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쓰게 된다 - 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
김중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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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찍을 때마다 망설인다. 독후감을 쓰거나 시를 짓거나 일상을 산문으로 표현할 때마다 종종 갖게 되는 마음이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빈 오선지로 흘러가는 시간 위에 나의 글을 한 편 두 편 음표로 그려 넣는 일이 어떤 가치를 만들 수 있는 걸까. 글쓰기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는 있을까.

 

활자화되어 회자되는 글이 아닌지라 내가 글을 잘 쓰는 건지, 인터넷 서재에 올린 나의 글을 읽는 소수의 사람들은 어떤 느낌을 받을까에 대한 궁금함이 늘 있다. 이 정도면 최악은 아니야, 나쁘지는 않아 라고 스스로 다독이며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 찡했다. ‘예술가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자신의 작품을 참고 견디는 사람’(p143) 이라는 문장을 보는 순간이. 전공과는 동떨어져 제대로 된 기본 형식도 갖추지 못한 글을 쓰고 있는 내게 이 책 안에 적힌 많은 문장들이 격려의 말을 건네주었다.

 

톡톡 튀는 김중혁만의 유머러스한 문장들이 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떠올리지? 감탄이 나오는 기발함이 많다. 하지만 이 책이 보다 의미 있게 다가온 것은 서툴게나마 나의 글을 쓰는 어깨를 따스한 안마로 토닥여주는 문장들 때문이었다. 마음 한 구석 가끔 지치는 나에게 계속 걸어가도 괜찮다며 속삭이는 듯한. ‘시간이 쌓이면 언젠가는 잘하게 될 테니’(p5) ‘세상에서 오직 나 혼자만 아는 이야기’(p60)리드미컬한 글’(p113)로 써보라고 한다. ‘특별할 필요가 없다. 오래 하다 보면 특별해진다.’(p286), ‘우리의 임무는 세상을 정리정돈 하는 게 아니다. 더 어지럽게, 더 헝클어뜨려서 더 많은 것들이 생겨나게 하는 것’(p188)이라며.

 

<Intro>에서 관찰의 중요성을 말한 저자의 생각에 공감한다. 리뷰를 쓰고, 시와 글을 쓰면서 나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관찰력이 길러진 점이었다. ‘남들과 똑같은 걸 보지만 결국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봐야 한다. (중략) 다른 곳에서 봐야 하고, 더 오래 봐야 하고, 더 많이 움직이며 봐야 한다. (중략) 너무 빨리 보지 않고, 천천히 봐야 이해할 수 있다.’(p10~11)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고 일상과 사물의 미세한 모습을 관찰했다. 움직이지 않는 것 같은 대상을 관찰하니 현미경으로 플랑크톤을 들여다보듯 꿈틀거렸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조차 내지 못하는 존재를 관찰하니 망원경으로 은하수를 들여다보는 듯 숨 막히는 별들이 안개꽃처럼 펼쳐졌다. 세상은 좀 더 섬세했고, 무수히 많은 색채들로 채도를 달리하며 존재했다. 삶이 이전보다 풍성해졌다.

 

글을 쓰다 보니 내안에서 얼어붙은 화석으로 가라앉아 있던 감정들이 서서히 녹아내렸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분리시키는 일이고, ‘나를 바라보는 나가 대화하는 일’(p136)이었다. 내가 쓴 글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나에게 말을 걸었다.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현실을 껴안는 일’(p285)이었다. 글을 통해 현재의 나를 힘차게 껴안을 수 있었다. ‘글을 쓰는 일은 좌표를 찍는 일이랑 비슷하니까,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일’(p23)이라는 말처럼, 글을 쓰면서 나의 삶에 선명한 점들을 찍어 나갔다. 부유하며 떠도는 듯 종종 방황하던 내게 그건 매우 의미 깊은 일이었다.

 

올해 목표 중 하나로 매일 글쓰기를 정했다. 오늘이 211일이니 42일째다. 정전기로 빗에 들어붙는 머리카락처럼 나태함이 슬금슬금 들러붙는 순간마다,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일임을 느끼지만 아직까지는 11글이 지켜지고 있다. 매일 글을 쓰다 보니 삶이 촘촘해지고 때론 느슨해지고 말랑말랑해진다. 시나 산문이나 독후감이나 뭐를 쓰든 삶의 모습이 반영되어야 하기에 평범한 눈으로 모든 순간들을 무심코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글쓰기는 나의 삶을 조금씩 변화시켰다.

이 책을 읽고 힘을 얻는다. 무엇이든 쓰게 된다는 책 제목은 무엇이든 쓰면 된다는 말을 담고 있다. 그래서 좀 더 씩씩하게 써보려 한다. 한없이 초라해 보이는 글을 올릴 때에는 지금처럼 엔터키 위에 있는 손가락이 차마 내려앉지 못하고 어정쩡한 대기 모드가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엔터키를 눌러보려 한다. 이렇게 쓰다 보면 어딘가로 갈 수 있겠지, 무엇이든 변화하겠지, 삶을 꼭꼭 씹다보면 무슨 맛이든 나겠지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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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1 2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비종 2018-02-11 22:31   좋아요 1 | URL
피로 회복을 시켜주는 비타민 C 같은 책이었습니다.^^

cyrus 2018-02-12 14: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쓰기를 ‘나‘를 제대로 보는 방식과 같은 의미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이게 꼭 좋은 점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타인이 내 글을 어떻게 보는지 살피는 것도 중요해요. 타인이 내 글을 보면서 생각하는 것도 나 자신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 됩니다. 타인이 내 글을 보지 않는다면 내가 타인의 글을 보면 됩니다. 그런데 ‘나를 바라보기 위한 글쓰기‘에 지나치게 몰두해서 나 이외의 글을 외면할 수 있어요. 여기 북플에는 글 쓰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요. ‘나를 바라보는 글‘을 쓰는 사람은 많아요. 하지만 ‘타인이 나를 바라보면서 쓴 글‘은 보지 않으려고 해요. 그 글이 자신을 향한 비난의 화살처럼 느껴지니까요.

나비종 2018-02-13 00:19   좋아요 1 | URL
나를 바라보는 글쓰기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는 거라 생각합니다. 타인이 나를 바라보면서 쓰는 글은 그보다 먼 거리와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것이구요. 이 때 타인의 글이 내게로 향한 비난으로 느껴지는 건 ‘다름‘과 ‘틀림‘에 대한 혼돈에서 비롯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지 다른 관점에서 그대의 옆 모습은 이렇습니다 얘기해주는 것일 뿐인데, 거울 속에서 정면만을 보아왔던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모습과 다른 말을 해주니 스스로 틀린 건가 생각하게 되는 거죠.
저는 다름을 틀림으로 자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기저에는 낮은 자존감이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시야가 좁아지고 마음이 쪼그라들어 나를 조금만 건드려도 움찔하며 쉽게 상처받기 때문이 아닌가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