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신의 사람 공부 공부의 시대
정혜신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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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과정은 여름과 겨울을 동시에 마주치는 일이다. 나를 끌어내고 덜어내면서 복잡하게 응어리져 깊이 쌓여있던 고통이 조금씩 흘러나온다. 글을 쓸 때마다 종종 아픈 이유이다. 리뷰나 시가 완성될 즈음에는 대부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은 실컷 울고 난 것처럼 후련하다.

독서의 끝은 글을 쓰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언젠가부터 책을 읽고 나서는 꾸역꾸역 노트북 앞에 앉는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일상처럼 퇴근 후의 시간을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보낸다. 쏟아지는 직장일로 눈이 뻑뻑한 날에도 피곤한 몸을 끌고 커피숍에 가서 글을 쓴다. 노트북을 통해 내가 쓴 글을 객관적으로 마주 보며 나를 다독인다. 글과 함께 하는 시간은 스스로를 치유하는 시간이다.

 

늘 마음에 걸렸다. 연애를 글로 배운다는 느낌이랄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머리로 인식하거나 가슴까지는 겨우 도달했으나 발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책을 읽고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독후감을 썼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행동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주눅이 들었다. ‘행동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과격한 시위였다. 그런 낯설음이 두려워서 걸음을 쉽게 뗄 수가 없었다. 말이나 글은 행동으로 옮길 때 생명력을 갖건만 대부분 말과 글에서 그치는 자신을 돌아보며 무력감을 느꼈다. 내 글이 더없이 가볍다는 생각이 행동하지 못한 무거움으로 나를 잡아당겼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생명력을 가지며 살아있는 책을 만났다.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이 사람 공부라는 주제로 한 강연을 엮은 책이다. 정신 분석 이론이나 심리학적 치료 기법을 말했다면 실망을 느끼며 그리 깊은 인상을 받지 않았을 터이다. 이 책은 달랐다. 삶의 현장에서 직접 끌어올린 말은 지하 몇 백 미터에서 올라온 암반수였다. 작가는 거리의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 했다. ‘사람에 가까워질수록 의사로서 탁월한 치유자가 된다고 믿으며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었다. 작가의 태도에 절로 고개가 수그러들었다. 객관적으로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 노력까지 열심히 하니 실력이 폭발적으로 늘 수밖에 없었다. 책 속에서 나는 속으로만 고민하던 고구마 같은 문제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액체 소화제를 먹은 듯 속이 뻥 뚫렸다.

 

반복되는 우울함으로 지쳐가던 때가 있었다. 결혼으로 새롭게 맺어진 인간관계 앞에서 한없이 서툴렀던 시기였다. 관계가 맺어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감당하지 못했다. 많은 시간을 식탁 끝에 걸려있는 유리컵처럼 지냈다. 언제 깨질지 모를 불안함이 공기처럼 흘렀다. 내게 가장 추운 장소는 집이었다. 사회에서의 얼굴은 더없이 즐거웠으나 퇴근 후에 체감하는 온도는 낮고 공허했다. 그 온도차가 마음에 균열을 내며 딱딱하고 건조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어갔다. 길을 가다 갑자기 죽는다 해도 전혀 아쉬울 것이 없었다. 전원이 꺼진 채 멀티탭에 연결된 전기기구처럼 어두운 시간의 흐름을 근근이 유지하던 날들이 흘러갔다.

 

20144월의 그날도 시린 나를 견뎌야 했던 하루일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 흘리며 아파했지만 내 마음은 화석처럼 굳어버린 듯 했다. 안쓰러운 마음은 들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TV를 통해 가라앉는 배를 바라보았다. 나는 점점 무감각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행동할 수 있는 시기를 놓쳐버렸다. 모든 일은 하기에 적당한 때가 있는 법인데 팽목항에도 안산에도 가보지 못했다. 남들 다 달고 다니던 리본도 옷에 매단 적이 없고 핸드폰 뒤에 노란 스티커를 붙여본 적도 없다. 마음에 담긴 차가운 어둠이 공감할 수 있는 능력까지 얼려버린 것 같았다.

 

3년이 지난 후에야 뒷북을 치고 있다. 마음 속 얼음이 점점 녹아내리고 있음을 느끼면서였다. 고등학생이 된 둘째에게 감정이입이 되기 시작했다. 아이비 크래커 절반만한 크기의 노란색 금속 열쇠고리가 자동차 키에 매달렸다. 출퇴근 때마다 시동을 걸면서 흔들리는 노란 영혼을 생각한다. 내 아이에게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제대로 견딜 수 있을까.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 먹먹한 마음으로 한 번도 본적 없는 아이들의 부모님을 생각한다.

