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진 옷장을 정리하며 - 힘들고 아픈 나를 위한 치유의 심리학
게오르크 피퍼 지음, 유영미 옮김 / 부키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 불이 났다. 운동장으로 대피했다가 연기가 너무 많아지자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가장 가까이에서 불을 접했던 기억이다. 불이 시작되었다는 화학실 쪽을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다. 영문도 모른 채 얼떨결에 운동장으로 우르르 몰려나갔다. 시뻘건 불꽃은 보이지도 않았다. 불이 나면 잿빛 연기가 엄청나게 많이 난다는 것을 그때 절감했다. 우리들을 대피시키시던 가정선생님의 얼굴도 생각난다. 임신하셔서 배가 많이 부르셨는데. 소방차가 뿌린 물은 생각보다 많아서 화재가 진압된 후 교실로 복귀하러 올라가던 언덕길에는 장마 진 것처럼 물이 콸콸 흘렀다.

몇 달 동안 중앙 현관의 안쪽 공간이 교무실이 되었고 교실이 불탄 이과 반 선배들은 강당에 조립식 칸막이를 치고 수업을 받았다. 64일이었다. 날짜가 잊히지 않는 것을 보면 머릿속에 강하게 새겨진 날이긴 한데 마음의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누구도 다치거나 죽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날의 기억은 나와는 무관하다고 여겨왔던 일이 순식간에 닥칠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주었을 뿐이다.

 

비교적 가벼운 트라우마는 개에 대한 기억이다. 개를 키울 수 없는 이유는 개털이 날려서도, 목욕을 시키거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도 아니다. 무서워서다.

어릴 때 세 들어 살던 주인집에서는 개를 키웠다. 어느 날 개집과 건물 벽 사이에 개가 들어가 앉아있었다. 무언가를 먹고 있었던 것 같다. 그 개를 쓰다듬고 싶었던 걸까. 어쨌든 나는 개를 향해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 때 새끼손가락을 물렸다.

개를 무서워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 후로는 아무리 앙증맞은 강아지라도 손을 뻗을 수 없었다. 개만 보면 몸이 과도하게 소스라치는 반응을 보였다. ‘몸은 우리가 자신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늘 피드백을 해준다.(p27)’는 말이 맞았다. 몸이 개 때문에 놀랐던 기억을 끌어내고 먼저 반응했다.

몇 년 전에야 가까스로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친구가 머리와 다리를 붙들고 있는 동안 두어 번 만져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부드러운 감촉에 놀랐다. 개에 대한 트라우마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머리를 쓰다듬어본 이후로는 두려움이 많이 줄었다.

 

트라우마라고 여길만한 기억은 중학교 3학년의 수요일 오후에 겪은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내게 일어났던 일은 아주 많이 놀랐다는 것뿐이었지만 그날의 기억은 8년 가까이 묵직하게 가라앉아있다 때때로 나에게 작용했던 것 같다. 알약을 먹고 나서 한참 지난 후에야 약효가 퍼지는 것처럼 느리게 영향을 미치던 트라우마였다. 원인도 모른 채 특정 상황에 과민해지던 이유를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중이었다. 동네 초등학교 옆길을 지나치는데 차를 탄 아저씨가 나를 불러 세웠다. “학생! ***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지?” 친절하게 설명해드렸다. “잘 모르겠는데 잠깐 같이 타고 가면서 설명해줄 수 있을까?” 같이 차를 타고 가면서 아저씨가 중간에 한 번 내려서 어딘가로 전화를 할 때에도, 인적이 드문 도심의 천변으로 갈 때까지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때까지의 나는 인간에 대한 신뢰감이 바보스럽게 컸다.

가는 장소가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아저씨는 갑자기 차를 세웠다. 조수석의 의자를 뒤로 젖혔다.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지고 있던 검은색의 둥그런 보온 도시락 통을 품에 꼭 안았다. 아저씨는 내게서 그 도시락 통을 내려놓으려고 했다. 그게 방탄조끼라도 되는 듯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얼굴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아저씨가 눈을 감으라고 화를 냈던 것 같은데 이 부분은 확실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중간 중간 암전이 되는 것처럼 기억이 조각나있기 때문이다. 눈앞 1cm 직전까지 다가왔던 아저씨의 얼굴만 선명하다. 눈을 더욱 크게 뜨고 왜 그러시느냐고 말하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어느 순간 아저씨가 행동을 멈추었다. 잠시 운전석에 앉아있더니 밖으로 나가서 담배를 한 대 피웠다. 차 밖을 몇 번 왔다 갔다 하더니 다시 차 안으로 들어왔다. 한숨을 푹 쉬더니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나눴던 얘기는 뜬금없게도 진로에 관한 것이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문과를 택할지 이과를 택할지 고민이라며 아저씨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청주에 사는 24살의 문과를 택했다던 남자였다. 16세의 나는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집에 갈 때까지 나를 보호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차에서 내리는 나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던 아저씨의 마지막 말이 기억난다.

