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4
제인 오스틴 지음, 원영선.전신화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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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계란 한 판을 득템한 지난 주 화요일에는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주룩주룩 비가 내리던 지지난 주 화요일, 퇴근 후 서둘러갔건만 아파트 장터 계란 아주머니는 이미 철수하신 후였다. 절망 후에 얻은 기쁨은 두 배가 되었다.

계란. 이토록 다양한 버전의 음식으로 변모하는 재료가 있을까. 계란프라이, 계란찜, 계란말이, 계란조림, 계란탕에 이르기까지 단품으로도 손색없는 반찬이 되는데다 평범한 라면에 영양가를 더해 레벨 업 시켜줄뿐더러 떡국에서는 화룡점정이 되는, 반찬 계를 드넓게 섭렵하는 존재이다.

삐까! 드디어 계란을 득템하였어!”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엄마를 떨떠름하게 바라보던 고3. 벌써부터 미래가 그려진다는 표정이다. 계란의, 계란에 의한, 계란을 위한 요리. 계란에서 시작해서 계란으로 마무리될 요리의 향연이다.

 

계란 같은 책이다. 제목처럼 설득의, 설득에 의한, 설득을 위한 책이다. 설득의 모든 버전이 총망라되어 있다. 책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은 설득과 연관이 된다. 확고한 가치관을 지녀 설득되지 않는 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이, 그에 의해 설득이 되는 이들이 존재한다. 설득의 소재도 다양하다. 사랑과 결혼의 조건, 남성과 여성의 사고방식의 차이, 문학에 대한 관점, 지위와 외모를 중시하는 삶의 방식 등이 제시되어 서로가 서로를 설득한다. 다른 이의 설득으로 남자와 이별을 한 여자가 팔 년 후에 그와 다시 만나 서로의 진심을 알고 결국 결혼한다는 내용. 표면적으로는 사랑과 결혼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책이다. 작가는 이야기를 펼쳐놓고 독자들에게 묻는다. ! 당신들이 그들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떤 인물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따라오시나요? 등장인물의 대화로 이루어지는 설득의 과정을 통해 설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작가에 의한 설득의 시작이다.

 

지위와 외모 등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월터 경과 엘리자베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을 유지하는 인물이다. 어쩌면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세속적인 조건들을 고수한다. 당신 같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작가는 이 두 명의 캐릭터를 통해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외적인 조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갈등을 유발한다. 오히려 확고한 신념을 가진 이들에게는 기준이 명확하므로 행동이 쉽다. 문제는 어정쩡한 나와 같은 사람이다. 그런 조건들은 삶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혼란을 안겨주며 주춤거리게 하는 요인이 된다.

여주인공 앤에게 어머니이자 친구와 같은 존재가 되는 레이디 러셀조차 재산이 변변치 않은 남주인공 웬트워스와의 이별을 설득한다. ‘모험 보다는 안전이 설득의 무기로 사용된다. 열아홉 살 앤의 입장이었다면 나는 설득이 되었을까. 나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건을 넘어서는 선택을 했을 것 같지는 않다. 누구든 어느 정도는 이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본다.

 

하빌 대령과 앤의 대화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사랑을 대하는 가치관의 차이에 대한 설득이 치열하게 펼쳐진다. 탁구공을 주고받는 듯 대화에서는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증거로 판가름할 수 없는 견해의 차이니까요. 어쩌면 남녀 모두 처음부터 각자의 성에 대해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요.(p310)’ 남성과 여성의 본성과 사회적 장치까지 언급이 되는 대화에서 합의점은 없어 보인다. 대화를 따라가면서 궁금했다. 논쟁에 가까운 이 대화를 작가는 어떻게 마무리를 할까.

이 모든 것, 남자가 자기 삶의 보배인 존재를 위해 견뎌낼 수 있는 모든 일들, 성취해낼 수 있는 모든 위업을 당신에게 전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전 다만 심장을 가진 남자들만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p311)’, ‘당신이, 그리고 당신 같은 남자들이 느끼는 모든 것을 온당하게 대접할 수 있길 바랍니다. (중략) 제가 여자들을 위해 주장하는 특권이란 (중략) 더 이상 대상이 존재하지 않아도, 희망이 사라져버린 뒤에도, 여자는 남자보다 더 오래 사랑한다는 것입니다.(p311~312)’ 결국 대화는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하며 서로의 입장을 말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진정한 토론의 정석이 아닐까. 참 현명한 작가이구나 싶었다.

