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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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던 걸까, 무엇을 잃어버렸나를. ‘상실에 관한 7편의 소설을 접하면서 잃어왔던 것들을 생각한다.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있던 것처럼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출 때마다, 움찔움찔 놀라 어찌할 줄 모르는 어린 아이가 된다. 무의식적으로 덮어왔는지도 모른다. 아린 감정이 소설 속 인물을 향한 건지, 이야기가 끄집어낸 기억 속의 나를 향한 건지 모호하다.

 

추운 곳에 있다가 따뜻한 곳으로 들어가면 안경에는 뿌연 김이 서린다. 찬 공기와 더운 공기가 만나는 경계에서도 전선이 형성되면서 비가 내린다. 상실도 마찬가지인걸까. 상실 전의 기억과 앞으로 걸어가야 할 시간과의 경계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은. 고통은 경계에 서게 된 이들이 통과해야 할 숙명인 것 같기도 하고.

 

마시다 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바라보면 가끔 묘한 감정이 밀려온다. 그것을 담고 있는 플라스틱 컵 때문이다. 컵은 경계이다. 안에는 차가운 얼음이, 바깥에는 그보다 따뜻한 공기가 있다. 온도차로 인해 컵 표면에는 점점 물방울이 맺히다 시간이 지나면 주르르 흘러내린다. 그 모습이 간혹 컵이 흘리는 눈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 물방울이 차가운 얼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따뜻한 공기 안에 있던 수증기라는 사실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평범하게 보이는 소설집의 제목 바깥은 여름이라는 한 글자를 주목하는 순간, 의미가 많아진다. 바깥여름이라면, 안과 밖의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바깥여름이라 한다면, 시선이 밖으로만 향하고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 ‘이 들어가면 시야가 달라진다. 안과 밖을 다 생각하게 된다. 바깥여름이라는 말은 안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스노볼을 보고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p182)’한다. ‘볼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p182)’ 그리고 경계에 놓여있는 이들에게 다가올 상실과 뒤따라오는 고통을 묵묵히 그려낸다.

 

가장 무거운 상실감 중 하나는 죽음에서 비롯되는 그것이다. 이 책에 실린 7편의 작품 중 <건너편>을 제외한 6편에서는 죽음이 등장한다. 섣불리 접근해서 풀어나가기 어려운 주제이다. <침묵의 미래>에서는 소수언어박물관에서 마지막 언어를 사용하던 이들의 죽음과 남아있는 이들이 안고 있는 상실이, <풍경의 쓸모>에서는 직장에서 상사와의 관계와 아버지로 인해 느끼게 되는 더블폴트, <입동>에서는 사고로 아이를 잃은 이후 부모가 겪게 되는 고통이,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서는 학생을 구하려다 죽은 교사 남편을 생각하는 아내의 아픔이, <건너편>에서는 신뢰와 사랑을 잃어버린 커플의 상실감이, <노찬성과 에반>에서는 반려견의 죽음을 마주하게 되는 아이의 먹먹함이, <가리는 손>에서는 믿고 있던 아들에게서 낯선 모습을 발견하는 엄마의 철렁함이 담겨있다. 작가가 풀어나가는 죽음 이후의 상실에는 담담하면서도 깊은 울림이 느껴진다. 김애란의 글이 지닌 힘일까.

 

종종 그녀의 사유에 감탄한다. ‘해상도 낮은 미소(p151)’라는 문장에서 호흡을 잠시 멈춘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생각해낼까. 상상하기도 어려운 문장들의 조합이 군데군데 보석처럼 박힌 채 빛난다.

문장은 깔끔하고 담백하며 내용은 해양심층수를 마주한 느낌이다. 묵직하고 진한 슬픔에 번번이 압도당한다. 너무 시려 외면하고 싶은데 눈을 떼기 어렵다.

커다란 서예 붓에 먹물을 묻혀 휘두르다보면 마지막 획의 끄트머리에는 안간힘을 쓰고 지나간 붓의 흔적이 남는다. 붓글씨의 삐침처럼 여운이 많이 묻어나는 소설이다. 그 여운은 마음을 묶어 책속으로 나를 끌고 들어간다. 처음에는 등장인물을 바라보았는데 어느 순간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나를 발견한다. 대부분 아린 맛이 있어 눈시울이 뜨겁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이 생각난다.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이라는 다섯 가지 감정이 등장한, 당시 보았던 그 어떤 영화보다 받은 감동이 컸던 작품이다. 애니매이션을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는 쉽지 않은데 영화 중간에 눈물이 맺히기도 했다. 잊고 있던 동심과 내게서 일어나는 감정들을 새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진짜 나를 만날 시간이라는 부제답게 나를 만나는 시간을 가져다준 영화이다. ‘슬픔이에 관한 내용이 한동안 기억에 남는다. 온전히 나를 만나기 위해서는 밝은 감정뿐 아니라 외면하고 싶은 어두운 감정들도 마주해야함을 깨닫는다.

이 책은 슬픔이를 연상시킨다. 상실에 흠뻑 젖은 모습들을 보며 덩달아 눈시울이 뜨거워지다보니, 내 안의 상실과 마주할 용기가 생긴다. 슬픔은 충분히 슬퍼한 후에야 극복이 된다는 말이 떠오른다. 실컷 울고 난 후에 느껴지는 말간 개운감에 속이 후련해진다.

 

없던 일이 될 수 없고, 잊을 수도 없는 일은 나중에 어떻게 되나. 그런 건 모두 어디로 가나.(p45)’ 이 문장 앞에서 한참을 서성인다. 내게 없던 일이 될 수 없고, 잊을 수도 없던 일들을 떠올린다.

어떤 종류의 상실이 나를 아프게 하는가. 대부분 관계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느꼈던 상실감이다. 내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한 문장 속에서 답을 찾는다.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라, 자리에 누울 땐 벗는 모자처럼 피곤하면 제일 먼저 집어던지게 돼 있거든.(p214)’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p259)’ 곱씹을수록 간절한 질문을 조용히 발음하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가고 싶은 곳이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시차만큼 뭉클해진다. 집어던진 모자를 다시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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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D 2017-09-01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공유한다는 게 이런점이 좋은 것 같아요. 인사이드 아웃을 생각지 못했는데 이렇게 읽으니 영화도, 이 소설집도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나비종 2017-09-02 00:24   좋아요 0 | URL
잘 읽으셨다니 기분이 좋습니다. 감성의 파장이 비슷한 분을 알게 된 것 같아서요.^^*