 말고.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도 하듯 이 사실은 종종 나를 외롭게 만들었다.

가끔 상상한다. 하루에 한 번씩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두 팔 벌려 나를 안아주는 존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스킨십 AI라도 있다면 당장이라도 구입할 각이다. 구매의사는 간절하나 구매할 수 있는 경제력은 없기 때문에 현실을 직시하는 나는 불가능한 꿈만 꾼다. 손잡고 다만 10분이라도 산책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좋을 텐데. 이성이든 동성이든 그저 사람 말이다. 인간이 지닌 36.5도를 느끼고 싶을 때면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도 든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서도 다시 또 사람의 감촉을 그리워하고 있으니.

 

몇 년 전부터 꽤나 심각하게 고민한 주제는 성욕이다. 고등학교 국민윤리 시간에 인간의 기본적인 3대 욕구가 식욕, 성욕, 수면욕이라 배웠다. 먹거나 잠을 자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젠장! 이런 욕구와 동급의 레벨이라니! 기본적인 욕구라면 거의 필수 요소라는 의미인데 성욕도 충족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걸까. 한데 수녀님이나 스님, 목사님 등 종교계에 몸담고 있는 분들도 있지 않은가. 머릿속은 종종 혼란에 빠졌다. 스스로를 면밀하게 관찰한 결과 성욕은 주기성을 띠며 나를 괴롭혔다. 그 때마다 지독한 외로움도 덩달아 따라왔다. 스킨십의 출발로 일컬어지는 손잡기조차 어려운 척박한 불모지에서 고독하게 살아가는 나로서는 프로이트의 리비도에 대한 이론은 상처에 뿌려지는 왕소금이었다. 성욕을 바탕으로 깔린 그의 이론에 나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 책 속에는 프로이트, , 아들러 등 심리학자들의 이론들이 자주 등장했다. 융의 접근 방식에서 위안을 받았다. 프로이트와 융의 이론은 all1/n 의 차이였다. 성욕이 절대적인 영역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욕구들 중의 하나라는 사실은 다른 욕구들이 상호보완작용을 한다면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 이제부터 나의 욕구를 더욱더 예술적인 창작열로 불사르리라! 성욕에 대한 견해가 아니더라도 융이라는 심리학자의 사상은 꽤나 매력적이다. 조만간 그의 책을 읽어보아야겠다.

 

흰 머리가 늘어나면서 몸이 부쩍 피곤해졌다. 늙음은 이렇게 서서히 나를 잠식하는가, 이런 모습으로 점점 쪼그라드는 건가 우울했는데노인과 바다의 한 장면을 묘사한 그림(p170~171)을 보는 순간 뭉클해진다. ‘어떤 힘겨운 상황에서도 내 마음속의 사자 한 마리를 결코 잃지 않는 것이야말로, 마음만은 결코 늙지 않는 최고의 비결이다.(p168~169)’ 몸을 뒤로 쑥 뺀 채 기다란 막대기를 청새치를 향해 휘두르는 노인의 모습에서 삶의 의지가 보인다. 너무 선명한 장면을 보니 눈물이 났다. 그래, 저렇게 치열하게 살아야하는 게 맞는 것이겠지. 가끔은 이런 고전작품에서 위안을 받는다. 읽다보면 내가 안고 있는 고민의 크기가 줄어들고 좀 더 커다란 인생의 그림이 그려진다.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에너지를 준다.

만약 그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당신이라면, 당신 주변에서 가장 따뜻한 눈빛을 가진 이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p196)’ 지금 당장 떠오르는 사람은 없지만 조금씩 찾아보기로 한다. ‘오직 몸으로 행동해야만 삶은 바뀔 수 있다.(p313)’했으니. ‘우리 자신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보다 더 강하다.(p204)’는 작가의 말을 믿어보려고 한다. 317페이지에 담긴 작가의 위로에 기대보려고 한다. 내가 느끼는 우울과 상실감과 허무와 슬픔을 비슷하게 안고 있을 또 다른 누군가를 상상하며 당신만 그런 것은 아니라며말하고 싶다. 당신만 그런 것은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춤추는바나나 2019-05-17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나비종 2019-05-17 23:40   좋아요 0 | URL
‘좋아요‘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척박한 불모지에 무려 댓글을 달아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춤추는바나나 2019-05-18 0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한테 와닿는부분이 많터라구요^^ 그리고 생각의 조각들을 멋진 글로 풀어서 쓰신게대단하고 부러웠어요^^ 앞으로 리뷰에서 자주뵈요 우리!!