 

설득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적어도 시간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공간적인 상황이 달라져 웬트워스가 다시 앤의 삶 속에 배치되자 예전의 감정이 다시 새록새록 살아나는 상황으로 보면. 시간과 공간. 나는 어느 것에 의지하며 삶을 견디고 있는 걸까. 이건 인간 본성의 문제인 걸까.

앤의 심리를 따라가면서 인간의 본성을 생각했다.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은 굳은 심지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p119)’ 앤이야말로 굳은 심지를 가진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끄트머리에서는 앤을 지칭하며 선한 영혼(p312)’이란 말이 등장한다. ‘흔쾌히 악에서 선으로 돌아서서 자신을 잊게 해줄 일거리를 찾는 힘은 오로지 천성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하늘이 내린 최고의 선물이었다.(p205)’ 앤의 친구 스미스 부인을 묘사한 문장이지만, 앤에게도 적용되는 문장이라고.

서로의 진심을 확실하게 알게 되는 주인공들의 대화에서는 설득에 관한 중요한 메시지가 담긴다. ‘그분보다 더 큰 적이 한 명 있었던 게 아닐까 하구요. 바로 저 자신이지요.(p327)’ 자기검열이란 말이 떠오른다. 어찌 보면 스스로를 설득하지 못하고 물러나는 과정 아닌가. 삶은 수많은 설득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설득을 당하거나 설득을 하거나. 이런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설득하는 과정일 것이다.

 

소설의 매력 중 하나는 관점이 다른 독자들에게 각각 다른 색깔의 느낌표를 찍어준다는 점이다. 또한 같은 사람이라도 그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스토리 자체가 흥미로울 수도 있지만 이 책의 경우, 품고 있는 메시지에 방점이 찍히는 부류이다.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는 분명 있겠지만, 설득에 대한 다양한 버전 중 무엇을 중점적으로 요리할 것인가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장면은 사랑도, 결혼이나 삶, 인간의 본성에 대한 것도 아니었다. 벤윅 대령과 앤이 주고받은 대화의 시간들이 나는 가장 좋았다. 시에 대해, 시의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는 현 시대에 대해, 자신이 좋아하는 시의 구절에 대해, 시를 음미하는 방식에 대해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은 부럽기까지 했다. 누군가와 시나 책에 대한 대화를 하고 싶었다. 어떤 시가 좋았다든지 이 책의 어떤 부분이 좋았다든지 나는 이 구절에서 이런 느낌을 받았다든지. 누군가와 공유하는 시간들이 이런 대화들로 채워진다면 얼마나 벅찬 기분으로 행복할까.

 

음악을 들으면서 이 글을 쓴다. ‘소음에도 사람마다 나름의 취향이 있게 마련이다. 소리는 크기보다도 종류에 따라 아무렇지 않게도 들리고 아주 거슬리게도 들리니 말이다.(p178)’ 피아노 전주가 유난히 좋은 노래가 흘러나온다. 글쓰기를 멈추고 잠시 귀를 기울인다. 리듬만으로 마음이 움직이는 노래가 있다. 음의 높낮이는 확실히 심장 박동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글이야말로 대단한 예술이다. 리듬의 입장에서 글은 음의 높낮이가 없는 밋밋한 흑백의 컬러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한 가지 음을 지닌 글에 리듬감을 주는 것은 온전히 독자의 몫일 터이다. 글이란, 작가와 독자가 함께 만드는 음악이다. 독자가 부여하는 리듬에 따라 글은 매번 다른 음으로 다가올 것이니. 이런 면에서 모든 작가는 뛰어난 설득가인지도 모른다. 글을 통해 독자의 심장을 설득하는. 글의 힘은 그 시너지의 합력으로 정해지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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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9-05-07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리뷰올렸습니다. 나비종님과 달리 전 많이 힘든 작품이었네요^^;
확실히 같은 책인데 느낀바가 달라서 신기하고 그걸 공유할 수 있다는게 너무 좋습니다ㅎㅎ

나비종 2019-05-07 14:10   좋아요 1 | URL
미투입니다.ㅎㅎ 하얀 쌀밥만 꾸역꾸역 먹는 기분이었달까. 드.럽.게. 재미없었습니다. 은근과 끈기의 민족의 후손 아니냐며 제 자신을 설득하면서 읽었습니다. 여기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겠느냐며 나름 책을 뒤적이며 애써 분석한 결과물이랍니다. 이토록 기특한 캐릭터가 어디 있냐며 스스로 쓰담쓰담했다는ㅋㅋ
답답했던 심정을 공유할 수 있어서 저도 너무 좋습니다.^^
 
