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플갱어를 잡아라! - 제7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단편 부문 대상 수상작 웅진책마을
이윤 지음, 홍정선 그림 / 웅진주니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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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의기소침한 모습이었다. 퇴근 후 피아노를 배우고 강을 끼고 도는 산책로를 거의 매일 간다고 했지만 그마저 썩 즐기는 것 같지는 않았다. 좋아하는 것을 찾아봐. 친구에게 말했다. 학생들과 상담할 때에도 종종 해주던 말이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계속 찾아보라고. 친구와 대화하는데 이 책이 떠올랐다. 도플갱어와 얼굴을 비볐을 때 사라질 듯 투명해지던 주인공의 모습이 친구와 겹쳐졌다. 투명한 외로움이 해파리처럼 물컹하게 잡히는 듯했다. 내게도 종종 머물다 가는.

 

맛있는 것도 같이 먹고 바다에 발도 담그고, 초록의 숲길도 실컷 보았다. 행복한 사진들 속에서 환하게 웃는 친구의 미소가 눈부시다. 집에 도착했다는 카카오 톡을 보내니 답변이 온다. 유붕이 자원방래하니 불역 열호아. 친구의 삶에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들기를 바라며 피곤한 몸을 뉘었다.

마음의 갈증이 완벽하게 해소되지는 않았으리라. 자신과 같은 친구 한 명만 가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외로울 때 함께 있어주고 답답할 때 푸념을 들어줄 수 있는 그런 친구, 내 마음의 어디가 가려운지 정확하게 긁어줄 수 있는 존재 말이다. 외롭거나 답답할 때마다 막연한 바람을 갖곤 했다. 조금 더 어릴 때에는 내 대신 학교를 가거나 싫어하는 일을 해준다면 좋을 텐데 하며 짜릿한 상상도 했다. 누구나 한번쯤은 상상해보았을 또 다른 나. 상상이 구체적으로 표현된 글을 읽어 내려가는 기분이 참 묘하다.

 

표제작 <도플갱어를 잡아라!>는 진정한 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돌아보게 되는 동화이다. 함께 실린 <집으로 가는 아주 먼 길>대신 로 치환하여 읽어도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된다. <지구 관찰자들>에서는 평화의 중요성을, <할아버지와 꽃신>에서는 평균 수명이 길어진 미래에서의 노인 소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집으로 가는 아주 먼 길>을 제외한 3편의 동화는 판타지적인 요소가 바탕이 된다. 달을 보고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나 싶고, 말하는 신발에 관한 아이디어도 참신하다. 높이 평가하고 싶은 점은 동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있는 주제이다. 현실에서 한 번쯤 되돌아보아야 할 화두가 선명하게 담겨있다.

 

짧은 동화를 읽으면서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이제껏 나는 시키는 대로 척척 해주는 로봇과 같은 존재를 바라고 있었다는 것을. 동화 속에서 존재할 수 있는 진정한 는 오로지 한 명뿐이다. 존재로서의 는 사람들의 눈치 따위는 보지 않고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당당한 사람인가 끊임없이 묻는다.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 본심을 숨기고 허깨비로 살아간다면 도플갱어와 다를 바 없음을 말한다. 도플갱어에 얼굴을 비볐을 때 점점 투명해지는 주인공의 모습은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지금 온전한 로 존재하고 있나요? 라고.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사람들의 내면을 거울 속 친구로 비유한다. ‘거울 속 친구와 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건 오직 하나뿐이야. 용기, 바로 그것이지.(p123)’ 오랫동안 의식하지 못했다. 간혹 의식했을 때에도 종종 외면해왔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마지막에 실린 동화 <집으로 가는 아주 먼 길>에서 주인공 영도가 미로를 헤매는 흰쥐를 보고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는 장면도 결국 에게 이르는 여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거라 생각한다. 내게 있어 터닝 포인트는 책을 읽는 일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느린 독서 속도는 책을 내팽개치지 않고 붙들고 있게 하는 용기를 필요로 했다. 그 과정에서 글을 쓰게 되었고 내가 쓰는 글은 자연스럽게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답답하거나 외로울 때 글을 쓰면 후련해진다. 좋아하는 일은 확실히 찾았는데 요즘은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무엇을 쓰고 싶은지, 내 글이 걸어갈 장르와 방향 말이다. 짧게 쓸 수 있는 내용은 시로 표현하려 한다. 하지만 시 쓰기가 내게 맞는 길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쓰다 보면 글이 길어지는 경향이 있어 아직도 산문이 편하지만 소설은 호흡이 길고 치밀해서 엄두가 나지 않는다. 수필은 내 얘기를 누가 재미있어할까 싶어 아직은 시도하고 싶지 않다. 나중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나의 글을 읽게 되고 삶의 에피소드를 묘사할 기회가 온다면 모를까 나부터도 타인의 신변잡기에는 선뜻 시선이 가지 않으니까.