나비종 2019-05-19 22:35   좋아요 0 | URL
위 댓글의 핵심어는 ‘우.리.‘인 거죠?ㅋㅋ
공감하신 부분이 많으셨다니 위안이 되는군요.^^ 멋진 글이라 여겨주시니 다소 민망하지만 계속 글을 써야겠다는 의지가 생깁니다. 불!끈!ㅎ 글 읽는 속도가 느려서 리뷰를 자주 올리지는 못하지만 자주 들러주시고 의견주세요~^^
 
빈센트 나의 빈센트 - 정여울의 반 고흐 에세이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평점 :
일시품절


정말 똑같았단 말이다. 꼬부랑 머리를 한 아그리파 석고상을 사진을 찍은 것처럼 실물과 흡사하게 그렸건만. 미술 선생님께서는 괴팍한 느낌이 끼얹어오던 친구 작품에 점수를 더 주셨다. 고등학교 1학년 때쯤이었다. 불현듯 기억이 떠오른 것은 미술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앙금으로 가라앉았던 억울한 마음이 생각나서일 거다. 이 책을 읽고 알았다. 친구의 작품이 나보다 훨씬 뛰어났다는 사실을. 선생님의 평가가 옳았다. 내게 없던 것은 아그리파를 해석하는 나만의 고유한 시각이었다. 말하자면 모조품과 창작품의 차이였다.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은 예술의 본질과 연결되는 중요한 요소였다. 결국 그 친구는 미술 관련 대학으로 진학을 했다.

 

고흐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이 깨졌다. 괴팍한 모습으로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과 해바라기가 그려진 정물, 청보라로 채색된 밤하늘. 고갱과 함께 미술교과서에 나오던 화가, 미친 사람의 이미지가 강했던 인물. 딱 여기까지였다. 그의 삶이든, 보다 많은 그림들은 관심 밖이었다.

자연스러운 글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미술에 대한 책도 역시 글 잘 쓰는 사람이 써야 제격이다 했다. 한데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니 이런 느낌은 단순히 뛰어난 글쓰기 능력으로 전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빈센트의 전기를 읽는 듯 그의 삶을 속속들이 알아가는 것도 좋았지만, 나는 그를 해석하며 그림인 듯 그려내는 작가만의 시선이 더욱 좋았다. 대상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이런 글이 나올 수 없겠구나 싶었다. 화가의 삶 자체가 간절한 데다 그를 향하는 작가의 깊은 시선이 어우러지자 그들을 바라보는 나에게 뭉클함이 전해졌다. 여운으로 이어지는 울림으로 커버 그림의 강렬한 노랑을 한참동안 응시했다.

글과 삶이 일치하는 책은 매번 깊은 감동이다. 빈센트의 그림에서 이런 느낌을 받았다. 그림과 삶이 일치하는 느낌이랄까. 꾹꾹 눌러 그려 털실로 짠 옷을 연상시키는 붓 터치는 삶의 묵직함을, 타들어가는 불꽃같은 노랑과 밤하늘의 색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화가의 시선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일생을 외로움에 흠뻑 젖어 살면서 사물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소용돌이 문양은 사람들과 삶을 향해 뻗는 간절한 손길이었다.

 

밤하늘은 검지 않다. 30대의 어느 날 늦은 퇴근길, 땅만 바라보며 터벅터벅 걷다 오랜만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간혹 야간자습 끝나고 오는 길에 올려다보았던 고등학교 때에는 밤하늘의 색깔을 인식하지 못했다. 나의 시선은 별 자체만을 향했으니까. 힘들다, 참 외롭다는 생각이 온몸을 감싸던 하루였다. 안에서 우러나는 한기를 느끼며 별을 품고 있는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던 것 같다. 새까맣지 않았다. 약간의 보랏빛 같기도, 짙은 남색 같기도 했다. 어두웠지만 분명 검은색은 아니었다.