사물의 사생활 - 나를 치유하는 일상의 99가지 사물
이민우 글, 정세영 사진 / 이숲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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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 호흡을 멈추고 셔터를 눌렀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발목보다 낮은 키로 가만가만 흔들리던 하얀 봄이 렌즈 안으로 쏙 들어왔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봄이 아름다워지기 시작한 것은. 디지털카메라의 붐이 일었을 때, 접사 기능으로 눈동자 한가득 작은 꽃들을 담아가면서 꽃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유달리 작은 꽃이 많은 계절이다. 무심코 지나칠 때에는 몰랐던 생명들이다. 작은 봄꽃들은 미세한 바람에도 흔들렸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나지막하게 바람의 존재감을 알려준 다음, 향기를 잘게 쪼개서 바람에 흘려보냈다. 봄을 떠올릴 때 간질거리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꽃 때문일 거다. 그런 꽃을 품은 봄을 덩달아 사랑하게 되었다.

사람은 의미를 품은 사물을 사랑하게 되는 걸까. 의미로 다가오는 대상은 다양하다. 생명체에서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딱히 정해진 기준은 없어 보인다. 동화였던어린왕자가 심오한 소설로 인식되었을 때, 소설 속 왕자에게 의미 있는 대상은 장미와 여우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막도, 밀밭도, 석양도, 별까지도. 주인공을 둘러싼 수많은 사물들이 의미를 지닌 채 빛을 냈다.

 

사물의 사생활99가지 사물의 의미를 카피라이터인 작가 고유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해석한 책이다. 카피라이터가 쓴 글을 좋아한다. 직업의 특성상 그들은 대체적으로 본질을 꿰뚫는 예리한 시각을 지닌다. 그들의 글은 시와 흡사해 보일 때가 많다. 단 몇 줄은 탱탱 볼인 양 상큼하다.

현미경으로 대상을 관찰하는 느낌으로 따라가 보니 나를 치유하는 일상의 99가지 사물이라는 부제처럼 마음이 치유되는 듯했다. 여행을 가서 새로운 풍경이 드넓게 펼쳐졌을 때 느껴지는 후련함과 비슷했다. 그런 느낌이 가뿐한 바람으로 불어와 마음에 쌓여있던 먼지를 훌훌 털어냈다. 마음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졌다.

같이 실린 사진도 글 못지않은 존재감을 발한다. 전달하는 메시지가 많다.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렌즈의 초점이 오롯이 대상에만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사물이 주인공인 글이니 당연하지만 사진을 넘길수록 사물을 올곧게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강하게 감지된다. 대상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담대함과 가까이에서 본질을 담아내려는 사진들이 진한 느낌표로 찍힌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선뜻 내미는 손이 그리울 때가 있다. 외로움에 지쳐가다 그냥이란 포장지를 이용한다. 위로받고 싶을 때 가끔 카카오 톡을 보낸다. 도로 삼키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농담 몇 마디에 기대어서라도 시린 가슴을 덮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냥. 두 글자를 보낸다. ‘사랑은 의미가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한 경이로움이다. “, 날 사랑해?” “그냥.”(p154)’ 불현 듯 누군가에게 그냥이 되고 싶어진다.

네가 오전이면 시계도 오전이고, 네가 오후면 시계도 오후다.(<시계>, p123)’ 많은 의미를 품은 문장이다. 나의 생각대로 의미가 생긴다는 말이다. 무서운 말이기도 하다. 보아도 보이지 않는 사물이 생길 수 있다는 말 아닌가. 그런 사물은 의미를 잃고 투명해진다. ‘사람의 눈은 자신의 기분과 심리적 상태, 처한 상황, 날씨에 따라 오목렌즈와 볼록렌즈로 대상을 부분적으로 확대하고 축소한다.(<안경>, p189)’ 관점이 비슷하면 사물을 비슷한 크기로 바라볼 터이다. 그가 누구든 오랜 동안 나란히 걸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따뜻한 행운이 될까.

무인도에 가져간다고 가정하니 내 삶의 세 가지 사물은 무엇일까?(<프리스비>, p50)’에 대한 답변이 떠오른다. 글을 쓸 수 있는 종이, 파란색 제트스트림 1.0 볼펜, . 책은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어린왕자>와 같은 책이면 적당하겠다. 욕심을 조금 더 부린다면 음악이 담긴 플레이어 정도를 추가해도 좋겠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삶을 돌아보고, 시선을 가로막는 편견의 포장지를 벗겨냈다. 사람을 생각하고, 세상을 둘러보고 시선 끝에 놓인 나를 바라보았다. 폐 속에 신선한 공기가 가득 들어차 삶이 확장되는 느낌이 들었다. 관점의 기발함에 감탄하면서 글을 읽었지만 앵무새처럼 작가가 부여한 의미를 따라가고 싶지는 않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의 의미를 찾아야 하니까. 우리는 사실 제각기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저마다 다른 의미로 축소되고 확대되어 만들어진 세상 안에서. 객관적으로는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을 바탕으로 지문처럼 다른 세상을 살아간다고 상상하니 기분이 묘하다.