 

계속 나에게 말을 거는 중이다. 나비종, 너는 무엇을 좋아하니? 무엇을 원하니? 어디로 가고 싶은 거야? 거울 속의 친구를 자주 들여다보면 어느 순간 환하게 웃음 짓는 얼굴을 볼 날도 오지 않을까. 바로 그 순간을 알고 싶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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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 시집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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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50. 서서히 노안이 나타날 나이. 작은 글씨가 안 보인다는 또래 사람들의 말이 남의 일 같지 않다. 라식 수술을 한 사람들은 근시 증상이 다시 나타나는 것이 노안이 왔다는 증거라던데 요즘 부쩍 멀리 있는 물체가 흐릿한 것을 보면 내게도 드디어 왔구나 싶다. 눈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와 닿을 때마다 언제까지 노트북에 글을 쓰며 지낼 수 있을까 불안하다. 눈이 어리어리해서 책조차 보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종종 울적하다.

 

어쩌다가 글 쓰는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고/ 고도와도 같고 암실과도 같은 공간/ 그곳이 길이 되어 주었고/ 스승이 되어 주었고/ 친구가 되어 나를 지켜 주었다’(p33~34, <천성>) 책을 읽고 리뷰를 쓰고 시를 쓰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하루 중 많은 시간은 직장일과 집안일로 할애되지만, 퇴근 후나 휴일에는 대부분 글과 함께 보낸다. 절대적으로 적지만 환한 여백으로 채워지며 내 삶을 빛나게 하는 시간이다. 책읽기와 리뷰와 시 쓰기의 시작은 작은 우연의 연속이었다. 여러 겹으로 겹쳐진 우연은 단단한 화장지의 심이 되어 나의 시간을 돌돌 말아가기 시작했다. 10여년이 넘어서자 이 모든 시간들이 필연의 의미를 띄었다. 뭉툭하던 연필 끝이 점점 가늘어지면서 서툴지만 가끔은 삶이 지닌 디테일을 나만의 질감으로 묘사할 수 있었다.

 

글이 매력적인 것은 읽는 사람마다 다른 색채로 해석된다는 점이다. <어머니>라는 부제의 2장에서는 생경한 낱말들이 어찌나 많던지. 서문안, 달비, 철기날개, 관사, 숙고사, 자미사, 법단, 양단, 세루, 스란치마, 은조사, 우장, 장무새, 적산, 측천무후, 모본단, 차부, 마메다쿠시. 인터넷 사전을 찾아가며 음미하다보니 종종 걸음으로 촘촘하게 걸을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 부분은 오히려 <가을>이라는 부제가 달린 3장이다. 주변 생명들에 대한 시를 음미하며 나의 어머니를 자주 떠올렸다.

가난하다고/ 다 인색한 것은 아니다/ 부자라고/ 모두가 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됨됨이에 따라 다르다’(p88, <사람의 됨됨이>) 궁핍하게 살았지만 어머니는 베푸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셨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러운 의미를 지닌 동사로서의 나눔을 알려주신 분이다.

백일장 대회에 나가 <이팝꽃처럼 솔솔>이란 시로 입상을 한 적이 있다. 공양주로 일하시던 어머니께서 절에서 남은 밥을 가져오셔서 도시락을 싸주셨는데 어느 날 그 밥이 삭아버려 버렸던 경험에서 만들어진 시이다. 입상 결과가 발표나자 자랑하듯 이메일로 시를 보내드렸다. 내 시를 보고 우셨다는 당신의 말씀을 듣고 우쭐했다. 으흣~ 드디어 나도 정말 감동적인 시를 쓰게 된 거야 라고. 당신께 내 시는 보다 진한 색채였다는 사실은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의 생생한 하루. 그게 내 기억의 전부였건만,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났던가 보다. 많은 하루들을 모조리 담고 계셨던 당신의 울림은 생각보다 깊었다. ‘육신의 아픔은 감각이지만/ 마음의 상처는/ 삶의 본질과 닿아 있기 때문일까/ 그것을 한이라 하는가’(p106, <>) 그 시절들이 어쩌면 당신께는 한이었던 걸까. 이 시를 읽다보니 불현 듯 이런 생각이 든다.