빈센트의 밤하늘은 짙은 보라색과 남색의 중간쯤에 닿아있다. ‘빈센트가 그린 밤하늘의 별이 감동을 주는 이유 중의 하나는 검은색이 없기 때문이다.(p39)’, ‘빈센트는 과연 얼마나 오래, 얼마나 하염없이 별들을 바라보고 또 바라본 것일까.(p44)’, ‘그는 알고 있었다. 어두운 밤의 풍경 속에 때로는 낮보다 더 많은 색채가 숨어 있음을. 우중충하고 텁텁해 보이는 어두운 빛깔 속에 생의 눈부신 진실이 도사리고 있음을.(p79)’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던 시인의 말처럼 그에게 밤하늘은 이런 의미였으리라.

색채만큼이나 <별이 빛나는 밤>(p46~47)에서 마음에 들었던 점은 별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소용돌이치는 패턴이었다. 노란 밀밭의 소용돌이와는 다른 느낌이다. 하늘을 바라볼 때의 화가의 눈동자를 상상한다. 약간의 물기가 어린 눈이었으리라. 맑은 눈물이 살짝 맺혀있을 때, 별을 바라보면 그림처럼 빛이 번져 보이니까.

 

빈센트의 그림은 밝지 않다. 온통 밝은 노랑인 작품도 가뿐하지 않다. 인물들의 표정 역시 소위 아름답다말하는 세상의 기준에서 많이 벗어난다. 굴곡진 표정, 뭉툭한 손, 여기저기 삶의 더께가 진득하게 눌러 붙어있는 모습이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여인의 표정을 명확히 알 것 같은 <슬픔>(p102)도 비슷한 느낌이다. 묘한 점은 이런 그림에서 위안이 전해진다는 것이다. ‘상처 입은 자가 바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p133)’는 문장에 고개를 끄덕인다.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그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신발>(p191)을 보았을 때 그랬다. 스윗소로우의 노래 <나의 구두>를 이미지로 표현하면 이런 모습일까. ‘고단한 거리를 나선다, 하루의 끝을 달랜다./ 분주했던 발걸음, 꿈을 꾸던 한 걸음,/ 항상 너와 함께였지.// 뭘 위해 걸어왔던 걸까./ 어느 새 낡은 너의 끝/ 너와 함께 달렸던, 너와 함께 울었던,/ 그 시간도 아득해.// 어리석게도 아름다웠었던,/ , 아름답게도 어리석었던/ 그 소중한 맘을 기억하고 있어,/ 고마워, 너의 마음 다 알아.// 쉽게 헤어질 순 없었지./ 꼭 지친 내 삶 같아서./ 그래도 참 애썼다, 그래도 참 고맙다,/ 말해주는 것 같아서.// 어디로 갈지 몰라 헤맨 날도,/ 너무 아파 잠 못 들던 밤도/ 여전히 나는 기억하고 있어,/ 미안해, 너의 아픔 다 알아.// 고단한 겨울이야 정말, 너도 내 맘 아는지./ 그래도 또 한 걸음, 괜찮아 또 한걸음,/ 서툰 봄을 기다린다.// 그래도 또 한 걸음, 괜찮아 또 한 걸음,/ 또 하루를 걸어간다./ 너와 함께 걸어간다.(출처: 네이버 뮤직)’

빈센트의 화폭에 담긴 한 켤레의 신발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는 두 가지에 주목한다. 첫째, 신발의 끈이 풀려있다는 점이다. 이건 신발 주인이 고단한 시간을 지나 신발을 벗고 휴식을 취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신발 주인을 쉬게 해주고 싶던 화가의 마음이 전해진다. 둘째, 신발이 향하는 방향이다. 신발의 앞코는 화가를 향한다. 그림을 감상하는 이를 바라보기도 한다. 그림의 전체적인 색채는 매우 어두운 것도 의도적으로 보인다. 캔버스의 틀 바깥은 그림 속 세상보다 밝을 것이니까. 화가는 신발 주인에게 말한다. 어서 그림 밖으로 걸어 나와 쉬라고. 신발 주인을 한껏 안아주고자 하는 따스함이다.