왜 하필 99가지의 사물을 정했을까. 그 이상도 가능할 것이고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100으로 마무리할 수도 있었을 텐데. 가만히 생각하다 퍼즐의 마지막 조각인 듯 끼워 넣을 수 있는 대상을 떠올린다. 바로 나! 사물이라 하기엔 억지스럽지만 굳이 하나를 남겨놓은 것은 끝으로 나를 바라보라는 의미가 아닐까. ‘나는 나에게, 타인에게, 세상에게, 신에게 무슨 사물일까.(p7)’ 존재론적 질문 앞에서 되묻는다. 나는 나에게 무슨 사물일까. 아직 당당하게 외칠만한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의미 없는 사물이 되고 싶지는 않다. 세상을 품고, 세상을 품은 나를 품고 싶어서 같은 질문을 계속 떠올리며 스스로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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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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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 하이드레이트. 낮은 온도와 높은 압력에서 메테인, 이산화 탄소, 염소 기체 등이 물 분자 사이의 빈 공간을 채우면서 만들어지는 물질이다. 얼음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불을 붙이면 메테인이 타기 때문에 불타는 얼음이라 불린다.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이 물질을 떠올렸다. 이야기는 뜨거우면서도 담담하고 냉철했다. 헝클어진 실타래를 닮은 어머니와의 관계를 조금씩 풀어나가는 과정이 심장으로 흘러들면서 계속 불이 붙는 듯 화끈거렸다. 마지막 책장을 덮자 뭉클한 실 뭉치 하나가 심장 한가운데로 툭 떨어졌다.

작가는 자문한다. ‘이 책도 눈물일까.(p371)’ 웃음이 담긴 책을 높이 평가하는 평소의 관점으로 판단해도 나의 답은 Yes!이다. 결코 칙칙하거나 암울하지 않은 눈물이다.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맑음을 품은,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눈물이랄까. 나의 느낌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한 것뿐인 장금에 빙의한 양, 군더더기를 붙일 필요 없이 그저 좋았다.

 

책속의 이야기는 어머니의 집에 있던 살구를 딴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린 시절의 작가에게 상처를 준, 세월이 흘러서는 치매에 걸려 그것조차 기억하지 못하던 그녀의 어머니는 아픈 이야기가 되는 대상이다. 작가는 그런 당신을 가깝고도 먼 거리에서 마지막까지 겪어내는 과정을 덤덤하게 그린다. ‘“멀고도 가까운 곳에서그건 물리적인 거리와 정신적인 거리를 함께 가늠하는 방법이었다. (중략) 우리는 침대 옆에 함께 누운 사람과 수천 마일 떨어져 있을 수도 있고, 세상 반대편에 있는 낯선 이들의 삶에 깊이 마음을 둘 수도 있다.(p160)’ 물리적인 거리와 정신적인 거리가 일치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많은 경우 두 종류의 거리는 일치하지 않는 듯하다. 주변 사람들을 하나 둘 떠올려본다. 물리적인 거리가 가깝지만 정신적인 거리가 먼 경우는 아픔, 물리적인 거리는 멀지만 정신적인 거리가 가까운 경우는 위안 정도 될까.

거리를 두고 보면 어떤 법칙이나 관련성을 보게 되고, 대상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p251)’ 작가는 어머니에 대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어머니라는 존재를 전체적으로 본다. 여기에 작가에 대한 놀라움이 있다. 부모와 자식사이, 그토록 가까운 관계에서 거리를 유지했다는 점이다. 변변한 저항조차 해보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자석으로 끌려들어가는 철가루의 입장이었을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거리감을 유지한 이성이, 더군다나 그것이 뾰족한 증오나 비뚤어진 저항으로 변모하지 않았다는 점이 존경스럽다.