 

마음에 와 닿는 글의 공통점이 있다.

첫째, 안과 밖의 묘사가 균형을 이룬다. 내면의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면서도 그의 사유는 안으로만 함몰되지 않고 바깥세상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동양화에서 붓으로 그려지는 대상과 여백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며 감흥을 자아내듯이. 세상을 꼬집는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이 통쾌하다. ‘음식이 썩어 나고/ 음식 쓰레기가 연간 수천 억이라지만/ 비닐에 꽁꽁 싸이고 또 땅에 묻히고/ 배고픈 새들 짐승들/ 그림의 떡, 그림의 떡이라/ 아아 풍요로움의 비정함이여’(p113, <까치설>)

둘째, 작가만의 이야기가 있다. 그만의 표현 방식과 그만의 이야기가 담긴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이야기이기에 독자는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대하소설을 쓴 소설가로만 알고 있던 박경리님의 시를 보서 깨닫는다. 당신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가 담겨있구나 하고. 당신과 글과 어머니와 가족과 주변과 사회의 모습을 그려낸 글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색채를 띤다.

 

나는 아직도 나이가 들어간다는 사실이 두렵다. 언제쯤 되어야 늙어가는 것이 편안해지는 경지에 오를까.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p16, <옛날의 그 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말이 계속 마음을 두드린다. 이토록 가뿐해 보이는 문장들이 왜 이리 묵직하게 다가오는지. 소설 <토지>를 집필한 25년의 세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을 지나온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걸까. 희끗해진 머리. 돋보기를 쓰고 펜을 움켜쥔 채 책 표지 안쪽에 무언가를 적고 있는 노작가의 모습이 담긴 사진(p140)이 오랜 잔상으로 남는다.

 

그것 다 바느질이 아니었던가/ 개미 쳇바퀴 돌 듯/ 한 땀 한 땀 기워 나간 흔적들이/ 글줄로 남은 게 아니었을까’(p30, <바느질>) 십여 년이 지난 오늘 노작가의 생애가 기록된 약력을 담담한 마음으로 따라가며 글 쓰는 삶에 대해 생각한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수제 퀼트. 글을 쓴다는 건 이런 의미일까. 자신만의 글 안에 시간도 꿰고 마음도 꿰며 삶이라는 작품을 완성해가는 과정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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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의 무게 휴먼어린이 고학년 문고 1
이현 지음, 오윤화 그림 / 휴먼어린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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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놓아줘요. 보낼 때는 보내줘야지. 출근하자마자 화분에 물부터 주는 나를 보고 짝꿍 샘이 말씀하신다. ~ 아니에요. 저 밑바닥에서는 아직 살아있을 지도 몰라요.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마음으로 물을 준지 일주일째다. 내일 아침이라도 연두 빛 이파리가 고개를 내밀 것만 같단 말이다.

처음부터 물을 준 것은 아니다. 스승의 날 즈음이었나. 누군가 졸업한 제자에게서 받으신 듯 보이는 화분이 교무실 창가에 놓였다. 쪽파처럼 생긴 초록 잎이 무성하게 심어져있었다. 내가 받은 것도 아니기에 무관심했다. 얼마간을 무심코 지나쳤다.

그 문구가 눈에 띈 것은 우연이었다. 기분이 우울하던 6월의 어느 날, 싱크대에서 손을 씻고 고개를 돌리는데 화분이 보인다. 하얀 플라스틱 바탕에 박힌 검은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I LOVE YOU SO MUCH! 화분 안에 담긴 식물이 격하게 나를 사랑한다고 말을 거는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나온다. 조금 옅어진 이파리 사이로 갈색 잎이 삐죽삐죽 섞여있는 것을 보는 순간 방치되고 있음을 알았다. 흠뻑 젖을 만큼 물을 주었다. NOBBY. 화분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보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너에게 이름을 지어주겠어! ~ 이제부터 너는 노비야!