심리적인 시간 감각이었던 걸까.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흐른 것은 아니었다. 처음 차를 탔던 장소에서 내렸다. 집까지 어떻게 걸어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식구들은 저녁을 먹고 있었다. 특별활동이 늦게 끝났다고 거짓말을 했다. 엄마의 음성이 다른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높은 산에 올라간 것처럼 귀가 멍했다. 내 목소리가 TV 속 영화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윙윙 울렸다. 그날의 느낌은 몇 년 동안 종종 생생한 느낌으로 떠올랐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깨진 것은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던 몇 년 동안 느끼지 못하는 사이 남자에 대한 경계심이 생겼다.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누군가 다가오는 것에 대하여 과민 반응을 보였다. “너는 스스럼이 없는 것 같아도 어느 정도 가까워지려고 하면 벽이 느껴져.” 대학교 때 같은 과 남자애가 말했다.

커가면서 그것이 일종의 트라우마로 인한 반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아무 일도 없던 일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지도. 내 자신이 순진하다 못해 얼마나 바보스러웠던 지도. 객관적으로 판단해보면 성폭행이나 인신매매나 죽음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던 일이었다. 그 때만 생각하면 종종 아찔했다. 어떤 의도로 나를 차에 태웠는지, 무엇이 그 아저씨의 행동을 멈추게 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나를 멀쩡히 돌려보냈던 것을 보면 생각보다 나쁜 사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극적인 경험은 아니었지만 생각해보면 그럴 뻔한 일이었다. 몇 년 동안 계속되던 트라우마는 8년 쯤 지나 그날을 밖으로 꺼내어 가까운 이에게 털어놓은 이후부터 서서히 극복되기 시작했다. 그것도 가장 불신하던 남자라는 존재에게. 역시 사랑은 위대했다.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일은 극복이 가능하다.(p120)’라 했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에 공감한다. 말로 표현을 하자 놀라울 정도로 무게감이 줄어들었다. 이제껏 미련하게 이 일을 왜 안고 힘들어했나 싶을 정도로 별거 아닌 일로 보여서 억울한 마음까지 들었다. ‘우리를 압박하고 힘들게 하는 모든 상황은 근본적인 수용을 통해서만 제어가 가능하다. 그것을 통해서만 견딜 수 있고, 그렇게 해야만 출구를 찾을 수 있다.(p90)’ 그날에 대한 말을 하면서 그 일을, 그 안에 있던 인물들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객관적인 거리감이 이성적인 판단력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길을 찾아갔던 것 같다. 저자의 말처럼 누구에게나 회복 탄력성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것은 생존에 대한 강한 본능에 속하는 영역인 걸까.

 

위기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 준다. 평범한 일상에서 때때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직시한다면 현재 가지고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p283)’ 오랫동안 남자에 대한 불신과 스킨십에 대한 두려움으로 힘들었지만 그날의 트라우마는 나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해 가족을 못 볼 수도 있었겠다 싶은 생각이 들자 그렇게도 춥던 집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날 이후로 곤충의 탈피가 일어나 듯 훌쩍 컸다. 가족이 소중해졌고 가난하지만 내가 살던 공간의 소중함도 깨달았다.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매순간 감사하면서 살아가게 되었다. 마지막 순간 나를 돌려보내주었던 20대 청년의 근본적인 양심을 생각하면 그래도 마지막까지 믿을 수 있는 것은 인간인 것 같기도 하고. 그 날 쏟아졌던 옷장은 이렇게 느리면서도 차곡차곡 정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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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2-18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라우마에 대한 불쾌한 기억이 너무 많으면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지 못해요. 트라우마를 ‘절대로 극복할 수 없는 감정 상태‘로 받아들이는 고정관념을 먼저 버려야해요. 그러면 소크라테스가 말하는대로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나비종 2018-02-18 08:03   좋아요 0 | URL
독일 사람이 쓴 책이지만 실증적인 예를 들어가면서 트라우마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극복 방법을 상세하게 적어놓았더라구요.
cyrus님께서 하신 말씀도 책에 있었습니다. 공감했던 내용이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