 

버지니아 울프가 했다는 말에 힘을 실어주는 책이다. ‘무엇이든 말로 바꾸어 놓았을 때 그것은 온전한 것이 되었다. (중략) 여기서 온전함이란 그것이 나를 다치게 할 힘을 잃었음을 의미한다.(p350)’라는. 리베카 솔닛은 울프의 문장을 그대로 재현해낸다. 어머니를 이야기 안에 배치하고 글로 새김으로써 자신을 다치게 할 힘을 잃어버린 대상으로 봉인한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그렇게 할 수 있게 만들었을까. ‘감정이입이란 말에서 그 원동력을 찾는다. ‘감정이입이란 자신의 테두리 밖으로 살짝 나와서 여행하는 일, 자신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것을 의미한다.(p286)’ 상황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한 작가는, 마냥 울거나 외면하지 않고 용기 있게 어머니를 향해 걸어들어가 자신의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나는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주목한다. 넘어지고 상처가 나서 피를 흘리다 굳어지기까지 감당했을 가시 같은 아픔을 상상한다. 피부가 따끔거린다.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나면 찡한 느낌도 함께 오는가.

 

<살구>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살구>로 매듭을 짓는다. 13가지의 소주제가 7번째 이야기인 <매듭>을 중심으로 대칭을 이룬다. 가운데 7에서 중성을 나타내는 pH가 생각난다. 적정 농도의 산과 염기가 어우러져 중성의 염이 만들어지듯 대칭을 이루는 주제들이 조화로운 쌍을 이룬다. 물질과 다른 점은 이들의 쌍이 동일한 제목으로 펼쳐진다는 점이다. 같은 제목 아래의 다른 이야기들이 독특하다.

각 장의 제목이 실린 사진 역시 의미심장하다. 1장의 갓 딴 <살구> 사진이 13장에서는 <살구> 청이 담긴 병으로 바뀐 것도 하나의 메시지가 된다. 살구를 따고 그냥 오래 두면 썩는다. 살구가 무르익어 버릴 것 없는 쓰임새로 작용하도록 만드는 것은 살구를 앞에 둔 이의 몫이다. 이를테면 오래 두고 먹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수도 있는 살구 청으로 만드는 것 같은 일 말이다. 2장에 나오는 인공의 <거울>12장에서 거대한 <거울>이 되는 강물이 된다. 3장에서 <얼음>은 빙산의 새하얀 앞면을, 11장은 빛을 받는 이면의 <얼음>을 보여준다. 4장은 함께 가는 새들의 <비행>, 10장은 홀로 기구에 떠있는 <비행>을 보여준다. 5장의 <>은 기포 안에 갇힌 모습을, 9장은 그 <>을 뱉어내는 물속의 인간을 보여준다. 유일하게 차이가 나는 제목은 6장과 8장인데, 매듭을 중심으로 <감다><풀다>가 배치되어 절묘한 대구를 이룬다.

나방이 잠든 새의 눈물을 마신다.(p31)’라는 문장으로 시작되어 각 장의 말미에 간지처럼 끼워진 회색 바탕의 이야기는 별도로 찾아 읽어도 독립된 하나의 이야기로 기능한다.

글의 구성과 수록된 사진이 이야기를 극대화하는데 한 몫을 한다. 연극에 비한다면 무대장치와 소품까지 완벽한 작품이랄까.

 

넌 글 친구 있어서 좋겠다.” 며칠 전, 친구가 보낸 메시지에 글이 친구가 되지.” 웃으며 답을 했다. ‘작가가 홀로 들어가 자신이 마주친 미지의 영역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 책이라는 신기한 삶이다.(p85-86)’ 당연하게 여겨왔지만 의미를 곱씹어보면 새삼스럽다. 글을 쓰는 순간, 작가는 고독안에 자리한다. 글을 마주하는 독자 역시 책을 읽는 순간은 고독안에 있다. 고독과 고독이 만나는 시너지란! 혼자이면서 혼자가 아닌 느낌이다. ‘글쓰기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침묵으로 말을 걸고, 그 이야기는 고독한 독서를 통해 목소리를 되찾고 울려 퍼진다.(p100)’ 그래서 너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거야.(p101)’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누가 당신의 눈물을 마시는 걸까. 누가 당신의 날개를 가지고, 누가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걸까.(p371)’ 아직도 불붙은 얼음이 심장 안에서 타고 있는 듯하다. 여운이 오래가는 책이다. 나의 눈물을 마실 누군가가 나타날 수 있을까.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심장이 뛸 수 있을까. 나는, 뜨거운 심장과 냉철한 이성으로 내 심장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꺼내어서 이 공간에 새길 수 있을까.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p211)’라는 질문이 가시처럼 나를 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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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9-05-06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종님, 안녕하셨어요. 여전히 멋진 리뷰를 쓰고 계시네요! 이 리뷰도 마침 어머니에 관한 것이네요. 어머님 수술에 관해 보고를 드리러 왔어요. 수술은 잘 됐고요, 다만 소화기관을 많이 잘라내서서 ㅜㅜ 식사가 조금 힘드시긴 한가봐요. 다행히 췌장이 일부 살아남아서 인슐린을 따로 맞을 필요는 없답니다.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지요. 어머니가 아버님 당뇨 땜시 인슐린에 학을 떼셨거든요. 근데 안그래도 된다니 너무 좋지요. 항암은 해야 하지만, 잘 이겨내실 걸로 믿습니다. 어머니 의지도 있으셨고 수술진도 좋은 분들이었지만, 나비종님의 멋진 시가 곁들여진 응원도 큰 도움이 됐어요 감사드립니다