 

악당이라는 이름을 붙인 유기견과 아이와의 이야기. 요즘 동화는 왜 이리 뭉클한 작품들이 많은지. 웬만한 소설을 읽을 때보다 더 가슴이 먹먹해진다. ‘!(p161)’ 한 글자가 나오는 순간, 책 속에서 총알처럼 불쑥 튀어나온 글자가 눈가를 스치기라도 한 듯 눈물이 핑 돈다. 주인공 수용이가 쓰러진 악당을 품에 안는 장면이 이어지자 제목이 지닌 묵직한 존재감이 다가온다. 악당의 무게. ‘무게가 이런 의미였구나. 현실에서도 이런 저런 이유로 스러져가는 생명들을 생각하니 책을 읽기 전에는 평범하게 지나치던 제목이 뜨거워진다.

언젠가 라디오 방송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작은 새 한 마리의 무게만큼 자신의 살점을 떼어주기로 약속한 이. 아무리 살을 도려내어 올려놓아도 저울은 새가 놓인 쪽으로만 기운다. 저울의 균형은 그가 저울 위에 올라서는 순간 비로소 맞는다. 생명의 가치는 동일하다는 깨달음을 주는 일화이다. ‘사람은 이유 없이 개를 괴롭혀도 되고, 개는 사람한테 절대 대들면 안 되는 거야?(p99)’ 맑은 시선으로 생명을 바라보는 아이의 항변은 동화 밖에서 행해지는 어른들의 부당함을 향한 고귀한 외침이다.

 

동물을 키워본 경험이 거의 없다. 아이가 어렸을 때 유치원 숙제로 같이 키우던 누에와 달팽이가 경험의 전부이다. 며칠 지나지 않아 죽어버린 생명들을 버리며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나쁜 사람들이 개를 버리는 게 아니야. 개를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나쁜 짓을 하게 되는 거지.(p79)’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라.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말이다.

타고난 성향으로 보았을 때 내게는 동물보다는 식물이 더 맞는다. 선인장도 말려 죽이는 경이로운 손의 소유자였지만 재작년 여름 이후로 달라진다. 나의 손에서 식물이 살아나기 시작한 거다. 방학식을 하던 날, 교무실 창가에 있던 화분을 가져왔다. 그즈음 나는 교무실에서 매일 화분에 물을 주며 점점 피어나는 분홍색 꽃을 보는 재미에 빠져있었다. 방학이 가까워지자 혹시나 말라죽을까 염려되었다. 집으로 가져왔다.

앞 베란다에 놓고 열심히 물을 주었다. 그러다 무지하게 더웠던 며칠, 바쁘게 왔다 갔다 하다가 화분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만다. 방치된 화분은 태양의 열기에 타버린 듯 갈색으로 변해있었다. 갈색 잎을 하나하나 떼어냈다. 아래쪽 구석에 코딱지만 한 초록 잎 두어 장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얘네들이라도 살려보자. 미안한 마음으로 정성껏 물을 주었다. 며칠이 지난 뒤 나는 질긴 생명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p178)’ 어린이 독서 모임을 진행하며 아이들에게 물었다. 사람 이외의 존재를 생각나는 대로 열 가지만 말해보라고. 동물과 식물 이름이 술술 쏟아져 나온다. 열 가지 정도 이름대기는 까짓것 일도 아니다. 이런 생명들이 먹이사슬로 얽히면서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거야. 우린 모두 한 때는 살아있던 것들을 먹으며 살아가지. 오늘 아침과 점심 때 먹었던 음식들을 생각해봐. 어느 것 하나 생명이 아닌 것이 없지 않니? ~ 빵은요? 그건 살아있던 밀로 만들지. 밥은요? 살아있던 쌀로 만들잖아. ? 정말 그러네요.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생명을 먹을 수밖에 없지만 그들에게 늘 고마움을 잊지 말아야 해. 순진한 눈망울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주방 창가에는 4개의 작은 화분이 있다. 가끔 식물들이 살아 숨 쉬는 모습을 상상한다. 이 공간에 가족 이외에 숨을 쉬는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생명력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모든 생명이 타고나는 힘일까, 햇살과 바람과 흙과 물이 지닌 신비로운 기운이 합쳐져 생명을 지켜내는 걸까. 2년 전의 그 화분은 눈곱만 한 연두 잎이 서서히 영역을 넓혀가더니 되살아났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지금까지 주방 창가에서 풍성하게 잘 크고 있다. 새끼손톱만한 꽃이 번갈아 피어나며 여섯 장의 꽃잎을 흔든다.