 

미술은 세상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시선을 눈에 보이는 틀에 담는 행위이다. 사각의 캔버스가 되었든 입체적인 조형물이 되었든 창작자의 해석에 따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결과물이 만들어진다. 빈센트는 모두가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길어 올리는 창조적 시선(p324)’을 지닌 사람이었다. 대성당에는 없는 것을 사람의 눈 속에서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빈센트의 노랑은 소유격을 사용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특별한 색채이다. 파도처럼 꿈틀거리는 커버 그림의 노랑이, <수확하는 사람>(p344~345)의 절반을 차지하는 밀밭의 노랑이 마냥 바라만보아도 좋았다. 그가 표현한 노란 빛 하늘이 좋았다.

사각의 틀이 담고 있는 무한한 세계를 상상했다. 감정이입이 된 그림 안에는 고정된 색채나 형태가 없음을 알았다. 캔버스 안에서 듬뿍 펼쳐진 찬란한 자유를 보았다. 빈센트의 색채로 이루어진 싱크 홀에 깊이 빠져버렸다.

 

 

p6, 밑에서 6째줄: 파랑, 노랑, 빨강, 이 세 가지 이 만나면 결국 새하얀 빛이 되는 것처럼 빛의 3원색은 RGB(Red Green Blue)이므로 노랑 대신 초록이 들어가야..

p231, 테오에게 쓴 편지 베르나르에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가끔은 그런 날이 있다

그럴 때면 시간의 손끝은

마음을 덮던 막을 잡고  

마냥 느릿느릿 걸어간다  

 

얇게 펴진 막이 아리다

점점 따끔거리다

작은 바람의 스침에도

조금 뾰족한 소리에도

금세 툭 터져버린다

 

체할 것 같은 울음을

틀어막고 있는 눈동자는

욱신욱신 뜨거워지는데

공기에라도 기대고 싶나

휘청휘청 몸은 흔들흔들

 

아득한 시간을 나,

언제까지 건널 수 있을까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사실은 온통 그런 하루들이

느릿느릿 나를 당기는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설득 (반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4
제인 오스틴 지음, 원영선.전신화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드디어 계란 한 판을 득템한 지난 주 화요일에는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주룩주룩 비가 내리던 지지난 주 화요일, 퇴근 후 서둘러갔건만 아파트 장터 계란 아주머니는 이미 철수하신 후였다. 절망 후에 얻은 기쁨은 두 배가 되었다.

계란. 이토록 다양한 버전의 음식으로 변모하는 재료가 있을까. 계란프라이, 계란찜, 계란말이, 계란조림, 계란탕에 이르기까지 단품으로도 손색없는 반찬이 되는데다 평범한 라면에 영양가를 더해 레벨 업 시켜줄뿐더러 떡국에서는 화룡점정이 되는, 반찬 계를 드넓게 섭렵하는 존재이다.

삐까! 드디어 계란을 득템하였어!”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엄마를 떨떠름하게 바라보던 고3. 벌써부터 미래가 그려진다는 표정이다. 계란의, 계란에 의한, 계란을 위한 요리. 계란에서 시작해서 계란으로 마무리될 요리의 향연이다.

 

계란 같은 책이다. 제목처럼 설득의, 설득에 의한, 설득을 위한 책이다. 설득의 모든 버전이 총망라되어 있다. 책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은 설득과 연관이 된다. 확고한 가치관을 지녀 설득되지 않는 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이, 그에 의해 설득이 되는 이들이 존재한다. 설득의 소재도 다양하다. 사랑과 결혼의 조건, 남성과 여성의 사고방식의 차이, 문학에 대한 관점, 지위와 외모를 중시하는 삶의 방식 등이 제시되어 서로가 서로를 설득한다. 다른 이의 설득으로 남자와 이별을 한 여자가 팔 년 후에 그와 다시 만나 서로의 진심을 알고 결국 결혼한다는 내용. 표면적으로는 사랑과 결혼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책이다. 작가는 이야기를 펼쳐놓고 독자들에게 묻는다. ! 당신들이 그들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떤 인물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따라오시나요? 등장인물의 대화로 이루어지는 설득의 과정을 통해 설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작가에 의한 설득의 시작이다.