나비종 2019-05-06 20:11   좋아요 0 | URL
멋진 리뷰라 해주셔서 기분이 좋습니다. 특히 ‘여전히‘에 글자 크기 256의 의미를 부여하며 히죽거리며 웃고 있습니다.^^;;
마태우스님의 소식이 궁금했습니다. 어머님 수술이 잘 되었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친정 부모님께서 두 분 다 각각 다른 부위의 암이셨는데, 지금은 잘 이겨내시고 지내십니다. 특히 어머니는 한쪽 유방을 도려내셨거든요. 처음에는 많이 불편하셨던 모양인데 불편한 대로 적응을 하시더군요. 그나마 다행인 점을 찾아가며, 소소한 행복을 발견해내는 인간이란 존재의 의지는 매번 물컹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제 시가 마태우스님의 마음에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몇 줄의 문장이 무슨 힘이 될까 싶다가도 다만 조금의 응원이라도 되고 싶은 욕심도 있었거든요.^^

마태우스 2019-05-06 21:01   좋아요 0 | URL
어머나 두분이 다 암이셨군요. 가슴은 여성에게 의미가 커서 어머니의 상실감이 크셨겠어요 맞아요 인간이란 적응의 존재지요. 어려운 일이 있어도 잘 이겨낼 수 있는 건 그 덕분인가봐요. 하지만 혼자서 이겨내기 어려울 때도 있는 법이라, 나비종님같은 좋은 친구가 필요하죠. 이번에 정말 감사했습니다

나비종 2019-05-06 22:45   좋아요 0 | URL
오히려 당사자이셨던 당신은 무심하게 말씀하시더군요. 어깨에 가방을 멜 때 균형이 안 맞아 기울어지는 것 빼고는 그런대로 괜찮으시다구요. 당시, 인공으로 넣는 방법에 대해 논의가 되었었는데 이 나이에 뭐 쓸데없는 데 돈 쓰냐며 사양하셨더랬죠. 종종 그 때를 생각한답니다. 정말 괜찮으셨던 걸까, 나도 그 나이에 그런 상황이라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하구요. 저는 세상에서 어머니를 제일 존경하거든요.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나이들수록 알게 되더라구요. 당신의 치명적인 매력을요.ㅎㅎ
좋은 친구라 표현해주셔서 기분이 업그레이드되었답니다. 음, 그럼, 좋은 친구가 된 기념으로 한 가지 부탁 좀 들어주실래요? 꽤 오래 전에 마태우스님께 친구 신청을 했는데, 계속 수.락.을. 안.해.주.셔.서 ‘나, 까인 거임?‘하며 살짝 상처받고 있었거든요.^^;;;
 
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4시간 가까이 한 곳에 앉아 책 한 권을 읽었다. 몸은 한 곳에 멈춰있었건만,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마음이 묵직하게 일렁였다. 작가가 초반에 언급한 말이 떠올랐다. 보이는 장면과 경험하는 느낌과의 차이, 이건 분명 멀미였다. 차멀미와는 달리 몸과 마음의 위치가 바뀌었을 뿐.

혼자 여행을 떠나고 싶어.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다. 11일의 계획에 야심차게 들어갔다가 1231일이 되면 어김없이 실패로 끝나곤 했던 혼자만의 여행’ . 몇 년 동안 포기하지도 않고 패턴처럼 반복되다보니 차츰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 여행을 간절히 바라고 있기는 한 걸까. 매번 실패하면서도 잊은 듯이 매번 바라는 이유가 정말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는, 의식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자꾸 나를 끌고 가는 걸까.

알고 싶었다. 다른 사람의 이유는 뭘까. 동네책방에서 진행된 <심야책방>에 신청을 해서 편 김에 끝까지읽고 싶은 책으로 여행의 이유를 선택한 것은 이런 이유였다. 실은 그 이유를 거울삼아 내 이유를 보고 싶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했다.