정성껏 물을 주며 시든 잎을 떼어내건만 어쩐지 노비는 점점 생기를 잃어간다. 급기야 몸 전체가 연한 황토색으로 변했다. 가위로 이발을 해주었다. 아랫부분까지 메말라있었다. 그렇게 해놓으니까 봉분 같애. 그만 포기해요. 이미 죽었어. 물을 주는 나를 보며 짝꿍 샘이 다시 말씀하신다. 일주일만 더 키워 보려고요. 키운다는 표현이 무색하게 정지 화면처럼 미동도 않는 노비를 보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요즘 매일 아침 나의 눈은 현미경이 되어 노비를 구석구석 살핀다. 초록의 흔적을 한 점이라도 볼 수 있을까 숨을 죽이고 관찰한다. 질긴 생명의 힘을 엿본 경험이 노비를 보내지 못하는 마음으로 작용하는 걸까. 노비에게 물을 준 한 달여 넘는 시간이 압축되어 버티고 있는 뿌리 끝에 이슬 방울만한 생명으로 매달려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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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물리학
림태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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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어린이용 약병과도 같다. 아귀가 맞춰지지 않으면 뱅글 뱅글 헛바퀴만 돌 뿐 잘 열리지 않는. 가장 가까우면서 가장 멀리 느껴지는 거리에 이런 모습의 그가 있다. ‘몸이 느껴지지 않아야 건강한 겁니다.(p259)’ 관계에 관한 책을 읽을 때마다 매번 나의 시선은 그를 향한다. 그가 느껴지는 걸 보면 우리의 관계, 아직 건강하지 않은 것이 틀림없다. 몇 번을 망설이다 다시 시도 해보아야지 하며 슬쩍 마개를 돌린다. 다가간 거리만큼의 탄성이 작용하면 되돌아온 공간은 텅 빈 공기로 가득하다. 가끔 두려웠다. 돌리고 돌리다 지쳐 어느 순간 돌리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될까봐.

 

따뜻한 봄 같은 사람이라 좋아. 주변 사람들이 그에 대해 물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스웨터가 따듯한 이유는 털실의 보푸라기들이 틈 사이에 온기를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p46)’ 그렇게 수북하던 털실들이 끈끈한 일상에 묻어 한 올 한 올 빠져나간 걸까. 점점 온기가 그리워졌다. 언제부터였을까. 이 때부터였을까, 아님 그 후였던가. 그 때는 늦지 않았던 걸까. 골조만 남아있는 빈 집의 이미지가 겹쳐질 때면 종종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시작도 기억나지 않는 어긋남을 바라보는 일은 매번 오한이 느껴지는 슬픔이다. 한 때 열기를 뿜어내던 관계의 끄트머리가 이렇게 투명해질 수도 있다니. 이런 생각이 온몸에 열기로 퍼질 때면 매번 마음은 감기를 앓았다.

 

책날개로 펼쳐지는 첫 문장에 시선이 꽂힌다. ‘살아보니 삶의 전부가 관계였다.’ 요즘 자주 떠올리는 생각이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간혹 나를 힘겹게 했던 것은 관계였지만 잠시 몸을 기대 위안을 받은 것 역시 관계였다. 관계의 여집합은 관계가 아닌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관계인 걸까.

관계의 본질을 꿰뚫는 작가다. ‘관계는 빛이 아니라 열에 가깝다.(p115)’ 열이 이동하듯 관계는 계속 변하니까. 일정한 온도가 유지되려면 무언가를 태우는 희생이 필요하듯 좋은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계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니까. 고온에서 저온으로 열이 이동하듯 관계에서도 내가 따뜻한 열기를 유지해야 타인의 체온을 함부로 빼앗는 일이 없(p116)’어지는 것이니.

 

냉정하게 판단해보면 시선을 먼저 돌린 것은 나였다. 그의 무심함을 탓했던 많은 날들은 나를 합리화하기 위한 핑계였다. 내가 먼저 등을 보였다.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던 것도, 마음을 냉동실에 집어넣어 딱딱하게 얼린 것도 내 자신이었다. 서운함은 켜켜이 쌓여 빙하처럼 단단한 벽이 되어버렸다. 절대로 변할 것 같지 않아.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아. 잘해준대도 내가 싫어. 굳어진 관계를 확신하며 가까운 친구에게 무덤덤하게 말하곤 했다.