 

지위와 외모 등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월터 경과 엘리자베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을 유지하는 인물이다. 어쩌면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세속적인 조건들을 고수한다. 당신 같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작가는 이 두 명의 캐릭터를 통해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외적인 조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갈등을 유발한다. 오히려 확고한 신념을 가진 이들에게는 기준이 명확하므로 행동이 쉽다. 문제는 어정쩡한 나와 같은 사람이다. 그런 조건들은 삶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혼란을 안겨주며 주춤거리게 하는 요인이 된다.

여주인공 앤에게 어머니이자 친구와 같은 존재가 되는 레이디 러셀조차 재산이 변변치 않은 남주인공 웬트워스와의 이별을 설득한다. ‘모험 보다는 안전이 설득의 무기로 사용된다. 열아홉 살 앤의 입장이었다면 나는 설득이 되었을까. 나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건을 넘어서는 선택을 했을 것 같지는 않다. 누구든 어느 정도는 이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본다.

 

하빌 대령과 앤의 대화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사랑을 대하는 가치관의 차이에 대한 설득이 치열하게 펼쳐진다. 탁구공을 주고받는 듯 대화에서는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증거로 판가름할 수 없는 견해의 차이니까요. 어쩌면 남녀 모두 처음부터 각자의 성에 대해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요.(p310)’ 남성과 여성의 본성과 사회적 장치까지 언급이 되는 대화에서 합의점은 없어 보인다. 대화를 따라가면서 궁금했다. 논쟁에 가까운 이 대화를 작가는 어떻게 마무리를 할까.

이 모든 것, 남자가 자기 삶의 보배인 존재를 위해 견뎌낼 수 있는 모든 일들, 성취해낼 수 있는 모든 위업을 당신에게 전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전 다만 심장을 가진 남자들만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p311)’, ‘당신이, 그리고 당신 같은 남자들이 느끼는 모든 것을 온당하게 대접할 수 있길 바랍니다. (중략) 제가 여자들을 위해 주장하는 특권이란 (중략) 더 이상 대상이 존재하지 않아도, 희망이 사라져버린 뒤에도, 여자는 남자보다 더 오래 사랑한다는 것입니다.(p311~312)’ 결국 대화는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하며 서로의 입장을 말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진정한 토론의 정석이 아닐까. 참 현명한 작가이구나 싶었다.

 

설득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적어도 시간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공간적인 상황이 달라져 웬트워스가 다시 앤의 삶 속에 배치되자 예전의 감정이 다시 새록새록 살아나는 상황으로 보면. 시간과 공간. 나는 어느 것에 의지하며 삶을 견디고 있는 걸까. 이건 인간 본성의 문제인 걸까.

앤의 심리를 따라가면서 인간의 본성을 생각했다.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은 굳은 심지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p119)’ 앤이야말로 굳은 심지를 가진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끄트머리에서는 앤을 지칭하며 선한 영혼(p312)’이란 말이 등장한다. ‘흔쾌히 악에서 선으로 돌아서서 자신을 잊게 해줄 일거리를 찾는 힘은 오로지 천성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하늘이 내린 최고의 선물이었다.(p205)’ 앤의 친구 스미스 부인을 묘사한 문장이지만, 앤에게도 적용되는 문장이라고.

서로의 진심을 확실하게 알게 되는 주인공들의 대화에서는 설득에 관한 중요한 메시지가 담긴다. ‘그분보다 더 큰 적이 한 명 있었던 게 아닐까 하구요. 바로 저 자신이지요.(p327)’ 자기검열이란 말이 떠오른다. 어찌 보면 스스로를 설득하지 못하고 물러나는 과정 아닌가. 삶은 수많은 설득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설득을 당하거나 설득을 하거나. 이런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설득하는 과정일 것이다.

 

소설의 매력 중 하나는 관점이 다른 독자들에게 각각 다른 색깔의 느낌표를 찍어준다는 점이다. 또한 같은 사람이라도 그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스토리 자체가 흥미로울 수도 있지만 이 책의 경우, 품고 있는 메시지에 방점이 찍히는 부류이다.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는 분명 있겠지만, 설득에 대한 다양한 버전 중 무엇을 중점적으로 요리할 것인가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장면은 사랑도, 결혼이나 삶, 인간의 본성에 대한 것도 아니었다. 벤윅 대령과 앤이 주고받은 대화의 시간들이 나는 가장 좋았다. 시에 대해, 시의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는 현 시대에 대해, 자신이 좋아하는 시의 구절에 대해, 시를 음미하는 방식에 대해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은 부럽기까지 했다. 누군가와 시나 책에 대한 대화를 하고 싶었다. 어떤 시가 좋았다든지 이 책의 어떤 부분이 좋았다든지 나는 이 구절에서 이런 느낌을 받았다든지. 누군가와 공유하는 시간들이 이런 대화들로 채워진다면 얼마나 벅찬 기분으로 행복할까.