 

소소한 사은품이라며 주인장이 동네책방 에디션으로 나온 이 책의 표지와 같은 컬러풀한 엽서 네 장을 건넨다. 빨강, 파랑, 노랑, 검정빛. 엽서를 써본 지가 언제였더라. 오랜만에 바라보는 POSTCARD의 여백에 시선이 머문다. 여행을 떠나 낯선 장소에서 엽서를 적어 내려가는 상상을 한다. 엽서, 여행을 다니는 종이다. 그것처럼 가볍게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문득 설레었다.

낯선 사람들이 배치된 공간에서 열 명 남짓한 이들이 각자 자신의 이유로 선택한 책을 소리 없이 읽어 내려갔다. 그들이 책장을 넘기는 소리를 배경음악처럼 들으며 여행에 관한 책을 읽는 나는, 낯선 여행을 하고 있는 듯 착각이 들었다. ‘혼자같이가 공존하는 묘한 시간이 여행이 건네주는 그것과 비슷할 것 같았다. 한 마디 대화도 없었지만 책을 향해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여행의 동반자인 것만 같아 마음이 내내 따뜻했다.

 

노아 루크먼이 했다는 말, ‘프로그램에 대한 정의가 매우 신선했다. ‘가지고 있는지조차 모르지만, 인물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일종의 신념’(p58) 이라는. 내게도 여행을 향한 프로그램이 있기에 이리도 자주 여행을 떠올리고 갈망하는 걸까.

오래 살아온 집에는 상처가 있다.(p64)’는 문장에 반해버렸다. 무방비 상태로 순식간에 공격을 받은 듯 심장이 철렁했다. 이 짧은 문장이 의미하는 깊고 날카로운 의미에 베일 것 같아서, 그 느낌이 너무 선명하게 다가와서 홀린 듯 문장을 씹고 또 씹었다.

가끔은 달아나는 것도 필요하다.(p67)’ 는 문장 앞에서는 뭉클했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다른 이의 문장으로 보는 말은 스스로를 향하는 말과는 달랐다. 많은 위안을 받았다. 적어도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었구나. 가끔은 모든 것을 놓고 홀연히 떠나는 것도 괜찮다며 토닥이는 듯했다.

9편의 소제목이 담긴 그림은 여행과 묘하게 어울렸다. 테두리만 있는 단순한 도형에 불과한 그것이 여행과 관련된 상상력을 자극했다. 비행기이거나 배이거나 혹은 기차의 창문과 비슷할 때도 있었고, 도로나 어떤 장소를 가리키는 이정표 같기도 했다.

뇌는 한 번 경험한 것은 그 어떤 것도 잊지 않는다고 한다.(p71)’는 문장 앞에서 나의 경험들을 생각했다. 땅속 깊이 고여 있는 마그마처럼 어딘가에 기쁨이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에 다행스럽다가도, 슬픔이나 아픔도 어느 구석인가에는 남아있을 거라 생각하자 심장이 따끔거리기도 했다.

 

여행을 망설이며 자주 들썩이다 멈추곤 했던 나에게 적절한 책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만의 여행을 향한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내 마음과 공명하는 문장들을 천천히 들여다보면 되는 것이었다. ‘그토록 길고 고통스러웠던 여행의 목적은 고작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기 위한 것이었다.(p132)’, ‘여행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p189~180)’ 여기까지 읽고 알게 되었다. 나는, ‘노바디로 떠나서, 스스로에게 썸바디가 되고 싶은 거라고. 그토록 여행을 떠나고 싶던 이유는 내 자신을 찾고 싶은 것이었다. 자기만의 이유라 일컬어지는, 그건 자유를 의미하기도 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실패조차 재미로, 삶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은 용기가 생긴다. 내내 뭉클한 마음으로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나의 여행지수는 99의 물이 될 때까지 계속 온도를 높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100의 수증기로 날아가지 못하던 1의 에너지를 어쩌면 이 책이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엽서처럼 훌훌 떠나서 누군가에게 엽서를 보낼 수도 있을 것만 같은 마음이 드는 이유는 아마도 그래서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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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아마도 - 김연수 여행 산문집
김연수 지음 / 컬처그라퍼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중력과도 같은 것이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결국 땅으로 돌아오는 발바닥처럼. ‘외로움이란 매순간 이렇게 나를 잡아당겼다. 순식간에 푹 꺼지는 싱크 홀처럼 언젠가, 아마도,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딘가로 침잠해 들어가지 않을까. 인간은 원래 고독한 거야. 많은 철학자와 작가들의 잠언과도 같은 말도 별반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내 것이 되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바라볼 때와는 확연히 다르니까. 거리가 확보된 관찰은 시각적인 효과만을, 조금 더 가까워진다면 후각적인, 손을 뻗는다면 외피의 감촉만을 느낄 뿐이다. 옷을 직접 입는 것은 내피를 온몸으로 감각하는 일이다. 촉각은 이런 면에서 마음으로 가장 빠르게 스며든다. ‘외로움이 감각되는 자극의 일종이라면 아마 촉각으로 감지되는 것이리라. 적당한 슬픔이 고인 축축함과 공허함으로 바싹 말라버린 푸석거림과 스스로의 체온만으로 데워진 몸과 옷의 미세한 간극을 선명하게 느끼는.