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나. 관계에 대한 확신을 내린다는 것은. 며칠 전, 브라스 공연 중 연주되던 캐논을 듣다보니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그가 좋아하던 음악이다. 여러 악기 버전으로 나온 이 곡을 내내 듣던 때도 있었지. 나도 모르는 새 온기가 스며들어 있었나. 얼어붙은 마음의 끄트머리가 살짝 녹아 눈물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함께 음악을 듣던 순간들을 안고 흘러나왔다. ‘캐논이 담고 있던 봄날의 시간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라는 낱말은 관계의 사전에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건지도 몰랐다.

 

변화는 서서히 일어나고 있었다. 고기를 먹을 때 파인애플을 구워서 제일 먼저 내 접시에 올려주었을 때, 출근복도 못 갈아입고 널브러져 잠든 방의 불을 슬며시 꺼주었을 때, 분리수거를 내놓고 티셔츠를 손빨래하고 스스로 밥을 차려먹었을 때부터.

글에 마음을 실어 조금씩 덜어내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조금씩 일어나는 변화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가 변한 건지 내가 변한 건지 둘 다 변한 건지 모르지만 관계의 색채가 변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켜켜이 쌓여 꽉 들어차있던 감정들이 마음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해왔던 걸까.

마음은 잡동사니를 쌓아두는 창고가 아니라 비워두는 무의 공간이다.(p244)’ 빈 공간으로 새로운 공기가 조금씩 스며드는 것 같다. 계속 덜어내려 한다. 이 공간에 온기가 스며들 수 있도록. 관계가 이라면 그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언젠가 나의 온기를 나누어줄 수 있을 정도로.

 

진정한 관계란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미는 힘으로 서로의 확장을 돕는 일이다.(p38)’ 지금까지는 단지 확장을 위해 밀어내는 시기였을 뿐이라 생각하기로 한다. 외로울 때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던 시간만큼 나는 확실히 넓어진 것 같으니까. 그리움의 시간이 길었을 뿐이라고.

첫 장에 실린 능소화의 꽃말처럼 그리움이 가득한 책이었다. 강아지풀을 한 올 한 올 쓸어내리듯 책장을 넘기는 동안 그리움의 꽃가루가 손끝에 묻어나는 듯했다. 관계에 대한 또 다른 책을 만난다면, 아마도 나는 다시 그를 떠올리며 그에 대한 글을 쓸 것이다. 오랫동안 묻어두던 마음이 심장을 할퀴며 쓰라리겠지만 그믐달의 모습으로 있는 관계가 초승달을 지나 보름을 향할 수 있도록 느린 걸음을 내밀어보려고 한다.

 

서로 마음에 난 길이 관계다.(p7)’ 참 멋진 문장인데 눈이 시큰하다. 마음이 맞는다면 서로를 향한 감정들은 고속도로를 달릴 테지만, 어긋난 관계의 길은 뚝 끊어진 낭떠러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본 것 같은 거대한 낭떠러지. 건너편까지의 간극은 아득하고 바닥은 보이지도 않는. 주인공은 눈을 질끈 감고 한 발을 내딛는다. 순간, 신기루처럼 길이 나타난다. 제목도, 주인공의 얼굴도, 그가 여자였는지 남자였는지조차 가물가물하지만 이 장면만은 또렷하다. 공간을 툭 건드린 발바닥이 마법의 봉이라도 된 양 순식간에 이어지던 길. 관계를 향하는 걸음을 생각하며 이 장면을 떠올린다. 아직은 종종 아득해도 한 발씩 내딛다보면 점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리라 믿고 싶다. 그에게로 가는 길, 끊어진 듯 보이는 아득함을 향해 나는 계속 한 걸음을 내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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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가게 - 제13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53
이나영 지음,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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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학교에서의 쉬는 시간 10분은 화장실에 다녀오고 옆 반 교실에서 교과서를 빌리러 갔다 올 수 있는 시간이다. ‘just ten minute~’ 노랫말에 담긴 10분은 이성을 유혹할 수 있는 시간이며, “10분만~” 꿀잠에서 깨어야 하는 아침 시간 10분은 아이가 엄마와 실랑이를 벌이는 시간이다. 나만 쓸 수 있는 10분이라니. 시간 가게를 통해 주인공에게 주어진 10분은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심적 갈등이 시작되는 순간은 이렇게 달콤했다.