3년이나 지나서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차 키에 열쇠고리를 매달고 그들을 생각하는 일이었다. 점점 따뜻한 사람이 되고는 있었지만 한편으로 한없이 느린 나를 돌아보며 쪼그라들었다. 내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것도 행동이라 할 수 있을까.

내 작은 행동에 대한 의미를 드디어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커다란 위안이었다. ‘…… 그런데 괜찮아.(p70)’ 동생의 죽음을 한참 후에야 받아들였던 형을 상담하면서 했다는 말이다. ‘괜찮아라는 세 글자를 손가락으로 어루만졌다. 조금 늦게 아파해도 괜찮아, 괜찮아 하며 따뜻한 온기가 손끝으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글이 지닌 힘이었다. 강의 후 이어진 Q&A에서 나와 비슷한 고민을 만났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당신의 고통을 나도 알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일은 어떤 방식이든 사람 목숨을 구하는 일(p114)’이라는 작가의 답변은 소심했던 나를 가만히 토닥였다.

 

올 봄에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겨울의 입김이 남아있던 3월 아침, 패딩에 털모자에 목도리까지 두른 채 교문 앞에 서 계시는 배움터지킴이 선생님을 보았다. 그 모습이 찡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해서 내 느낌을 시로 지었다. 다음 날 오전, 시를 출력한 종이를 드리러 지킴이실을 찾아갔다. 마침 교내 순찰 중이시라 자리를 비우셨길래 다른 분께 전달을 부탁드렸다.

그분은 점심시간에 나를 찾아오셔서 두 손을 꼭 잡아주셨다. 내 시를 읽고 우셨다며 살짝 붉어진 눈으로 고운 편지봉투에 담긴 답장을 건네주셨다. 몇 번이나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정갈하고 빽빽한 글씨로 채워진 편지지에는 표정에 담겨있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당신의 마음을 선생님이 알아주시는 것 같아 피곤함이 싹 가시고 많은 힘을 얻었다고 하셨다. 학생들을 더욱 잘 보살피는 것으로 보답하겠다고 하셨다. 다른 두 분께도 시를 지어 드렸다. 세 분의 지킴이 선생님은 내가 지나가면 멀리서도 반갑게 다가오시며 함박웃음을 지으신다.

 

소설 <삼총사>에는 ‘One for all, All for one’이란 구호가 등장한다. 멋진 리듬감을 주는 문구만큼이나 깊은 의미를 지닌 문장이다. 19세기의 뒤마도 인간의 개별성이 나타내는 심오한 의미를 깨달았던 것일까. 작가 기타노 다케시는 후쿠시마의 원전 사고와 관련해서 이것은 2만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다. 한 사람이 죽은 2만 개의 사건이다.”라 말하며 개별적 인간의 중요성을 시사했다. 정신과 의사로서의 정혜신 역시 한 개인에 집중하며 한 명 한 명을 치유해나간다. 강연의 결론은 모든 인간이 개별적인 존재라는 것을 아는 게 사람 공부의 끝이고 치유의 출발점(p150)’이라는 것이었다.

많은 경우 이런 마음을 안고 사람들의 고통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겠다 싶었다. 결국 최종적인 치유자는 자기 자신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답을 알고 있으므로. 주변에서는 그가 스스로 걸어갈 수 있도록 힘을 줄 뿐이다. 많은 이들이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이런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세상은 놀라울 정도로 따뜻해지지 않을까.

 

나란히 배치된 세 개의 책상을 보는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업무적인 일로 지킴이실에 들른 날이었다. 각각의 책상 앞에는 내 시가 적힌 종이가 나란히 붙어있었다. 볼 때마다 힘을 얻는다고 하셨다. 당신들 마음의 온도를 1정도 높여드린 것 같아서 마음이 벅차올랐다. 시를 드린 마음을 깊이 이해받았다는 생각과 감사한 마음까지 뒤엉켜 교무실로 돌아오는 내내 뭉클했다. 나를 치유하는 역할을 넘어 타인을 향한 글이 의미 있는 발걸음으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작가는 문학을 가리켜 인간에 대한 치유적 접근에 적합한 도구(p144)’라고 말했다. 어쩌면 글로도 행동할 수 있겠다 싶었다. 행동하는 글이란 타인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글이었다. 그로 인해 누군가는 시린 마음을 녹이고 힘을 얻어 행동할 것이니. 내 글도 생명력을 가질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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