 

음악을 들으면서 이 글을 쓴다. ‘소음에도 사람마다 나름의 취향이 있게 마련이다. 소리는 크기보다도 종류에 따라 아무렇지 않게도 들리고 아주 거슬리게도 들리니 말이다.(p178)’ 피아노 전주가 유난히 좋은 노래가 흘러나온다. 글쓰기를 멈추고 잠시 귀를 기울인다. 리듬만으로 마음이 움직이는 노래가 있다. 음의 높낮이는 확실히 심장 박동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글이야말로 대단한 예술이다. 리듬의 입장에서 글은 음의 높낮이가 없는 밋밋한 흑백의 컬러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한 가지 음을 지닌 글에 리듬감을 주는 것은 온전히 독자의 몫일 터이다. 글이란, 작가와 독자가 함께 만드는 음악이다. 독자가 부여하는 리듬에 따라 글은 매번 다른 음으로 다가올 것이니. 이런 면에서 모든 작가는 뛰어난 설득가인지도 모른다. 글을 통해 독자의 심장을 설득하는. 글의 힘은 그 시너지의 합력으로 정해지는 것 아닐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감 2019-05-07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리뷰올렸습니다. 나비종님과 달리 전 많이 힘든 작품이었네요^^;
확실히 같은 책인데 느낀바가 달라서 신기하고 그걸 공유할 수 있다는게 너무 좋습니다ㅎㅎ

나비종 2019-05-07 14:10   좋아요 1 | URL
미투입니다.ㅎㅎ 하얀 쌀밥만 꾸역꾸역 먹는 기분이었달까. 드.럽.게. 재미없었습니다. 은근과 끈기의 민족의 후손 아니냐며 제 자신을 설득하면서 읽었습니다. 여기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겠느냐며 나름 책을 뒤적이며 애써 분석한 결과물이랍니다. 이토록 기특한 캐릭터가 어디 있냐며 스스로 쓰담쓰담했다는ㅋㅋ
답답했던 심정을 공유할 수 있어서 저도 너무 좋습니다.^^
 
사물의 사생활 - 나를 치유하는 일상의 99가지 사물
이민우 글, 정세영 사진 / 이숲 / 201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찰칵! 호흡을 멈추고 셔터를 눌렀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발목보다 낮은 키로 가만가만 흔들리던 하얀 봄이 렌즈 안으로 쏙 들어왔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봄이 아름다워지기 시작한 것은. 디지털카메라의 붐이 일었을 때, 접사 기능으로 눈동자 한가득 작은 꽃들을 담아가면서 꽃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유달리 작은 꽃이 많은 계절이다. 무심코 지나칠 때에는 몰랐던 생명들이다. 작은 봄꽃들은 미세한 바람에도 흔들렸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나지막하게 바람의 존재감을 알려준 다음, 향기를 잘게 쪼개서 바람에 흘려보냈다. 봄을 떠올릴 때 간질거리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꽃 때문일 거다. 그런 꽃을 품은 봄을 덩달아 사랑하게 되었다.

사람은 의미를 품은 사물을 사랑하게 되는 걸까. 의미로 다가오는 대상은 다양하다. 생명체에서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딱히 정해진 기준은 없어 보인다. 동화였던어린왕자가 심오한 소설로 인식되었을 때, 소설 속 왕자에게 의미 있는 대상은 장미와 여우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막도, 밀밭도, 석양도, 별까지도. 주인공을 둘러싼 수많은 사물들이 의미를 지닌 채 빛을 냈다.

 

사물의 사생활99가지 사물의 의미를 카피라이터인 작가 고유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해석한 책이다. 카피라이터가 쓴 글을 좋아한다. 직업의 특성상 그들은 대체적으로 본질을 꿰뚫는 예리한 시각을 지닌다. 그들의 글은 시와 흡사해 보일 때가 많다. 단 몇 줄은 탱탱 볼인 양 상큼하다.