 

오늘날 아이들의 모습을 둘러본다. 주인공이 사용했던 10분의 용도를 곱씹어본다.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10분을 사용하는 행동이 온전히 아이 탓일까.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라와 있다는 생각’(p77)을 하며 공장에서 필요한 부품으로 최상의 제품을 찍어내는 것처럼, 나도 공부 잘하는 아이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느낌’(p77)을 받는 아이들, 밤늦게까지 불이 켜진 학원건물을 보며 양계장에 갇혀 있는 닭들’(p78)을 연상하는 아이들, ‘엄마와 선생님의 말을 듣고 있자니 마치 내가 주인의 취향대로 조립되는 DIY가구 같다는 생각’(p107)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안쓰럽다.

주말마다 학원을 오가는 둘째 아이가 떠오른다. 강요를 하지는 않지만 나 역시 아이가 이왕이면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를 바란다. 대학 입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부모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다.

 

문학 작품 속에서의 시간이란 가공되지 않은 지점토와 같다. 만드는 이의 의도에 따라 이토록 다양한 의미를 전해주는 소재가 있을까. 타임리프와 로맨스가 결합된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 수명시계와 삶의 의미가 결합된 드라마 <어바웃 타임>, 타임머신과 SF가 결합된 영화 <백 투 더 퓨처>에 이르기까지. 판타지적 요소가 포함되면서도 현실을 슬그머니 끌어당기는 작품들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 평범해 보이는 시간은 담고 있는 의미에 따라 제각기 특별해진다.

이런 점에서 이나영 작가의 의도는 특별하다. 작품을 통해 시간과 결합된 의미는 두 가지이다. 아이들의 삶을 조명하고,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묻는다. 이 두 가지 요소는 시간과 얽혀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려면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를. ‘분명한 건, 행복이란 내가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말하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해 봐야겠다. 그리고 내 시간을 내가 주인이 되어 써야 할 것이다.’(p197) 작가의 결론에 공감한다.

 

사진처럼 담겨지는 시간이 있다. 멈추고 싶은 마음이 셔터가 되어 찍히는 시간들이다. 심장에 차곡차곡 접혀있다 어느 순간 꺼내어보면 두근거림으로 되살아나는 행복한 기억이다. 10분을 거래한 대가로 주인공이 빼앗기는 기억들을 따라가며, 행복했던 나의 기억을 좇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푸른 염화코발트 종이 같던 심장이 투명한 물방울처럼 다가오는 기억에 닿자마자 불그스름하게 변한다. 우산을 쓰고 나란히 걷던 길에 찍히던 설렘, 나를 향해 조심스레 다가오던 떨림이 재생되는 순간, 행복한 과거의 사진들은 생생한 현재로 타임리프 된다. 시간과 시간이 겹쳐지는 순간, 서로를 향해 마주 선 마음이 맞닿던 순간. 멈추고 싶은 순간들은 언제나 가슴 뛰는 기억이다. 드라이플라워처럼 말라간다는 생각을 간혹 하게 되는 중년의 나는 어느새 20대의 소녀가 된다. 그래, 그렇게 빛나던 순간도 있었지. 오롯이 두 사람만 공유하던 선명한 느낌이 찻잔에 띄운 꽃차의 잎처럼 되살아난다. 행복이 우러나는 향긋한 맛이다.

 

커피숍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 하지를 이틀 지난 하늘에 낮의 온기가 설핏 남아있다. 음력 10, 상현을 지나온 달은 왼쪽을 향해 살짝 부풀어 빛난다. 조금 떨어진 왼편에서 목성이 빛을 낸다. 오른쪽으로 성큼 고개를 돌리니 조금 더 빛나는 금성도 보인다. 가슴이 살짝 뛴다. 이들이 빛나는 단 하나의 이유는 지평선 아래로 지나버린 태양이다. 태양을 중심에 놓고 금성, 지구, , 목성의 커다란 궤도를 그려본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의 시간부터 있었을, 미래의 어느 시간 내가 사라진다 해도 여전히 돌게 될 존재들의 현재를. 일상을 지나오면서 마음에 묻게 되는 서글픔, 슬픔, 외로움, 고민의 부스러기들이 별 것 아닌 듯 여겨진다. 행복한 기억이란 이런 의미일까. 밤하늘에 가끔 나타나서 마음을 토닥여주는 천체들처럼 닿을 수는 없지만 잠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다시 태양과 함께 할 내일의 시간을 힘차게 걸어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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