 

수많은 도시를 여행하면서 낯선 풍경의 공기를 전하는 여행 산문집이다. 작가의 발길을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으로 남는 감정은 외로움이다. ‘여행이란 본디 외로워지는 일이니까.(p225)’ 글에서 채도가 다른 작가의 외로움이 느껴진다.

언젠가는 혼자 여행을 하고 말거야. 막연히 꿈꾸곤 했다. 여행의 결론이 외로워지는 거라면, 지금도 근근이 버거운 외로움을 걸어가는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자 비 내리는 바닥에 흘러내린 기름을 보듯 어지러워졌다. 약간의 거부감이 들어앉아 그의 문장들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마음이 계속 겉돌았다.

 

내 외로움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고 있었다. 몰랐던 것은 그것을 안고 디뎌야할 발걸음의 방향이었다.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가운 물체를 손에 올려놓고 어찌해야 할지 방황하는 과정이랄까. 마지막 부분에서 따뜻한 빵과 같은 온기를 주는 답을 찾았다. <사진으로 다 전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란 제목의 글에서였다. ‘포토샵이 사진의 노출을 보정하듯 기억은 과거에 대한 판단을 보정한다. 좋았던 시절은 더 또렷하게, 나빴던 시절은 더 흐릿하게 혹은 그 반대로. 그제야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삶을 바라보느냐, 더 나아가서 어떻게 말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p235)’

 

<모든 게 끝났으니 진짜 여행은 이제부터>라는 마지막 글을 보자 작가가 이 산문집을 쓴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그건 여행의 목적에 관한 생각이었고, 이제껏 그가 말했던 수많은 여행지에서의 경험은 하나의 점으로 모아졌다. 이 책은 여행지의 풍광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었다. 책을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만의 여행을 시작하게 하는 출발의 호루라기와 같은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여행의 목적은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세계를 바꾸는 데 있다는 걸.(p255)’,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꿀 때 나도 바뀐다.(p256)’ 나를 바꿀 수 있는 것은 결국 나일 수밖에 없다. 외로움을 감당하는 것도. 지구라는 공간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칠 것이 아니라 기준점을 바꿔야하는 일이었다.

 

-저 산의 높이가 얼마나 될 것 같아?

멀리 바라다 보이는 산꼭대기를 가리키며 친구가 물었다.

-글쎄, 한 구백 몇 미터?

인터넷으로 산의 높이를 검색해본 친구가 감탄한다.

-역시, 과학 쌤!

-그냥 감으로. 한라산 높이가 1,950m이라니까 그것보다는 훨씬 낮을 테니 대충 찍은 거야. 근데 참 놀라워. 저게 1킬로미터 가까이 된다니.

-높이의 기준이 여기부터가 아니니까 보정을 한다면 그보다는 낮겠지?

!!! 잠시 잊고 있었다. 모든 산의 높이는 해발고도라는 사실을. 우리가 서 있던 장소는 기준점으로부터 다소 높은 곳이었으니 나의 감은 엄청나게 빗나간 셈이다.

 

나만의 이야기를 보정해가는 과정에도 외로움은 늘 바탕화면처럼 깔리며 나를 당길 것이다. 하지만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면, 여행이란 그 기준점을 다소 높여줄 수 있는 썩 괜찮은 방법이라 말하고 싶다. 여행이란 외로움을 보정하는 과정이라고. 중력처럼 당기는 외로움을 그나마 견디며 걸어갈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건조해보였던 보정이란 낱말이 위안으로 다가온다. 실제로는 그다지 높지 않다며, 바라볼만 하다며, 조금씩 쉬면서 올라가다보면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는 높이까지 도달할 수 있을 거라는 의미를 품은 채. ‘여행이란 말이 중력처럼 나를 당긴다는 느낌이 들자 어디로든 떠나고 싶어졌다.

 

 

p105, 9째줄 : 타시오 타시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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