현미경으로 대상을 관찰하는 느낌으로 따라가 보니 나를 치유하는 일상의 99가지 사물이라는 부제처럼 마음이 치유되는 듯했다. 여행을 가서 새로운 풍경이 드넓게 펼쳐졌을 때 느껴지는 후련함과 비슷했다. 그런 느낌이 가뿐한 바람으로 불어와 마음에 쌓여있던 먼지를 훌훌 털어냈다. 마음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졌다.

같이 실린 사진도 글 못지않은 존재감을 발한다. 전달하는 메시지가 많다.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렌즈의 초점이 오롯이 대상에만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사물이 주인공인 글이니 당연하지만 사진을 넘길수록 사물을 올곧게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강하게 감지된다. 대상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담대함과 가까이에서 본질을 담아내려는 사진들이 진한 느낌표로 찍힌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선뜻 내미는 손이 그리울 때가 있다. 외로움에 지쳐가다 그냥이란 포장지를 이용한다. 위로받고 싶을 때 가끔 카카오 톡을 보낸다. 도로 삼키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농담 몇 마디에 기대어서라도 시린 가슴을 덮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냥. 두 글자를 보낸다. ‘사랑은 의미가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한 경이로움이다. “, 날 사랑해?” “그냥.”(p154)’ 불현 듯 누군가에게 그냥이 되고 싶어진다.

네가 오전이면 시계도 오전이고, 네가 오후면 시계도 오후다.(<시계>, p123)’ 많은 의미를 품은 문장이다. 나의 생각대로 의미가 생긴다는 말이다. 무서운 말이기도 하다. 보아도 보이지 않는 사물이 생길 수 있다는 말 아닌가. 그런 사물은 의미를 잃고 투명해진다. ‘사람의 눈은 자신의 기분과 심리적 상태, 처한 상황, 날씨에 따라 오목렌즈와 볼록렌즈로 대상을 부분적으로 확대하고 축소한다.(<안경>, p189)’ 관점이 비슷하면 사물을 비슷한 크기로 바라볼 터이다. 그가 누구든 오랜 동안 나란히 걸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따뜻한 행운이 될까.

무인도에 가져간다고 가정하니 내 삶의 세 가지 사물은 무엇일까?(<프리스비>, p50)’에 대한 답변이 떠오른다. 글을 쓸 수 있는 종이, 파란색 제트스트림 1.0 볼펜, . 책은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어린왕자>와 같은 책이면 적당하겠다. 욕심을 조금 더 부린다면 음악이 담긴 플레이어 정도를 추가해도 좋겠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삶을 돌아보고, 시선을 가로막는 편견의 포장지를 벗겨냈다. 사람을 생각하고, 세상을 둘러보고 시선 끝에 놓인 나를 바라보았다. 폐 속에 신선한 공기가 가득 들어차 삶이 확장되는 느낌이 들었다. 관점의 기발함에 감탄하면서 글을 읽었지만 앵무새처럼 작가가 부여한 의미를 따라가고 싶지는 않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의 의미를 찾아야 하니까. 우리는 사실 제각기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저마다 다른 의미로 축소되고 확대되어 만들어진 세상 안에서. 객관적으로는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을 바탕으로 지문처럼 다른 세상을 살아간다고 상상하니 기분이 묘하다.

왜 하필 99가지의 사물을 정했을까. 그 이상도 가능할 것이고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100으로 마무리할 수도 있었을 텐데. 가만히 생각하다 퍼즐의 마지막 조각인 듯 끼워 넣을 수 있는 대상을 떠올린다. 바로 나! 사물이라 하기엔 억지스럽지만 굳이 하나를 남겨놓은 것은 끝으로 나를 바라보라는 의미가 아닐까. ‘나는 나에게, 타인에게, 세상에게, 신에게 무슨 사물일까.(p7)’ 존재론적 질문 앞에서 되묻는다. 나는 나에게 무슨 사물일까. 아직 당당하게 외칠만한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의미 없는 사물이 되고 싶지는 않다. 세상을 품고, 세상을 품은 나를 품고 싶어서 같은 질문을 계속 떠올리며 스스로를 바라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